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생이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청화스님
그래서 인간의 모든 문화 현상은 비록 길고 옅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다 한결같이 인생고人生苦의 구제와 진정한 자유를 그 구경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다만 그 목적을 실현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정작 인간의 고액苦厄을 구제함에는, 먼저 인간의 본질, 곧 참다운 자아自我가 무엇인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종교 철학 가운데서, 인간의 근본 바탕을 가장 철두철미하게 밝히고, 영원한 안락의 경계에 인도하는 가르침이 불교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교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일체 중생을 구제하려는 부처님의 거룩한 서원誓願과 부사의한 공덕으로 장엄된 이상향理想鄕, 곧 극락세계極樂世界를 너무도 생생하고 인상적으로 밝히신 경전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인데, 이는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극락세계란, 욕계 색계 무색계 등 중생이 생사윤회하는 삼계의 차원을 넘어 선, 영원히 안락한 복지福池로서, 시간 공간과 인과율을 초월한 경계이며, 우리 중생이 필경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허명무실虛名無實한 방편가설方便街說이 아니라, 엄연한 영생불멸의 실존이며, 우리들의 올바른 수행으로 업장이 소멸할 때, 우리 스스로 보고 느끼고 누리는 상주불변常住不變한 법락의 경계입니다. 정녕, 우리 중생은 본래의 자성이 아미타불이요, 우리가 본래 살고 있는 고향은 극락세계인데, 짖궂은 번뇌 업장에 가리워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지없이 생사고해에 방황하다가, 다행히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만나서, 비로소 참다운 자아와 진정한 고향인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영원불멸한 우주 자체의 대생명이 바로 부처님이요, 그 부처님의 대명사가 아미타불이며, 부처님의 자비 화신이 관세음보살이요, 부처님의 지혜 화신이 대세지보살입니다. 그것은 마치 무궁한 태허太虛에 음과 양의 이원二元이 원융하게 작용하여 만유가 생성하는 것과 비슷한 도리입니다. 우주 스스로가 그대로 신비부사의한 부처님이요, 우주에는 언제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서원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외우며 부르는 것은,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상통하고 부처님의 가호를 입게 되는 깊은 인연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아로 돌아가는 성불의 계기가 되고, 또한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결정적인 선근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 부처님으로부터 베풀어지는 타력과 자기 수행의 자력이 아울러 감응하는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참다운 실상세계實相世界인 극락세계의 장엄 찬란한 경계를 흠모하고 동경하며, 우주 자신의 이름이요, 우리의 본래면목의 이름이기도 한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생각하며 그 이름을 외우고 부르는 것은, 우리 범부 중생이 찰나찰나에 끊임없이 스스로 부처님을 자각하면서 부처가 되어 가는, 절실하고 안온한 성불의 첩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에 아미타불과 극락세계의 실상을 여의지 않는 염불은 이른바 실상염불實相念佛이요. 보왕삼매寶王三昧로서, 바로 진여자성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염붐선이 되는 것이며, 그래서 자력自力과 타력他力, 관觀과 염念, 정定과 혜慧를 함께 쌍수雙修하는 심심 미묘한 염불 공덕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염불선念佛禪은 불성에 들어맞는 천연자연한 수행법이기 때문에, 모든 수법修法을 종합 포섭하였으며, 종파宗派를 초월한 가장 보편적인 행법行法일 뿐 아니라, 바야흐로 분열 투쟁의 역사적 위기에 직면한 불안한 현세대에 가장 알맞은 시기상응時機相應한 안락법문安樂法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를 말씀하신 경전은, 화엄경, 법화경, 열반경, 능엄경 등 실로 이백 수십 부에 달하는데, 특히 화엄경의 입법계품에는 보현보살이 선재동자를 깨우치는 법문 가운데, “원하옵건대, 목숨이 마치려할 때 온갖 장애가 소멸되어 극락세계에 태어나 아미타불의 뵈올지이다”라고 찬탄하였고, 보적경寶積經에는 석존께서 아버지이신 정반왕에게 염불하여 극락에 왕생하기를 간절히 권하셨습니다. v 마명馬鳴보살(불멸佛滅후 육백년경)의 기신론起信論, 용수龍樹보살의 십주비바사론과 지도론智度論, 또한 세친世親보살의 정토론淨土論등에서도, 염불은 부처님의 무량 공덕과 근본 서원을 확신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불보살과 감응하고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 마치 순풍에 돛단배와도 같이 수행하기 쉽고 성불하기 쉬운, 이른바 이왕이수易往易修의 행법行法임을 찬양하였습니다. 중국에서도 혜원慧遠, 지의, 선도善導, 연수延壽, 중봉中峰, 연지蓮池대사 등, 염불을 창도하여 자행화타自行化他한 선지식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의 원효元曉대사와 같이 염불을 주종으로 한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장慈藏, 의상義尙대사 등과, 고려의 대각大覺, 보조普助, 태고太古, 나옹懶翁대사 등과, 이조에서는 함허涵虛, 서산西山, 사명四溟대사 등이, 선禪과 염불을 융합한 선정일치禪定一致의 견지에서 염불을 역설하였습니다. 서산대사는 그의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마명馬鳴과 용수龍樹가 다 높은 조사이면서 염불 왕생을 권장하였는데, 내가 무엇이기를 염불을 안 할까 보냐”라고 간절히 염불을 권면하였습니다. 아미타불은 다만 극락세계의 교주이실 뿐 아니라,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을 겸전한 삼세三世 일체불一切佛의 본체로서, 그 영원한 생명과 자비를 위주로 할 때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이요, 무한한 지혜 공덕을 위주로 할 때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며, 대자대비大慈大悲를 위주로 할 경우에는 관세음보살입니다. 그래서 여러 경전에는 수없이 많은 부처님의 명호名號(이름)가 나오나, 필경 아미타불인 동일한 부처님의 화도化導의 인연에 따른 공덕의 이름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용돌이치는 현대 문명의 폭류 속에서, 비록 우리들의 착잡한 인연이 성불의 대도를 직행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중생이 필경 돌아가야 할 고향인 극락세계와 본래 자성自性인 아미타불을 염원하는 보편적인 인생관과 그에 따른 성실한 수행은 한사코 계속되어야만 합니다. 우리 고해 중생은 일체 현상이 모두 몽환포영夢幻泡影과 같은 허망 무상한 가상에 지나지 않음을 신인信認하고, 매양 최상 행복한 극락세계의 영상을 지니며, 최상의 개념인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생활은, 우리 자신을 정화하여 그만큼 성불의 경계에 다가서게 하며, 아예 영생永生의 대도에서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결정 신심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염불 생활은 현대인의 불안 의식과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도 다시없는 청량제가 될 것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잃어버린 진아眞我의 회복과 분열된 조국의 광복光復과 인류의 영원한 평화 복지福祉를 위한 가장 근원적인 최상의 길이기도 합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한다는 것은, 바른 깨달음을 얻어 위없는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성자가 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갖 번뇌를 소멸하고 정각을 얻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듯이,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도 또한 경전의 말씀과 같이, ‘작은 선근과 적은 복덕’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기 위한 큰 선근善根과 거룩한 복덕福德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염불인 것입니다. 우리 본래 자성이 부처님이요, 아미타불이란 부처님의 명호(이름)이기 때문에, 염불이란 곧 자성불自性佛을 생각하고 자성불로 돌아가는 법이자연法爾自然의 수행법인 것입니다. 염불은 부처님의 본원에 들어맞는 수행법일 뿐 아니라, 삼세 모든 부처님들께서 한결같이 권장하고 기억하여 호념護念하시는 수행법이기 때문에, 다른 수행법에 비하여 불보살의 가피가 수승함은, 여러 경전이나 수많은 영험록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능엄경에서도 석존께서 “나는 일찍이 수행할 때에 염불로써 무생법인에 들었느니라” 하셨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염불하는 이는 모든 사람 가운데 향기로운 연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염불은 진여 자성眞如自性을 여의지 않는 자성선이라고도 하고, 또한 모든 삼매의 왕이라 하여 보왕삼매寶王三昧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선禪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佛心)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니, 경전의 말과 문자에 걸리지 않고 마음을 밝힐 때, 선과 교는 본래 둘이 아닌 진여 자성眞如自性의 체용體用인 것입니다. 일체 만유의 근본 자성이 아미타불이요, 극락세계 역시 같은 자성인 청정심淸淨心으로 이루어진 경계이니, 마음이 오염되면 그에 상응한 삼계三界(욕계, 색계, 무색계) 육도六道(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에 윤회하는 고뇌를 벗어날 수 없으며, 본래의 청정한 마음으로 돌아오면 금생과 내세를 가리지 않고 상락아정常樂我淨한 극락세계의 청정한 행복을 수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극락세계를 염원念願하고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그 명호(이름)를 부르는 염불 공부는, 진여 자성을 여의지 않는 참선 공부와 본래 우열이 없으니, 염불과 선은 일치하는 것입니다.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닌 선정일치禪定一致의 뜻이 담긴 대표적인 법문은, 관무량수경의 다음 구절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바로 법계를 몸으로 하는 것이니, 일체 중생의 마음 가운데 들어 계시느니라. 그러므로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님을 생각할 때, 이 마음이 바로 삼십이상과 팔습수형호를 갖춘 원만 덕상德相이니라, 그래서 이 마음으로 부처님을 이루고, 이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니라”(諸佛如來是法界身,入一切衆生心想中, 是故汝等想佛時, 是心卽是三十二隨形好, 是心是佛) 저명한 선사들로서 선정일치禪定一致를 주장한 분들의 법문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합니다. [염불의 공덕이 성취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나 아미타불의 참 몸이 앞에 나타나며, 임종시에는 구품九品 연화대에 영접되어 그 상품上品으로 왕생한다] = 보조지눌普照知訥스님 (念佛要門 중에서) [아미타불의 청정 미묘한 법신이 두루 모든 중생의 마음에 계시므로,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이 본래 차별이 없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곧 마음이다, 아미타불의 명호(이름)를 끊임없이 분명히 생각하고 외울지니, 힘써 정진하여 그 공덕이 성취되면, 홀연히 분별이 끊어지고 아미타불의 참 몸이 뚜렷이 나투신다 ]= 태고보우太古普愚스님 (太古庵歌 중에서) [마음은 바로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끊임이 없고, 입은 부처님의 명호(이름)를 분명히 불러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이렇듯 마음과 입이 서로 응하면, 그 한 생각 한 소리에 능히 팔십억 겁 동안 생사윤회의 죄업을 소멸함과 동시에, 팔십억 겁의 수승한 공덕을 성취한다] 淸虛休靜스님 (淸虛堂集) [오직 아미타불 지니고 다른 생각 없으면 손 튀길 수고도 없이 서방극락 가리라] 六祖慧能 스님 선정과 정토가 같이 있으면 마치 뿔 난 호랑이 같이 이승에는 남의 스승이 되고 다음 생엔 부처와 조사가 되리. 선정이 없고 정토만 있으면 만萬사람 닦아서 만 사람 가니 다만 아미타불만 뵈옵게 되면 깨닫지 못할 걱정 어찌 있을까? 선정만 있고 정토 없으면 열 사람에 아홉이 미끄러지고 중음中陰 경계가 나투게 되면 별안간 그를 따라가고 말으리 선정과 정토가 모두 없으면 무쇠 평상과 구리 기둥의 지옥 일만 겁과 일천 생에 믿고 의지할 데 하나도 없네. (永明延壽 스님) 염불과 참선이 같지 않다고 의심하는 이가 있는데, 그것은 참선이란 다만 마음을 알고 성품을 보려 함이요, 염불은 성품이 미타彌陀요, 마음이 곧 정토임을 모르는 데서 오는 것이니, 어찌 그 이치에 둘이 있으랴? 경에 말씀하시기를 “부처님 생각하고 염불을 하면, 현세나 다음 생에 반드시 부처님을 뵈오리라” 하셨으니, 이미 현세에서 부처님을 뵈옴이 어찌 참선을 하여 도를 깨닫는 것과 다름이 있을 것인가, 아미타불 넉자를 화두話頭 삼아, 자나 깨나 분명히 들어 쉬지않고 한 생각의 분별도 나지 않는 데 이르면, 차서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뛰어 오르리라. (정토삼부경 서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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