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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발원은 삶을 변화 시킨다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1.

불교에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치열한 생존 경쟁의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방을 짓누르기 보다는 무조건 양보하고 욕심을 내지 않으려 하다가는 얼마안가 도태되고 말 것이 아니냐? 그래서 일부 불자들이 무기력, 염세적이고 피동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도 불교 관에 근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발원을 수행의 첫 거름으로 삼고 있다. 절 집 안에는 발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산다. 욕심과 발원의 차이는 3가지로 나누어 이야기 할 수 있다' 첫째로 욕심은 다분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바램이지만, 발원은 공통적 바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우리 모두 인류 전체 일체중생에 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와 남은 구분되지 않는다.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며 남이 잘하는 것이 곧 내가 잘하는 것이다. "예"로 월드컵 축구 때 우리국민이 지구촌 어디에 있든 모두하나로 뭉친 것은 원이 같기 때문인 것과 같은 것이다. 둘째로 욕심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인 것이다. 잘 먹고 잘살고 부와 명예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본능적이고 타고난 것이다. 발원은 애당초 우리 맘에 없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꿈에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원을 발하여 자꾸 베푸는 마음을 연습하므로 써 아상(我相)의 소멸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욕심은 결과를 중시하지만 발원은 과정 그 자체를 중시한다.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다. 욕심은 미래에 중점이 두어져 있기 때문에 그러한 욕망 달성을 위해서 때로는 현재를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 하나 발원은 현재에 중정이 두어져 있다. 스스로가 세운 원을 달성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어 지금 노력한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발원은 참다운 자기 전환의 시작이고 업(業)생이 아니고 원생(願生)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업 생이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체 과거에 지은 자기 업에 이끌려 살다 가는 것이다. 원생이란 스스로 삶을 갈무리해 나가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방향을 설정해서 과거의 업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적 삶을 살아가는, 내가 나를 창조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발원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못한다는 걸림만 없다면 마음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원을 세워 그 원대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발원은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서 방향 전환 이다. 인간의 욕심을 인정하되 다만 방향을 바꾸어 수행 심으로 인도하자는 것이다. 탐심을 돌이켜 대 신심으로 진심을 돌이켜 대 분심으로 치심을 돌이켜 대 의심으로 만들어 수행의 방해물을 오히려 수행의 양분으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번뇌가 곧 보리라 고하는 대승불교의 진수이다. 돌은 그저 돌 일뿐 걸려 넘어지면 걸림돌이요. 딛고 넘어 가면 디딤돌이 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탐, 진, 치를 도를 깨치는 방편으로 사용 하도록 하는 것이 발원의 참된 가치이다. 모든 사람이 몸과 마음이 밝고 건강해져서 재앙은 소멸하고 소원은 성취해서 부처님 시봉 잘하시길 발원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건강하십시요. -보산 법광 두 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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