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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깨침을 위하여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2.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기질이 있는지라
    깨침을 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편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

    법이란 한 물건이요,
    사람이란 중생에 속한다.
    법이란 변하지 않은 것과 인연을 따르는 이치가 있고
    사람 중에는 단번에 깨치는 이와 오래 닦아야 하는 기질이 있으므로
    문자나 말로써 가르치는 방편이 없을 수 없다.

    중생이 비록 부처님과 같이 뚜렷하게 이루어 졌다 하나
    천생으로 지혜의 눈이 없어서 윤회를 달게 받는 것이다.

    만약 세상에서 깨침의 마음(금칼)이 아니면
    누가 무명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 줄 것인가 ?

    무명을 벗고 깨침의 언덕에 오르는 것은 부처님께서 가엾이 여기는 은혜를 입은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량없는 목숨 바쳐 그 공덕에 이바지하기 위하더라도 그 은혜의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려운 것이다.

    부처님과 조사님의 깊은 은혜에 감사 하여야 할 것을 말한 것이다.
    한 물건으로써 본다면 사람마다 본래 면목이 저절로 원만해 졌거늘 어찌 남이 깨침을 주기를 기다리리오.

    허공장경에 이르기를
    문자도 마의 업이요,
    이름과 형상도 마의 업이라,
    부처님의 말씀까지도 또한 마의 업이라고 한 것이 이 뜻이다.

    이 한 물건은
    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 그릴수도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자신들의 불성인 것입니다.

    휘양선사가 육조 혜능선사께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한 것으로 육조의 적자가 된 예 입니다.

    여러 가지로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하였으나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은 것이다.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그러진다.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인 것은 각양각색의 사람에게 도량의 크고 작음에 맞게 방편을 써서 한 말로써의 방편인 것이다.


    불기 2549 년 4월 4일.



    -보산 법광 두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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