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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본래 부처이다.

by 이初心 2025. 11. 24.

    🙏본래 부처이다.

    모두 허망하다고만 생각하면 그때는 참다운 반야가 못됩니다.
    그러면 공도리만 아는 것이지 공이 아닌 진여불성은 모른단 말입니다.
    공밖에 모르면 내내야 그때는 허무주의적인 것밖에는 느끼지를 못합니다.

    그러면 중생 제도(濟度)를 참다웁게 못합니다.
    대비심(大慈悲心)이 아직 못 나옵니다.
    마음자리에서는 절대로 나와 남이 둘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의 흐리멍덩한 눈으로 봐서 현상적인 상으로 봐서 물적인 환경에 그런 자타가 있는 것이지 물질을 떠나버린 근본 성품 자리 진여 불성 자리에서는 그러한 상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에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나라는 상 너라는 상 또 중생이라는 상 목숨이 길다 짧다 하는 상, 개나 소나 돼지도 역시 본래에서는 사람과 똑같은 진여불성입니다.

    우리 목숨도 80년 70년 그런 장단이 없습니다.
    원래 생명은 영생하는 것입니다.
    예수만이 부활(復活)해서 영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어떤 누구나 다 본래로 영생합니다.

    죽음은 본래가 없습니다.
    담나 그 업식 때문에 삼계육도에서 윤회를 합니다.
    우리 업식이 윤회하니까 앞서 말씀드린 삿된 단견은 없습니다.

    또 금생에 나쁜 짓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마지막 판에 바른 마음 먹고 바로 행동하면 그냥 극락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상견도 없단 말입니다.

    업장대로 내생을 받으니까 상견이 아닙니다.
    우리 중생은 부처가 될 때까지 몇 생도 헤맵니다.
    본래 부처이기 때문에, 우리 본 고향은 부처이기 때문에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몇 생도 헤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구윤회라고 하지 않습니다.
    금생에 잘 못 살면 잘못 산만큼 고를 받고, 금생에 잘 살면 잘 산 만큼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금생에 잘 닦아서 육도윤회를 면하면 영생의 영역에 들어가기도 하겠지요.

    영생의 영역은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 하고 만덕을 원만히 갖추어 놓아서, 그 자리에서는 우리 중생들의 삶이 불쌍하게 보이므로 그때는 수원수생(隨願受生)이라, 대비심으로 원력을 세워서 중생계로 다시 태어나고 지옥에도 태어나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육조 스님께서는 80생의 선지식(善知識)이라, 육조혜능(六祖慧能) 스님께서는 80생 동안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서 중생을 제도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사부대중 우리 불자님들은 모두가 다 금생에만 태어난 불자님들이 아닙니다.

    과거 전생에 무수생 동안에 닦아오신 분들입니다.
    금생에 꼭 성불하실 분들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불(成佛)의 길이 탄탄 대도(大道)로 지금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 인간사회는 그 길 이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외길 성불의 길 하나의 길뿐입니다.
    다만 중생이 나쁜 습관성에 젖어 빨리 못 가고 더디 갈 뿐입니다.

    빨리 가면 가장 행복스러운 사람인 것이고, 우주의 궤도 우주의 정리에 따르는 것이 빨리 가는 길입니다.

    우주의 도리에 따르는 것입니다.
    빨리 못 가는 것은 우주의 궤도에서 이탈된 것입니다.
    그래서 궤도에 따르면 힘 안 들이고 갈 수가 있습니다.
    불교 술어로 임운등등(任運等等)이라. 저절로 그 궤도에서 성불로 지향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궤도에서 이탈해 놓으면 이제 애쓰고 다시 궤도에 진입해야 쓰겠지요.
    부처님께서 계행(戒行)을 지켜라. 참선 염불해라. 또는 반야의 지혜를 가져라. 반야의 지혜는 제법은 모두가 몽환포영(夢幻泡影)이라.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란 말입니다.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 꿈이요 허깨비요 거품이요 그림자인 것입니다.

    중생의 흐리멍덩한 눈으로 보니까 그림자가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지 성자가 본다고 생각할 때는 실체가 있지 않습니다.

    허수아비를 쫓아서 우리가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선은 바른 이해를 갖추어야 바른 신앙이 나옵니다.
    모든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서 반야심경 금강경대로 제법은 허망 무상하단 말입니다.

    부처님이 되는 길이 절대로 어렵다고 생각을 마십시오.
    저 같은 사람도 칠순이 넘었지만 지금도 행자 같은 비구 마음입니다.
    제가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한 번도 생각 못 해봤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부처님의 공덕 부처님의 그 무량 공덕을 제가 어떻게 얼마나 하는가. 부처님 경전 따라서 참선 좀 했다고 그래서 조금 아는 소리 할 뿐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그런 아(我)를 떠나서, 자기라는 모두를 다 떠나서 무량의 공덕을 갖추고 있는 공덕에 비추면 그야말로 태양과 반딧불의 비유입니다.

    그런 처지에서 어떻게 공부를 좀 했다고 하겠습니까.
    저는 그래도 다행히 부처님 덕으로 출가한 지 올해로 꼭 50년입니다.
    무던히 공밥 많이 먹었습니다.
    우리 불자님들 만나면 저는 항시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부처님 길이 절대로 먼 길이 아닌 것이고, 도인들마다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라. 풀쩍 비약적으로 뛰어서 여래지에 갈 수가 있는 것이라고 말씀을 했고, 조금 더디게는 7일 동안만 불면불와(不眠不臥)를 해서 닦으면 꼭 견성오도(見性悟道)하다.

    더 멀리는 90일 이라. 좀 더 멀리는 100일이라. 3년이라. 몇 사람들은 변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절대로 저와 같이 게으름 피우지 않으실 것을 확신을 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저한테 이렇게 풍기는 분위기나 기(氣)가 그렇게 느껴집니다.
    제가 겸허하는 그런 의미에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꼭 부처님의 정법을 그대로 공부만 한다고 생각할 때는 참말로 별로 먼 길이 아닙니다.

    저는 굉장히 헤맸습니다.
    근본 불교라, 무슨 불교라 갔다 왔다, 또 무슨 철학이라, 하여튼 나름대로 피상적이나마 동서철학(東西哲學)은 다 섭렵했습니다.

    신학(神學)도 중요한 것은 대체로 떠들어 봤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독교를 저와 같이 17억이나 믿는가. 진리가 아니면 그렇게 믿을 것인가. 그러한 의심 밑에서 또 역시 봐진단 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우리 석가모니 가르침하고 똑같습니다.
    다만 깊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석가모니께서는 구경지(究竟地) 보살 10지를 성취하시고, 불지(佛地)까지 온전히 묘각(妙覺)을 다 성취하신 분이고, 조금도 흠절이 없이 확철대오 하신 분입니다.

    그런 것이지 예수께서도 우주의 본성을 꼭 봤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자, 노자, 마호메트도 다 그렇습니다.
    마호메트도 실라산에서 3년 동안이나 명상을 닦았습니다.
    명상을 닦아서 우주의 기, 불성의 기를 맛보았기 때문에 그런 공적을 내세웠단 말입니다.

    예수 역시 십자가에서 오히려 자기 이웃을 위해서 기도를 모시고 원수를 위해서 기도를 할 수 있는 그런 정도 같으면 원수가 원수로 보일 수가 없습니다.

    무아를 성취한 사람들은 원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예수같이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중생들은 항시 원수는 원수로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스러워 보이니까 차별 시비를 하고 행동이 다른 쪽으로 벗어나 우주의 참다운 궤도로 진입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출처: 글쓴이: 🙏참마음
    https://cafe.daum.net/pokyodang/7QrQ/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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