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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佛陀)와 불전(佛傳)-전도의 개시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3.


-전도의 개시-
    첫 설법의 대상

    붓다께서는 마침내 법을 설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설법을 결심한 다음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어떻게 설할 것인가를 고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깨달은 성도의 내용과 최초로 다섯 비구들에게 설한 내용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우선 누구를 대상으로 첫 설법을 해야할지를 신중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새로이 준비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미묘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이것을 설함으로써 남을 이해시킬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대로 붓다가 획득한 깨달음 자체의 첫 시험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붓다는 첫 설법의 상대로 처음 출가하여 수행할 때 선정(禪定)을 가르쳐준 스승 알라라 깔라마(Alara Kalama)와 웃다까 라마뿟따(Uddaka Ramaputta)를 생각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라면 분명히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이미 죽고 없었습니다. 두 스승에 관한 이야기는 팔리 "율장(律藏)"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붓다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는 큰 지혜를 갖춘 자였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이 법을 들었다면 곧바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생각하셨다.

    ‘이제 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할까? 누가 이 법을 빨리 이해할까? 그렇다. 다섯 명의 비구가 있다. 그들은 내가 고행(苦行)할 때 늘 나를 보살폈고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다섯 비구에게 먼저 이 법을 설해야겠다.’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살피셨다.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청정한 하늘의 눈[天眼]으로 다섯 비구가 바라나시(Baranaasi, 波羅奈城) 근처의 이시빠따나(Isipatana, 仙人住處)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에 머물고 있음을 보셨다. 그리하여 세존께서는 우루벨라에서 좋은 만큼 머무시고는 바라나시로 떠나셨다.

    붓다께서 처음 법을 설하기 위해 그 대상으로 생각한 두 사람의 스승과 다섯 비구는 모두 출가자들입니다. 전도를 시작함에 있어서 붓다는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의 수행을 쌓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후에 붓다의 제자가 되어 불교 교단의 확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사리뿟따(Sariputta, 舍利弗)나 목갈라나(Moggalana, 目(牛+建)連) 등도 모두 이교(異敎)의 가르침을 받들어 제자를 두고 이미 일파를 이루고 있던 출가사문으로부터의 개종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 교단에서 붓다의 설법 대상은 주로 당시 사회의 부유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거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들을 꿀라뿟따(kulaputta, 善男子)라고 불렀습니다. 이 말은 ‘좋은 가문의 아들’, 즉 ‘귀족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붓다의 가르침은 계급의 차별을 초월해서 만인이 평등함을 전제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평등하게 그 교단에 들어올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출가수행자나 ‘귀족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그의 가르침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불교 교단에서는 이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일반 세속 사람들도 교단에 합류하거나 재가 신자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우빠까와의 만남

    세존께서 가야와 우루벨라 사이에 있는 큰길을 가고 계셨을 때였습니다. 그때 아지바까(Ajivaka, 邪命外道) 교도인 우빠까(Upaka, 優波迦)가 세존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존께 여쭈었습니다.

    “그대의 감관은 매우 깨끗하고 모습은 아주 밝습니다. 그대는 누구를 모시고 있으며, 그대의 스승은 누구입니까? 또 그대는 누구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까?”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겼고
    모든 것을 알았고
    모든 것에 더럽혀지지 않았고
    모든 것을 버렸다. 갈애가 다한 해탈을 얻었다.
    스스로 깨달았으니 누구를 따르겠는가?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천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자는 없다.
    어떤 자도 나와 동등하지 못하다.
    나는 세상에서 완전한 자이므로 내가 최고의 스승이다.
    나는 홀로 모든 것을 깨달아 적정한 경지에 이르렀고 열반을 얻었다.
    법륜을 굴리기 위해 나는 까시로 간다.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기 위해.”

    우빠까는 반신반의하여 말했다.

    “그대의 주장대로라면 그대는 무한의 승리자일 수밖에 없군요.”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나와 같은 자가 있다면
    그들은 참으로 승리자이다. 번뇌를 쳐부수어 승리했기 때문이다. 우빠까여, 모든 그릇된 법을 나는 부수었으니 진실로 나는 승리자이다.”

    그러자 우빠까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는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 다른 길로 가 버렸다.

    이상은 팔리 "율장"에 묘사된 그대로를 소개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빠까는 참으로 만나기 어려운 좋은 기회를 얻었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인연 없는 중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만 이 우빠까가 바로 그런 사람에 해당됩니다. 만일 그가 그때 부처님께 귀의했다면 역사상 최초의 출가제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부처님을 만났지만 부처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그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빠까와 같이 불법을 만났지만 불법을 버리고 떠나는 불행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라나시 여행

    예전에 붓다와 함께 고행하였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은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것을 보고 타락하였다고 생각하여 바라나시(현재의 베나레스)의 녹야원(鹿野苑, Migadaya, ‘사슴의 동산’이란 뜻, 베나레스 교외의 사르나트)으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선인(仙人)들이 모여 사는 곳’(Isipatana, Isipatana, 仙人住處)이라고 불려질 정도로 당시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우루벨라를 떠나 녹야원을 향해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도중에 우빠까를 만나기도 하였지만, 여행을 계속하여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녹야원에 이르러, 마침내 다섯 비구가 머물고 있는 근처에 나타나셨습니다. 다섯 비구와 붓다와의 재회에 관해서는 팔리 "율장"에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에 의하면 다섯 비구들은 멀리서 세존께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벗들이여,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다. 그는 타락한 자로서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를 해서도 안 되고, 일어서서 영접해서도 안 되고, 발우와 옷을 받아서도 안 된다. 단지 그가 앉을 자리만은 비워 두어 앉고자 하면 앉을 수 있게 하자.”

    그러나 세존께서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일어나서 세존을 영접했다. 한 사람은 발우와 옷을 받아 들었고 한 사람은 자리를 준비했고 한 사람은 발 씻을 물과 발판과 수건을 가져왔다. 세존께서는 준비된 자리에 앉아 발을 씻으셨다. 그런데 그들은 세존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거나 “벗이여.”라고 하였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를 이름이나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된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분이며,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나는 불사의 경지를 증득하였다.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梵行)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살아 생전에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말했다.

    “벗 고따마여, 고행을 닦고 실천하고 수행하여도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智見)을 얻기 어려운데 하물며 타락하여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그대가 어떻게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성스러운 지견을 얻었겠는가?”

    다시 세존께서 다섯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타락하지 않았다. 고행을 싫어하여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살아생전에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자 다섯 비구는 똑같은 내용을 두 번째 세 번째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에게 물으셨다.)

    “비구들이여, 잘 기억해 보아라. 내가 예전에 이와 같이 말한 적이 있었느냐?”

    “세존이시여, 그런 적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바르고 원만하게 깨달으신 분이다. 비구들이여, 귀를 기울여라. 이제 법을 설하겠다. 설한대로 수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이 출가할 때 품었던 목적인 범행의 궁극적인 완성을 스스로 잘 알고 똑똑히 보아 살아 생전에 갖추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세존께서는 다섯 비구의 생각을 돌릴 수 있었다. 그들은 세존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잘 들으려 했고, 참된 앎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켰다.

    종교의 성지 바라나시

    붓다께서는 왜 최초의 설법을 바라나시에서 하게 되었을까? 우루벨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직선 거리로도 약200㎞ 정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붓다의 여정은 무척 먼 길이었을 것입니다. "니다나 카타"에 의하면, 그 여행은 아사르하월(인도력의 6-7월) 14일과 15일이었다고 합니다. 새벽녘에 의발(衣鉢)을 챙겨 가지고 18요자나의 먼 길을 걸은 붓다는 그 날 저녁 무렵에 이시빠따나에 닿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5세기 경에 성립된 "마하바스투"에 의하면,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7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 문헌에는 붓다께서 거친 여러 지명과 갠지스강을 건넌 일화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18유순(由旬, 요자나)이었다고 하는데, 1유순이란 멍에를 건 암소가 걸어서 하루가 걸리는 거리를 말합니다. 이를 7마일(약12㎞)로 보는 설에 따르면 실제 거리와도 합치됩니다. 현재는 붓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버스로 약 8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어쨌든 붓다께서는 붓다가야(佛陀伽倻)에서 약200㎞나 떨어진 갠지스강 맞은편 언덕인 바라나시까지 걸어서 갔습니다. 왜 거기까지 가서 제일성(第一聲)을 올렸을까? 오래 전부터 빔비사라(Bimbisara, 頻婆裟羅)왕을 비롯해 많은 신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마가다국에서 왜 최초의 설법을 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나 교리적인 면으로 보아 여러 가지 해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기야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녹야원에서 우연히 최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나중에 전기 작가들이 처음부터 의도된 것처럼 설명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라나시가 지닌 종교사상적인 위치를 두고 생각할 때 그것은 결코 단순한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라나시라는 명칭은 이 곳이 갠지스강으로 흘러드는 바라나 강과 아시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두 강 모두 큰 하천이라고 부르기에는 적당치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바라나시는 힌두교도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성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로부터 바라나시는 하르드와르, 웃자인, 마투라, 아요다, 두와르카, 칸치푸람 등과 비견되는 칠대영장(七大靈場)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3만 이상의 바라문 승려가 살고 있으며, 또 연간 백만 명에 이르는 순례자들이 찾아듭니다. 강기슭에는 가트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목욕장이 줄지어 있습니다.

    이처럼 바라나시는 오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도에 있는 온갖 종교의 성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성스러운 갠지스강의 연안 중에서도 특히 이곳이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붓다께서 제일 먼저 이 바라나시를 방문한 것은 많은 수행자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자신이 얻은 정각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