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마음이 부처이다.
<불교의 유심론(唯心論)>
우리가 불교(佛敎) 심리학(心理學)에서 본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의 의식의 뿌리에는 말나식(末那識)이라.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 6의식(六意識), 우리 중생은 보통 6의식으로 쓰지 않습니까.
그 밑에 가서는 제7말나식(第七末那識)이 있습니다.
내내야 지금 심리학이 말하는 잠재의식(潛在意識)이 되겠지요.
불교에서 말할 때 말나식(末那識)까지는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그다음 제8아뢰야식(第八阿賴耶識)이라,
아뢰야식은 불교 심리학에서는 정분(淨分), 염분(染分)이라, 청정한 부분, 또는 염분이라, 물들어서 오염된 부분, 이와 같이 나누어 보는 것인데, 제9암마라식(第九唵滅識)>이라, 제9암마라식은 청정(淸淨)해서 조금도 오염(汚染)되지 않았다 말입니다.
그러한 청정(淸淨)한 의식(意識), 그 진성(眞性)이 진여식(眞如識)이라, 부처란 말입니다.
따라서 어떤 누구나 간에 우리 마음 저변에는 부처가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 가지 인과(因果)에 따라서 차근차근 오염(汚染)되어서 사람만치, 제9암마라식도 못 쓰고, 제8아뢰야식도 못 쓰고, 제 7말나식도 못 쓰고, 6식만 쓰는 사람의 존재인 것입니다.
천상(天上)이나, 지옥(地獄)이나, 아귀(餓鬼)나, 그런 모든 것이 다 의식(意識)의 수준(水準)입니다.
마음이라는 의식이 5식도 미처 못 쓰면 저런 식물(植物)이 되겠지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이라, 5식만 쓰면 사람 아닌 동물(動物)이 되겠지요.
사람은 더욱 진화(進化)되어 6의식까지 씁니다.
신중(神衆)들은, 사람과 같은 그런 오염(汚染)된 몸을 갖지 않은, 조금 나은 몸을 가진 신중들은 더욱 깊은 식을 씁니다.
부처는 다 써서 그때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말나식(末那識), 또는 아뢰야식(阿賴耶識), 암마라식(唵滅識), 불식(佛識)까지 다 씁니다.
따라서 일체존재(一切存在)는 모두가 의식(意識)의 차원(次元)의 차이(差異)입니다.
의식을 보다 더 잘 쓰면, 원래 가지고 있는 의식을 깊이까지 다 쓰면 그때는 부처고, 조금 덜 쓰면 보살(菩薩), 연각(緣覺), 성문(聲聞) 그런다 말입니다.
이런 것은 불교(佛敎)에서는 명료(明了)하니,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에서, 불교 심리학은 유식론이라. 오직 유(唯)자. 알 식(識)자. 유식론인데, 유식론에서 말씀해 있습니다만, 현대 심리학에서도 역시 심층(深層) 심리학(心理學)에서는, [프로이드]는 조금만 말했으나, [융] 같은 분은 상당히 깊이 말했습니다.
그분은 불교를 공부 했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좌선(坐禪) 이것이 심전(心田) 개발(開發)이라. 우리 마음 밭을 개발하고 개발해서 우리 마음의 저 밑창을 캐내는 작업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선(禪)이 최상(最上)의 길인데, 선(禪) 이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한바 우리 마음이 부처님의 영상(映像)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 말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영상만 안 떠나면 불심(佛心)만 여의지 않으면 그때는 앉으나 서서나 누워서나 다 선(禪) 입니다.
다 참선(參禪)입니다.
앉아서나 누워서나 또는 길을 가면서나 다 참선입니다.
-🙏청화 큰스님-
출처: 마음의 고향
출처: 글쓴이: 🙏참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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