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큰 원
그때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사뢰어 말하였다.
“저는 이제 다시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이어받아 조복(調伏)하는 큰 원이 진실하여 틀림이 없음을 설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승만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설하는 바를 듣겠노라.”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보살이 세운 바 갠지스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원은 모두 이 하나의 큰 원 속에 포함되는 것이니, 이른바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큰 원입니다.”
부처님께서 승만 부인을 찬탄하셨다.
“훌륭하다, 훌륭하다! 지혜와 방편이 매우 깊고 미묘하니, 그대는 이미 오랫동안 모든 선의 근본을 심었기 때문이다. 내세의 중생 중에도 오래 선근을 심는 자는 능히 그대가 설한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가 설하는 바,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들이 이미 설하였으니 장차 설할 것이며 이제 설하고 있는 바이며, 나 역시 이제 위없는 깨달음을 얻어서 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을 항상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내가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을 설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은 가이없으니, 왜냐하면 이렇게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큰 공덕이 있으며 큰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의 광대한 뜻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제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서 다시금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의 광대한 뜻을 연설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하도록 하라.”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의 광대한 뜻은 곧 한량이 없으니, 모든 불법을 얻는 것이며 팔만 사천 법문(八萬四千法門)을 거두어들이는 일입니다. 비유하면 겁(劫)이 처음 이루어질 때 널리 큰 구름이 일어나고 온갖 색깔의 비와 갖가지 보배가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 역시 한량없는 복의 과보와 한량없는 선근의 비를 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큰 수원(水源)의 비유
“세존이시여,
또한 겁이 처음으로 이루어질 때 큰 수원(水源, 大水聚)이 있어서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보배[三千大千世界藏]와 사백억이나 되는 갖가지 세계를 낳은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 역시 대승의 한량없는 세계[無量世藏], 모든 보살의 신통한 힘, 모든 세간의 안온한 쾌락, 모든 세간의 자유자재 및 출세간의 안락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겁(劫)이 이루어진 일 등은 신이나 인간이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일이니, 모두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또 대지(大地)가 네 가지 무거운 짐, 즉 대해(大海), 모든 산, 초목, 중생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도 대지를 건립하여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을 능히 짊어지려고 합니다. 저 대지는 비유입니다.
어떤 것이 넷인가 하면, 선지식을 떠난 중생, 가르침을 듣지 않는 중생, 법의 그릇이 아닌 중생들은 인천(人天)의 선근(人天乘)으로서 성숙시키고, 성문을 구하는 자는 성문의 가르침[聲覺乘]을 주고, 연각을 구하는 자는 연각의 가르침[緣覺乘]을 주고, 대승을 구하는 자는 대승의 가르침[大乘]을 줍니다. 이를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이름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은 대지를 건립하여 네 가지 무거운 책임을 능히 짊어짐으로써, 널리 중생을 위하여 청하지 않은 벗[不請之友]이 되고 중생을 편안하게 위로하며 불쌍히 여겨서 세상에서 진리의 어머니[法母]가 됩니다.
또한 대지가 네 가지 보배[寶藏], 즉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 값비싼 보배, 중간 정도 값의 보배, 값싼 보배를 갖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은 대지를 건립하여 중생의 최상의 큰 보배 네 가지를 얻습니다.
어떤 것이 네 가지 보배냐 하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은 가르침을 듣지 않는 중생, 법의 그릇이 아닌 중생들에게 인천(人天)의 공덕과 선근을 주고, 성문을 구하는 자에게는 성문의 가르침을 주고, 연각을 구하는 자에게는 연각의 가르침을 주고, 대승을 구하는 자에게는 대승의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으로 말미암아 큰 보배를 얻은 중생은 기특(奇特)하고도 희유한 공덕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큰 보배라는 것은 곧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바라밀
“세존이시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올바른 가르침 그 자체와 다르지 않으며, 올바른 가르침 그 자체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이 곧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며, 바라밀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바라밀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은 마땅히 보시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보시로써 성숙케 하는 것이니, 몸의 일부를 버려서라도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케 합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보시[檀] 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계율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여섯 가지 감각 기관[六根]을 수호하며 몸, 말, 뜻으로 짓는 업을 깨끗이 하는 것이니, 네 가지 위의(威儀)를 올바르게 하여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케 합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지계[尸] 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인욕으로서 성숙시킬 중생은, 만약 저 중생들이 비난, 욕설, 비방, 공포를 퍼붓는다 하더라도 화내지 않는 마음, 이익케 하려는 마음, 가장 뛰어난 인욕으로써 대하는 것이니, 얼굴빛을 바꾸지 않고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케 합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인욕 바라밀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정진으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그 중생들에게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큰 욕심을 내며 가장 훌륭하게 정진하는 것이니, 네 가지 위의 가운데서도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며 성숙시킵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정진[毘梨耶] 바라밀이라 이름합니다. 마땅히 선정으로서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그 중생들에게 어지럽지 않은 마음, 밖으로 향하지 않는 마음, 가장 훌륭한 정념(正念)으로써 하여 오래 전에 행한 바와 오래 전에 설한 바를 마침내 잊지 않으며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면서 성숙시킵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선정 바라밀이라 이름합니다. 마땅히 지혜로써 성숙시킬 중생에 대해서는, 그러한 모든 중생들이 일체의 뜻을 물어 온다면, 두려움 없는 마음으로써 모든 논서, 모든 학문[工巧], 구경의 지혜, 갖가지 교묘한 일로써 연설하면서 그들의 보리심을 보호하여 성숙시킵니다.
그렇게 성숙된 중생이 올바른 가르침에 안주하는 것을 반야바라밀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세존이시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바라밀과 다르지 않으며 바라밀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 곧 바라밀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과 그 사람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부처님의 위신력을 이어받아서 다시 크나큰 뜻을 말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해 보라.”
승만 부인이 부처님께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에 대하여 사뢰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올바른 일을 받아들이는 일과 다르지 않으며,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곧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이 곧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만약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선남자와 선여인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세 가지를 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몸, 목숨, 재물이 그것입니다.
선남자와 선여인이 몸을 버릴 수 있다면 생사, 윤회의 맨 마지막과 같아질 것이며, 늙음, 병, 죽음을 떠나며, 부서지지 않으며, 항상 머무르며, 변화가 없으며,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갖춘 여래의 법신(法身)을 얻을 것입니다. 목숨을 버릴 수 있다면 생사, 윤회의 맨 마지막과 같아질 것이며, 마침내는 죽음을 떠나서 가이없고, 항상 머무르며, 가히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얻어서 모든 깊고 깊은 부처님 법을 통달하게 될 것입니다.
재물을 버릴 수 있다면 생사, 윤회의 맨 마지막과 같아질 것이며, 모든 중생과 함께 하지 않으며, 다함없으며, 줄어들지 않으며, 마침내 항상 머무르며, 가히 생각할 수 없이 구족(具足)한 공덕을 얻으며, 모든 중생의 뛰어난 공양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세 가지를 버리는 선남자와 선여인은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여서 언제나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예언을 받게 되며, 모든 중생으로부터 우러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또 선남자와 선여인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들이 붕당(朋黨)을 지어서 서로 다투어 송사 하여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고 이산하여 가르침이 장차 멸하고자 할 때 굽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거짓되지 않음으로써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진리의 길벗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벗 가운데 든 자는 반드시 모든 부처님의 예언을 받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에 이와 같은 큰 힘이 있음을 봅니다. 부처님께서는 진실한 눈, 진실한 지혜이시며, 가르침의 근본이시며, 진리에 통달하시며, 올바른 가르침의 의지처이시며, 역시 모두 다 보고 아시는 분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
그때 세존께서는 승만 부인이 설한 바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의 큰 정진력(精進力)에 대하여 함께 기뻐하는 마음[隨喜心]을 일으키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렇다, 승만이여! 그대가 설하는 바와 같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의 큰 정진력은 큰 힘을 가진 역사(力士)가 조금이라도 몸에 닿으면 큰 고통을 낳는 것과 같다. 그렇다. 승만이여! 조금만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여도 악마를 크게 괴롭히는 것이니, 다른 어떤 선법(善法)도 악마를 그렇게 크게 괴롭히는 것을 나는 본 일이 없다.
또한, 소 중의 왕[牛王]은 모습이 비할 바 없어서 모든 소보다 더 뛰어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대승을 믿는 자는 조금이라도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면 모든 이승(二乘)의 선근보다도 더 뛰어난 것이니, 이는 광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치 수미산이 단정하고 엄숙하여 모든 산보다 뛰어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대승을 믿는 자로서 몸, 목숨, 재물을 버리는 자는, 받아들이려는 마음으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몸, 목숨, 재물을 버리지 않고서 처음으로 대승의 모든 선근에 머무는 자보다 더 뛰어나다. 그런데 하물며 이승이겠는가. 이 또한 광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승만이여, 마땅히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써 중생을 열어 주고 보여 주며, 중생을 교화하며, 중생을 건립(建立)할지니라.
승만이여,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이와 같은 큰 이익이 있으며 이와 같은 큰복이 있으며 이와 같은 큰 과보가 있는 것이다.
승만이여, 나는 아승지아승지겁에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의 공덕과 이익을 설한다고 하여도 가이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한량없으며 가이없는 공덕이 있는 것이다.”
승만경-제4.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攝受正法章].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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