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은 성불의 지름길,-성철스님
이제까지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라고 계속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마음을 깨치려고 하면 여러 방법이 있는데 교(敎)에 있어서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삼승십이분교〉가 벌어지고 또 선(禪)에 있어서는 언어 문자를 버리고 바로 깨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의 근본 입장에서 볼 때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 이미 알아 맞혔다 해도 까닭 없이 땅에서 넘어져 뼈를 부러트리는 사람입니다. 하물며 덕산스님이 비 오듯이 몽둥이로 때리고 임제스님이 우뢰 같은 할(喝)을 한다 하여도 곽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송장이 곽 속에서 아무리 눈을 떠 봐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내가 법상에 앉아서 쓸데없이 부처가 어떻고 선이 어떻고 교리가 어떻고 이러니저러니 하는 이 법문은 중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중생들에게 독약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이 법문이 사람 죽이는 독약인 비상인줄 바로 알 것 같으면 그런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불법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되려는 병,
조사(祖師)되려는 병,
이 모든 병을 고치는 데는 우리의 자성을 깨치면 이런 모든 집착을 벗어나서 참으로 자유자재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자기자성을 깨치지 못하고서는 집착을 버릴래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이 바른 사람이라면 부처님이나 달마조사가 와서 설법을 한다 하여도 귀를 막고 달아나 버려야 합니다.
예전에 무착(無着)이라는 스님이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고 그 절 공양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큰 가마솥에 팥죽을 끓이고 있는데 그 팥죽 끓는 솥 위에 문수보살이 현신(現身)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큰 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대중을 운집(雲集) 시키려고 야단했을 터인데 무착스님은 팥죽을 졌던 주걱으로 문수보살의 뺨을 이리치고 저리 치면서 말했습니다.
「문수보살은 너 문수보살이며 무착은 내 무착이로다.」
그러자 문수보살이 게송을 읊고 사라졌습니다.
그와 같이 이 대중 가운데서 「성철은 저 성철이고 나는 나다.
그런데 긴 소리 짧은 소리 무슨 잠꼬대가 그리 많으냐」 하고 달려드는 진정한 공부인이 있다면 내가 참으로 그 사람을 법상 위에 모서 놓고 한없이 절을 하겠습니다.
그런 무착스님의 기재가 참으로 출격장부(出格文夫)이며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내 밥 내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남의 집 밥을 구걸하느냐 말입니다. 부디 내 밥 내 먹고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어문자를 익히는 것 뿐만 아니라 육도만행(六途萬行)을 닦아서 정각(正覺)을 성취하는 것이 어떠냐고 흔히 나에게 수화들이 묻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예전 조사스님들이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육도만행을 닦아 성불하려고 하는 것은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것과 같다」고 그런데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송장을 타고 바다를 건너 갈 것입니까. 육도만행이 보살행으로서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은 바로 자기 자성을 깨치는 것만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공부를 함에 있어서 이론과 실천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경전을 배우면서 참선을 하고, 참선을 하면서 경전을 배우고 조사어록을 얽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언어문자는 산 사람이 아닌 종이 위에 그린 사람인줄 분명히 알아서 마음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 대중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공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염불하여 삼매를 성취하여 성불한다. 주력으로 삼매를 성취하여 성불한다.
경을 보아 삼매를 성취하여 성불한다는 등등, 그러나 그 무엇보다는 화두(話頭)를 참구하는 것이 성불하는 지름길이라고 조사스님들은 다 말씀합니다.
그러니 이 법회(法會) 동안에는 누구든지 의무적으로 화두를 해야겠습니다.
이제 내가 화두를 일러줄 터이니 잘 들으십시오.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니 이것이 무엇인고」
(不是心 不是物 不是佛이니 是什麽오)
내가 일러준 이 화두의 뜻을 바로 알면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고 자성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흔히 이 화두의 뜻을 잘못 알고 마음이라 하면 어떻고 물건이라 하면 어떻고 부처라 하면 어떠냐고 하는데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늘 마음속에 「…이것이 무엇인고」 하고 의심을 지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자기가 참구하는 화두가 있는 사람은 그 화두를 놓치지 말고 더욱 간절히 의심을 지어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이나마 조용히 앉아 있으면 항하사 모래알 같이 많은 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나으니라. 칠보탑은 필경 부서져 티끌이 되거니와 한 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느니라.」
부처님 당시에도 마음을 깨치는 방법으로 경행(輕行)과 화선(座禪)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선정(禪定)을 익혀라〉고 간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정(禪定)은 앉아 있든지 서 있든지, 말할 때나 말하지 않을 때나 마음이 망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오로지 경행과 화선만을 가르치시고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우리들은 오직 참선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참선에 신심을 내어 자성을 바로 깨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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