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락아정(常樂我淨)
사람이 업을 지으면 업을 지은 만큼 고가 가중됩니다.
과거 전생부터서, 지금은 과거 전생 문제는 저명한 의사도 물리학자도 증명을 합니다.
심령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또는 최면술로 우리 의식을 퇴행시켜서 증명을 합니다.
우리가 쓰는 의식은 기껏해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 육식(六識)의 범위 내에서만 씁니다.
그 육식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제7 말나식(末那識)에서 옵니다.
그러면 또 말나식은 어데서 오는가. 말나식은 제8 아뢰야식(阿賴耶識)에서 옵니다.
아뢰야식은 또 어데서 오는가.
아뢰야식은 제9 암마라식(菴摩羅識)이라, 청정식(淸淨識), 무구식(無垢識) 진여식(眞如識)이라, 제9 암마라식은 바로 불식(佛識)입니다. 불심(佛心)이란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본심이기 때문에 불심이고 우주 만유의 본성이기 때문에 불성입니다.
따라서 심리학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지금 현대 심리학보다도 불교 심리학은 프로이드 또는 융이나 그런 분들의 심리학보다도 훨씬 더 심수오묘(深邃奧妙)한 심리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종단에는 심리학자가 틀림없이 불교 심리학까지 들어와야 됩니다.
들어오기 위해서는 개념적인 그런 범주로 해서는 못 들어옵니다.
개념을 놓고 순수직관(純粹直觀)적인 그러한 공부를 해야 이른바 부처님 사상인 아뢰야식이나 암마라식인 그런 경계에 들어 올 수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부처님 가르침은 가장 투철한 과학인 동시에 형이상하(形而上下)를 다 망라한 가장 철두철미한 철학입니다.
동시에 영생해탈(永生解脫)의 무량복락(無量福樂)을 누리는 그러한 종교는 불교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인간성(人間性)의 존엄은 무엇인가.
인간성이 존엄하려면 인간성보다 높은 것은 없어야 한단 말입니다.
다른 종교는 바라문신(婆羅門神)이나 또는 이른바 야훼(여호와)신이나 그런 신을 설정합니다.
그런 걸로 해서는 인간의 존엄을 확립을 시킬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신의 밑이고 야훼의 밑이고 또 알라신의 밑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죽고 살고 하는 생사문제(生死問題)에 있어서도 허두에 말씀드린 단견 상견의 정확한 해설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 생명이라 하는 것이 어떻게 삼세 삼계를 윤회하는 것인가. 금생에 우리가 지은 업장(業障). 업장이 가중되면 된 만치 우리 의식은 변화가 되어 갑니다.
설사 나쁜 사람으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훈도를 받으면 좋은 쪽으로, 우리 마음이 진여불성쪽으로 그만큼 접근되는 것입니다.
또 금생 내내 박복해서 나쁜 짓만 하고, 나쁜 생각만 하고 그렇게 업을 많이 지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지막 임종(臨終) 때 좋은 도반(道伴) 만나서 좋은 스승 만나서 한 생각 돌이키면 극락에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성이 불성이므로 원래 부처이므로 또 부처는 물질이 아닌 순수 생명이므로, 물질 같으면 오염이 되었으면 닦아야 되고 또는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리 마음은 설사 잘못 살아서 마음에 때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본래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때가 묻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래 자성은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이라, 지옥에 가서 있어도 우리 불성 자성은 조금도 때 묻지 않고, 아귀에 나고, 개가 되고, 소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청정 자성은 조금도 오염이 안 됩니다.
우리 중생의 견해에서 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분명히 오염이 돼서 잘못 생각하고 잘못 행동하고 나쁜 짓을 많이 하겠지만 마치 구름이 끼어서 지금 해가 가려져 있지만 해 자체의 광명은 조금도 훼손이 없고 일그러짐이 없듯이 우리 불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나 몇천 번 다시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우리 불성 자체는 오염이 없습니다.
진여불성 이것은 하나의 생명 자체이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 가운데는 자비(慈悲) 지혜(知慧) 행복(幸福) 능력(能力) 모두를 원만히 다 갖추고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 분이 특히 대승법을 믿는 분이 불성공덕(佛性功德)을 분명히 확신을 안 하면 참다운 신앙인(信仰人)이 못 됩니다.
여러분 법화경을 보셔서 짐작이 되시겠습니다만 부처님의 생명이, 부처님의 생명이 내내야 우리 마음입니다.
모든 존재는 마음이라 하는 우주의 순수 에너지 그 위에서 이루어져 있단 말입니다.
부처님의 생명에 얼마만큼 공덕이 들어 있는가. 열반경에서는 그런 쪽에다 역점을 두고서 그런 것을 아주 정확히 간추려서 구체적으로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간추려서 열반경 식으로 말씀드리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상바라밀, 낙바라밀, 아바라밀, 정바라밀이란 말입니다.
반야바라밀(般若婆羅密)이라는 것은 제법(諸法)이 다 공(空)이다.
공을 우리가 느끼고 상(想)이 없으면 피안(彼岸)에 가지 않는가.
해탈(解脫)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만 간단히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무한의 공덕장(功德藏)이라. 곳집장(藏)자 말입니다. 무한의 공덕이 들어있는 곳집 이것이 결국 우리 마음의 본성입니다.
설사 우리가 금생에 못 산다 하더라도 그 만덕장(萬德藏), 영생불멸하는 생명 자체, 이것이 이른바 항상상(常)자 상바라밀이고, 또 낙바라밀은 안락무구(安樂無垢)해서 조금도 괴로움이 없단 말입니다.
즉 영원의 행복입니다.
영원의 행복이 원만히 갖춰진 그 자리가 이른바 즐거울락(樂)자 낙바라밀입니다.
그 다음은 나아(我)자 아바라밀이라, 이것은 우리 중생의 작은 소아(小我)가 아니라 무량의 덕성과 무량의 지혜와 자비를 갖춘 그런 자리입니다.
신통자재(新通自在)하는 그런 것을 다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은 존엄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와 더불어서 우리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달마의 마음, 석가의 마음, 우리마음 똑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대체로 위대한 우리 마음을 스스로 딱 제한을 시켜서 못 통하게 막아버린단 말입니다.
공부할 때는 화두(話頭)를 참구하든, 염불(念佛)을 하든, 주문을 외이든 간에 마음을 열고 해야 됩니다.
이른바 반야바라밀을 분명히 느끼고 거기에 입각해서 공부를 해야 공부가 속빠른 것이고 또 공부에 재미가 나는 것이지 껌껌해도 다만 화두만 들면 된다. 염불만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대승적인 공부가 못됩니다.
환희심도 안 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교리에 부딪히면 금방 마음이 퇴행이 됩니다.
아바라밀은 삼명육통을 위시해서 만공덕을 갖춘 자리입니다.
열반경을 보면 팔대자재아(八大自在我)라. 본래 자기 진아(眞我)가 가지고 있는 공덕을 여덟 가지로 구분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 한 몸을 여러 몸으로 보이고, 마음대로 공중에도 날 수가 있고, 미진(微塵) 속에 자기 몸을 다 넣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유마경에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삼천대천 세계를 겨자씨 한 알에 다 넣을 수가 있다.
왜 넣을 수가 있는 것인가. 본래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공간성(空間性)이 있고 시간성(時間性)이 있다고 했을 때는 큰 것은 작은 것 속에 못 들어가겠지요.
그러나 부처님 법은 대소장단(大小長短)을 다 떠나 있습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출처: 글쓴이: 🙏참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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