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승복은 왜 회색일까-卍
흑과 백 초월 원융의 색 ◇성철스님이 40년간 입었던 누더기 두루마기. 무소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수행자 본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승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종교의 신성함, 출가자에 대한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스님들의 위의를 마무리하는 가사. ‘반가사’다. ◇장삼에 대가사를 걸친 모습. 생사를 벗어나고자 발심한 출가 수행자에게 부처님이 허락하신 것은 오직 옷 세 벌과 발우 한 벌. 거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바랑 정도가 고작이다. 머묾없이 언제 어디서건 구도의 길을 떠날 수 있는 스님들. 그들을 가리켜 운수 납자(雲水納子)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입는 옷의 색깔은 구름의 빛깔을 닮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아름답고 멋있게 꾸미고 싶어 한다. 화려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기품 있는 모습으로 타인의 시선을 끌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모든 복식문화는 그런 욕망을 채우기 위해 유행을 낳고 변화를 거듭한다. 그러나 승복(僧服)은 그 끝없는 갈구에 종지부를 찍는다. 승복의 잿빛은 걸사의 정신으로 청빈의 삶을 살고자 하는 출가 승려들의 각오를 투영한다. 또한 은은한 잿빛에서 우러나는 그 절제된 힘은 중생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자유로워지는 색,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숨겨놓고 있는 색, 그래서 승복 빛은 색의 니르바나일지도 모르겠다. 잿빛이 원래 우리 나라 승복의 고유색은 아니었다. 백의민족이니 당연히 흰색 옷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행자의 것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을테고 무언가 그에 걸맞는 색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아궁이에 타다 남은 숯이었다. 그 숯가루를 곱게 빻아서 자루에 넣어 물에 옷감을 함께 넣어 치대면 짙은 푸르른 빛깔이 서린 회색 빛이 우러난다. 그것은 흑과 백을 초월한 조화의 색이자 원융의 색이다. 승복은 크게 의식복과 평상복으로 나눌 수 있다. 의식복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옷은 ‘가사(袈裟)’이다. 인도 말로는 ‘카사야(kasaya)’로 ‘무너진 색, 흩어진 색’ 즉 흐린 색을 의미한다. 부처님 당시에는 청색, 황색, 백색, 흑색을 오종색이라고 하여 승가에서는 이 다섯가지 색을 지워서 입어야 한다는 규칙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 가지 색깔로 통일한 것은 아니다. 다섯가지 원색을 피하고 황색의 나무 껍질이나 푸른 진흙, 빨간 돌가루 등으로 물들여 화려하지 않게 했다. 탐욕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헌 누더기 여러 조각을 기워서 입은 ‘납의(衲衣)’ 가사는 출가 승려에게 의식복이자, 몸을 가려주는 외투이자, 추위나 더위 모기 등을 피하는 이불과도 같은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무소유한 삶의 길을 걷고자 하는 수행자 본연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가사는 본래 인도에서는 그 하나만으로도 온전히 의복의 역할을 했으나 중국에 와서는 기후와 풍습 때문에 ‘편삼’이라는 윗옷과 ‘군자’인 아래옷을 합쳐 꿰맨 옷으로 입게 되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장삼’이라는 옷으로 변했다. 장삼은 소매가 앞 뒤 여섯 폭으로 이어져 회장 중심의 곱쳐진 선이 경계가 되어 앞 네폭, 뒤 두폭으로 매우 넓다. 또 허리 아래에는 여분을 풍부하게 두어서 큼직한 맞주름을 앞뒤 각각 네 개씩 여덟 개를 잡은 ‘팔쪽 장삼’으로 되어 있다. 이 회색 장삼 위에 조계종의 경우 황갈색 가사를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입으면 가장 엄숙한 순간인 예불시간에 맞는 옷차림새가 된다. 평상복은 ‘유고(孺袴)’라 불리는 속옷을 입고 바지인 ‘고의’와 저고리인 ‘적삼’ 차림이 보통이다. 그 위에 ‘동방의(짧은 두루마기 비슷한 것)’와 ‘두루마기’를 입으면 예의에 어긋남이 없는 외출복이 된다. 여기에 ‘수대’라 불리는 회색 천으로 만든 네모난 가방을 들고 밀짚모자를 쓰고, 하얀 고무신을 신고 나서면 더할 나위없는 품위가 묻어난다. 승가의 반듯한 의제는 전장의 병사에게 있어 갑옷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출가 수행자들의 의제로 분소의(糞掃衣)를 한정했던 것처럼 무소유는 수행자에게 있어 든든한 자산이나 다름없다. <사분율(四分律)>에 의하면 분소의는 10종류가 있다. △소가 씹은 옷 △쥐가 갉아 먹은 옷 △타서 눌은 옷 △여자의 생리로 더러워진 옷 △출산 때 더러워진 옷 △조상의 신주를 모신 사당에 버린 옷 △묘지에 버려진 죽은 사람의 옷 △신불에게 발원을 하고 버린 옷 △관에 걸쳤던 옷 △소임자가 자리를 옮겨서 쓸모가 없어진 옷 등. 그러나 요즘은 형편이 다르다. 승복과 그에 따른 착용 예절은 간소함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조류와 맞물려 전통 자체가 단절될 위기에 있고, 종교 복식의 근엄함마저 실추시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평상복과 외출복의 경계없이 ‘동방의’ 차림에 시내를 누비고, 잿빛 대신 파스텔톤의 갖가지 색의 승복은 승가 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 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고급 명주 승복은 오히려 옷을 모시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이와 관련 조계종은 의제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사미의제법 시행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승가 의제를 율장과 청규에 맞게 법제화해 승가의 위계질서를 확립하겠다는 확고한 계획이다. 승복은 그 빛깔만으로, 그리고 스님이 입고 있는 모양새만으로 세간의 사람들에게 종교의 신성함과 출가자에 대한 경외감, 구도열을 가속시킨다. 또한 승복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다. 두해 전 무대에 올랐던 연극 ‘만행’은 승복을 입게 된 두 도망자가 승복을 통해 ‘참다운 자비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전했다. 옷이 사람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승복은 ‘나’를 만들기도 하고 ‘타인’을 감응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육체와 정신을 조화시켜 니르바나에 이르게 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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