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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종교-불교

by 혜명(해인)스님 2019. 6. 17.


4. 깨달음의 종교-불교

      불교란 석가모니 부처님을 교조로 삼고, 그 말씀을 종지로 하는 종교로서 부처님이 설한 교법이라는 뜻으로, 다름 아닌 부처가 되기 위한 교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가 설명되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흔히들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칠불통계(七佛通戒)로 답을 한다.
      칠불통계란 과거에 출현하셨던 일곱 분의 부처님이 한결같이 금계(禁戒)의 근본으로 삼았던 것인데, 일곱 분의 명호는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이고,

      그 게송은,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아들여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인 것이다.
      중국의 유명한 문장가인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찾아와 불교의 대의를 물으니, 선사는 칠불통계로 답했다. 그러자 백낙천은 그것은 세살 먹은 어린아이라도 능히 아는 것 아니냐고 코웃음 치자, 선사가 답하길 세살 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것이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지 못한다고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 불교인들은 교법을 신앙하므로 이고득낙(離苦得樂)하고, 교법을 이해하므로 전미개오(轉迷開悟)하며, 교법을 실천하므로 지악수선(止惡修善)하며, 마침내 단번뇌 득열반(斷煩惱 得涅槃)해야 한다.

      불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가르침을 정리해본다면, 불교의 정신은 자비(慈悲)이고, 불교의 사상은 연기(緣起)이며, 불교의 주의는 인본(人本)이고, 불교의 목적은 견성성불(見性成佛)이기에 불교의 주장은 깨달음(覺)인 것이다.

      불교는 글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부처란 범어로 Buddha로 깨달은 분(각자(覺者)이라고 한다.
      불교의 시원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이다.
      불교는 바로 깨달음의 종교인 것이다.
      깨달음이란 이 세계와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세계를 바로 보는 것(正見)이다.

      존재의 실상을 바로 보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자기를 바로 보는 것이 깨달음이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 바로 중생들에게 자기를 바로 보는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으로 오셨다.
      모든 중생들에게 불지견(佛知見)을 열어(開), 보여서(示), 깨달아(悟), 들어가게(入)하기 위함이다.”
      -『법화경』-

      우리도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고자 불교를 믿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는 깨달음으로 우리는 참 나를 찾고 영원한 진실 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불교,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이다.
      부처가 되는 것은 불교의 목표이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성불합시다’ 라고 인사를 한다.

      그러면 ‘부처가 된다(成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부처가 된다는 것은 나와는 다른 성인이나 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본래의 참 나를 찾는 것이다.
      본래의 참 나를 찾는다는 것은 잃어버렸던 ‘참나’를 찾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참 나를 알지 못 하고, 보지 못 하고 있던 무지의 어두움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선종(禪宗)의 정신을 나타내는 게송 중에 견성성불(見性成佛)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는 것이 바로 부처가 되는 길임을 이른 말인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깨달음이란 자신의 본성을 바로 보는 것이다.
      무상한 육신의 내가 참 나의 모습이 아니라 본래 나의 본성은 바로 불성이다.
      나의 생명은 부처님의 무량 절대 생명인 것이다. 그것을 모르고 우리는 중생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본 모습은 본래 부처인 것이다. 자신의 모습은 상대적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 부처님과 같이 무한 절대 생명의 존재임을 깨달을 때 인생의 고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불교는 행복의 가르침이다.
      종교의 목적이 유한한 인생의 무상의 고에서 벗어나 영원한 절대 행복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불교도 영원한 행복을 위한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싯달타 태자라는 왕자의 지위로 이 세상에 오셨다. 왕자라는 지위는 현대인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물질, 명예, 권력, 아름다움 등의 모든 것을 거의 갖춘 자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왕자로서도 진정한 행복의 길은 찾을 수 없었다.
      그것은 존재의 유한하고 무상한 본성 때문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변한다.
      그렇다면 진정 영원한 행복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갈구하는 바이며 모든 종교에서 구하는 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영원한 행복의 진리를 찾아 떠나셨고 마침내 그 진리를 찾으셨다.

      그것은 모든 생명들의 내면에 있었던 것이다.
      중생들은 본래 가지고 있는 그 길을 보지 못 하고 괴로움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집에 있는 파랑새는 알지 못 하고 산천을 헤매고 있는 격이다.

      불교는 불이(不二), 중도(中道)의 가르침이다.
      불이, 중도는 존재의 실상이다. 불이, 중도는 둘이면서 둘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다.
      신본주의(神本主義) 종교에서는 신과의 관계가 이원적이다.
      신과 인간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또한 불교에서는 불법(佛法)과 생활이 둘이 아니다.
      불교 따로 삶 따로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 안에서 실천 돼야 하는 것이다. 불교는 바로 생활 자체요, 삶 자체다.

      생활 불교는 삶과 불법(佛法)이 둘이 아닌 실천 불교이다.
      불교는 말이나 관념으로만 그치는 지식의 가르침이 아니다.
      실천과 체험이 불교의 생명이다.
      우리의 삶과는 동떨어진 학문 불교, 형식주의적 불교, 신비주의적 도인 불교 등은 소승적 불교로, 부처님의 근본 정신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중생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가르침이다.
      불교만을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불교를 통하여 진리에 눈을 뜨고 참된 행복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다.
깨달음의 종교-불교.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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