우리가 무엇을 깨달았다고 했을 때 그것은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돼 있는 보리반야가 현현하는 것입니다.
보리반야는 불성, 또는 부처라고 할 수 있는데 탐욕과 어리석음과 성냄 등 삼독(三毒)에 의해 인해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중생심이 걷히게 나면 내재돼 있던 보리반야는 절로 드러나게 됩니다.
선지식은 훌륭한 스승을 말합니다.
수행은 홀로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좋은 스승의 가르침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수행하면 궁극적으로 우리 안에 내재돼 있던 보리반야가 현현하게 됩니다. 반야가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정(定)과 혜(慧)를 통해서입니다. 정과 혜는 선정과 지혜입니다.
선정은 고요한 상태를 말합니다.
마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경전에는 일찰나(一刹那)에 구백 번 생겼다 소멸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선정은 쉼 없이 생멸을 반복하는 이런 마음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밝음은 절로 드러납니다.
간혹 우리는 누구와 다툴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화가 난 상태이기 때문에 시비(是非)를 제대로 가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천천히 살펴보면 다툼의 전후 사정이 명확히 보이게 됩니다. 여기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행위는 선정이고 그 결과 전후 사정이 명확히 드러나는 것은 지혜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선정과 지혜는 함께 합니다.
거울에 때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거울을 닦아야 합니다.
여기서 닦는 행위는 선정입니다.
그리고 닦아서 깨끗해진 거울에 사물이 비치는 것은 지혜입니다.
거울은 닦은 만큼 비치게 되고 비친 만큼 닦인 것입니다.
그래서 닦는 행위와 비치는 정도는 항상 함께합니다.
정과 혜가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