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생명은 영원합니다.
생명에는 절대적인 삶과 죽음이 없습니다.
마치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고 하지만 해는 하늘에서 언제나 빛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지구에서 해가 보이는지 아닌지에 따라 해가 뜨고 진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방에만 한정해서 보면 어떤 사람이 방문을 열고 들어올 때 ‘한 사람이 생겼다.’하고, 방문을 열고 나가면 ‘한 사람이 없어졌다.’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방 밖에까지 이어서 보면 그 사람은 생긴 것도 없어진 것도 아닙니다. 바로 그 옆에 있는 것이지요. 그런 것처럼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기 이전에도 나는 있었고, 나와서도 있고, 죽어서도 있습니다.
이 생명의 불생불멸하는 이치를 알게 되면 태어난다고 하지만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죽는다고 하지만 죽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태어났다고 말하는 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며, 죽었다는 것은 저 세상에 ‘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태어난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죽는다고 슬퍼할 일도 아닙니다. 태어남도 죽음도 본래 없고 다만 윤회전생(輪廻轉生)할 뿐입니다.
영가가 이 이치를 안다면 죽으려야 죽을 수 없고, 태어나려야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이 생명에너지는 불생불멸해서 영롱한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자기가 아는 세계에 집착해서 태어나고 죽는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실상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의 하는 소리일 뿐입니다.
생명의 본래 입장에서 보면 불생불멸하기 때문에 우리는 울 일도 웃을 일도 없어요.
옷 갈아입는 것이 울 일도 웃을 일도 아닌 것처럼 그냥 일상생활처럼 허허로운 겁니다. 이걸 만약 영가가 깨쳐서 알게 되면 몸을 버렸다는 것에 전혀 슬퍼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인간이 100살 살면 오래 산다지만 생명 본래의 입장에서 보면 오래 사는 게 아닙니다.
하루 사는 하루살이에게는 오후 4시에 죽는 것과 오후 5시, 6시에 죽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사람이 볼 때는 마찬가지지요. 개미에게는 7일 살지, 8일 살지, 9일 살지 그것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 보기엔 매한가지죠. 구더기가 작은 똥 덩이를 갖거나 큰 똥 덩이를 갖는 건 우리 인간이 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 작은 벌레에겐 아주 큰일이란 말입니다. 그것처럼 우리가 보이게 사회적 직위의 높고 낮음, 재물의 많고 적음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지만, 저 생명 본래의 세계에서 볼 때는 참으로 하잘 것 없는 일입니다. 그래 이 하잘 것 없는 것에 집착해서 괴로워해서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영가는 집착을 놓아야 합니다.
만약 영가가 누군가를 아직 사랑하거나 미워하기 때문에 산 사람 곁을 계속ㄹ해서 떠나지 못하고 있으면 길 떠나지 못하는 영가는 새 생명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새 몸을 받지 못합니다.
헌 옷은 벗었는데 새 옷을 입지 못하니 벌거숭이로 있게 되는데, 바로 허공의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됩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자식에게 가까이 오면 자식이 큰 사고가 나거나 큰 병치레를 하게 되는 겁니다. 현대 의학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병 때문에 어디 가서 물어보면 조상의 영가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가가 좋은 마음으로 자식에게 집착해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되고, 또 원한을 품고 따라다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좋아서든 미워서든 영가가 살아 있는 사람 곁을 떠나지 않으면 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이 도리를 꼭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 지내는 자식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영가를 애타게 찾아, 울고 부르면 가야 될 사람이 가지를 못합니다. 가지 못하고 되돌아오니까 무주고혼(無主孤魂)이 됩니다. 그러니까 ‘안녕히 가십시오.’하는 기쁜 마음으로 갈 사람은 잡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사람들은 장례하는 집에서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집 사람들이 수행이 덜 되어 복은 커녕 재앙이 오겠구나.’ 이렇게 아는 겁니다.
또 죽은 사람이 한 살이든 다섯 살이든 열 살이든 백 살이든, 나이가 많든 적든 먼저 감을 마음 아파하며 울고불고 할 게 아니라, 몸을 이미 버렸으니 잘 떠나가게 천도해줘야 합니다. 영가를 위해 베풀고 참회해야 합니다. 한편 영가는 몸을 벗고 식(識)이 영롱한 이때, 법문을 듣고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귀롤 소리를 들어서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서로 오가는 중에 이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고해(苦海)를 되풀이 하는건 인연 과보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도를 계속 돌게 하는 업을 짓는 것은 내 것이다 네 것이다 하는 “탐욕심”이 그 첫째 원인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물건도 본래부터 내 것이라고 정해진 게 없습니다. 태어날 때 가져온 것도 죽을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냥 있을 뿐인데, 내 생각으로 ‘내 것이다, 네 것이다.’ 라고 마음에 새겨 두어 갖은 탐욕을 일으킵니다. 본래 내 것 아닌 줄을 알아 베푸는 마음을 냄으로서 모든 탐욕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생각 판단이 옳다고 하는 ‘진심(嗔心)’이 그 두 번째 원인이 됩니다.
내가 옳다는 이 생각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내고 짜증내고 그래서 남을 미워하게 됩니다. 만약 남편이나 자식, 부모나 친구에게 무언가 섭섭한 것이 있어 그것이 가슴에 맺혀 내가 원한을 품는다면, 그 섭섭함을 만든 것은 부모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자식이나 남편 또는 친구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한데서 생긴 감정의 찌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옳다는 이 생각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성내고 짜증내면서 남을 미워하게 됩니다.
영가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남편이나 자식, 부모나 친구에게 무언가 섭섭한 것이 있어 그것이 가슴에 맺혀 원한을 품었다면, 그 섭섭하게 만든 것은 부모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자식이나 남편이 또는 친구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한 데서 생긴 찌꺼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판단이, 내 생각이 옳은데 그렇게 해 주지 않은 것을 자신이 섭섭하게 여기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본래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옳고 그른 것이 없는 줄을 알게 되면 모든 원한은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고 고치는 참회(懺悔)를 함으로써 내 옳다는 생각을 버려서 이 어리석은 괴로움의 바다에서 바로 해탈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도 법문하는 근본 뜻임을 영가와 제자들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천도재를 지내는 이유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에 근거해서입니다.
‘정토삼부경’에는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이 있습니다.
그 경을 보면, 그 어떤 사람도 죽기 전에 간절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나무아미타불을’을 열 번만 부르면 누구나 다 저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나쁜 짓을 아무리 해도 죽을 때 간절히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쁜 짓을 평생 하던 사람이 목숨이 다할 때 갑자기 부처님이 잘 불러질까요? 불러지지가 않습니다. 죽을 때 한 번 선한 마음을 내면 누구든 극락세계에 갈 수는 만, 그런데 죽을 때는 급할 때라 선한 마음이 잘 안 납니다.
보통 때의 우리 모습을 보면 기분 좋을 때 선한 마음을 내는 게 됩니다.
아주 선한 사람도 몸이 아프거나 괴로우면 선한 마음이 잘 안 나옵니다.
성질을 부립니다. 그런데 사람이 갈 때는 몸이 많이 아프고 마음이 바빠서 신경이 아주 날카로워 집니다. 그러니 보통 때 툭하면 성질내고 짜증내고 못된 생각하던 사람이 그 급한 상황에서 좋은 마음을 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누가 욕해도 ‘나무아미타불’, 화나게 해도 ‘나무아미타불’, 내 재물 가져가도 ‘나무아미타불’, 몸이 아파도 ‘나무아미타불’ 할 정도로 연습이 되어야 숨이 끊어질 때 그 소리가 나오지, 그렇게 안하면 절대 안 나옵니다. 아무튼 죽기 전에 아미타불 열 번만 간절히 부르면 누구나 극락세계에 태어납니다.
우리 불자들이 평소에 그렇게 열심히 집중해서 염불하다가도 돌 뿌리에 탁 채어 넘어지면 그 순간 ‘엄마야!’ 이래요. 어릴 때부터 엄마를 불렀던 습관이 나오는 겁니다. 그런데 돌 뿌리에 채여 넘어지는 것보다 더 급할 때가 죽음에 즈음해서입니다. 그때 언제 관세음보살이 나오고 아미타불이 나오겠어요? 그러니 평소에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누구라도 마음을 맑게 하여 자기를 관찰하고 정진하는 사람은 목숨이 딱 끊어지면 바로 왕생극락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헌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처럼 거기엔 시간이 하나도 안 걸립니다. 그렇게 되려면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정진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수행하지 못합니다. 일반 사람들을 죽을 때, 나무아미타불을 간절히 부르면 죽은 지 49일 만에 극락세계에 왕생한다고 해서 49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49재는 생명이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생명의 흐름을 순조롭게 하는 하나의 의식 절차인 것입니다.
근본은 어디까지나 한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깨달으면 이런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이런 의식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재를 지낼 때는 절대 울거나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영가를 위해 기쁜 마음으로 가시게 하고 좋은 과보로 다시 돌아와서 기쁜 마음으로 만나서 고통 받는 중생을 함께 구제하는 보살행을 하자는 마음으로 재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여 영가를 천도 하시면 그 공덕의 대부분은 천도를 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베푸는 사람에게 공덕이 있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공덕이 있고, 법문 듣는 사람에게 공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깊을 뜻을 알아서 정성을 쏟아 기도해야 합니다.
영가여! 당신의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머리로 알음알이를 하면서 ‘나’다, ‘나의 것’이다, ‘나의 생각이 옳다’고 지금까지 ‘나’를 고집해 왔는데, 이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냄새 맡지도, 맛보지도, 감촉하지도 못하고 알음알이도 하지 못하는 지금에 이르러 영가여! 무엇이 ‘참 나!’인가?
영가여! ‘영가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
이걸 깨우쳐야 해탈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평생을 살아도 허깨비 같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이름이 나 인줄 알고 이름에 집착했습니다.
직장이 나 인 줄 알고, 사장이라는 직책이 나 인줄 알고 직장과 직책에 집착했습니다.
이 허망한 육신이 나인 줄 알고, 재물이 나인 줄 알고 그것에 집착해서 우리는 헛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가 아닙니다. 이제 나의 본래면목을 찾아야 영생불멸하는 생명의 실상을 보게 됩니다.
“지장보살본원경 이익존망품에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회중에 대변(大辯)장자가 있어 오래전부터 무생법인(無生法印)을 얻어 시방중생을 교화하였는데, 지장보살에게 합장공경하며 여쭈었다
"대사시여, 이 남섬부제 중생들이 명을 마친 후에 그의 권속들이 공덕을 닦아 주거나 재를 베풀고 갖가지 선한 일을 지으면 그 죽은 자가 큰 이익을 얻고 해탈할 수가 있습니까?"
지장보살이 답하였다
"장자시여, 내가 이제 미래와 현재의 모든 중생을 위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간단히 말하리다. 장자시여, 미래나 현재의 모든 중생들이 목숨을 마치는 날. 한 부처님의 명호나 한 보살의 명호 또는 한 벽지불의 명호라도 들으면 그 사람의 죄의 있고 없음을 묻지 않고 모두 해탈을 얻습니다.
어떤 남자나 여인이 생전에 착한 일을 닦지 아니하고 갖가지 죄만 지었더라도 그가 죽은 뒤에 그의 멀고 가까운 권속들이 그를 위하여 복을 닦아주면 그 거룩한 공덕의 7분의 1은 망인에게 가며 나머지 6분은 복 닦은 산 사람들의 차지가 됩니다(...중략....)
그러므로 목숨을 마친 후 7·7일 사이에 반드시 그의 혈육이나 권속들이 그를 위해 福을 지어야 합니다. 그가 만일 일단 업보를 받았거나 악취(惡趣)에 떨어졌으면 천만년을 지나도록 해탈할 날이 아주 멀고 맙니다. (.....중략.....)
장자시여, 따라서 염부제 중생들이 부모나 권속을 위해 재를 베풀고 공양하되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을 바쳐야 할 것이니, 만일 이와 같이 하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큰 이익을 얻게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자 대변장자는 기뻐하며 이 가르침을 받들어 절을 하고 물러갔다.
'🙏불법과 동행을 > 💕대각교단세불법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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