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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불교자료실

고려의 석불

by 혜명(해인)스님 2018. 6. 30.


卍-고려의 석불-卍
    1. 시대개관 - 여기서 고려시대라 함은 왕건이 송악을 도읍으로 정하고 나라를 세운 918년부터 이후 약 470년간 왕씨 왕조를 누리다가 1392년에 朝鮮王朝로 넘어 갈 때 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2. 불상조각 - 고려시대의 조각은 대부분이 불교조각이다. 그것은 국초부터의 호국적인 불교가 말기까지 일관하였던 것에 기인하는 것이다. 혹시 그 중에도 용도, 유형을 달리한다 해도 모두가 불교적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며, 그 밖에는 능묘(陵墓)의 石人이나 건물기단의 장식조각 같은 소수의 예가 있을 뿐이다.

    불교조각은 전대인 통일신라시대의 전통을 이어 석불, 마애불, 철불, 금동불 등의 조성이 계속 성행하였으며, 소수의 목불, 칠불(漆佛) , 소조불(塑造佛) 등도 전하고 있다. 소조불로는 영주 부석사의 아미타상이 유명하다.

    이 시대의 불상조각의 특색은 신라의 불상조각에서 볼 수 있던 이상주의적 기풍이 점차 거세되고, 현세적, 사실주의의 경향을 띄게 되었으며, 이것은 신앙의 확대나 속화(俗化)라는 내적변화에 수반한 필연적 결과가 아닌가 추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곧 전반적인 타락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역대 왕이 깊이 숭불(崇佛) 귀의하는 사례는 변함이 없었으나, 신앙내용의 복잡화나 다른 요소의 가미에 의하여 의연 중에 얻어진 조형적 결과일 것이며, 신라의 모방에서 고려화로의 추세가 점차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이 시대 존상(尊像의 조각은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여 그것을 기본으로 하여 이른 바 고려화된 조형으로 전환을 가져오는 前期와 그것이 조형적으로 점차 미약해지고 전통적 요소가 희박해지며, 신앙대상으로서도 극히 俗化되는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前期에 속하는 불상조각들은 석불이나 철불을 막론하고 각부의 구성비(構成比例)가 잘 맞아 어울리고, 당당한 체구의 巨作들이 많은데 대하여 後期에 속하는 불상은 각부의 비례 또한 균정치 못하고 수법도 졸열 해진 경향을 전하고 있는 유품들에서 엿볼 수 있다.

    여러 가지 많은 재료가운데서도 石材가 흔한 우리나라의 실정으로 봐서 법당내의 불상봉안이나 산간유곡의 절승지를 택하여 천연암면에 조각한 거대한 마애불의 조성이 유행하여 이것이 고려시대 조각의 특색을 이루었음으로 오늘날 전국각지에 있어서 거구의 석불은 거의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 1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灌燭寺 石造彌勒菩薩立像)

    충남 논산군 은진면 관촉리 관촉사에 소재한다. 보물 제 218호로 지정된 것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것이다. 이불상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불상 중 가장 큰 불상으로 양쪽 귀의 길이만 2m가 된다. (총 높이 18.12m) 머리위에는 원통형의 관을 쓰고 있는데, 관 뒤에 이중으로 된 보개(寶蓋)가 있고 보개의 네 귀퉁이에는 구리로 만든 풍경과 귀 꽂이가 장식되었다.

    얼굴은 비대한 편으로 양쪽 볼이 넓다. 미간에는 백호가 있으며, 눈은 가늘고 길 게 표현하였다. 입은 굳게 다물고 목에는 삼도가 있는데, 인자한 불상의 얼굴이라기보다는 무서운 인상마저 주고 있어 토속적인 인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엿보인다.

    몸체는 거대한 돌덩이 같은 느낌을 주며, 양쪽 어깨에 걸쳐진 법의는 옷 주름이 양쪽으로 퍼졌는데, 가슴 앞에서 U자형의 옷 주름이 보이나, 잘 조화되지는 않는 편이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서 위로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서 둘째손가락과 셋째손가락을 마주 대고 있으므로 관세음보살의 수인(手印)이라 보기도 한다. 이 불상에 대하여는 고려 성종 19년(968년)에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속칭 "은진미륵"이라고도 한다.

    ( 2 ) 개태사지 석불입상(開泰寺址石佛立像)

    충남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 법당내에 봉안되고 있으며, 보물 제 219호로 지정된 것이다. 높이 4.15m, 좌우 협시보살상의 높이는 3.21m로 화강암으로 조성했다. 중앙 본존은 소발(素髮)의 머리위에 육계가 큼직하고 상호는 원만하나, 양 볼에 살이 빈약하며, 미간의 백호, 눈, 코, 입 등은 정제(整齊)되어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이 평판 적이어서 신라불과는 다른 인상을 면치 못한다.

    두 손은 지나치게 둔중하며, 양쪽 발도 장방형의 석괴에 발가락만을 표시하였다. 이렇듯 둔중한 조성수법은 시대의 강하를 뜻할 것인 바 , 각부의 조각이 투박스럽고 비사실적이어서 흡사 분묘 앞에 놓인 石人像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좌우 협시보살상 역시 같은 수법이다.

    이 석불의 조성연대는 개태사가 고려 태조 19년(936년)에 창건되었다 하니, 사찰과 함께 조성 봉안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대표작의 하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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