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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살생을 피할 수 없을 때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9.

    옛날 인도에서는 크게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서 멀리 외국으로 나가거나 바다로 나가서 보물을 찾아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은 워낙에 위험한 일이므로 한 두 사람으로는 엄두도 못 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이 무리를 지어서 떠나곤 했는데, 어느 때 5백 명의 상인이 모여서 바다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외국으로 다니면서 값지고 귀한 물건도 사고 바다에서 진주도 따고 해서 고향에 돌아오면 큰 부자가 되리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사나이가 5백 명의 장사꾼들이 배를 타고 멀리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몰래 그들의 배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는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아주 난폭한 범죄자였습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배는 마침내 항구를 떠나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배 밑에 숨어 있던 사나이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먹을 것과 물을 훔치고 챙겨서 다시 배 밑으로 내려가 숨어서 지냈습니다. 5백 명의 상인들은 열심히 일을 해서 마침내 많은 보물을 배에 가득 싣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숨어있던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상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모두에게 잘 알려진 난폭자였기 때문이지요. 그가 무슨 짓을 할지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그가 나타난 것을 보고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는데, 상인들 중 우두머리격인 지도자는 아주 착하고 자비로우며 조용하고 자상한 사람이어서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처럼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침착한 사람이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처럼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이 난폭자는 우리 모두를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사나이가 한 사람이라도 죽여서 살인자가 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5백 명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또 저 사나이가 살인자가 되는 것을 막는 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사나이가 우리를 죽이기 전에 우리가 저 사나이를 먼저 죽이면 어떨까? 아니야, 그렇게 되면 저 사나이는 살인자가 되지 않지만 도리어 우리 모두가 살인자가 되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나 혼자 죽이자. 그러면 많은 사람은 살인죄를 면하게 되고 나 혼자만 살인죄로 사형을 당하면 끝난다. 그러면 5백 명도 살고, 저 사나이도 죄를 짓지 않게 되고...' 이렇게 생각한 지도자는 틈을 타서 그 난폭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그를 죽였습니다. 덕분에 5백의 상인들은 무사히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도자는 배가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왕을 찾아가 모든 것을 아뢰고 자수를 했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인 죄인입니다. 벌을 주십시오." 그러자 5백의 상인들이 모두 왕에게 나아가 탄원했습니다. "대왕이시여, 이 분은 아무 죄도 없습니다. 이 분이 아니었더라면 그 난폭자가 우리를 죽였거나 아니면 우리가 그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은 우리가 살인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죄를 혼자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이 분이 벌을 받는다면 우리 모두가 같이 벌을 받게 해 주십시오." 왕은 다 듣고 나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좋다. 알았다. 이 사람에게는 아무 죄도 없다. 왜냐 하면 이 사람이 원한을 품고 죽인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큰 자비심으로 한 것이 아니겠느냐? 죽은 난폭자도 혼이 있다면 이 사람 때문에 살인자가 되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이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 《대방광교방선편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내 자신은 죄업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부득이 살인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를 위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지 자기 자신을 위해 남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가론>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보살이 강도. 폭도들에 의해 많은 중생이 희생되려할 때, 또는 대덕(大德)의 성문(聲聞). 독각(獨覺). 보살(菩薩)을 살해하려할 때, 또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극악의 행을 하려고 할 때, 이런 것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내가 저 악한 중생의 목을 끊고서 그 죄로 지옥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저 사람으로 하여금 무간업을 짓지 않게 하고 많은 중생을 구제하고 보호하리라'하는 생각으로 선한 마음, 또는 아무 생각 없는 무기심(無記心)으로 깊이 참회하고 연민하는 마음으로 살생을 했다면 이것은 보살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공덕을 내는 것이다." 오늘도 좋은 날 만드소서. 성불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