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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경의 성립과 조성 역사.

by 혜명(해인)스님 2019. 4. 27.


-대장경의 성립과 조성 역사.-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수많은 경전들이 주로 서역에서 건너온 승려들의 손으로 속속 번역되었다.
    기원후 1세기인 후한 효명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한역된 불전들은 당나라 초기인 8세기에 들어와서는 대승 및 소승삼장은 물론 유명 고승전기류까지 약 2,300종에 7,000여 권이 넘어섰다.

    이에 따라 불교계에서는 불전을 편찬·정리하여 가르침의 혼란을 경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 동진(東晋)의 도안(道安, 314~385)이 한대 이래의 각종 경전 총목록을 작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들 경전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가운데 한자권 대장경의 모델이 된 당나라 초기의 목록집 「개원석교록」 20권(730년)이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그 목록을 쓴 지승(智昇)은 「개원석교록」 제18권 '위망난진록' 서문에서 정전(正典)을 확립할 대장경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제기하고 있다.

    위경(僞經)이란 삿된 생각으로 경전을 조작하여 진경을 어지럽힌 것을 말한다.
    대사(大師, 부처님을 가리킴)가 열반에 든 지도 근 이천년, 마교(魔敎)가 다투어 일어나고 정법이 쇠미해가니, 자연히 완악한 무리들이 일어나 흉악한 생각과 미혹하려는 마음으로 경전을 마음대로 위조하여 대중들을 속이고 삿된 말로 정법을 어지럽히고 있다. ……지금 옳고 그름이 혼동되고 참과 거짓이 섞이는 것을 염려하여 이제 사안별로 정리하려 한다.

    송나라 불교문화의 정화이자 한자권 대장경의 효시로 유명한 북송관판대장경(개보판대장경 또는 촉판대장경이라 부르기도 함)은 지승이 쓴 「개원석교록」에 수록된 5,048권 480함의 불전을 빠짐없이 판각한 대장경으로서, 송 태조 연간인 개보 4년(971)에 착수하여 다음 대인 송 태종 태평흥국 8년(983)에 완성되었다.

    그 후 송 진종 함평 연간(998~1003)에는 그 사이에 한역되어 새롭게 선보인 경전들을 추가하여 편찬한 원조(圓照)의 「정원석교록」에 수록된 경전을 판각하여 펴냈다.

    당시의 한자문화권에서는 문명국의 위치가 불교문화의 성숙도에 따라 좌우되었다.
    따라서 송나라의 대장경 조성 사업은 불교가 흥륭했던 고려의 문화적 자긍심을 크게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 즈음에 송나라를 압박할 정도로 강성해진 거란이 고려에 쳐들어오자, 고려에서는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는 동시에 부처님의 가호가 담긴 법보인 대장경을 조성하게 된다. 송나라에서 첫 대장경을 낸 지 꼭 30년 뒤의 일이다. 그것이 고려초조대장경이다.

    송·고려와 함께 동북 아시아권을 삼분하고 있던 거란도 경쟁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거란은 고려초조대장경 조성 작업보다 20년이 뒤지는 요나라 경복 연간(1031)에 대장경 조성 작업을 시작해서, 고려가 초조대장경을 다 완료하기 전인 요나라 중희 23년(1054)에 완성을 보게 된다.

    이 거란본대장경은 북송 관판대장경보다 99함이나 많은 579함에 약 6,000권의 불전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소실되었다. 그러나 이 거란본대장경은 당시에 이미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귀중본을 많이 담고 있었고, 그 편찬 내용이 지극히 엄밀해서 고려팔만대장경을 조성할 때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한편 송나라에서는 관판대장경이 처음 나온 뒤 지방에서도 대장경을 조성하는 예가 생겨났다.
    복주(福州) 동선사(東禪寺)가 송 휘종 2년(1112)에 완성한 숭녕만수대장, 복주 개원사가 남송 고종 18년(1148)에 조성한 대장(개원사대장), 호주(湖州) 사계(思溪) 법보자복사(法寶資福寺)가 남송 고종 연간에 조성한 대장경, 같은 지방의 원각선원(圓覺禪院)이 남송 고종 소흥 2년(1132)에 조성한 대장경, 적사연성원(磧砂延聖院)에서 남송 이종 원년(1334)에 조성한 대장경들이 그것이다. 이 사판(私版) 대장경들은 여건상 충분한 지원이 없어서인지 그 정확성이 떨어져 정전으로서의 면모가 부족했을 뿐더러, 지금은 거의가 소실되고 일부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려에서는 초조대장경을 완성한 뒤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을 중심으로 각국 고승들의 저술들을 모아 속장경을 편찬, 고려 선종 8년(1091)부터 고려 숙종 연간에 걸쳐 간행했다. 그리고 고려 고종대에 들어와 초조대장경과 속장경 모두가 몽고군의 침입으로 불타버리자, 16년에 걸친 집중적인 조성 작업 끝에 고종 38년(1251)에 고려팔만대장경을 다시 완성하게 된다.

    요나라에 이어서 들어선 여진족의 금나라도 대장경 조성에 뛰어들었는데, 최법진(崔法珍)이라는 비구니의 발원으로 1149년에 시작되어 1173년에 완성을 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판대장경이라 불리는 이 대장경은 최근에 산서성에서 일부가 발견되었다. 원나라 대에도 세조 연간, 영종 연간, 순제 연간에 대장경이 조성되었는데, 이들 대장경은 대체로 송나라 관판대장경의 범위를 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류가 많아서 정전으로는 권위를 가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명나라 대에는 명 태조대에 판각한 남장(南藏)과 성조대에 판각한 북장(北藏) 등 두 종의 대장경이 있었다.
    대장경 조성 역사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청대에 들어와 청 세종 말년(1735)에 시작되어 고종 3년(1738)에 판각 완료된 흠정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은 규모면에서 공연히 분량만 늘렸지, 경전을 엄선하고 완벽함을 보장하는 작업이 엄밀히 수행되지 않아서 정전으로서 대장경의 위치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웃 일본은 같은 한자문화권임에도 대장경 판각 조성을 해내지 못했다. 헤이안(平安) 시대 이래 여러 차례 판각을 시도한 기록은 있으나, 중도에서 꺾이고 한 번도 완본을 보지 못한 것은 특이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대장경을 갖게 된 것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고 활발히 근대화를 지향하면서부터였다.

    우리 고려팔만대장경을 기본으로 해서 그 동안 전래된 자료들을 모아 활자본으로 펴낸 것이 일본 메이지(明治) 연간에 나온 축쇄장경이며, 타이쇼(大正) 원년에 나온 속대장경이다. 그 뒤 일본에서는 각국의 불교경전들을 모아, 정전화 작업 끝에 대정신수대장경 100권을 펴냈다. 이 역시 우리 고려팔만대장경을 기본으로 해서 교정 편찬을 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동국역경원을 주축으로 대장경을 한글화하여 한글대장경을 간행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1997년 말에 270권을 완간했다. 아울러 팔만대장경을 전산화하는 사업도 진행하였다.
    대장경연구소에서 1995년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전자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으로 2000년에 완성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장경의 성립과 조성 역사 (한 권으로 읽는 팔만대장경, 2007. 6. 10., 영담, 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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