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도(中道)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깊고 얕은 것이 있습니다.
초기에 말씀하신 법문은 일반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추어서 ‘있다 없다’하는 우리 중생의 범부(凡夫) 소견에 맞추어서 “선(善)도 있고 악(惡)도 있고 천상(天上)도 있다”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서 하는 유교(有敎)의 입장에서 가르침을 전개한 것도 있지만, 나중에 중생의 근기가 익은 다음에는 “이러한 것은 모두 몽환포영(夢幻泡影)이다.
여환즉공(如幻卽空)이다” 라고 말합니다.
같을 여(如)자, 허깨비 환(幻)자, 곧 즉 (卽)자, 빌 공(空)자- 여환즉공(如幻卽空)입니다.
“일반 중생이 보는 것은 마치 허깨비같이 텅 비어 있다”라는 말씀으로 참다운 부처님의 실상세계(實相世界)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진의(眞儀)는 그냥 다 비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진리 즉 중도(中道)에 있습니다.
우리 중생이 보는 것은 비어 있고 허망하다 하더라도 본래 빈자리는 허무(虛無)가 아니라 심심미묘(甚深微妙)한 무량지혜(無量知慧), 무량공덕(無量功德)을 갖추고 있다는 가르침이 중도입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초기에 ‘있다 없다’ 하는 중생근기에 맞추어서 말씀하신 유교(有敎), 그다음에 중생이 보는 여러 가지 현상계는 허망하고 무상(無常)하다는 공교(空敎), 그러나 다만 공이 아니고 중도실상(中道實相)이라고 하는 중도교(中道敎)로 전개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슨 법문을 생각할 때, ‘이것이 유교인가? 공교인가? 중도교인가?’
판단할 수 있어야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경전들은 부처님께서 한꺼번에 체계 있게 말씀하신 법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대와 같이 과학적인 지식을 일반대중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애써 교안을 짜가지고 하신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서 그때그때 갑(甲)한테는 갑대로, 을(乙)한테는 을대로, 김가한테는 김가대로, 박가한테는 박가대로 근기에 맞추어서 말씀하신 법문을 나중에 주워 모은 것이 경전입니다.
물론 부처님 말씀을 잘 기억한 것도 있고 잘못 기억한 것도 있겠지요.
그렇게 기억한 것들을 주워 모아서 만든 것이므로, 경전에서 하신 말씀들이 똑같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는 공(空)사상을 말씀하셨고, 어떤 대목에서는 유교(有敎)를 말씀하셨고, 어떤 때는 중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세 가지 견해- 공이라는 개념, 중생 근기에 맞추어서 ‘있다’는 개념, 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빈 것도 아니라 실상은 여러 가지 공덕을 갖추고 있다는 중도의 개념- 이 세 가지 개념을 놓고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불법은 아무리 쉬운 법문이라 하더라도 항시 부처님의 진리가 거기에 담겨 있어 함부로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은 초심문(初心文: 初發心自警文) 같은 것도 원래는 깨달은 사람이 해야만 바른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제법문(四諦法門)이나 삼보(三寶) 같은 법문은 언제 들어도 새로운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기 전에는 다 미혹한 것이니까요.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안다고 하지만 결국은 알쏭달쏭한 것이지 참답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 법문은 수십 번 들어도, 누가 말해도 항시 새로운 것입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서 불경(佛經)을 들을 때는 해태심(懈怠心)이 없이 잘 들어야 합니다.
삼보(三寶)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보배가 삼보인데, 그 가운데서 법보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법보는 사제(四諦), 팔정도(八正道), 12인연법(十二因緣法), 육바라밀(六波羅密) 법문을 위주로 해서 일체 경전의 법문을 망라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불교인들은 비록 어려운 것은 좀 모른다 하더라도- 물론 쉬운 것 가운데도 어려운 것이 들어 있지만- 우선 사제, 팔정도, 12인연법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불교 서적을 보면, 가령 팔정도 풀이만 보더라도 무책임한 풀이가 많이 있습니다.
사제 법문에 대하여 훌륭한 강사들이 번역한 것도 보고 여러 가지 보았는데, 첫째 사제 법문의 ‘고집멸도(苦集滅道)’ 가운데 ‘멸(滅)’에 대한 풀이에서 굉장히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사제는 넉 사(四)자, 진실한 체(諦)자인데 ‘체’자의 음 그대로 해서 ‘사체’라고 발음하기도 합니다만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할 필요는 없고, 일반적으로 ‘사제’라 합니다.
<사성제(四聖諦)>
사제(四諦)를 사성제(四聖諦), 사진제(四眞諦)라고도 운(云)하며, 성자(聖者) 소견(所見)의 진리(眞理)이다.
말이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여러분들한테 한 문자를 습득시키기 위해서 짐짓 한 문자를 되도록 많이 넣은 글을 인용합니다.
이를 운(云)자는 ‘무엇 무엇이라 말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제를 사성제 또는 사진제라고도 말하며’, ‘성자(聖者) 소견(所見)의 진리이다.’
성자나 성인이나 같은 뜻입니다.
‘성자가 보는 바의 진리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제입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출처: Mail 글쓴이: 🙏참마음
https://cafe.daum.net/pokyodang/7O58/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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