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뛰어난 남자신도-
초기교단에서는 출가 제자들 외에도 훌륭한 재가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초기불교 교단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름과 그 활동 사항은 출가 제자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는 재가신자이면서도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성자와 다름없는 안심(安心)과 법열(法悅)을 얻은 사람들의 예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안심을 얻은 남녀 재가 불제자가 강한 신앙의 힘이나 법력을 지녔다고 하는 사실도 자주 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 교단에서 왕과 귀족을 비롯한 자산가들의 헌신적인 외호가 없었다면, 그토록 짧은 기간 내에 교단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초기불교 교단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재가자들의 업적과 활동 상황들은 여러 문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nikāya, 增支部)]에는 붓다의 뛰어난 재가자의 이름과 그 특징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경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들이여, 나의 제자인 우빠사까(Upāsaka, 優婆塞)들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귀의(歸依)한 자는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ā) 두 상인이다. 보시자 중 제일은 수닷따(Sudatta) 장자 즉 아나타삔디까(Anāthapindika, 給孤獨長者)이다. 많은 설법자 가운데 제일은 찟따(Citta) 장자 즉 맛치까산디까(Macchikasandika)이다. 사섭법(四攝法)으로써 대중을 통솔하는 자 가운데 제일은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이다. 음식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 가운데 제일은 석가족의 마하나마(Mahānāma)이다. 보시를 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 자 가운데 제일은 베살리 출신의 욱가(Ugga) 장자이다. 승가를 가까이서 받든 자 가운데 제일은 핫티(Hatthi) 마을 출신의 욱가따(Uggata) 장자이다. 절대적 신앙을 가진 자 가운데 제일은 수라 암밧타(Sūra Ambattha)이다. 사람들로부터 총애를 받은 자 가운데 제일은 지와까 꼬마라밧짜(Jīvaka komārabhacca)이다. 신뢰할만한 자 가운데 제일은 나꿀라삐따(Nakulapitā) 장자이다.” 우선 위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에 언급된 남자신도들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①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ikā) 두 상인은 불교역사상 최초로 불(佛)과 법(法) 이보(二寶)에 귀의한 재가신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장(律藏)에 의하면, 이 두 상인은 대상(隊商)을 이끌고 붓다가야를 지나가다가 그때 마침 깨달음을 이룬 붓다를 발견하고 최초로 공양을 올렸던 사람들입니다. 이때는 아직 교단이 성립되기 전이었습니다. ② 수닷따(Sudatta) 장자는 후일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는 뜻의 아나타삔디까(Anāthapindika, 給孤獨長者)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는 소유주 제다(Jeta) 왕자로부터 금 조각을 표면에 덮는 값을 치루고 제따 숲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에 기원정사라는 절을 세워 승단에서 사용하도록 붓다께 기증했던 사람입니다. ③ 찟따(Citta) 장자는 맛치까산디까(Macchikasandika)라고도 하는데, 그는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와 함께 우바새로서 가장 이상적인 재가불자의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훌륭한 설법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④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 장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에 관한 정보는 극히 단편적입니다. [팔리고유명사사전]에 의하면, “새벽녘에 알라와까(Ālavaka) 왕의 신하들이 어린 왕자인 알라와까 꾸마라(Ālavaka-Kumāra)를 약카(Yakkha, 夜叉)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데리고 왔다. 그들은 붓다의 설법이 끝날 무렵 약카가 기뻐하는 큰소리를 듣고 크게 경탄했다. 그들은 알라와까 왕에게 제물로 바칠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보고하고, 그 아이를 왕에게 건넸다. 그때 왕은 그 자리에 붓다께서 참석해 계셨기 때문에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다. 알라와까 왕은 그 아이를 붓다께 주었고, 붓다는 다시 그 아이를 왕의 심부름꾼으로 주었다. 그 소년은 약카의 손에서 붓다께 전해졌고, 다시 왕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는 뜻의 ‘핫타까 알라와까’로 알려지게 되었다”3)라고 합니다. 그는 성장하여 진리의 길에 들어갔으며, 자비(慈悲),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사섭법(四攝法, cattāri sangaha-vatthūni)으로 대중을 통솔하여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⑤ 마하나마(Mahānāma, 摩訶男) 장자는 아미또다나(Amitodana)의 아들로서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의 뒤를 이어 석가족의 왕위를 계승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의 형이었고, 붓다의 사촌이었습니다. 까삘라왓투의 석가족 사람들이 특별한 혈연관계에 있는 상가에 들어가고자 했을 때, 마하나마는 동생인 아누룻다의 출가를 출가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아누룻다는 세속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하나마는 상가에 크게 보시하였기 때문에 ‘비구들에게 보시한 사람 가운데 제일’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⑥ 욱가(Ugga, 郁伽)는 베살리(Vesālī, 毘舍離城) 출신의 장자로서 키가 크고 도덕이 고상(uggatā)했기 때문에 ‘욱가(Ugga)’라고 불렸다고 합니다.6) 그는 위 [앙굿따라 니까야]의 명단에서 ‘모든 재가 보시자 가운데 가장 유쾌하게 베푼 자’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7) 그의 원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도덕적으로 인품이 고상하였고, 특히 매력 있는 성격 때문에 ‘욱가 쎗티(Ugga-setthi, 郁伽長者)’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 붓다를 친견하고 곧바로 소따빤나(Sotāpanna, 預流者)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아나가미(anāgāmin, 不還來者)가 되었다고 합니다. ⑦ 욱가따(Uggata)는 욱가(Ugga)로 불리는데, 앞에서 언급한 베살리 출신의 욱가가 아니고, 밧지(Vajji)국의 핫티가마(Hatthigāma, 코끼리 마을) 출신의 장자입니다. 욱가따는 자기의 집이 코끼리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핫티가마까(Hatthigāmaka)’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상가를 시중 든 사람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쎗티(setthi, 財務官)에 임명되었습니다. 한때 붓다께서 여행 중 핫티가마를 방문하여 그곳의 나가와누야나(Nagavanuyyāna)에 머물고 계실 때였습니다. 욱가는 7일간의 음주 축연을 마치고 마지막에 이르러 무용수들과 함께 유원(遊園)으로 왔습니다. 그는 붓다를 뵙자 큰 부끄러움이 엄습하여 취기가 사라졌습니다. 붓다는 그에게 법을 설하였는데, 그는 곧바로 아나가미(anāgāmī, 不還來者)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 즉시 자기의 무용수들을 떠나게 하고, 상가의 스님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밤에 신들이 그를 찾아와 여러 스님들이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자기의 보시를 수용할 저명한 스님들을 선발하라고 제안했으나, 그는 누구나 기뻐하도록 평등하게 보시하였습니다. 붓다는 한때 욱가는 여덟 가지 특별하고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했습니다. ⑧ 수라 암밧타(Sūra-Ambattha) 장자는 확고한 믿음에 있어서는 붓다의 재가신자 가운데 으뜸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던 저명한 분입니다. [팔리고유명사사전]에 따르면, “그는 빠두뭇따라 붓다(Padumuttara Buddha) 시대에 태어났을 때에도 이러한 명성을 얻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 붓다시대에는 사왓티(Sāvatthi, 舍衛城)에 있는 은행가의 가문에 태어났으며, 이교도의 추종자가 되었다. 어느 날 붓다는 수라(Sūra)를 개종시킬 수 있는 적당한 시기임을 알고, 탁발을 위해 그의 집 문 앞에 섰다. 붓다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 수라는 그를 안으로 초대했고, 편안한 자리에 앉도록 권했으며, 음식을 대접했다. 공양 후 붓다께서 설법을 마쳤을 때, 수라는 예류자(預流者)가 되었다. 얼마 후 붓다가 떠난 뒤, 붓다로 변장한 마라(Māra, 惡魔)가 수라를 방문하여 그가 먼저 말했던 잘못된 진술을 번복하기 위해 되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조건 지어진 것[諸行]은 무상하다. 하지만 어떤 상까라(sankāra, 行)는 영원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라는 그가 마라임을 알고 그를 쫓아버렸다.”고 합니다. ⑨ 지바까 꼬마라밧짜(Jīvaka-Komārabhacca)는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라자가하의 매춘부 살라와띠(Sālavatī)의 아들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곧바로 바구니에 담겨져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졌는데, 아바야라자꾸마라(Abhayarājakumāra)에 그곳에서 구조되었습니다. 아바야(Abhaya)가 물었을 때, 사람들이 ‘그는 살아 있다(jīvati)’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지와까(Jīvaka)라고 불렸으며, 왕자에 의해 데려왔기 때문에 꼬마라밧짜(Komārabhacca)로 불렸습니다. 그가 성장했을 때, 자신의 출신 내력을 알고, 아바야에게 알리지 않고 딲까실라(Takkasilā)로 가서 7년 동안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의 스승은 약간의 돈을 그에게 주고 의술을 펼칠 적당한 곳으로 가라고 보냈습니다. 그의 첫 번째 환자는 사께따(Sāketa)의 백만장자의 아내였는데, 그녀를 완치시킨 대가로 엄청난 돈과 남자 하인과 여자 하인, 그리고 말과 함께 대형 마차를 답례로 받았습니다. 그가 라자가하로 돌아왔을 때 아바야는 그가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골치 아픈 병에 걸린 빔비사라(Bimbisāra) 왕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답례로 빔비사라왕의 오백 명의 부인이 장식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는 왕과 부인들 그리고 붓다를 비롯한 승단의 의사로 임명되었습니다. ⑩ 나꿀라삐따(Nakulapitā)의 부인은 나꿀라마따(Nakulamātā)입니다. 그는 박가(Bhagga)국의 숭수마라기리(Sumsumāragiri)에 살았습니다. 붓다께서 이 마을을 방문하여 베사깔라와나(Bhesakalāvana)에 머물고 있을 때, 그는 부인 나꿀라마따와 함께 붓다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그를 보자 ‘아들아!’ 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오백 번이나 보살의 전생의 부모였으며, 그보다 많은 생애를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합니다. 붓다께서 그들에게 법을 설했을 때, 그들은 예류자(預流者)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늙었을 때, 붓다는 그들의 마을을 한번 더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붓다를 기쁘게 했으며, 각자 이생에서 붓다께 귀의한다고 말하고, 내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기들을 지켜줄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붓다는 상가의 모임에서 많은 제자들 가운데 붓다와 가장 친밀한 관계는 그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다른 부분에서는 위에서 인용한 열 명의 재가신자 외에 다시 열 명의 재가신자 명단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따와깐니까(Tavakannika), 뿌라나(Pūrana), 이시닷따(Isidatta), 산다나(Sandhāna), 위자야(Vijaya), 왓지야마히따(Vajjiyamahita), 멘다까(Mendaka), 와쎗타(Vāsettha), 아릿타(Arittha), 사락가(Sāragga) 등입니다. 이들은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성스러운 계율[聖戒], 성스러운 지혜[聖慧], 성스러운 해탈[聖解脫]을 통해 불사(不死)를 성취한 재가자들입니다. 2) [증일아함경]에 언급된 우바새 다음은 한역의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권 제6 청신사품(淸信士品)에 나타난 붓다의 뛰어난 남자신도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⑴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優婆塞)로서, 처음으로 법의 약[法藥]을 듣고 성현의 진리를 성취한 이는 바로 삼과(三果)의 장사꾼이요, 지혜 제일은 바로 질다(質多) 장자요, 신덕(神德) 제일은 바로 건제아람(犍提阿藍)이요, 외도를 항복 받는 이는 바로 굴다(掘多) 장자요, 깊은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우파굴(優波掘) 장자요, 늘 앉아 참선하는 이는 바로 가치아라바(呵侈阿羅婆)이요, 악마 궁전을 항복 받은 이는 바로 용건(勇健) 장자요, 복과 덕을 많이 가진 이는 바로 사리(闍利) 장자요, 큰 시주(施主)는 바로 수달(須達) 장자요, 일가 친척이 많은 이는 바로 민토(泯兎) 장자이니라.” ⑵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로서, 이치 묻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생루바라문(生漏婆羅門)이요, 성품이 지혜롭고 밝은 사람은 바로 범마유(梵摩兪)요, 모든 부처님을 믿는 사자는 바로 어마마납(御馬摩納)이요, 몸에 ‘나(我)’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바로 희문금(喜聞笒) 바라문이요, 이론으로 이길 수 없는 이는 바로 비구(毘裘) 바라문이요, 게송을 잘 짓는 이는 바로 우파리(優波離) 장자요, 말이 빠른 이도 바로 우파리 장자이니라. 좋은 보배를 기꺼이 주어 아끼는 마음이 없는 이는 바로 수제(殊提) 장자요, 선(善)의 근본을 이룩한 이는 바로 우가비사리(優迦毘舍離)요, 묘한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최상무외(最上無畏) 우바새요, 주장에 두려움이 없고 사람의 성질을 잘 살피는 이는 바로 두마대장영비사리(頭摩大將領毘舍離)이니라.” ⑶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로서, 은혜로운 베풀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비사왕(毘沙王)이요, 보시함에 소심하지 않는 이는 바로 광명왕(光明王)이요, 선(善)의 근본을 이룩한 이는 파사익왕(波斯匿王)이요, 뿌리 없는 좋은 믿음을 일으켜 환희심을 얻은 이는 바로 아사세왕(阿闍世王)이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뜻이 변하지 않는 이는 바로 우전왕(優塡王)이요, 바른 법을 받들어 섬기는 이는 바로 월광왕자(月光王子)이니라. 성스러운 무리를 받들어 공양하되 뜻이 언제나 평등한 이는 바로 기원왕자(祇洹王子))요, 항상 남 건지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이는 바로 사자왕자(師子王子)요, 남을 잘 공경히 받들되 높고 낮음이 없는 이는 바로 무외왕자(無畏王子)요, 얼굴이 단정하여 남보다 뛰어난 이는 바로 계두왕자(鷄頭王子)이니라.” ⑷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로서,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쓰는 이는 바로 불니(不尼) 장자요, 마음으로 항상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이는 바로 석가 종족 마하나마[摩訶納]요,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쓰는 이는 바로 석가 종족 발타(拔陀)요, 항상 보호하는 마음을 써서 착한 행을 잃지 않는 이는 바로 비사선(毘闍先) 우바새요, 욕됨을 잘 참는 이는 바로 사자(師子) 대장이니라. 여러 가지로 잘 이론하는 이는 바로 비사어(毘舍御) 우바새요, 성현의 침묵을 잘 행하는 이는 바로 난제바라(難提婆羅) 우바새요, 착한 행을 부지런히 잘 닦아 쉬지 않는 이는 바로 우다라(優多羅) 우바새요, 모든 감관이 고요한 이는 바로 천마(天摩) 우바새요, 내 제자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깨달은 이는 바로 구이나마라(拘夷那魔羅)이니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팔리본과 한역본의 내용이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팔리본에서는 청신사의 사례가 하나뿐인데 반해서 한역의 [증일아함경]에서는 청신사품에 네 가지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역의 [증일아함경]은 후대에 많은 부분이 첨가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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