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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대각교단세불법륜

二十五卷 廻向偈 (이십오권 회향게)

by 혜명(해인)스님 2019. 8. 14.

二十五卷 廻向偈 (이십오권 회향게)

 

三乘諸法無異法 (삼승제법무이법)

了達業性無有性 (요달업성무유성)

諸法業性從緣起 (제법업성종연기)

但爲衆生假宣說 (단위중생가선설)

 

*삼승의 모든 법은 (서로가) 다른 법이 없으며

*업의 성품은 성품이 없다 것을 요달할지니 (업이라는 것은 본래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업이라 하였느니라)

*모든 진리(법)다 업이다 하는 것은 인연을 쫓아 일어나는 것이나

*다만 중생들을 위하여 (가선설)가자해 이리저리 말했을 뿐이다

 

【三乘】

산스크리트어 tri-yāna 승(乘)은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부처가 중생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설한 세 가지 가르침.

① (1) 성문승(聲聞乘). 성문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가르침. 성문의 목표인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가르침. 성문의 수행법.

(2) 연각승(緣覺乘). 연기(緣起)의 이치를 주시하여 깨달은 연각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 연각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가르침. 연각에 이르는 수행법.

(3) 보살승(菩薩乘).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보살을 위한 부처의 가르침.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보살을 위한 부처의 가르침.

 

② (1) 소승(小乘). 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를 위한 부처의 가르침. 자신의 해탈만을 목표로 하는 성문(聲聞)·연각(緣覺)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

(2) 대승(大乘).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수행자를 위한 부처의 가르침.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에 대한 부처의 가르침.

(3) 일승(一乘).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부처의 가르침.

③ (1) 천승(天乘). 색계(色界)의 네 선정(禪定), 곧 사선(四禪)에 대한 가르침.

(2) 범승(梵乘). 자(慈)·비(悲)·희(喜)·사(捨)의 사무량심(四無量心)에 대한 가르침.

(3) 성승(聖乘). 팔정도(八正道)에 대한 가르침.

 

【業】

범어 karman의 번역. 갈마(羯磨)라 음역(音譯)한다.

조작(造作)의 뜻. 행위(行爲)ㆍ소작(所作)ㆍ의지(意志)에 의한 신심(身心)의 활동. 의지(意志)에 의한 신심(身心)의 생활을 의미한다.

 

①일반으로 업(業)을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삼업(三業)으로 나눈다. 유부(有部)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 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뜻이 의업(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구업(口業)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또 업(業)을 의지(意志)의 활동인 사업(思業)과 사업(思業)이 끝나고서 행하는 사이업(思已業)의 이업(二業)으로 나누는데 이 경우, 사업(思業)은 의업(意業)이고, 사이업(思已業)은 신(身)ㆍ어(語)ㆍ이업(二業)이다. 삼업(三業)으로서의 작용의 본체(本體, 업체(業體)ㆍ업성(業性))에 대해서, 유부(有部) 등에서는 의업(意業)은 사(思, 의지(意志))라고 한다. 불교 본래의 입장은 후자라고 생각된다.

 

②유부(有部)에서는 물질적(物質的)인 것을 본체(本體)로 하는 업(業, 색업(色業)) 곧 신업(身業)과 어업(語業)으로, 표(表, 작(作)ㆍ교(敎))와 무표(無表, 무작(無作)ㆍ무교(無敎))가 있다고 한다. 이것들은 또 표업(表業)ㆍ무표업(無表業)이라고도 한다. 표업(表業)은 밖으로 표현되어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이며 무표업(無表業)은 타인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무표업(無表業)은 무표색(無表色)이라 이름 지어지는 일종의 색법(色法), 보통의 물질과 같이 조잡하지 않다)을 본체(本體)로 하고, 강한 선악(善惡)의 업(業)에 의해서 일어나는데, 그 업(業)은 신표업(身表業)과 어표업(語表業)과 및 정(定) 등이다.

 

이 무표업(無表業)에 3종이 있다. 수계(受戒)와 정(定, 어느 것이나 다 선(善))에 의해서 일어난 율의(律儀)와, 습관적이고 특히 강한 결단을 가지고 한 악업(惡業)에 의해서 일어난 바의 불율의(不律儀)와 그 이외의, 때에 따라서 선악의 업에 의해서 일어난 비율의비불율의(非律儀非不律儀, 처중(處中)의 무표(無表))의 3종이 그것이다. 율의무표(律儀無表)는 계(戒)를 버리고 정(定)에서 나오기까지 계속되고, 그밖에 무표(無表)는 특별한 장해(障害)가 없는 한 일생동안 계속한다. 이들 무표(無表) 중에서 선(善)한 무표(無表)에는 악(惡)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고, 악(惡)한 무표(無表)에는 선(善)을 방해하는 작용이 있어서 각기 그 사람의 후천적(後天的) 성격을 형성한다고 한다. 또 신(身)ㆍ어(語)의 각 표업(表業) 및 무표업(無表業)에 의업(意業)을 더하여 오업(五業)이라고 한다.

 

③선악의 업을 지으면, 그것에 의해서 그에 상응한 고락의 갚음(과보(果報)ㆍ이숙(異熟)이 생긴다. 이것을 업인(業因)에 의해서 업과(業果)가 생긴다고 한다. 비선비악(非善非惡)의 무기업(無記業)은 과(果)를 끄는 힘이 없다. 이 업인(業因)과 업과(業果)의 관계를, 유부(有部)에서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업(業) 그것은 삼세(三世)에 실재(實在)하는 것으로서, 업이 현재에 있을 때 이것이 인(因)이 되어서 어떠한 미래(未來)의 과(果)를 끌 것인가가 결정되고(이것을 취과(取果)라고 한다), 업이 지나가 버림으로부터 과(果)에 힘을 주어서 과(果)를 현재에 이끌어 낸다(이것을 여과(與果)라고 함).

 

또한 경량부(經量部)에서는, 업(業)은 순간에 없어져 버리는데, 그 업(業)은 과(果)를 생하는 종자를 식(識) 위에 심어 주어, 그 종자가 과(果)를 끌어 일으킨다고 한다. 이 종자의 사상(思想)은 유부(有部)의 무표업설(無表業說)과 같은 것이다.

 

④업(業)을 여러 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 총체(總體)로서의 일생의 과보(果報, 갚음)를 이끄는 업(業), 곧 인간계(人間界)라든가 축생계(畜生界) 등에 태어나게 하는 강한 힘이 있는 업(業)을 인업(引業, 견인업(牽引業)ㆍ총보업(總報業)ㆍ인인(引因))이라 하고, 인간계(人間界) 등에 태어난 자에 대해서 개개의 구별을 주어서 개체를 완성시키는 업을 만업(滿業, 원만업(圓滿業)ㆍ별보업(別報業))이라고 한다. 인업(引業)의 갚음을 총보(總報), 만업(滿業)의 갚음을 별보(別報)라고 하여, 이 이업(二業)을 총별이업(總別二業)이라고 한다. 더욱 유부(有部)에서는 하나의 인업(引業)에 의해서 일회(一回)의 생을 받아 다시 그 위에 많은 만업(滿業)에 의해서 이 생이 완성된다고 설(說)하고, 다업(多業)이 일생을 이끌거나, 일업(一業)이 다생(多生)을 끌거나 하는 것은 없다고 한다. 또 업에는, 산하대지(山河大地, 기세문(器世問))와 같은, 많은 생물(生物)에 공통하는 과보(果報)를 끌어 일으키는 공업(共業)과, 개개의 생물의 신체와 같은, 개개의 생물에 고유한 과보(果報)를 인기(引起)하는 불공업(不共業)이 있다.

 

⑤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 안온업(安穩業))과, 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ㆍ불안온업(不安穩業))과, 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악업(惡業)은 벌(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업(業)이기 때문에 벌업(罰業)ㆍ벌(罰)이라 하고,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벌업(三罰業) 또는 삼벌(三罰)이 있다.

 

『중아함경(中阿含經)』 권32에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업(三業)중에서 의업(意業)이 가장 중하다고 설(說)하여, 불교가 동기론(動機論)에 입각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자이나교(敎)에서는 신(身)ㆍ구(口)ㆍ의(意)의 삼벌(三罰)중 신벌(身罰)을 가장 중(重)하다고 하여, 결과론에 빠져 있다. 또 숙려(熟慮)한 뒤에 결단하여 일부러 한 고사업(故思業, 고작업(故作業))과 그렇지 않고 뜻밖에(무의식적(無意識的)) 잘못한 불고사업(不故思業)은 그것만으로는 갚음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고사업(故思業) 중에 적극적으로 한 강하고 중대한 업(業)을 증장업(增長業)이라 하고, 소극적으로 한 약하고 가벼운 고사업(故思業)은 불증장업(不增長業)이라고 한다. 점점 강하게 되는 업(業)을 증상업(增上業) 혹은 증장업(增長業)이라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조작업(造作業)이라 한다. 욕계(欲界)의 악업(惡業)과 같이 안(眼)ㆍ이(耳)ㆍ비(鼻)ㆍ설(舌)ㆍ신(身)의 오식(五識)으로 받는 고(苦)만을 수(受)의 과보(果報)로 가져오는 업(業)을 신수업(身受業).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 초선천(初善天)을 제함)의 선업(善業)과 같이 제육의식(六意識)으로 받는 락(樂)만을 수과보(受果報)로 가져오는 업(業)을 심수업(心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이수업(二受業)이라 한다.

 

또 고수(苦受)와 락수(藥受)와 사수(捨受,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과모(果報)는 각기 욕과(欲界)의 악업(惡業)과 욕계(欲界)에서 색계(色界) 제삼선(三禪)까지의 선업(善業)과, 색계(色界) 제사선(四禪) 이상의 선업에 의해서 오기 때문에, 이 세 업(業)을 각기 순고수업(順苦受業)ㆍ순락수업(順樂受業)ㆍ순불고불락수업(順不苦不樂受業)이라 하고, 합하여 삼수업(三受業)이라고 한다.

 

또 욕계의 선업은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복락(福樂), 욕계(欲界)의 악업은 불행을 가져오기 때문에 비복업(非福業),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선업(善業)은 그 선정(禪定)의 힘에 의해서 갚음(보(報))이 정해져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부동업(不動業)이라 하고, 합하여 복(福) 등의 삼업(三業,또는 삼행(三行))이라고 한다. 또 악업은 혹업(黑業), 선업은 백업(白業)이라고도 하고, 여기에 이숙(異熟)의 좋아함직(백(白))한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흑(黑))에 배당하면, 욕계(欲界)의 불선업(不善業)은 성질이 불선(不善)하여 이숙(異熟)도 좋아하지 않는 흑흑이숙업(黑黑異熟業),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선업(善業)은 성질은 선(善)하고, 이숙(異熟)도 좋아하기 때문에 백백이숙업(白白異熱業), 욕계(欲界)의 선업(善業)은 성질도 이숙(異熟)도 흑백상잡(黑白相雜)하여 있기 때문에 흑백흑백이숙업(黑白黑白異熟業), 번뇌와의 관계가 단절(斷折)된 무루업(無漏業)은 상대적인 흑백(黑白)을 초월하여 이숙(異熟)을 초래(招來)하지 않기 때문에 비흑비백무이숙업(非黑非白無異熟業)이라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사업(四業)이라 한다. 사업(四業)중에 앞의 3은 유루업(有漏業)으로, 이것들은 최후의 무루업(無漏業)에서 단감(斷減)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 내심(內心)을 남모르게 감추고 아첨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업(業)을 곡업(曲業)이라고 하고, 또한 성냄에 의해서 일어나는 업을 예업(穢業)이라 한다. 탐냄으로 의해서 일어나는 업을 탁업(濁業)이라고 하고, 이것들을 합하여 곡예탁(曲穢濁)의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팔성도(八聖道)의 제 사지(四支)는 정업(正業)으로, 그 반대는 사업(邪業)이다.

 

⑥업에 의해서 그 갚음을 받는 시기에 다름(異) 있기 때문에, 순현업(順現業, 순현법수업(順現法受業))ㆍ순생업(順生業, 순차생수업(順次生受業))ㆍ순후업(順後業, 순후차수업(順後次受業))의 삼시업(三時業)을 나누어, 각각 이 세상에서 지은 업(業)에 응해서, 그 갚음을 이 세상에서 받는 것, 다음 태어난 세상에서 받는 것, 제3생(生) 이후에 받는 것으로 구분한다. 이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 순부정수업(順不定受業))이라 하고, 거기에 삼시업(三時業)을 더하여 사업(四業)이라고 한다. 또 부정업(不定業)을 갚음의 내용(이숙(異熟))의 정(定)ㆍ부정(不定)에 의해서 시부정이숙정업(時不定異熟定業)과 시부정이숙부정업(時不定異熟不定業)의 둘로 나누고, 여기에 삼시업(三時業)을 더하여 오업(五業)으로 하며 또 삼시업(三時業)을 각기 시정이숙정(時定異熟定)과 시정이숙부정(時定異熟不定)으로 나누어 여섯으로 하고, 둘의 부정업(不定業)을 더하여 팔업(八業)이라고도 한다.

 

⑦업이 작용할 또는 의지할 곳이 되는 것, 혹은 유정(有情)을 고락(苦樂)의 과보(갚음)에 인도하는 통로(通路)가 되는 것을, 업도(業道, 근본업도(根本業道))라 하는데, 여기에 십선업도(十善業道)와 십악업도(十惡業道)가있다. 유부(有部)에서는 십선(十善)ㆍ십악(十惡)에는 업(業)인 것과 업(業)이 아닌 것(무빈(無貧)ㆍ무진(無瞋)ㆍ정견(正見), 빈(貧)ㆍ진(瞋)ㆍ사견(邪))이 있는데, 어느 것이나 의지(意志, 사(思))가 거기에 작용하는 바의 의지할 곳이 되기 때문에 업도(業道)라 한다고 했다.

 

『경량부(經量部)』나 대승(大乘)에서는, 십선(十善)ㆍ십악(十惡)은 모두 업(業)이어서 의지(意志, 사(思)) 를 체(體)로 하는데, 처음의 칠업도(七業道)에 있어서는 신(身)ㆍ구(口)를 발동(發動)하는 의지(意志, 사(思))가, 사유(思惟)하여 결정하는 의지(意志, 사(思))의 작용하는 바가 되기 때문에 업도(業道)라 하고, 또 그 발동(發動)의 생각에 의해서 생긴 생각의 종자도 업도(業道)라 한다. 뒤의 셋 곧 빈(貧)ㆍ진(瞋)ㆍ치(癡) 등은 순차(順次)로, 또 교호(交互)로 생기기 때문에, 앞의 것은 뒤의 것 때문에 업(業)의 도(道)가 되고, 또 유정(有情)을 지옥 등의 악취(惡趣) 등에 인도되는 도(道)가 되기 때문에 업도(業道)라고 설(說)함, 또 업(業)에는, 준비적 행위(行爲, 가행(加行))와 목적을 수행하는 그 순간의 행위(根本)와 완수(完遂)한 뒤의 종속적(從屬的)인 행위(후기(後起))가 있는데, 이 가운데 근본만을 업도(業道)라고 한다.

 

⑧번뇌도(煩惱道)ㆍ업도(業道)ㆍ고도(苦道).

 

⑨업(業)은 갚음(과보(果報), 이숙(異熟)을 내는 인(因)이 되기 때문에 업인(業因)ㆍ인업(因業)이라 하고, 업(業)에 의한 갚음을 업과(業果), 업보(業報)라 한다. 또 업인(業因)에는 업(業)을 일으키는 원인(번뇌 등)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고, 인업(因業)에는 인(因)과 업(業), 주인(主因)과 조연(助緣))이라고 하는 의미도 있다.

 

世尊應化 三千四十六年

陰 七月 十三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釋迦山 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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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十五卷 發願文 (이십오권 발원문)

 

相逢善緣 (상봉선연)

不逢災難 (불봉재난)

*좋은 인연은 만나고

*재앙과 어려움을 만나지 않기를 발원합니다.

 

【三災】

우주와 인간 세계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면서 그 변화의 동인(動因)으로 작용하는 천(天)·지(地)·인(人)을 일컫는 말.

 

유학 사상사의 흐름에서 삼재론(三才論)은 『역전(易傳)』인 십익(十翼)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삼재론은 자연적 구성 요소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천지에 인간을 참여시킨 것으로서, 인간의 위치를 천지와 같은 수준으로 끌어 올린 인간 중심적 사조가 삼재론 형성의 사상적 배경을 이루고 있다.

 

주대(周代)의 인문주의적 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인도주의적 가치관을 확립한 공자에 이르러 인간은 윤리의 주체로 서게 되었다. 그리고 『역전』·『중용』·『예기』 등을 통하여 인간은 사회적인 도덕 주체의 위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천지와 함께 우주와 세계

 

창조의 주체자로 인식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사상적 흐름 속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삼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유학의 흐름 가운데서 삼재론은 그 이후 큰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는 삼재론을 이루는 구성 요소 가운데 지의 개념이 약화되면서 천에 포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삼재 가운데 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천과 인에 대한 독립적인 자격을 상실하고 천에 종속됨으로써, 그 뒤 삼재론은 천인론으로 사상적 구조와 내용을 바꾸게 되었다.

 

다만, 중국 사상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주역』 가운데 삼재론은 음양론과 함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64괘의 초효(初爻)와 2효는 지, 3효와 4효는 인, 5효와 상효(上爻)는 천으로 6효가 천지인의 삼재를 상징하고 있으며, 『주역』 계사(繫辭) 설괘전(說卦傳)에서는 각각 천도(天道)를 음양(陰陽), 지도(地道)를 강유(剛柔), 인도(人道)를 인의(仁義)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하여 한국 사상사에서 삼재론은 초기 단군신화 속에 이미 그 원형적 모습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 와서 단군신화는 주로 천인합일 또는 천인본일(天人本一)의 구조로 이해하지만, 좀 더 세밀히 파악할 때는 천지인의 삼재론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을호(李乙浩)는 환인(桓因)을 천, 환웅(桓雄)을 지, 환검(桓儉)을 인으로, 또는 환인을 천, 환웅을 인, 환검을 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환웅을 천, 웅녀를 지, 단군을 인으로 보는 삼재론적인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단군신화의 이러한 삼재론적 구조는 한국 사상사의 저류로 흐를 뿐 구체적인 논리로 전개되지는 못했으며, 후기에 유학 사상과 성리학의 수용 이후에도 주로 천인론으로 변용된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역시 중국 사상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의 개념이 약화된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실학사상이 형성된 뒤 이런 경향에 대한 반성이 생겨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에 대하여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요소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내용을 삼재론의 측면에서 해명하여 경제와 윤리의 조화를 시도한 사상가로 이원구(李元龜)가 있다.

 

그는 “구도(九道)와 육사(六事)는 천지인 삼재의 요도(要道)요 묘결(妙訣)이다”라 하여, 하늘에 근거한 인륜과 땅에 근거한 산업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과거 천에 종속되었던 지를 새롭게 부각시킨 것으로, 새로운 삼재론의 해석이며 재정립이라 하겠다.

 

【팔난】

깨달음으로 향하는 청정한 수행에 방해가 되는 여덟 가지 난관.

 

(1) 지옥(地獄).

(2) 아귀(餓鬼).

(3) 축생(畜生).

(4) 장수천(長壽天).

(5) 변지(邊地).

(6) 맹롱음아(盲聾瘖瘂).

(7) 세지변총(世智辯聰).

(8) 불전불후(佛前佛後).

 

(1)(2)(3)은 고통에 시달려 수행할 수 없기 때문,

(4)는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여러 천(天)으로, 수명이 길고 편안하여 불법(佛法)을 구하지 않기 때문,

 

(5)는 북구로주(北俱盧洲)로서, 사주(四洲)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

(6)은 눈이 멀고 귀먹고 말 못하기 때문,

(7)은 세속의 지혜는 있어도 그릇된 견해에 빠져 바른 가르침을 구하지 않기 때문,

(8)은 가르침을 설할 부처가 없기 때문임.

 

世尊應化 三千四十六年

陰 七月 十三日

於頭陀山 救生宗刹

牧牛閑室 釋迦山 漏

 

 

二十五卷 廻向偈 (이십오권 회향게).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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