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사유(思惟)하는 수행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

by 이初心 2026. 3. 1.

    🙏사유(思惟)하는 수행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

    쾌락주의자나 고행주의자들은 ‘몸을 이용해서 노력하는 것’을 수행이라고 여겼다. 쾌락주의자는 몸의 움직임을 제어해 쾌락을 극대화하려 했고, 고행주의자는 악업을 없애는 수단으로 몸을 괴롭혀 행복을 보장받으려고 했다.

    이런 양극단의 수행을 경험한 싯다르타는 이것으로는 해탈을 얻을 수 없음 깨닫고 그것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러니 싯다르타가 깨달은 진리를 따르는 불교 수행은 적어도 몸으로 노력하거나 감각을 차단하는 방식일 수 없는 것이다.

    싯다르타가 최고의 깨달음을 얻는 방식은 바로 올바른 사유였다.
    깨달음을 얻은 뒤 붓다로서 그가 해탈의 방법으로 제시한 8정도에도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의 사유에 관한 항목이 주된 수행으로 등장한다.

    4성제로 바르게 사유해서 연기(緣起)하여 드러내는 법(法)을 확인한다면, 집착이 자동적으로 해체되어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삶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 수행을 사유수(思惟修)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사유의 중요성을 모른 채 ‘몸으로 고된 수행을 해야만 깨달음을 얻는다.’고 알고 있다. 물론 나 자신도 그랬고 적지 않은 수행자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불교에 입문한 초기에는 몸을 혹사하며 수행하기 마련이다.
    본인도 21일 동안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 기간이 있었다.
    이런 몸을 혹사한 수행을 하고 나니 ‘나도 뭔가 해냈다.’ 라는 나름의 성취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과연 이런 수행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오죽하면 붓다가 하다못해 노력하더라도 똑바로 하라고 정정진(正精進)이라고 말했을까? 나 자신도 올바른 견해가 없었으니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수행은 헛발질이었다.

    견해가 바로서야 올바르게 사유하여 바른 수행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뚝 같은 굳은 신심 하나만 믿고 뛰어들면 백전백패(百戰百敗)이다.

    출처: 🙏고광 스님의 불교 도장 깨기

    출처: 글쓴이: 🙏향상일로
    https://cafe.daum.net/seojinam/fGDL/114

사유(思惟)하는 수행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mp3
5.3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