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궁행/성철스님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설사 억천만겁 동안 나의 깊고 묘한 법문을 다 왼다 하더라도
단 하루 동안 도(道)를 닦아 마음을 밝힘만 못하느니라.’
또 말씀하셨다.
‘내가 아난과 같이 멀고 먼 전생부터 같이 도(道)에 들어왔다.
아난은 항상 글을 좋아하여 글 배우는 데만 힘썼기 때문에
여태껏 성불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와 반대로
참선에만 힘써 도(道)를 닦았기 때문에 벌써 성불하였다.’
노자도 말씀하였다.
‘배움의 길은 날마다 더하고 도(道)의 길은 날마다 덜어간다.
덜고 또 덜어 아주 덜 것이 없는 곳에 이르면 참다운 자유를 얻는다.’
옛 도인이 말씀하였다.
‘마음은 본래 깨끗하여 명경(明鏡)과 같이 밝다.
망상의 티끌이 쌓이고 쌓여 그 밝음을 잃고
캄캄 어두워서 생사의 고를 받게 된다.
모든 망상의 먼지를 다 털어버리면 본래 깨끗한 밝음이 드러나
영원히 어두움을 벗어나서 대자유의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학문하기를 힘쓰는 것은 명경에 먼지를 자꾸 더하는 것이어서
생사고(生死苦)를 더 깊게 한다.
오직 참선하여야 먼지를 털게 되어 나중에는 생사고를 벗어나게 된다.’
또 말씀하였다.
‘화문으로 얻은 지혜는 한정이 있어서 그 배운 범위의 밖은 모른다.
그러나 참선하여 마음을 깨치면 그 지혜는 한이 없어,
그 지혜의 빛은 햇빛과 같고,
학문으로 얻은 지혜의 빛은 반딧불과 같아서 도저히 비교도 안 된다.’
육조대사는 나무장수로 글자는 한 자도 몰랐다.
그러나 도(道)를 깨친 까닭에 그 법문은 부처님과 다름없고
천하없이 학문이 많은 사람도 절대로 따를 수 없었다.
천태스님이 도(道)를 수행하다 크게 깨치니
그 스승인 남악이 칭찬하며 말했다.
‘대장경을 다 외는, 아무리 큰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너의 한없는 법문은 당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래서 천고에 큰 도인이 되었다.
역선사(易禪師)는 고봉(高峯)선사의 법제자이다.
출가해서 심경(心經)을 배우는데 3일 동안에
한 자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 스승이 대단히 슬퍼하니 누가 보고
‘이 사람은 전생부터 참선하던 사람일 것이다’라고 하여
참선을 시키니, 과연 남보다 뛰어나게 잘 하였다.
그리하여 크게 깨쳐 그 당시
유명한 고봉선사의 제자가 되어 크게 법을 폈다.
99세에 입적하시어 화장을 하니
연기가 조금도 나지 않고 사리가 무수히 쏟아져서
사람들을 더 한층 놀라게 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시방 세계에 가득 차는 음식, 의복, 금은보화로써
시방 세계의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천만년 예배를 드리면 그 공덕이 클 것이다.
그러나 이 많은 공덕도 고(苦)받는 중생을
잠깐 도와 준 공덕에 비하면 천만 분의 일, 억만분의 일도 못된다.’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부처님 제자로서 자기 생활을 위하여 부처님의 본의를 어기고
부처님 앞에만 ‘공양올리리라’한다면 이는 불문의 대역이니
절대로 용서치 못할 것이다.
중생을 도우는 법공양을 버리면
광대무변한 부처님의 대자비는 어느 곳에서 찾겠는가?
탄식하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큰 법공양도
화두(話頭)만 참구하는 자성 공양(自性供養)에 비교하면
또 억만분의 일도 못 된다.
참으로 자성 공양을 하는 사람 앞에서는
백천의 제불(諸佛)이 칭찬은 감히 꿈에도 못하고
삼천리 밖으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영명선사가 말씀하였다.
‘널리 세상에 참선을 권하노니 설사 듣고 믿지 않더라도
성불의 종자는 심었고, 공부를 하다가
성취를 못하여도 인간과 천상의 복은 훨씬 지나간다.’
이러한 말씀들은 내 말이 아니라
시방제불과 선사들이 함께 말씀하신 것이다.
악은 물론 버리지만 선도 생각하면 안된다.
선·악이 모두 생사법(生死法)이어서
세간의 윤회법이지 출세간의 절대법은 아니다.
선·악을 버려서, 생각지 말고 오직 화두 하나만
의심하는 것이 참다운 수도인이다.
그러므로 고선사가 말씀하였다.
‘대자비심(大慈悲心)으로써 육도만행(六度萬行)
곧 남을 도우는 큰 불사를 지어 공부를 성취하려는 사람은
송장을 타고 큰 바다를 건느려는 사람과 같느니라.’
조주스님이 말씀하였다.
‘너희들은 총림에 있으면서 십년, 이십년 말하지 말고 공부하여라.
그래도 너희를 벙어리라 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공부하여도 성취 못하거든 노승의 머리를 베어가라.’
과연 그렇다.
공부하는 사람은 입을 열어 말만 하게되면 공부가 끊기는 때이니
이런 식으로 공부해서는 천만년 하여도 소용없다.
오직 항상 계속해서 간단(間斷)이 없어야 한다.
일본의 도원(道元)선사는 일본에 처음으로 선을 전한 사람이다.
중국 송나라에서 공부를 성취하고 환국하여 처음으로 외쳤다.
‘일본은 불법이 들어온 지 벌써 팔백년이 되어
각종 각파가 전국에 크게 흥성하였지만 불법은 전연 없다.
고려는 조금 불법을 들었고 중국은 불법이 있다.’
이 무슨 말인가?
팔만대장경으로 전 우주를 장엄하여도
그 가운데 자성(自性)을 깨친 도인이 없으면
그것은 죽은 송장의 단장에 불과한 것이다.
모든 법의 생명이 자성을 깨치는 데 달렸기 때문이다.
자성을 밝히는 선문(禪門)에서 볼 때에는
염불(念佛)도 마군이며,
일체 경전을 다 외어도 외도이며,
대자비심으로써 일체 중생을 도와 큰 불사를 하여도 지옥귀신이다.
모두 다 생사법이지 생사를 벗어나는 길은 되지 못하니
필경 송장 단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직 자성을 밝히는 길만이 살 길이다.
그러므로 앙산스님이 말씀하였다.
‘열반경 사십권이 모두 마설(魔說)이니라.’
열반경은 최상승경인데 이것을 마설이라고 하면
일체경이 전부 마설이 아닐 수 없다.
오직 자성만 믿고 자성만 닦아야 한다.
동산스님이 말씀하였다.
‘부처와 조사 보기를 원수같이 하여야만 바야흐로 공부하게 된다.’
또 고조사가 말씀하였다.
‘비로자나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이 되어라.
아니, 누구나 다 비로자나 부처님의 머리 위에
앉아 있지 않은 사람이 없나니라.’
또 말씀하였다.
‘장부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거니
어찌 부처의 가는 길을 가리오.
올빼미는 다 크면 그 어미를 잡아 먹나니
공부인도 필경은 이와 같아야 한다.’
곧 부처와 조사를 다 잡아먹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때가 부처님의 은혜를 갚게 되는 때이다.
그러므로 적수단도(赤手單刀)로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한다.
이것이 대낙오자(大落伍者)의 일상생활이며
대우치인(大愚痴人)의 수단 방법이다.
- 성철스님 [수도자에게 주는 글]중에서 -
출처 :무진장 - 행운의 집 원문보기▶ 글쓴이 : 해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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