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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놈이 제일 오래 사는 놈이다.

by 이初心 2022. 11. 6.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놈이 제일 오래 사는 놈이다.

 

물질은 정신이 아닌 모든 유형(有形)을 말한다.

예컨대 우주에 불의 원소가 충만해 있지만 잠재해 있으니 없는 것 같다.

우주에 가득 찬 것이 불이고, 우주에 가득 찬 것이 물이며, 우주에 가득 찬 것이 바람이고, 우주에 가득 찬 것이 흙이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유교 사상으로는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이다.

이 오행(五行)이 똑같이 가득 차 있는데 다만 불은 잠재해 있어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와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나오고, 돌로 돌을 쳐도 불이 나온다. 만일 불의 원소가 없다면 물질끼리 아무리 부딪치더라도 불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주에 가득 차 있는 불이 정신이라면 나무, 돌 등은 물질이 된다. 그런데 물질을 통하지 않고는 그 잠재되어 있던 불이 나타날 수가 없다. 결국 물질과 정신이 언제나 맞붙어서 법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하나만 가지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에만 치우친다면 그것은 편견이 된다.

 

물질론이니 유심론이니 하는 것은 서양에서 나온 논리다.

물론 불교에도 ‘우주 만법이 유심(唯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유물과 유심을 구분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우주 만유의 현실을 중생들이 보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하여 집착하니 지금 우리가 현실로 보는 이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 끊어진 정신 속에서 나온 것임을 일깨워 주기 위한 방편을 쓴 것이다. 따라서 정신과 물질의 관계는 부즉불이(不卽不離), 비일비이(非一非異)라고 할 수 있다.

 

‘제법실유(諸法實有)’라고 할 때는 제법을 진리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법(法)을 진리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 제법(諸法)이라 한 것은 물질(物質)을 일컫는다.

 

《논어》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안연이 인(仁)을 물으니 공자가 답하기를 자기 망상을 극복하여 본연(本然)한 천리(天理)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다. 하루만 극기복례(克己復禮)하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오나니,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지 타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의 인(仁)은 도(道)를 말한다.

공자는 현실 위주의 교법을 세웠기 때문에 이(利), 즉 물질과 천명, 진리와 인, 우리 마음의 근본 자리 등에 대해서는 드물게 말한 것이다. 그래서 자공이 다음과 같이 탄식한 것이다.

 

“선생님의 문장은 얻어들었거니와 선생님이 본성과 천명을 말씀한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얻어듣고서 한 소리일 뿐이다.

공자가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전체가 유치원 학생인 것이다.

성인들이 중생을 볼 때는 다 그렇다. 유치원생에게 어떻게 큰 도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드물게 도를 말하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공자는 3천 제자 가운데 안연과 증자에게만 돈법(頓法)을 가르쳤다.

돈법은 점법(漸法)의 반대다. 그런데 퇴계 이황이 문인에게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돈법은 불교의 것이지 유교의 법이 아니다.”

 

이것은 퇴계 이황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안연의 물음에 답한 것이 공자가 안연에게 돈법으로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또 증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나의 도는 하나로서 꿰었다.”

 

냉정히 비판하면 도(道) 이외의 모든 것은 물질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이 물질을 멀리하라고 한 것은 물질에 집착한 중생에게 하는 말이지 물질 자체를 돌같이 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부정을 완전히 거쳐서 새로운 긍정이 될 때는 물질 그대로가 진리이고 도(道)이다. 이것은 불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성인들의 말씀을 보면 마찬가지라 하겠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좇아야 할지 답이 나왔다.

우리는 부처님의 팔만대장경 교리보다는 자기 마음을 닦는 선(禪)을 좇아가야 한다. 지식으로 1백 년, 1천 년, 1만 년의 앞일을 아는 것보다 아는 것이 끊어진 각(覺)자리를 좇아가야 한다. 아는 것과 통하는 술(術)을 좇기보다는 도(道) 자리를 좇아가야 하며, 한 나라의 위대한 인물이 되기보다는 전 세계적이고 우주 차원의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길을 찾았다.

결국 어떤 놈이 오래 사는 놈이냐, 어떤 놈이 잘사는 놈이냐, 그것을 따져 봐서 가장 오래 살고 가장 잘 사는 쪽을 택해야 되지 않는가.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놈이 제일 오래 사는 놈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3대 성인이다.

석가, 공자, 예수, 이들이야말로 제일 오래 사는 사람이다.

그다음으로 한 나라 안에서 오래 사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퇴계 선생, 이율곡 선생, 이순신 장군 같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들이다.

 

우리도 이와 같이 영원히 죽지 않는 인물이 한 번쯤 돼 봐야 하지 않는가.

이왕이면 이 우주를 내 가정으로 볼 정도로, 영원히 죽지 않는 인물이 돼 봐야 한다. 공자의 제자였던 안연은 서른두 살에 요절했지만, 공자 이후에 안연을 넘어선 인물은 아직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다.

 

출처: 탄허록에서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놈이 제일 오래 사는 놈이다.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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