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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佛陀)와 불전(佛傳)-붓다 탄생 이전의 인도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4.


-붓다 탄생 이전의 인도-
    1. 인도의 자연환경

    붓다의 생애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가 살았던 당시 인도의 역사적 배경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생애와 사상은 어떤 형태로든 그 당사자가 몸담고 있던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 그리고 사회 환경과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붓다께서 살았던 시대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완전히 알아야만 비로소 붓다의 생애와 그 역사적 의미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붓다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사상 등에 대한 정보는 곧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붓다의 생애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교도 역사적 산물(産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붓다와 그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붓다가 태어나 살았던 인도와 인도의 문명에 대하여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도(印度)라는 말은 본래 대수(大水), 대해(大海), 대하(大河) 또는 인더스(Indus)강을 뜻하는 산스끄리뜨어(범어) 신두(Sindu)로부터 유래한 말입니다. 신두가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아 힌두(Hindu)로 변하고, 다시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아 인더스(Indus)로 바뀌고, 인더스에서 현재의 인디아(India)라는 영어가 파생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도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인도(India)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본래 범어나 힌디어로 된 인도의 호칭인 브하라뜨 칸다(Bharat-khanda) 또는 브하라뜨 와르샤(Bharat-varsa)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영원히 번영하는 사람들' 또는 '영원히 번영하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후자의 '브하라뜨 와르샤'를 한국의 백과사전에서는 '바라타-바르샤'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 명칭은 바라타족(族)의 서사시 <마하바라타> 속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며, 자이나교의 성전(聖典)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일찍이 리그베다시대에 갠지스강(江) 상류의 광활한 지역을 통일하여 성세를 이룬 전설적인 바라타족에 자긍심을 가져, 외국인이 붙인 인도라는 국호보다 이렇게 부르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인도는 히말라야산계(山系)의 남쪽에 가로놓인 유라시아 대륙의 반도로서 그 면적은 서유럽의 전지역에 필적하는 약 450만 ㎢이며, 현재는 인도공화국,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부탄 등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인도의 북쪽은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Himalaya)산계(山系)와 힌두쿠쉬(Hindukush)산맥(山脈)을 경계로 아시아 대륙과 구분되고, 동서는 그 지맥(支脈)인 아라칸과 술라이만의 양 산맥으로 구분되며, 남쪽으로는 코모린 곶(Comorin cape)을 꼭지점으로 하는 광활한 역삼각형의 모양으로 펼쳐져 인도양(印度洋)에 돌출되어 있습니다. 이같은 인도는 그 지리적 특색에 따라 ①히말라야 지역, ②힌두스탄(Hindustan) 평원(平原), ③인도반도 또는 데칸(Decan) 고원 지역 등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뉘어집니다. 이러한 분류 외에도 인도를 ①인더스강 유역, ②갠지스강 유역, ③빈드야산맥 이남 지역 등 세 지역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도의 국토는 광대하기 때문에 기후도 매우 다양합니다. 남쪽은 북위 8도에서 북쪽은 37도까지 이르러, 대부분은 아열대(亞熱帶)에 속하나, 그 기후는 몬순(moonsoon, 계절풍)에 의해서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기(雨期)와 건기(乾期)가 뚜렷이 구분되고, 하천(河川)의 수량도 연중 크게 변화합니다. 또 몬순의 도래시기가 일정하지 않아 봄베이(현재의 뭄바이)가 며칠씩 큰 비로 시달려도 델리는 건조한 날이 계속됩니다. 강수량도 아샘의 실롱 구릉(丘陵)이 세계에서 최대량을 기록하는데 반하여 라자스탄의 서부에는 사막이 전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환경의 차이는 곧 생활문화의 차이로 연결됩니다. 아직도 원시림이 남아 있는 히말라야 산록의 계곡이나 분지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더위가 극심한 평야 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라자스탄의 모래 먼지와 열풍이 몰아치는 지방과 벵갈이나 아샘처럼 다습한 지방과는 자연의 모습도 사람들의 의식주나 기질도 전혀 다릅니다. 데칸의 고원 지대에는 그 나름의 정신적·문화적인 풍토가 존재합니다. 다양한 인도의 자연은 참으로 다양한 생활문화를 산출하며, 거기에 인종이나 언어 상황마저 결부되게 되면 그 다양성은 더욱더 심화되는 것입니다.

    2. 언어의 다양성

    인도의 자연환경이 각 지역마다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인종과 언어도 매우 다양합니다. 특히 인도의 언어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언어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도의 언어에 대한 전모를 파악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도에서 1961년 시행된 국세조사에 의하면 인도에서 '모국어'로 신고된 언어가 실로 1,652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는 기본적으로는 같은 언어이지만 부족에 따라 명칭이 다른 것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정리해 보면 방언을 포함하여 826종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1971년의 조사에서 사용자가 100만을 넘는 언어는 33가지가 있고, 5천명 이상의 언어는 281가지를 헤아립니다. 이 가운데서 14개 언어는 헌법에 의해서 '특히 발전 · 보급시켜야 할' 언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사용 인구가 많은 순서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①힌디어, ②델구어, ③벵갈어, ④마라티어, ⑤타밀어, ⑥우르두어, ⑦구자라티어, ⑧칸나다어, ⑨말라야람어, ⑩오리야어, ⑪판자비어, ⑫앗샤미어, ⑬캐시미르어, ⑭산스끄리뜨어 순입니다.

    산스끄리뜨어는 고대로부터 문학과 사상을 담당해 온 문장어인데, 그래도 2,544명이 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으로 신고되어 있습니다. 인도 문화의 담당자라는 뜻에서 인도 정부는 이 산스끄리뜨어를 '특히 발전 · 보급시켜야 할' 언어 속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인도에는 21개 주가 있는데, 이는 대체로 언어 지역에 따라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비하르 주나 라자스탄 주와 같이 일반적으로는 힌디어가 통용이 되고, 그 지역의 고유 언어는 위에서 언급한 공용어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 것도 존재합니다. 반면에 우르두어나 산스끄리뜨와 같이 특정의 주를 가리지 않는 언어도 있지만, 이들을 제외하면 12개 언어가 이른바 공용어로서 통용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도의 언어는 크게 몇 가지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인도-유럽어족의 인도-아리야어계가 있고, 주로 남인도에서 통용되는 드라비다어계가 있으며, 이 밖에 티베트-버마어계와 호주-아시아어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인종과 어계(語系)를 같이 보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문화인류학이나 언어학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목할 만한 성과는 어계와 인종이 꼭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종적으로 같은 집단이라 할지라도 단일한 어계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여러 어계의 다양한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9) 그렇지만 인도의 언어는 종족과 분리할 수 없는 어떤 깊은 관계가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3. 힌두문화의 형성

    이와 같이 광대한 인도의 자연환경 속에서 다양한 종족에 의해 그들만의 독특한 인도문화, 즉 힌두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힌두문화는 오랜 세월동안 여러 종족들에 의해 형성된 각양각색의 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진 혼합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아리야(Arya)인들이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에 침입한 것은 기원전 1,500년 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인도에는 선주민족(先主民族)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인더스 문명(Indus civilization)'을 이룩한 비아리야계로 알려진 드라비다(Dravida)인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룩했던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의 모헨조다로(Mohenjodaro)나 하랍빠(Harappa), 기타의 유적 발굴에 의하여 그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드라비다인 보다 먼저 인도에 들어온 종족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인도에는 일찍이 네그로이드(Negroid)인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이란연안을 거쳐 남인도 및 서인도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들은 곧 북인도에도 나아갔으며, 후에는 안다만제도에서 마레의 방향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후세의 인도문화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호주-아시아계(Austro-Asia)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현대의 중인도의 콜족(Kol)과 문다족(Munda), 아삼의 카시족(Khasi)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또한 벵갈에서 비하르에 이르는 지방에 거주하는 산탈족(Santal)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얀마와 타일랜드의 몬족(Mon), 캄보디아의 크메르족(Khemer)도 동일한 계통에 속합니다. 그들은 당시 전 인도에 유포되어 있었으며, 그 후 인도문화의 여러 형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시 그 후에 유입된 사람들이 바로 드라비다(Dravida)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지중해 지역 및 소아시아 방면에서 이주해왔다고 하며, 현대의 남인도 사람들은 주로 이 계통에 속합니다. 드라비다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총인구의 20퍼센트가 넘습니다. 이 외에 현재의 벵갈지방에서 비하르, 오릿사 일대에는 티베트·버마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도에는 여러 이민족(異民族)들이 들어와 자기 나름대로의 고유한 문화를 형성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인도의 문화는 대체로 바라문 문화가 과거 3천년 동안 그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바라문 문화를 형성한 주체는 바로 아리야(Arya)인들이었습니다. 이 민족은 피부가 희고 금발이며 코가 높은 것이 특색입니다. 민족학이나 비교언어학적 입장에서 보면 이란인·희랍인·로마인·게르만인들과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습니다. 이들이 인도아대륙(亞大陸)에 침입해 온 시기는 대략 기원전 15세기 이후라고 합니다. 그들은 먼저 서북인도의 판잡(Panjab, 五河) 지방으로 침입하였습니다. 판잡은 지금의 파키스탄에 해당됩니다. 이곳에는 인더스강을 이루는 다섯 지류가 있습니다. 판잡은 이와 같은 다섯 물의 흐름(panca ap)이라는 명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보통 오하(五河) 지방으로 불리는 이곳에 아리야인이 침입하여 원주민을 무력으로 정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점차 동진(東進)하여 북인도의 중앙으로 확장하여 갔습니다. 물론 단일 민족이 한번 침입한 것이 아니라, 여러 집단이 파상적으로 이 지방으로 침범해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서북인도에 침입한 아리야인은 인더스강 상류의 판잡지방에 정착하여 리그베다(Rg-veda)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시기는 대략 기원전 1,200년 경입니다. 이것은 주로 천공(天空) · 비 · 바람 · 우뢰 및 기타의 자연계의 힘을 신으로 숭배하는 다신교(多神敎)였습니다. 그 후 기원전 1,000년 경부터 아리야인은 다시 동쪽으로 진출하여 야무나(Yamuna)강과 갠지스(Ganga)강 중간의 비옥한 토지를 점거했습니다. 이 땅은 토질이 매우 비옥해서 항상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고, 외부로부터 침공하는 외적도 없어서 태평한 가운데 풍요로운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후세의 인도문화의 특징이 되는 갖가지 제도는 대개 이 시대(대략 B.C. 1,000-500)에 확립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아리야인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농경과 목축을 위주로 하면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상공업도 상당히 발달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도시는 아직 성립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직업의 분화도 이루어져 신을 제사 지내는 제식을 담당하는 바라문계급(Brahmana, 브라흐마나), 군대를 통솔하고 정치를 담당하는 왕족계급(Ksatriya, 刹帝利), 그 밑에서 농경 · 목축 · 상업 · 수공업 등에 종사한 서민계급(Vaisya, 毘舍), 위의 세 계급에 봉사하는 것이 의무로 부여된 노예계급(Sudra, 首陀羅)이라는 사성(四姓, varna)의 구별도 이 시대에 확립되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여러 갈래로 복잡하게 분화된 카스트(Caste)제도의 모태가 되는 것입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아리야인들이 발전함에 따라 부족간의 대립이나 통합이 생기고, 점차 군소 부족이 통합되어 독재권을 가진 왕(Rajan, 라잔)을 지도자로 받드는 왕국으로 발전해 갔습니다. 그리고 아리야인의 문화와 토착민의 문화가 접촉하는 과정에서 상호 융합과 변용 작용을 거쳐 정착된 것이 곧 힌두교 혹은 힌두문화입니다. 최초기의 힌두문화는 바라문 문화라고 할 요소가 많았지만, 이는 결코 정체적 · 고정적으로 파악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리야인의 생활문화가 표면화되면서도 내면으로는 아리야인과 원주민의 인종적 · 문화적 혼혈이 착실히 진행되어 갔던 것입니다. 경제적 · 사회면으로도 다양한 변화가 있었으며, 점차 기원전 6-5세기의 소위 인도고대사의 격동기로 이어져갔습니다.

    끝으로 인도는 자연환경과 민족, 그리고 종교와 언어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습니다. 나라 야스아키(奈良康明)가 말한 것처럼, "한 국가 내에서 이처럼 많은 수의 언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민족이 다르고, 자연이 다르며, 이에 덧붙여 언어도 다른 것입니다. 인도라는 광대한 지역에는 사막도 있고 기름진 평야도 있습니다. 산악 지대가 있는가 하면 고원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연 조건의 차이에 따라서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다르고 생활 문화도 다릅니다. 실제로 인도에 가 보면 사람들의 용모나 체격 또는 의복이나 식생활, 그리고 생활 풍습 등이 지방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난다는 것을 누구든지 쉽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다양성과 그 위에서 그 다양성을 포괄하면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인도라는 세계인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 인도에서 기원전 6세기 경 석가모니 붓다께서 탄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