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진정한 부부간의 사랑

by 이初心 2023. 11. 27.


    진정한 부부간의 사랑

    부부가 왜 결혼을 했어요?
    좋아서 했어요, 싫어서 했어요?
    좋아서 결혼했는데 싫어요?
    왜 결혼생활을 해보니까 그 인간이 그렇게 싫고 사는 게 정말 괴로웠나요. 이게 쥐가 쥐약을 먹는 것, 물고기가 낚싯밥을 먹는 것과 같다.

    전생에 죄가 있어서 그런가?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럴까?
    아니면 궁합에 문제가 있는가?
    하나님을 안 믿어서?
    그렇지가 않다. 무지(無知), 전도몽상(顚倒夢想) :거꾸로 알았다, 잘못 알고 있었다) 때문이다. 이것이 원인이다.

    결혼을 할 때 말은 ‘사랑’이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즉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포장 속에는 가장 이기적인 욕심이 가득 차 있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한번 봐라. 나보다 잘생겼다, 키가 크다, 학벌이 좋다, 마음씨가 좋다, 뭔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지 않는가.

    인간관계를 맺을 때 대부분 그렇다.
    친구를 사귈 때, 동업을 할 때 등등. 그런데 다른 관계는 어느 한 분야만 그렇다. 모든 걸 다 보지는 않는다. 친구는 의리를 중요시한다. 동업을 하려면 신용을 중요시 한다. 친구 지간에는 인간성에 대한 믿음, 이것을 의리라 한다. 동업을 할 때는 경제에 대한 믿음, 계산 똑바로 하느냐, 이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관계를 맺을 때 어떤 한 가지 두 가지 요 정도를 보고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결혼을 할 때는 보는 게 많다.
    잘 생겼는지 돈은 있는지 학벌은 좋은지 키는 큰지. 우선 신체 구조만 하더라도 한 가지만 보는 게 아니다. 또 보는 게 가지각색이다. 코는 높은지 피부는 하얀지, 신체 구조도 하나만 보는 게 아니다. 신체만 보는 게 아니라 학벌, 배경, 부모, 집안, 돈 거기에 또 성격이나 성질, 취미까지 다 본다. 왜 이렇게 많이 볼까. 그게 바로 이기심이다. 속된 말로 하나 잘 잡아서 평생 뜯어먹으려고 한다. 솔직하게 안 그래요? 병에는 감기약, 두통약, 결핵약 온갖 병에 맞는 약이 있는데 사람이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뭘 찾는다? '만병통치약'을 찾는다.

    결혼은 한 놈 잘 잡아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인생의 기적을 이루려고 한다. 이런 욕심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결혼하면 싫어지고 힘들어진다. 그런데 세상에 욕심을 나만 피우고 다른 사람은 안 피우면 얼마나 좋겠어요. 모든 사람이 보디사트바(보살)이고 나만 범부 중생이 되면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하면 내 원을 이룰 텐데 불행히도 그 인간 역시 나 못지않은 범부 중생이다.

    더했으면 더했지. 그러니까 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찾으려고 한다. 아래로 보면 되는데 모든 사람들이 눈을 치뜨고 찾는다. 그래서 사람이 잘 안 만나진다. 여자, 남자가 지천인데 여자가 없다, 남자가 없다 한다. 그래서 여기 와서(즉문즉설) 나한테 딱 맞는 인연이 있는가? 자주 물어요. 결혼도 하지 않은 나에게 말이야.

    내가 찾는 사람은 어디쯤 있다가 나타날까 하고 눈을 치뜨고 있으면 안 보여요. 완전히 안 보이는 것이 아니고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이를 맞춰주려면 할 수 없이 서로서로 약간씩 속여야 된다. 키가 크기를 원하는데 큰 사람은 더 큰 사람을 찾으니 구두 뒤축을 올려 신고, 학벌을 조금 향상시키고, 얼굴도 코를 조금 높이고 예쁘게 성형도 좀 하고, 옷도 입히기 이렇게 꾸며 살짝 속인다. 온갖 걸 가미를 해요. 그러니까 눈속임한다 이거에요. 악수를 하거나 잠깐 만날 땐 눈속임이 되는데 결혼해서 살면 눈속임이 오래갈 수가 없다. 화장 지우니 지 얼굴 돌아오고 실망이다. 생각보다 못한 거요. 그럼 살짝살짝 속이는 게 나쁜가.

    학벌 속이고 나이 속이고 심지어 결혼해놓고 안 했다 그러고. 이런 것까지 속인다. 그런데 이렇게 속이지 않으면 결혼이 성립 자체가 될 수 없다. 이렇게 속이고 사는데 이게 현재의 세상살이이다. 제일 심한 게 부부 사이인데 자기가 속이니까 상대를 못 믿는다. 이렇게 만난다. 그래서 서로 이해해야 한다. 사랑이라는 죽고 못 사는 것이 아니다. 그건 미친 것이다.

    사랑의 핵심은 첫째 상대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정이다. 나와 다른 그를 인정해라. 나는 피부가 희지만, 그는 검고 나는 키가 크지만 그는 작고 나는 취미가 이런데 그는 그렇고, 이게 사랑이요. 더 간다면 이해를 해야 한다. 너는 너 나는 나. 모든 게 내 식으로는 안 된다.

    두 번째, 그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다. 성추행이고 성폭행이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식을 사랑하는데 자식한텐 억압이 된다. 남자는 사랑한다고 하는데 여자한테는 성추행, 성폭력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없이 일방적이다. 다 일방적이다. 내가 좋아하는데 감히 네가 날 안 좋아해, 이렇게 미워한다. 그러고는 "사랑하면 미워하게 된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다"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한다. 내가 좋아하니 너도 좋아해라. 그건 내 마음이지. 이게 강제, 강요, 독재, 독선이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게 사랑이다.
    죽고 못 사는 것이 사랑, 그건 사랑에 대한 오해이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 미쳐 날뛰는 것을 사랑이라 한다. 왜? 사랑하는데 결과가 나빠져. 좋아져야지. 미쳐 날뛰는 것을 사랑이다, 오해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이게 사랑이다.

    가슴이 뜨겁고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게 사랑이 아니고, 그건 미친 짓이고 미친 증상이다. 이렇게 사랑을 기초로 하면 갈등이 생길 게 없다. 이 자연이 크고 작고 온갖 것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들지 않느냐.

    화단의 꽃은 색깔도 크기도 모양도 다르지만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단을 만들 듯이 인간사도 서로 다른 것이 어우러져 다양성의 조화를 이루고,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어우러질 때 그게 다양성이고 조화의 사회이다.

    그러니 부부란 서로 다른 사람이 함께 모여 사는 것. 기본적 자세는 '인정하기'이다. 그의 입장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고 그가 자라온 배경, 가족을 생각하면서 그가 그런 생각과 행동과 습관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가 있냐가 아니라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배경을 보니까 저렇게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이것이 사랑의 기초이다. 이럴 때 우린 마음과 마음이 소통되고, 상대의 진의를 느끼고 마음에 진정성이 생긴다.

    사람을 믿고 신뢰하게 된다.
    믿고 신뢰하면 키가 다르고 취미가 다르고 이런 거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특히 두 남녀가 하나의 가정을 이루고 살 때는 서로 다른 것이 모여 함께 사는 것이다. 우린 자기가 미쳐서 상대방에 대해 강제와 강요 의식을 갖고 가정을 꾸리기에 서로 싸우고 주도권 다툼을 한다. 또 옆에서 훈수를 둔다.

    신혼인 여자한테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주변에서 "이 바보야 신혼 초에 질서를 잡아야지"하고 조언한다. 남자 쪽은 "야 임마, 신혼 초부터 잡혀 살면 평생 잡혀 살어" 이렇게 분열을 시킨다. 이런 데서 강요, 강제, 독재를 사랑으로 오해한다. 그러니 이것을 내려놓고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의 핵심은 이해하기, 그 편에서 생각하기이다. 떠받들거나 비굴한 태도는 존중이 아니다. 이렇게 (존중)하면 가정이 저절로 화목해진다.

    인종, 신분이 달라도, 베트남 사람과 한국 사람이 같이 살아도 이런 자세만 있다면 갈등이 있을 수 없다.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내라는 것이 미쳐서 죽고 이게 아니라 다른 무엇이든 인정하고 그 편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는 것인데, 이것을 이름하여 '따뜻한 사랑'이다,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어떻게 부부라고 맨날 사랑해? 어떻게 맨날 미쳐 살아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이해하는 것을 기초로 할 때 소통이 되고 신뢰가 생겨나게 된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부부지간에 이것이 이뤄질 때 부부가 된다. 키, 성격이 달라도 문제 삼지 않고 몸이 아파서 누워도 문제 삼지 않고 보살핀다. 이해하기 때문에. 그러면 같이 사는 게 혼자 사는 거보다 좋아진다. 같이 살 수가 있고 살 때 결과가 좋아진다.

    그러지 못한 자기를 매일 매일 돌이켜보고 반성하고 참회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에고(ego)가 강하고 이게 범부중생이다. 늘 내려놓으면서 나와 다른 그를 인정하기, 이해하기는 그 사람이 옳다,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옳고 나는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사랑으로 뭉쳐져도 속박하지 않기다. 사랑해서 살아보면 독재하기에 구속감을 느끼고 뛰쳐나가고 싶은 자유를 갈망한다.

    (따라 하기 해보세요.)
    "남편에게는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아내에게는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내겠습니다. "

    불교철학에서는 '운명은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전생의 과보가 현생을 결정한다, 인과응보, 태어날 때 운명은 정해져 있다(신이 이미 작품을 다 써놨다), 이러한 숙명론을 불법으로 알고 있는데 이건 인도의 힌두교에서 유래한 것이지 불교철학이 아니다.

    부처님은 이 숙명론을 부정한다.
    과보가 있기에 벌을 받아야 한다면 이건 보복이다.
    부처님은 보복을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현재 이전의 업(까르마)이 현재 또는 미래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오늘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어제도 100% 담배를 피웠을 것이다. 이게 과거의 업이 현재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러나 오늘 담배를 피운 사람이 내일도 피운다? 피울 수도 안 피울 수도 있다. 안 피웠다면, 또는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깨어있으면서 제동을 건다면 업은 소멸되는 것이다.

    운명도 이와 같은 도리로 변화한다.
    업은 소멸되지만 생성되기도 한다.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기에 인간도 부단히 깨어있어야 한다.
    깨어있고(수행), 계율을 지키고 용단을 내리는데 계율을 지키는 것은 억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든다. 업(業:까르마)이 생성될 때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부싯돌이 팍팍 불꽃을 튕길 때 곁에 있는 솜을 치우는 것 이것이 깨어있는 것이고 수행이다.

    출처: 법륜 스님<즉문즉설 721회>
    출처: https://cafe.daum.net/seojinam

진정한 부부간의 사랑.mp3
17.94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