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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福)이란 무엇인가?

by 이初心 2022. 10. 26.

복(福)이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복(福)’을 이야기합니다.

뿐만 아니라 출가한 스님들도 ‘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세간(世間)의 복’도 ‘출세간(出世間)의 복’도 ‘복’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세간’과 ‘출세간’의 같지 않지만 우리는 통상적으로 ‘복’이라고 뭉뚱그려 말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복’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서 어디까지를 ‘복’이라고 할까요?

흔히 ‘복’이라고 하면 “건강, 명예, 재산, 부부화락, 자손창성, 수명장수” 등을 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몽땅 갖추어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복은 다른 말로 ‘공덕(功德)’이나 ‘복덕(福德)’이라고 합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유리하고 행복하고 안온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세속인에게는 세속인으로 필요한 것이 있고 출가한 스님들에게는 스님들대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자신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당연히 물질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스님들처럼 가난을 즐기며 청빈하게 살아가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화가 넉넉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재가 신자들에게 가난하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넉넉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복은 무엇이 복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복은 다른 말로 “행복”이라고 합니다.

행복은 ‘조건’과 ‘느낌’이 있습니다.

물질로 구성된 것은 조건이고 마음은 느낌입니다.

조건이 좋으면 느낌이 좋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건이 나쁜데 느낌만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중생들은 먼저 조건이 좋아야 ‘마음’이라는 느낌인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다면 조건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느낌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요?

 

만약 조건인 재물이 복이라면 몸이 약하여 항상 병원 신세나 지면서 방에 누워 골골거린다면 억만금이 있다 한들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건강이 복이라고 한다면 정력과 힘이 흘러넘치지만, 죄를 지어 감옥에 있다면 그것 역시 허사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의 개념은 항상 하나가 있으면 하나가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말하는 ‘복’은 완전하지 않지만,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말하는 복이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약간의 편리함은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복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복은 “유루 복(有漏福)”과 “무루 복(無漏福)”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재물, 건강, 명예, 자손, 애정 등의 복은 필요에 따라 그릇에 담긴 하지만 그 그릇에 구멍이 뚫려 항상 물을 담아도 항상 새어버리기 때문에 언제나 부족한 것으로 ‘한정이 있다’는 뜻으로 ‘물이 새는 복’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새는 구멍이 없어 한번 담기만 하면 평생을 가고 아무리 사용하여도 항상 흘러넘치고 ‘모자람이 없다’는 뜻으로 ‘물이 새지 않는 복’이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은 두 가지 복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세속의 욕망대로 이끌려 살 것인지 아니면 윤회를 벗어나 더 이상 고통과 걱정과 늙고 병듦에서 벗어나는 복을 누리겠습니까?

 

복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개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복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더욱이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의 신 아니 귀신들을 잘 섬겨 받는 은총의 선물이 될 수 없으며, 죽은 사람들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받는 반대급부의 혜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은 주고받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은 받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을 물건처럼 주고받을 수만 있다면 넘치고 넉넉한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복이 넘쳐 남에게 나누어 줄 정도의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누구나 복이 부족하다고 하지 만족하다는 소리는 없더군요.

 

사람들은 하늘이나 땅, 나무나 물, 바위 등 자연물이나 절대의 신이나 귀신 영혼 등을 대상으로 정해 놓고 그들에게 제물을 차려 놓고 빌고 사정하고 응석을 피우면(?) 그들이 적당히 비는 행위에 상응하는 복을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이 이루어진다면 세상 사람들이 굳이 주기 살기로 돈을 벌려고 하거나 직장에 나가거나 학교에 갈 필요가 없이 자신이 믿는 대상에게 빌어 그것을 성취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은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빌기만 해서 이루어지는 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해놓은 다음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복이라는 것은 무턱대고 하늘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때 그 결과로 얻어지는 이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이라는 것은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은 잘 사용하면 사용하는 대로 풍족해지고 잘못 사용하면 곧바로 없어지기도 합니다.

 

복이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복은 주고받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은 만큼만 가질 수 있으며 아무리 지은 만큼 받는다고 하여도 사용하기에 따라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복수용(福受用)”이라고 합니다. 복은 받아들이며 잘 써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부자 삼대 없으며, 가난 삼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부자라도 복을 잘못 쓰게 되면 곧바로 망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이라 복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는 머지않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아버지가 부자라도 아들이 그 복을 감당하지 못하고 함부로 사용한다면 곧바로 패가망신의 몰락으로 접어들고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만큼 성실하게 살아가면 그것이 새로운 도약이 되는 발판이 되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소리입니다. 아버지가 이들에게 남겨 주어도 관리를 못 하면 한순간에 끝장이 나는데 어떻게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복은 다른 사람이나 신들에게 주지도 받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복을 짓는 법.

 

복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복이 생길 수 있을까?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복을 지으면 됩니다. 복은 짓는 것만큼 자신이 받게 됩니다.

즉 복은 “얻는 것(得福)”이 아니라 “짓는 것(作福)”입니다.

문제는 복을 복답게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을 짓기 위하여서 먼저 “복을 지을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복은 아무렇게나 아무 때나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조건’이 갖추어질 때만 복은 지어집니다.

 

복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인 “복”과 복이 아닌 “비복(非福)”과 복을 지을 인연과 조건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부동(不動)”이 있습니다. 복은 말과 행동과 물질이 함께 갈 때 만들어집니다. 생각만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혹자들은 “마음”만 가지고 복을 짓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마음”만 있는 것은 누구나 불쌍하다고 안 됐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합니다. 복은 불쌍하고 안타깝고 측은하다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낀다면 실제적인 행동이 따라가야 합니다.

 

말 따로 행동 따로, 아니면 말만 앞세우고 행동이 따라가지 않거나 베풀지 못하는 인색함이나, 하고 난 다음 후회하거나 마지 못해 하거나, 이것저것을 따져 본 다음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서 하거나 한다면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흔히 지금은 힘이 들어서 다음에 넉넉해지면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복은 어렵고 힘들 때 더욱 노력하고 정성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면 어렵고 힘든 만큼만 하면 됩니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쓰고 남는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아끼고 모아서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을 짓기 위하여 갖추어져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을 짓는 자신과 복을 지을 대상과 복을 지을 물건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새 가지는 조금이라도 잘못된 생각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얻어진 것이거나 안 됩니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과 부정과 부패의 연결 사슬로 묶여 있거나 어느 한쪽이라고 그러한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은 복이 될 수 없습니다. 나아가 주고받는 물건이 정당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얻어진 물건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얻어진 물건이라면 그것은 장물이지 복을 짓는 이름다운 물건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을 짓는다는 것은 복을 짓는 사람과 복을 지을 대상과 복을 짓는 물건이 모두 공정하고 당당하며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부동(不動)”입니다. 그것은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마음”일 뿐입니다. 복은 “현실”입니다. 마음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유익해야 합니다. 물질이 따라가지 않는 복은 복이 아니라 말장난일 뿐입니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너무나 쉽게 함부로 씁니다. 행동이 따라갈 때 복이라고 씁시다. 복은 입과 몸과 마음이 함께 가야 합니다. 따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는 사람이나 주는 사람이나 그 물건이 모두 아름답고 정당합니다.

 

복은 조건이 될 때만 짓는다.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면 복은 누구 지을까요?

내가 지을까요?

남이 지을까요?

내가 짓기도 하고 남이 짓기도 하고, 내가 짓지도 않고 남이 짓지도 않을까요?

복은 내가 짓지도 남이 짓지도 않습니다.

복은 지을 조건이 갖추어질 때만 복을 짓게 됩니다.

아무 때나 복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때나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는 복 역시 부처님께서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조건이 갖추어질 때만 짓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반중 조흔감 고와도 보이나마, 유자 아니라 품어감직 하다만, 품어가 반길 리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라는 옛 시가 있습니다. 상위에 놓인 잘 익은 감을 보고 먹지 않고 가지고 가서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싶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품속에 넣고 가도 소용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잘 익은 감을 가지고 가서 부모님에게 공양하는 효도가 복을 짓는 행위라면 복을 짓는 대상은 즉 조건은 부모님입니다. 그러나 복을 지을 수 있는 대상인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은 복을 지을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복은 무조건 짓는 ‘묻지 마’ 식이 아니라 복을 짓는 사람과 복을 지을 대상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은 조건이 지어질 때만 짓게 됩니다. “지금은 가난해서 다음에 부자가 되면” “지금은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다음에 경제적으로 넉넉해지면 그때하지.”하면 복을 지을 조건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조건이 지어질 때 마다 하십시오. 다음이 기다리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조금씩이라도 해야 부자가 되고 넉넉해질 때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 수 있는 것이지 어렵고 힘들다고 못 하면 나중에 넉넉하더라도 움츠러들기 마련입니다.

 

복을 짓는다는 것은 쉽고도 어렵습니다.

말은 쉬운데 행동이 어렵고 행동은 쉽지만 막상 줄려고 하면 아깝고 생각을 몇 번씩 하게 되고 다음으로 미루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정해진 수명이나 정해진 기간이 있다고 생각하고 내지는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든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일의 태양은 떠오를지 모르지만 그 태양을 내가 다시 본다는 보장은 아무도 못 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정해진 수명을 찬탄하고 그것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죽음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으로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떼들과 같습니다. 내일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기약하곤 합니다. 복을 짓는데도 오늘 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또 내일을 기약합니다. 복을 짓는 행위에서는 내일을 기약하지 말고 오늘 복을 지을 조건이 된다면 오늘 해야 합니다. 자신의 정성을 다하면 됩니다. 복을 짓는 데는 크고 많고 귀한 것이 중요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이름다운 마음으로 실천하면 됩니다. 오늘 복을 지을 조건은 오늘만 있지 내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을 짓는 데는 미루거나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하게 그때그때마다 해야 합니다. 복은 짓는 것만큼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바로 안다면 어찌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작은 복이라도 지을 조건이 되었을 때 망설임 없이 바로 짓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복을 받는 씨앗이 됩니다. 복은 씨앗이며 물방울입니다. 작은 복의 씨앗이 큰 열매를 맺게 합니다. 수박씨는 작아도 커다란 수박을 열게 합니다. 수박씨가 커서 수박이 큰 것이 아닙니다. 작은 씨앗이지만 조건에 따라 큰 수박이 되듯 복의 씨앗도 그러합니다. 복을 지을 조건만 된다면 최선을 다하여 복을 짓도록 하십시오. 어렵고 힘들다는 핑계보다는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더욱 복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출처: 생활불교에서 옮겨 옴?-

복(福)이란 무엇인가.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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