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은 친절(親切)이다라는 말이 있다.
친절은 온전히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다.
우주는 우리에게 크고 대단한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즉시 친절을 베풀고, 어려운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말로써 위로하며, 밥을 굶고 있는 이웃에게 라면 한 박스 사서 따뜻한 말과 함께 전해주는 것으로도 무한한 자비는 실천된다.
작고 사소한 봉사와 나눔과 친절이라 해서 그 속에 담긴 정신까지 작고 사소한 것은 아니다. 아주 작은 하나의 실천과 변화 속에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담겨 있다.
바로 그 하나의 실천에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된다. 세상에 많은 감동적인 나눔과 사랑과 기부의 이야기들이 시작된 것은 언제나 작고 소박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작고 하찮다고 생각되는 일, 다른 중요한 할 일이 많아서 거기에 쓸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되는 일, 어쩌면 그 속에 우주가 당신에게 기대하며, 당신이 꼭 해야만 하는 놀라운 계획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소한 일이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차원에서는 매우 중대한 일일 수도 있다.
우연히 마주친 한 어린아이에게 베푼 친절과 나눔이 그 소녀 가장을 살릴 수도 있으며, 지나가는 말로 내뱉은 말이 그를 절망으로 빠뜨릴 수도 있고, 별생각 없이 행한 조언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 수도 있다.
어릴 적 기차 안에서 만나 잠시 놀았던 20대쯤 되어 보이던 누이의 해맑은 웃음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있다. 두어 시간 열차 안에서 만나 잠깐 놀았을 뿐이었지만, 그분은 나와 놀아‘준’ 것이 아니라 함께 매우 즐겁게 '놀았다'.
놀아준 것은 하나의 일이지만 함께 논 것은 전혀 힘들인 것이 아니며 그 순간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과도 같다. 어른이 아이 앞에서 온전히 현존하며 놀 때, 그 현존의 에너지는 매우 강한 영적 인상을 남긴다.
바로 그 작고 사소한 노는 일이 나 자신에게는 오래도록 각인이 되어 내 삶의 빛나던 순간으로 기억되듯,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것이야말로 이 우주가 우리에게 부여하는 귀하고도 깨어남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인지 모른다.
이 우주를 밝히는 일은,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는 일은 그다지 거창하거나 대단한 어떤 일이어야 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행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친절과 도움, 현존 속에서의 나눔과 놀이조차 누군가에게 삶을 일깨우는 큰 힘이 되거나 우주를 밝히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작고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먼저 행동하고, 먼저 말로 표현하게 된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의식도 변화되게 될 것이다. 부자 업을 짓는 일은 처음 시작이 어렵지, 한 번 하면 두 번은 더 쉽고, 세 번, 네 번째부터는 저절로 된다.
그게 업보의 법칙을 실천하는 길이다.
습관을 들이는 것이기에 업습(業習)이라고도 한다.
많은 돈을 후원하는 것은 어렵지만, 작은 돈 후원하기를 업습을 쌓기 위해 자주 하기는 쉽다. 그것부터 해 보는 것이다.
아무리 머릿속에서만 많이 생각하고 다짐하는 것 보다 차라리 미미하고 소박한 것일지라도 바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더 큰 힘을 가진다.
마음속에 효심을 가득 가지는 일 보다 혼자 사는 어머니께 따뜻한 밥 상 한 번 차려 주는 게 복 짓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저지른 말과 행동은 곧장 선업으로 쌓여 과보를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