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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농부와 학자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9.

    봄이 되자 채소 재배를 하는 농부는 열심히 밭을 갈았습니다. 마치 보물을 파내듯 부지런히 일을 하였습니다. 건강하고 매우 생기가 넘치는 그 농부는 오이를 재배하기 위해 50이랑이나 되는 밭을 일구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와 이웃하여 수다쟁이인 학자가 살고 있었는데, 채소밭이나 과수원을 좋아하여 자연의 친구임을 자처하는 그 수다쟁이 학자는 오로지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만으로 채소 재배에 대해 통달한 것처럼 사설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다쟁이 학자는 자신의 밭에 자기 손으로 직접 오이를 심어 보기로 작정하였으나, 그는 이웃 농부를 비웃었습니다. "이웃사촌, 당신은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좋은가 보군요. 그러나 나는 땀을 흘리지 않고 내 방법으로 당신을 앞질러 보겠소. 당신의 채소밭은 내 채소밭에 비하면 몹시 보잘 것 없고 황폐한 밭이 될 것이오. 어쨌든 당신의 밭에서도 작물이 자라다니 나는 놀랄 뿐이오. 당신의 채소밭에서 그런 열매가 열리다니, 당신은 채소 재배에 대한 책을 읽어보기나 했소?" 이웃 농부가 대답하기를, "책을 읽을 틈이 있어야지요. 근면, 경험, 팔뚝의 힘, 이것이 내 학문인 샘이지요. 이 세 가지가 모이면 신은 내게 빵을 주신답니다." "무식한 소리! 당신은 감히 학문에 대항하는 것이요?" "아니, 아닙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뭔가 특별한 농사일을 시작한다면 저는 언제든지 기꺼이 본받아 배울 것입니다." "곧 당신도 알게 될 것이오. 대망의 여름이 오기만 하면."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지금부터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인데요. 저는 벌써 씨를 뿌려 모종도 끝냈지요. 그런데 당신은 아직 밭조차 갈지 않으셨군요." "그래요, 나는 그 동안 쭉 책을 읽느라고 시간이 없어서 아직 밭을 갈지 못했고, 하지만 이 책에 방법이 있을 거요. 이를테면 밭을 일구는 도구는 어떤 것이 편리할까. 괭이? 쟁기? 이런 걸 연구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지만 설마 세월이 도망가기야 하겠소?" "당신에겐 어떤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농사란 적절한 시기가 있어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지요." 그렇게 대답하고는 농부는 곧 학자 옆을 떠나 자신의 괭이를 손에 들었습니다. 학자는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읽다만 책을 보고 발췌하고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밭을 갈아 하루 종일 씨를 뿌렸습니다. 얼마 후 이랑에 심은 씨앗에서 싹이 났을 때 학자는 잡지에서 더 새로운 채소 재배법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심었던 모든 방법을 그만두고 새로운 경작 방식으로 다시 일구고 다시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동안 단 한 줄의 글도 읽어보지 못한 농부는 많은 수확을 올리고 큰 이익을 남기는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학문을 섭렵한 학자는 단 하나의 오이도 거두지를 못했습니다. 책상위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익힌다 하여도 그것을 직접 실행하지 않는 다면 내 것이 될 수 없겠지요. 경험한 것과 소신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소한 그 노력한 만큼의 대가는 주어질 것입니다. 아는 것이 병이 될 수 있고, 실천력이 없는 지식인에게 오직 남는 것은 공허일 뿐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