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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

by 이初心 2025. 9. 19.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

    ‘부부 관계, 부모 관계, 자식과의 관계'가 좋으면 가정이 행복하고 이 관계가 나쁘면 만 가지 불행의 원인이 된다.

    또 사회적으로는 '상사와의 인간관계, 동료와의 인간관계, 부하 직원과의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있다.

    인간관계를 왜 맺을까요?
    인간관계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관계를 맺는다.
    혼자 사는 것 보다는 관계를 맺고 사는 게 상승효과가 생기므로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 관계를 잘못 맺어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안 맺기 위해 이혼도 하고 혼자 살고 사람하고 안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
    예전엔 가족끼리, 씨족끼리 관계를 맺었지만, 지금은 국가 간에 관계를 맺어 글로벌화가 되었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은 전 세계의 영향을 받았으면서 나의 의식은 그렇지 않다. 내 존재는 이미 세계화가 되어 있는데 내 의식은 외톨이가 되어 있어 불일치가 일어난다.

    인간은 어떻게 생겼나?
    서로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더 정확히는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한 됫박의 콩도 자세히 보면 다 다르다.
    하지만 콩과 팥을 비교할 때는 '이것은 같은 콩이고 이것은 팥이다' 한다.

    콩하고 팥하고 다른데 채소하고 비교할 때는 '이것은 같은 곡류이고 이건 채소이다'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관계를 맺기 전에 '남은 나와 다르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 나랑 고향이 같네? 성이 같네?"하고 반가워한다.

    그래서 금방 친해진다.
    그래서 의식은 '같은 것'으로 바뀐다.
    하지만 지내보면 같은 줄 알았는데 입맛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성질도 다르다는 점을 발견한다. 원래 달랐는데 상대가 변한 것처럼 반응한다.

    누구나 관계를 맺기 전에 '남과 나는 다르다.'는 관점이 있어 이야기를 하다가 공통점을 발견하면 반가움을 느낀다. ​상대방은 나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만났는데 점차 싫어하는 마음이 커져서 심드렁해진다.

    우리는 이때 '이 사람이 배신했다'고 한다.
    하지만 배신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배신했다'는 생각이 없다.
    그저 자연스럽게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다. ​
    그래서 상대방에게 따져도 그는 죄의식이 없다. ​

    사람은 각자가 다르다.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괴로워지고, 인정하면 괴로움이 사라진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고 그저 다를 뿐이다.

    ​'다르다'는 것은 선과 악,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존중이다. 존중은 받든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관계에서 가장 본질적인 오류를 저지른다. 본래 같지 않은 것을 자꾸 같아야 된다고 하니까 갈등이 생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기. ​이 두 가지가 가장 기본적인 태도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기'와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이해하기'만 한다면 갈등과 괴로움이 사라진다.

    남 고치는 것 보다 나 자신을 고치는 게 쉽다.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훨씬 쉽다.
    상대방을 고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 노력을 하지는 않고 신에게 빈다. 또 현실에서는 인간관계에서 '힘'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힘을 이용한다는 것은 힘센 사람이 힘 약한 사람에게 휘두르는 것이다.
    그래서 힘 약한 사람에겐 억울함이 생긴다.

    부모가 자녀에게, 국가 내에선 공권력으로,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힘을 작용한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그러한 게 현실 모습이

    또 힘을 쓰는 자를 욕하면서도 힘을 쫓아간다.
    재벌 욕하면서도 재벌 며느리 된다 하면 눈이 벌게서 쫓아간다.
    현실을 인정하면 분할 것이 없다.
    또한 극복되어야 할 과제임을 알면 개선해야 할 과제로 받아들이고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현실을 인정하라고 하면 개선에 대한 노력을 안 하고 개선을 하라고 하면 분노해서 개선한다.

    이것이 모순이다.
    이러한 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괴롭지가 않다.
    이것이 수행이다.
    상구보리(上求菩堤)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므로 개선해서 좀 더 나은 세계로 가도록 해야 하며 그것이 진리이고 정토화이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이것이 바른 불교이자 불교의 정통이다.
    현실의 불교는 조금 왜곡되어 있다.
    수행(修行) 이야기만 하고 사회성과 보살의 원(願)이 없거나 상구보리의 관점이 없는 사회 활동만 있다.

    올바르지 않은 관계를 올바른 관계로 전환하면 개인으로는 괴로움이 없어지고 수행을 하게 된다.

    그러면 가족이 평화로워지고 사회가 나아지니 정토화가 된다.

    -🙏법륜 스님-

    출처 : 법륜 스님 <즉문즉설>
    출처: 글쓴이: 🙏향상일로
    https://cafe.daum.net/seojinam/d4lZ/217

행복한 인간관계를 맺는 법.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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