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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육조 단경의 발상지를 가다

by 혜명(해인)스님 2018.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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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효사 주변곳곳에 널린 빨래·음식 냄새 등 중국 서민들의 생활이 녹아 있었다.

    지난 7월 9일 홍콩에서 중국비자를 얻은 나는 11일 오전 구광철도의 흉흠역에서 출발하는 광조우(廣州)행 기차에 올랐다. 홍콩에서 심천을 경유하여 광동성의 넓은 평원으로 달려 나온 기차는 작렬하는 중국남부의 햇볕 속을 달린지 3시간 만에 광조우역에 도착했다.

    이번 광동성 여행에서 나는 6조 혜능(68~713)의 설법 지이자 입적지인 광조우의 광효사(光孝寺)와 샤오콴(韶關)의 남화사(南華寺) 또 5조 홍인으로부터 “회(懷)를 만나면 머물고 회(會)를 만나면 곧 숨으라(逢懷則止 遇會則藏)”라는 지시를 듣고 혜능이 15년간이나 사냥꾼들과 함께 살았다는 쓰후이(四會), 화이지(懷集)등 <육조단경>속의 지명을 확인하고 그 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이 지명들은 광조우를 중심으로 한 광동성 남부의 교통요지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 급속하게 도시화되어가는 중이다.

    7월 12일 나는 혜능이 15년간의 은둔생활에서 나와 정식으로 수계를 하고 설법을 시작한 법성사(法性寺)를 답사했다. <육조단경>에서 광주 법성사라고 적고 있는 절이 바로 지금의 광조우 광효사이다. <육조단경>에 의하면 혜능이 산에서 나와 광주 법성사에 도착하자 마침 인종(印宗)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 때 두 학인이 뜰에 서서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이야기한다.
    한사람은 ‘바람이 움직인다. 라고, 또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인다. 라고 말하며 끝없는 토론을 하고 있었다. 혜능은 그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혜능의 이와 같은 지적에 법성사의 대중들은 놀랐다.
    인종법사는 혜능을 윗자리에 모시고 물었다. ‘행자님은 참으로 비상인(非常人)이십니다.
    내 듣건대 황매산의 법이 남방으로 내려왔다고 하더니 행자님이 바로 그 분이 아니십니까?’ 여기서 혜능은 정식의 출가절차를 받아 혜능선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펴게 된다.

    <육조단경>에 수록되어 있는 이 이야기에서는 어딘지 고전적인 무게와 품격이 느껴지지만, 오늘의 광효사는 광조우 시내의 지하철을 타고 도착할 수 있는 도시 변두리의 퇴락한 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현재 광효사의 사역(寺域)은 상당하게 보존되고 있지만 절 주변은 아파트와 남루한 상가로 둘러싸여 있어서 <육조단경>속의 품격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곳 광효사는 어쩌면 예전에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닌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라는 심동(心動)의 법이 설해질 만큼 맑은 바람이 부는 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남부의 급속한 도시화는 선어록속의 도량들을 모두 도시변경의 초라한 관광지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혜능의 입적지이며 유해가 보존되어 있는 샤오콴의 남화사 역시 광동성 북부의 공업도시 샤오콴시의 언저리에 간신히 남아있었다. 이제 중국 선종의 유산들은 깊은 산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산업화되어버린 도시의 변경 속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광조우 지하철 서문구(西門口)역에서 내려 광효사에 이르는 광효로 거리는 그야말로 소박한 중국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곳곳에 널어놓은 빨래와 음식냄새, 아이들, 소음, 이방인의 눈에는 이 거리가 마치 60년 전의 사진을 보는 듯 한 옛 중국서민들의 삶이지만 분명 여기에는 중국선의 본질을 상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

    그것은 조바심내지 않고 유유히 태평하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나는 중국선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본다. 중국선은 본래 대륙적인 농경문화의 산물이었다. 사람들은 해가 뜨면 해와 함께 일어나서 대지를 갈아 농사를 짓고 해가 지면 해와 함께 잠이 드는 자족적인 삶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 자족적인 농경문화는 이제 중국선의 토양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삶은 계속되어지는 것이며 선어록이 설해진 현장, 선승이 살다간 현장을 확인하는 이와 같은 작업은 비대하고 의미 없는 관념의 나열이 아니라 이처럼 살아있는 선 그 자체의 살아있는 인간상을 탐구하는 일인 것이다.
    감사 합니다.

    여기가지 이야기 하겠습니다.

    보산 법광 두 손 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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