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
우리 중생이 과거부터 현재를 통해서 미래까지 나아가는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간단히 풀이한 것이 십이인연법입니다.
이 가운데 무명은 과거세 헤매던 우리의 번뇌입니다.
물론 지금의 번뇌도 무명이라 할 수가 있지만, 십이인연법에서 말하는 무명은 과거세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무명입니다.
이런 무명 때문에 부부간에도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고, 영혼도 역시 그런 부모한테 딱 들어선단 말입니다.
무명이 없으면 가령 부모의 연이 있더라도 영혼이 들어서지 않습니다.
그때는 사람으로 태어날 필요가 없지요.
아까 말한 대로 천상이나 극락으로 가 버리지, 사람으로 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명 때문에, 무명의 무게 때문에 그에 알맞은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무명이고 무명 때문에 결국은 그와 같이 부모 만나서 - 이것이 행(行)이라 - 내가 부모한테 태어나야 하겠구나합니다.
식(識)은 어머님의 태안에 막 들어 올 때의 한 생각입니다.
수태일념(受胎一念)이라, 태에 들어가는 한 생각이 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명과 행은 과거(過去)에 해당하고,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 등 다섯은 현재(現在)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가령 금생에 받은 일념(一念)이 식(識)이고, 태안에서 몸과 마음이 자라는 것, 즉 말하자면 겨우 몸과 마음이 구분되는 것이 명색(名色)입니다.
또한 몸과 마음이 더욱 자라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즉 눈, 코, 입이 다 붙어서 제대로 사람 몸을 갖춘 태아(胎兒) 때가 육처(六處)고 말입니다.
두 살 세 살때 멋모르고 사물에 접촉하는 것이 촉(觸)이고 육칠세 이후에 사물에 대하여 고락(苦樂)을 느끼는 것이 수(受)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는 무명(無明)과 행(行) 둘에 해당하고, 현재에 식(識)을 받아서 - 마음 받아서 엄마의 태(胎)를 통해서 태어날 때가 현재에 해당합니다.
즉 말하자면 식, 또는 태안에 자라는 마음과 몸, 또 마음과 몸이 자라서 눈과 코가 다 생기고 육신(肉身)이 제대로 갖추어지는 이것이 육처(六處), 금생(今生)에 나와서 어릴 때 사물을 접촉하는 것이 촉(觸), 더 자라서 육칠세 이후에 사물에 대하여 고락(苦樂)을 느끼는 것이 수(受)인데, 이와 같이 식(識), 명색(名色), 육처(六處), 촉(觸), 수(受)는 현재에 해당합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애욕(愛慾)을 느끼고 또 갖고 싶어서 우리가 욕구하는 것은 현재에 다시 짓는 업에 해당합니다.
현재 애욕을 느끼고 다시 갖고 싶어 하는 취(取)와 있을 유(有)는 현재 짓는 우리의 업(業)에 해당합니다. 이런 업에 따라서 미래에도 다시 태어나는 생(生)과 늙고 죽는 노사(老死)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십이인연법(十二因緣法)은 과거(過去)나 현재(現在)나 미래(未來)를 통틀어 우리 중생이 태어나고 늘고 죽는 여러 가지 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상 십이인연 중에서 ‘무명(無明)과 행(行)의 이(二)는’- 무명과 행, 둘은 곧 혹업(惑業)입니다.
미혹할 혹(惑)은 이것은 번뇌(煩惱)와 똑같은 뜻입니다.
맨 처음에 있는 무명과 행, 둘은 곧 혹업, 즉 번뇌와 업입니다.
무명은 번뇌고 행은 업입니다.
둘은 ‘곧 혹(惑) 업(業)의 이(二)로서’ 즉 번뇌와 업의 둘로서 ‘과거세(過去世)의 원인(因)에 속하고’ 또한, 여기 있는 식(識)은 엄마의 태안에 막 붙어서 들어오는 식입니다.
그다음에 엄마의 태안에서 몸과 마음이 갈라져서 구분될 수 있는 그때가 명색(名色)입니다.
명색과 육처(六處) - 눈, 코, 입과 같이 육신이 구분 지을 때 육신이 구분될 만큼 자랄 때가 육처입니다.
촉(觸) 이것은 태어나서 2, 3세 동안에 사물에 대하여 접촉하는 그때가 촉이고, 수(受)는 더 자라서 육칠세 이후에 사물에 대해서 고락(苦樂)을 느낄 때입니다.
이와 같이 ‘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의 5(五)는 과거(過去)의 혹(惑)·업(業)에’ 과거의 번뇌(煩惱)와 업(業)에 ‘인(因)에 연(緣)하여 수(受)한 - 금생(今生)에 받을 - 현재(現在)의 과(果)에 속(屬)하니’ ‘차(此)는 과현일중인과(過現一重因果)’ 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일중의 즉 말하자면 한 가닥의 인과에 속한단 말입니다.
‘또한 애(愛)·취(取)의 이(二)는 현재(現在)의 혹(惑)이요’- 이것이 애취입니다.
14~15세 이후에 강성한 애욕을 청하는 애와 또 보다 성인이 된 후에 그때는 보다 더 애욕이 성해서, 제경에 - 여러 가지 경계에 - 추구해서 꼭 내가 취해야 하겠구나 하는 즉 말하자면 그와 같은 강성한 때, 이런 애(愛)·취(取)가 현재(現在)의 번뇌(煩惱)입니다.
현재의 번뇌요. 즉 혹(惑)이요.
‘유(有)란 현재의 업이며’ - 여기 있는 유(有)란 말입니다.
애(愛)·취(取) 번뇌에 의해서 종종의 업을 지어서 당래(當來)의 과(果)를 정하는 위니 유(有)란 곧 업으로서, 이런 유란 현재의 업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애욕 때문에 여러 가지 하찮은 욕구 때문에 업을 짓습니다.
‘혹(惑) 업(業)의 현재(現在) 인(因)에 연(緣)하여 미래(未來)의 생(生)과’ 또 미래에서 추구하는 ‘노사(老死)의 과(果)를 감(感)할새’ - 늙고 죽는 과(果)를 느낄새- ‘차는 현미일중인과(現未一重因果)이다.’
이것은 현재(現在)와 미래(未來)의 한 가닥 일중의 인과(因果)이다.
‘위의 과현일중(過現一重)과 현미일중(現未一重)을 합칭(合稱)하여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라 한단 말입니다.
과거와 현재의 인과와 현재와 미래의 인과를 이와 같이 양인과를 합하면 이것이 삼세양중의 인과입니다.
‘차(此) 양중(兩重)의 인과(因果)에 의(依)하여 윤회(輪廻)가 무궁(無窮)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에 의하여 윤회(輪廻)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간(人間), 천상(天上) 등 육도(六途)에 뱅뱅 도는 윤회가 무궁함을 - 다함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명(無明)을 못 끊으면 즉 번뇌(煩惱)를 못 끊으면 우리 생명(生命)은 몇 천생, 몇 만생도 윤회하고 마는 것입니다.
시초에 내가 나올 때도 역시 무명 때문이었습니다.
무지 때문입니다.
무지는 무엇인가?
아까도 말했습니다만 내 생명의 본바탕을 모른단 말입니다.
즉 우주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지요.
‘나’라는 것은 사실은 원래 없는 것인데, 단지 진리(眞理)를 모르기 때문에 ‘나’라고 고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나라고 고집하는 것이지 사실 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나를 고집하는 무명, 천지우주(天地宇宙)의 본바탕을 모르는 무명, 그런 무명 때문에 행(行)이 있고 부모님 연(緣) 만나서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명을 끊어버리지 못하면 결국은 죽은 후에도 다시 똑같은 업(業)을 지어서 뱅뱅 돈단 말입니다.
몇만생 되어도 무명을 끊지 못하면 인간의 윤회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결국은 무명을 끊는, 무지를 끊는 그것, 즉 우리가 수행하는 문제입니다.
이와 같이 생사(生死) 거듭하는 몇만생 동안 죽고 살고 또한 전쟁이 있고 무엇이 있고 해서 여러 가지 참화를 겪습니다.
인간의 역사(歷史)만 본다고 하더라도 그런 유구한 세월 동안에 겪은 인생의 고난(苦難)은 모두가 다 이와 같이 무지 때문이고 결국은 무지를 못 끊어서 윤회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출처: Mail 글쓴이: 🙏참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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