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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참선의 맛,-숭산 스님

by 혜명(해인)스님 2022. 3. 27.

참선의 맛,-숭산 스님

참선의 공덕을 일컫는 말 가운데 ‘현법락주(現法樂住)’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락을 맛본다는 말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는 분들은 ‘참선 공부해도 고통스럽고 다리도 아프고 별 맛이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참선을 하면 분명히 법락이라는 맛이 있습니다.

​법락이라는 맛은 우리 공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욱더 ‘환희용약(歡喜踊躍)’으로 우리한테 온단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정말로 개운하고 뛰놀 듯이 행복한 것이 환희용약입니다. 이러한 상태는 참선 공부나 염불 공부에 분명히 있습니다.

​참선 공부는 우리의 생명을 모조리 바쳐서 갈 만한 소중한 생명의 길입니다.
이 점은 이미 여러 다른 훌륭한 선지식 스님들한테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 같은 사람도 45년 동안이나 참선한다고 다소나마 애는 썼으니까 체험담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정말로 참선 공부가 가장 행복한 공부입니다.
어째서 행복한가하면 그것은 우리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병을 고칠 수 있는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한국병이나 미국병이나 모두가 다 근본적으로는 무명병 입니다.

​그러면 無明병이란 무슨 병인가?
무명병은 ‘있다, 없다’ 하는 병입니다.
우리 중생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참말로 있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텅 비어 있는 물질은 있다고 하고 참말로 있는 진여불성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중생병입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므로 한국병이 생기고 무슨 병이 생깁니다.

​또는 우리 몸뚱이에 있는 이런 저런 병, 암이나 에이즈 같은 것도 결국은 우리 마음의 병, 바로 그 무명병 때문에 생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명병을 치유하는 것이 우리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가장 급선무입니다.

​그러면 무명병 가운데서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병’ 이 무엇인가?
이것은 유루병(有漏病)이라는 병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처님의 시각, 성자의 견해에서 본다면 내 몸뚱이도 명명백백하게 빈 것인데, 우리는 있다고 본단 말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무명으로 해서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일체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서 모든 중생들의 병이 파생됩니다.

​감투병이나 남을 미워하는 병이나 좋아하는 병이나 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아랫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윗물부터 다스려야 하듯이 무명병만 다스리면 그때는 모든 병이 자동적으로 다스려지고 모두가 정화되고 다 풀립니다.

​있다는 병,
내가 있다는 병,
무엇인가 대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병,
이병은 우리 불자님들이 일생을 통하여 다스려야 할 가장 근본적인 병입니다.
이 병을 쳐부수어야 합니다.
있다는 병을 쳐부수지 못하면 참다운 불자가 못 됩니다.
따라서 참다운 참선도 할 수 없습니다.
서로간의 갈등, 가정의 불화, 여러 가지 불평등 등의 모든 문제는 바로 이 ‘있다는 병’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일러 주는 법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있다는 병을 쳐부숴서 없다는 자리로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지금 있다는 병 때문에 칭칭 묶여서 마음이 폐쇄되어 있습니다. 있다는 병이 있으면 교만심 등 별것이 다 나옵니다. 그러나 본래는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원래 없다는 도리, 이것이 곧 『금강경』의 도리요『반야심경』의 도리이며, 반야공 도리입니다. 따라서 적어도 부처님의 정법을 이야기하려면 누구든 꼭 반야의 공 도리, 모든 존재가 본래는 공이라는 도리를 분명히 말씀해야 합니다.

​자신의 몸뚱이도 본래 없으므로 자기 몸뚱이도 자기 것이 아니거든 하물며 자기 소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절, 자기 물건, 어느 것도 자기 소유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잠깐의 나그네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그네 길의 짐이 너무나 무겁습니다.
집도 기왕이면 좋은 집, 옷도 기왕이면 좋은 옷, 음식도 가장 좋은 음식, 자기 배우자도 가장 좋은 사람, 이러한 짐들을 다 짊어지고 어떻게 텅텅 비어 버린 空의 고향에 갈 수 있겠습니까?

​참다운 우리 고향은 불심의 고향입니다.
불심의 고향에 가기 위해서는 ‘일낙서산(一落西山)에 월출동(月出東),’ 즉 해가 떨어져야 달이 솟아오르듯이 유루병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제아무리 요설변재(饒舌辯才)로 이렇게 저렇게 법문을 많이 한다 해도 참다운 불성자리에는 못 들어갑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그런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가?
먼저 바른 이해, 바른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신해행증(信解行證), 즉 먼저 믿고 해석하고 또는 행하고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자주 들으셔서 그런 도리는 이미 충분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선 어떻게 믿을 것인가?
아직 우리는 공부도 못하고 증명도 못한지라 우선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공이라고 하면 공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믿은 다음에 어째서 공인가 하는 도리는 앞서 말한 것처럼 물리학적으로 또는 『구사론(俱舍論)』같은 부처님의 논장(論藏)을 보면서 공부해야 합니다.

​모든 물질이 본래 에너지일 뿐이다.
모든 물질은 공간성과 시간성이 없는 에너지뿐인데, 에너지가 진동해서 상(相)을 나타내기 때문에 모양이 있는 것같이 보일 뿐이며 사실은 있지 않다. 이런 정도는 현대물리학에서 다 증명되고 있습니다. 부처님 제자인 우리가 이러한 도리를 모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한 다음 우리는 이에 따른 공부를 해야 합니다.
먼저 이해한 다음에 공부한다는 것은 어느 방면으로 보나 중요합니다.
가령 우리가 주문을 외운다 하더라도 그런 도리를 알고 주문을 외워야 훨씬 더 가피도 많이 입고 마음도 빨리 정화됩니다.

참선의 맛,-숭산 스님 (1).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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