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스님께서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과 ‘좋은 일을 한다고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결과가 좋을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전 과학은 인과법칙이었고, 현대의 양자역학은 확률의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학의 흐름을 보아도 불교에서 가르치는 인연과보가 틀린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 🙏법륜 스님:
“질문자처럼 생각할 수 있겠다고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인과응보와 인연과보는 좀 다른 개념이에요.
만약에 물이 담긴 컵에 젓가락을 넣어 저었을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운동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뀌어서 물의 온도가 약간 올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인(因)과 연(緣)이 만나면 반드시 결과가 생겨서 무언가가 남는다는 것이 인연과보입니다. 그 결과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이 ‘보(報)’인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젓가락이라고 하는 원인인 ‘인’이 물이라고 하는 조건인 ‘연’을 만나 ‘인연’이 형성되었고, 물을 저어서 ‘온도가 올라갔다.’ 하는 결과인 ‘과’가 생겨난 것이지요. 그 ‘과’가 좋으냐 나쁘냐 하는 것이 ‘보’입니다. 이처럼 인연에 따라 결과는 반드시 나오는데, 그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물의 온도가 오르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좋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안 좋을 수도 있잖아요.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하면 상대방도 좋게 들을 확률이 높지만, 반드시 좋게 들린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또 내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을 해도 상대방 역시 반드시 좋은 말로 받아들인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상대를 좋아해 주면 대다수의 사람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희롱으로 느낄 수도 있어요.
상대방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은 의도를 갖고 말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 또한 좋게 느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좋은 의도를 가지면 나쁜 의도를 가졌을 때보다는 결과가 좋게 나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연과보에서 ‘과’는 항상 일어나는데 ‘보’는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는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나한테 좋은 결과로 돌아올 확률이 높잖아요.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연의 법칙’입니다.
농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좋은 씨앗을 심으면 소득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죠.
다만 나쁜 씨앗을 심었을 때보다는 좋은 씨앗을 심었을 때 소득이 많아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왜냐하면 ‘연’, 즉 밭이 어떠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연’입니다.
인연과보를 너무 절대적으로 해석하면 ‘내가 쟤한테 좋은 말을 했는데 왜 쟤는 나를 욕하지? 이거 안 맞잖아!’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실험을 해 본 결과가 필요해요.
내가 칭찬했을 때와 비난했을 때를 비교해서 어떨 때 상대도 나에게 좋은 말을 할 확률이 높은지 연습해 보는 겁니다. 그러면 ‘칭찬했을 때가 비난했을 때보다는 칭찬받을 확률이 더 높다.’ 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질문의 내용은 모순이지 않습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다. 깊은 산속, 깊은 바닷속에 숨는다 하더라도.’
이 말은 행위의 결과가 반드시 남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좋은 인연을 지으면 그 과보도 반드시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과보가 좋게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로 ‘공든 탑이 무너지랴?’ 이런 속담도 있는데 여기에는 약간 윤리적인 개념이 들어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공든 탑이 무너지는 일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