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 장 야마천궁보살설게품(夜摩天宮菩薩設偈品)-
그들의 이름은 공덕림(功德林)보살, 혜림(慧林)보살, 승림(勝林)보살, 무외림(無畏林)보살, 참괴림( 愧林)보살, 정진림(精進林)보살, 역림(力林)보살, 행림(行林)보살, 각림(覺林)보살, 지림 (智林)보살들이었다. 그 보살들이 떠나온 세계는 친혜(親慧)세계, 당혜(幢慧)세계, 보혜(寶慧)세계, 승혜(勝慧)세계, 등혜(燈慧)세계, 금강혜(金剛慧)세계, 안락혜(安樂慧)세계, 일혜(日慧)세계, 정혜(淨慧)세계, 범 혜(梵慧)세계들이었다. 이 보살들은 저마다 세계의 부처님 앞에서 청정함을 닦고 있었다. 세계 여러 보살들은 부처님 계신 곳에 이르러 부처님 발에 이마를 대고 떠나 온 방위(方位)를 따라 제각기 연꽃의 사자좌를 마련하여 그 위에 결가부좌하였다. 또 이 세계의 야마천상(夜摩天上)에서 보살들이 모인 것처럼 일체의 세계에서도 그러하였으며 그 보살들의 세계와 여래의 이름도 모두 같았다. 그때 세존께서 두 발등으로 백천억의 묘한 광명을 놓아 모든 세계를 비추니 야마천궁의 부처님 과 대중이 모두 나타났다. 그때 공덕림 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시니 높은 어른 뵙기에 걸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야마천궁에 앉아서 시방 세계에 두루 하시니 이런 일은 매우 희귀하여 세간에 드문 일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세계에 모인 보살들은 위없는 설법을 들으면서 청정한 수행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시방 세계 모든 곳마다 부처님이 계시고혹은 인간에 계시고 혹은 천궁(天宮)에 모든 국토에 두루 평안히 계시지만 우리는 부처님이 지금 이 천궁에 계신 것을 봅니다. 오랜 옛날에 세웠던 깨달음을 이루려는 서원은 시방 세계에 두루 하였으며 부처님의 신통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탐욕을 멀리 떠나고 그지없는 공덕 구족하시니 신통한 힘 얻으신 일 못보는 중생들이 있습니다. 시방 세계는 허공처럼 장애가 없으니 한 몸인지, 무량한 몸인지, 그 모양 찾을 길 없고 그지없는 부처님의 공덕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머물지도 않고 가지도 않지만 온 법계에 두루 드십니다. 그때 혜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세간에서 가장 크신 안내자이시며 때 없고 위없는 세존은 불가사의한 겁(劫)을 지나도 만나 뵈올 수 없으나 부처님께서 큰 광명 놓으시니 세간에 못 보는 이 없으며, 대중에게 널리 연설하시어 모든 중생을 이악케 하십니다. 여래께서 세상에 나심은 세상 사람이 어두운 곳에서 뛰어나오도록 하기 위함이니 이러한 세상의 등불 희유하여 보기 어렵습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그리고 선정, 반야의 수행을 이미 마치고 이것으로 세상을 비춥니다. 여래는 동등한 이가 없어, 아무도 견줄 수가 없으니 진실한 법을 알지 못하고는 아무도 보지 못하며 부처님의 몸과 신통 자재하심은 헤아릴 수 없는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지만 진리를 설하여 중생을 건집니다. 청정한 천상, 인간의 안내자를 누구라도 뵙기만 하면 나쁜 길에서 영원히 나와 모든 고통을 여의게 됩니다. 한량없이 수없는 겁 동안 깨달음을 구하는 행을 닦으셨으니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는 부처를 이룰 수 없으며, 헤아릴 수 없는 겁 동안 한량없는 부처님을 공양했으니 이런 뜻 안다면 공덕이 저보다 뛰어날 것이며, 한량없는 세계에 가득한 보배로 부처님께 공양했으니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하면 끝까지 깨달음을 이룰 수 없습니다. 승림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비유컨대 첫여름 어느 날 구름 없는 깨끗한 허공, 붉은 빛 광명이 퍼져 시방에 가득 차거늘 그 빛이 한량이 없어 헤아려 알 수 없으니 눈뜬 사람도 그렇거든 하물며 소경이겠습니까. 부처님들도 그와 같아서 끝이 없는 크나큰 공덕, 불가사의한 겁을 지나면서도 분별하여 알 수 없으니 모든 법이 온 곳도 없고 지은 이도 없으며, 어디로부터 난 곳도 없으니 어떻다고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온갖 사물이 온 곳이 없으니 생(生)한 것이 아니며, 이미 생한 것이 아니니 멸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온갖 사물이 생(生)한 일도 없고 또 멸(滅)함도 없으니 이렇게 이해한다면 이 사람은 여래를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물이 난 일이 없으니 제 성품도 있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분별하여 안다면 이 사람은 깊은 이치를 알 것이며, 사물이 제 성품이 없으므로 능히 알 리도 없는 것이니 이렇게 사물을 이해하면 마침내는 이해해야 할 것이 없습니다. 생하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이는 국토가 지금 있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국토의 성품을 능히 알면 그 마음은 미혹하지 않을 것이며, 세간과 국토의 성품을 관찰하면 실상과 같으며 만일 이를 알면 일체의 모든 이치를 잘 설할 것입니다. 무외림 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들어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여래의 넓고 크신 몸 끝없는 법계에 가득하며 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온갖 곳에 두루 하며 만일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공경하여 믿고 좋아하니 이는 세 가지 나쁜 길과 모든 고난을 길이 여의이다. 무량하고 무수한 모든 세계를 두루 다니더라도 여래의 자재한 힘을 정성으로 듣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위없는 진리이니 설사 잠깐만 듣고자 하여도 능히 들을 수 없습니다. 과거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은 사람은 이미 양족존(兩足尊)을 이루어 세간의 등불이 되었으며 만일 내세에라도 여래의 자재한 힘을 듣고 신심을 내는 이 있으면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며 만일 현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으면 마땅히 정각(正覺)을 이루고 진리를 설하기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한량없고 수없는 겁(劫)을 지나도 이 가르침은 만나기 어려운 것이니 만일 들은 이 있다면 본래의 원력(願力)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누구나 능히 받아 지니고 또 다른 이에게 널리 설하면 이 사람은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니 하물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견고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깨달음을 성취할 것입니다. 그때 참괴림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희유하고 자재한 가르침을 듣고 능히 기쁜 마음을 내면 모든 의심을 빨리 없애고 일체를 알고 보는 사람은 여래를 모르는 것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것입니다. 또 지혜가 없는 곳에서는 지혜가 날 수 없으며 세간은 항상 어두워서 지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빛과 빛 아닌 것이 하나가 될 수 없으니 지혜와 무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가 저마다 다르고 모양 있는 것과 모양 없는 것, 나고 죽는 것과 열반도 차별하여 각각 다르니 지혜와 무지도 그러합니다. 세계가 처음 생길 때 무너지는 모양은 없습니다. 지혜와 무지도 그와 같습니다. 두 모양이 일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보살의 처음 마음은 나중 마음과 함께 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무지도 그러합니다. 두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지 아니하고 모든 식(識)은 각각 화합하지 않습니다. 지혜와 무지도 그러합니다. 끝까지 섞임이 없고 마치 독으로 독을 풀듯이 지혜도 그와 같아서 무지를 능히 없앱니다. 여래는 위가 없고 같은 이도 없으며, 온갖 것과 견줄 수 없으니 그래서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때 정진림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사물에 차별이 없고, 능히 알 사람도 없으나 부처님만이 아시니 지혜가 궁극에 이르른 까닭입니다. 마치 금과 금빛이 그 성품에 차별이 없듯이 법과 법 아닌 것도 그러하여 성품이 다르지 않습니다. 중생과 중생 아닌 것 둘 다 진실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의 성품에 진실한 뜻이 있지 않고, 마치 미래세에는 과거세의 모양이 없듯이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온갖 모양이 없습니다. 마치 생하고 멸하는 모양의 여러 가지가 진실하지 못하듯 모든 법도 그와 같아서 제 성품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땅히 법을 알아야 합니다. 저 셈하는 법이 하나씩 더하여 한량이 없으니 산수의 법이 제 성품 없거늘 지혜로 차별을 냅니다. 말하자면 모든 세간은 겁(劫)의 불이 탈 때 끝나 버리지만 허공은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지혜도 그러합니다. 마치 시방의 중생들이 제각기 허공의 모양을 말하듯이 모든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서 허망하게 분별하는 것입니다. 역림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중생의 세계는 모두가 삼세 안에 있고 삼세의 중생들은 모두 오온(五蘊) 중에 있으니 모든 온(蘊)은 업(業)이 근본이요, 모든 업은 마음이 근본이니 마음이란 꼭두각시와 같으며 세간도 그러합니다. 세간은 스스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다른 이가 이룬 것도 아니지만 이루어짐이 있으니 역시 파괴도 있는 것이고, 세간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세간이 파괴도 하거니와 세간을 분명히 통달한 이는 이 둘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세간이라고 하고 어떤 것을 세간이 아니라고 하지만 세간과 세간 아닌 것은 이름만 다를 뿐이며 삼세와 오온(五蘊)을 말하여 세간이라 하고 그가 멸한 것을 세간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엇을 여러 가지 온(蘊)이라 하며 온은 무슨 성품을 지녔는가. 온의 성품은 멸할 수 없으니 그래서 생(生)이 없다고 하며, 이 온을 분별하여 보면 그 성품은 본래부터 공적(空寂)하므로 멸할 수 없으니, 이것이 생이 없다는 이치입니다. 중생도 이미 이러하면 부처님도 역시 이러할 것이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에 그 성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모든 법이 진실하여 뒤바뀌지 않은 줄을 알면 일체지(一切智)를 얻으신 부처님은 항상 눈앞에 나타납니다.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아 시방을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마치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채색을 써서 환상처럼 그림을 그리지만 그 성품은 차별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본 성품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가운데 본 성품이 없지만 그러나 본 성품을 떠나서는 빛깔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는 그림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마음은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으며 온갖 것을 그리지만 마음과 사물은 서로 알지 못합니다.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은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합니다. 마음이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을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짓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또한 그러합니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과는 서로 차별이 없으며 서로 다하는 일이 없습니다. 세계마 음이 모든 세간을 짓는 줄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참성품을 알게 되며,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몸도 마음에 있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를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과거, 현재, 미래의 일체 부처님을 알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 이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이같이 깨달을 수 있으면 이 사람은 참다운 부처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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