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을 알면 삶이 행복하다.

by 이初心 2024. 4. 15.

    우리 불자는 무엇을 믿어야 하며, 이 세상 모든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어떻게 오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법(法: 진리)으로 어떤 원리이며 법칙이다.
    이 세상의 모든 원리는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세상의 모든 법칙이 인연과(因緣果)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믿고 따라야 한다.

    인연의 법칙인 '인(因)'은 씨앗과 같은 것으로 근본이며, '연(緣)'은 조건이며 주변 환경을 말하며, 과(果)는 결과를 말한다.

    결과를 먼저 보면 밭에 호박의 싹이 텄으면 어떻게 텄을까?
    그것은 씨가 있기 때문에 씨는 인이라 하며, 싹이 트는 것을 인과라 한다.
    인이 있어서 과가 생기는 것은 맞는데, 씨앗이 있다고 무조건 싹이 트는 것이 아니고 물, 온도, 공기가 있어야 싹이 트는 것을 연이라 한다.

    인이 연과 만나야 과가 일어나지, 인만 가지고는 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면 반대로 밭은 있으나 씨가 없으면 씨앗이 틀 수 없듯이 연은 있고 인이 없으면 과도 없다. 이 모든 세 가지가 존재해야만 싹이 트는 것이 인연과이다.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이 있고, 괴롭게 사는 사람이 있듯이 이 모든 것이 연이다. 이 세상의 모든 원리가 이 세 가지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을 인연과보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인연 중에서 인연과라 하지 않고 인과라고 하는데 불교교리 에서는 맞지 않는다.

    호박의 싹이 트는 것에서 제일 중요시하는 것이 씨가 있기 때문에 인을 중요시하는데 불교에서는 연도 중요시한다. 인과 연이 결합을 해서 과가 생기는데 괴로움의 근본은 나에게 있지만 주위의 환경에 따라서 결과가 달리 나타나는 것이 인연과(因緣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를 좋게 하려면 인과 연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연만 바꾸려고 하면서 남의 탓만을 하지 말고, 자기의 근본 원인인 인(품종)도 바꾸어야 하는데 이를 수행이라 한다. 그래서 자기의 인(원인)을 바꾸면 연이 나빠도 적응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을 바꾸는 길은 성불로 가는 것이고 연을 바꾸는 것은 정토로 가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결합하여 수행자는 첫째 자기를 바꾸고 세상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정토이고 보살행이다.

    인연과의 법칙에 맞게 공부하는 방법도 수행과 일을 함께 해 나가거나 성불하는 것과 정토를 이루는 것은 함께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도 수행을 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연의 법칙에 따라 수행 정진을 해 나가는 것인데 여러분은 인연의 법칙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고뇌는 그냥 생긴 것이 아니고 인연의 법칙에 따라 결과가 생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N극과 S극 자석을 가까이 놓으면 서로 붙듯이 N극과 N극이면 서로 밀치는 것도 수학적인 원리에 의하듯 우리의 생활도 자기의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늘 인생에 대해 비관하는 어떤 사람이 자기의 생명은 태어나지 않을 생명이 태어났다고, 태어날 때부터 잘못된 출생이라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이유인즉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을 했으나 애를 낳지 못했는데 이웃 남자와 정을 통하여 자기를 낳았다. 그래서 그 집안에서 둘이 쫓겨나서 생활을 하다 다른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이웃 아버지가 자기를 범했다며 태생부터 잘 못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의 생각이고 우리들의 관계이지 생명 자체는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나지 않을 사람이 태어났거나, 출생부터 잘못된 출생이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을 터득하면 본인의 출생에 문제가 없다.

    문제는 살아가면서 주위의 핍박과 냉대에 본인이 상처받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괴롭혀서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것이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것을 알면 출생의 부정성에서 벗어나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을 버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간을 당했다고 할 때 강간을 당했을 때 아픔과 고통은 자기 탓이 아니고 누군가가 강제로 폭행을 한 것이다. 그러나 폭행을 당했기 때문에 나는 몸도 버렸고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을 하면 첫 번째는 그 남자 때문이지만은 그 인생은 자신에 의해서 망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을 망치는 것은 연에 의한 것만이 아니고 자신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의식으로 자신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면 편안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게 부처님의 말씀이다.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한 결과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일어난 결과를 수용하고 다시는 이런 과보를 받지 않으려면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어리석은 중생은 과보는 받기 싫고 인연은 짓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인생을 조심해서 살아야 한다. 즉 자기 자신을 알고 잘못된 인연을 맺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인생은 짓고 받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윤회의 사슬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거운 돌은 물밑으로 가라앉고 가벼운 기름이 물에 뜨는 것이 이치듯이 이것이 물에 있는 돌이 떠오르기를 빌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악업을 행하면 악업을 받고 선행을 행하면 선업을 받고 행복해진다. 이 모든 것이 인연의 과보다.

    그래서 자기 인생과 가족과 후손을 위해서 인을 바꾸어야 하고 인(원인)을 바꾸기 싫으면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 불자는 운명론에 끌리지 말고 지어진 인연의 과는 받되 내가 원하지 않으면 기도문을 가지고 절을 하면서 수행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를 이해하고 수용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무엇인가?
    다 지은 만큼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며 겸손해야 한다.
    복을 얼마나 받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얼마나 좋은 인연을 지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럿이 기도하러 무거운 짐을 들고 산을 오를 때 옆에서 자기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먼저 산에 올라가 백팔 배를 하는 사람보다 부처님 말씀을 더 잘 지키는 사람이다. 그런데 대개의 사람은 자기 복 짓는데 욕심을 부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와 수행을 할 때 원리를 잘 알고 공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남편이 술을 먹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 자기 자신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우면 여러분은 내가 전생에 남편을 괴롭혀서 이런 과보를 받는구나 하며 엉뚱한 교리로 짜 맞추는데 이것은 내가 남편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괴로운 것이다.

    그 남편의 그럴 수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하면 자기 자신이 편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과보는 내가 상대편의 머리를 때렸을 때 다음 생에 내가 그 사람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래서 상대편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남편을 이해하면서 내가 참회하고 정진하면 이런 원리에 의하여 자식과 부모 사이가, 남편과 아내 사이가 화합의 장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이럴 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하고 정진함으로써 서서히 바뀌고 본인의 경계도 풀린다. 우리는 이런 인연과를 믿어야 한다. 다 지어서 받는다. 인연과가 얼마나 정확한지 한 가지 예를 들어 봅시다.

    옛날 시골의 우리 아버지들을 보면 젊은 시절 아버지(남자) 권위를 지키면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무서워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커서 객지에 있다가 돌아오면 인사만 하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지만, 안방에서는 재미있게 놀고 있어 궁금하여 들어가 보면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려워서 하나둘 나간다.

    이것은 아이들이 미워서 부모에게 보복하는 것이 아니고 남자이기 때문도 아니고 권위가 외롭게 만든 것이다. 원리처럼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과보를 안 받으려고 권위를 버리든지 아니면 그것을 수용하고 받아드려야 한다.
    이것도 다 인연과(因緣果)이다.

    불자는 인연의 법칙 잘 이해하고 잘 지켜야 한다. 과학의 법칙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여기 물건이 하나 있다 하자. 물건을 밀고 움직일 때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이때 미는 힘을 F라 하고 물질의 질량은 M 물질이 움직이는 가속도는 A 할 때 F=MA이다.

    물질이 움직였다 속도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결과를 말하는 데 힘을 가했기 때문이다. 어떤 속도의 변화가 일어날 때는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힘이 가해짐에 비례해서 일어난다. 반드시 그대로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물체와 바닥 사이에 놓여 있는 조건(마찰력)이 어떻게 다르냐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것이 인연과이다.

    이것은 수학, 물리, 우리의 정신세계, 이 세상의 모든 법칙에 적용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연의 법칙을 깨달으시고 우리에게 인연의 법칙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고맙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결과를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거부하는 게 아니라 한번 지은 것은 오게 되어있으므로 그런 원인을 짓지 않는 게 수행이며 계율이다. 그 과보나 인연의 법칙에 끌려가면 안 되고 그 마음을 관찰해서 그것을 끊는 것이 업장소멸(業障消滅)이다.

    업장소멸을 하는 방법은 내가 무지(無知)했다. 즉 어리석었습니다는 걸 알고 자기가 옳다는 고집과 집착을 내려놓는 참회 수행 방법이 있고, 깊이 명상해서 마음에 관해서 놓는 방법도 있고, 주력법도 있고 화두 선법도 있다. 그래서 더 나아가면 쥐가 쥐약을 먹듯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걸려들지 않는다. 이것이 지혜(깨달음)이다.

    그러므로 인연과의 법칙을 믿고, 지은 인연은 피할 수가 없으며, 만일 지었으면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시는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어리석은 중생의 세계에서는 인연의 사슬을 벗어날 수 없으나 깨달음의 세계에서는 그 어떤 인연의 사슬도 즉시 끊어진다는 것을 명심하고, 정진하여 행복하기 바란다.

    출처 : 법륜 스님 법문 중에서
    출처 : 향상일로님 글에서

인연과의 법칙을 알면 삶이 행복하다.mp3
17.23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