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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의 출현

by 혜명(해인)스님 2018. 6. 30.


卍-불상의 출현-卍
    고대 초기의 불전도(佛傳圖)에 있어서 극히 특이한 점은 주역인 석존(釋尊)의 모습을 하나의 예외 없이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바루훗드'의 "용왕예불도"(龍王禮佛圖 =사진 2 참조)를 보면, 중앙부 아래에 무릎 꿇고 합장하고 있는 용왕의 모습은 보이나, 그 앞에 부처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만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놓인 방형의 대좌(臺坐)가 있을 뿐이다.

    이 경우 성수(聖樹)와 대좌에 의하여 여기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부처님을 암시하고 있는 사물로서는 발자취(足跡), 경행석(經行石), 윤보(輪寶), 탑 등이 있으며, 이것들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몇 가지를 조합하여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본생도(本生圖)에 있어서 전세(前世)의 모습을 표현함에 있어서도 부처님(釋尊)의 탄생으로부터 열반(涅槃)까지의 모습은 본래 전혀 나타내지 않았다. 그 이유로는 첫째 고대의 '인도-아리야'인들은 상숭배(像崇拜)의 전통이 없었고, 불교도의 숭배대상은 수투우파(stupa=탑)나 성수(聖樹)였다는 점, 또 부처님을 너무 이상화(理想化)하는 나머지 그 모습은 보통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으며, 완전한 열반(涅槃)에 드신 부처님은 불가견(不可見)이라 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부처님(釋尊)의 성적(聖跡)의 심볼이 되고, 예배의 대상이 되었던 성수(보리수) 등을 나타냄으로써 그 성적에서의 사적(事蹟)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사진 1~3 참조>

    인도 역사에 있어서 큐샨朝(kusana 1~4세기)의 중심지였던 현재의 '파키스탄' 서북부의 "간다아라(Gandhara)"에서는 동서 문화의 교류에 의하여 서방요소가 짙은 미술이 행해져 1세기 말경에 비로소 부처님의 像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그것을 받아드린 "마투라(Mathura)"에서도 2세기 초두에 中印度로서는 처음으로 불상(佛像)을 만들게 되었다.

    그것의 양식적(樣式的)인 면에서는 '간다아라'와는 다르며, 순 인도적인 전통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마투우라' 서쪽 교외에서 출토된 불좌상(佛坐像)은 초기 '마투우라'佛의 특색을 잘 나타내는 전형적인 예이다.

    체구는 중량감이 있으며, 눈을 크게 뜨고, 왼 팔을 힘차게 받쳐 세운 웅위(雄偉)한 자세이다.
    특히 머리 부분의 표현이 특이하다. 두정(頭頂)의 상투(육계)를 틀어 조개모양(貝狀)으로 나타내고 주변은 머리를 깍은 듯이 보인다.

    착의(着衣)는 엷고 풍만한 육체가 透視될 정도이다.
    대좌의 새겨진 글을 보면, <보살>로서 만들었다고 했으며, 다른 비교적 초기의 '마투우라'의 여래형(如來形)의 예에서도 상명(像名)을 갖는 것은 모두 <보살(菩薩)>이라 해놓았다. 이에 대하여는 불상불표현(佛像不表現)의 전통이 강했던 '마투우라'에서는 '간다아라'에 대응하여 불상을 제작함에 있어서도 <보살>의 이름으로 그것을 수용했으리라고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