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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을 왜 하나요?

by 혜명(해인)스님 2020. 7. 31.


염불을 왜 하나요?

      염불이란 부처님이 곧 진리의 실체이므로 진리를 염한다는 뜻이기도 하며, 염불을 통해 부처님의 진리, 지혜를 이끌어내고, 번뇌를 소멸시키며 업장을 녹아내는 작업이다.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님과 부처님을 염하며 재불 보살과 하나가 되게 하는 성스러운 작업입니다.

      염불을 크게 열심히 용맹스럽게 하면 10가지의 커다란 공덕이 증진되는데, 이를 고성염불십종 공덕이라 합니다.

      고성염불십종공덕은,
      첫째, 용맹스럽게 염불하면 능히 졸음을 없애주고,
      둘째, 마군에 두려워 도망치므로 그 공덕이 수승하며,
      셋째, 염불이 시방에 퍼져 시방을 밝히므로 공덕이 크며,
      넷째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들이 염불 소리를 듣고 고통을 쉬게 되어 그 공덕이 크며,
      다섯째, 다른 음성이 들리지 않아 정신 통일이 용이하며,
      여섯째, 마음이 집중되고 정신력이 강화되며,
      일곱째, 용맹스럽고 적극적인 마음이 양성되며,
      여덟째, 모든 부터님께서 기뻐하시며,
      아홉째, 삼매의 경계가 뚜렷이 드러나며,
      열째, 이생을 다한 뒤 극락정도에 왕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거대한 공덕이 가득한 기도 염불을 우리는 쉼 없이 닦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서의 절과 세속에서의 절의 격식이 다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종교에서는 우상 숭배라 하여 부처님 전에 절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왜 절을 하나요?

      다른 종교에서는 불상 앞에서 절하는 것을 우상숭배라 하여 비난합니다.
      그래서 조상의 영정 앞에서도 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처럼 과학적인 심신 단련법은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인간은 조금만 피로하여도 척추 부위에 권태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만큼, 절 만큼 척추를 부드럽게 하고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며, 정신을 통일시키고 영감을 느끼게 해주는 수련은 달리 찾을 수 없습니다.

      척추는 모든 신경의 집결 장소이며 특히 두뇌를 보완하게 해주는 원천입니다.
      이와 같이 인체에 미치는 절의 효과뿐만 아니라, 절은 또한 자신의 모든 상(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꺾고 겸손한 마음을 다지는 경건한 마음의 얼굴이며,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속의 삼독심을 조복 받는 첩경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절하는 마음이야말로 불 법 승 삼보님 전에 귀의하는 지극한 정성의 표시라 하셨습니다.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리는 것은, 삼보님 전에 귀의한다는 의미와 신구의 삼업이 짓는 잘못을 참회하고, 참된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절은 심신의 단련에 있어 부처님께서 인류에게 베푼, 최고 최상의 비법인 것입니다.

      절을 통해 도를 얻었던 많은 도인들이 있으며, 절을 통해 암 등 각종 질병을 퇴치한 일을 우리는 수없이 접해 오고 있습니다. 불자들은 모두 절을 통해 영원의 길을 가야합니다.

      절을 많이 하면 좋다고 하는데 많이 하면 무엇이 좋은가요?

      절은 부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해주신 가르침 가운데, 무량한 가치를 지닌 심신 수양법입니다. 절을 하게 되면 몸과 마음이 모두 한 덩어리가 되고, 이른바 한의학에서 말하는 경락과 혈 등이 모두 통일성을 유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마음이 평온을 유지하게 되고 마음의 번뇌는 사라집니다.
      절을 요가의 압축판이라고도 하는데, 예전 대도인들 가운데는 절만으로도 도통했던 분들도 계십니다. 절을 하게 되면 마음이 겸손해지고 아상이 꺾어지는 만큼, 모든 번뇌 망상 업장 등은 모두 아상으로부터 연출되는 것이라, 업장 소멸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제사를 지내며, 49재의 의미와 왜 지내야 하나요?

      우리는 일생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과 행동, 그리고 말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측면에 걸쳐 좋은 일 좋은 말 선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그릇된 말 그릇된 일 그릇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그만큼 오염이 되고, 그 오염의 정도에 따라 죽은 다음의 세계는 전개됩니다.

      오염의 정도가 심해 도저히 인간으로 남아있기가 곤란할 경우,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고, 선업이 많으면 인간으로 천인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같이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 육도(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천인)의 몸을 받게 되는 것은 한계 상황에 쳐하게 되고. 한계 상황에 포박돼 거미줄을 스스로 치고 그에 갇혀 있는 거미와 흡사합니다.

      이 한계 상황을 타파하고 대우주의 주인공인 부처님으로 승화되려면. 우리는 마음의 오염과 글을 통한 업을 불식해야만 합니다. 부처님은 바로 이같은 한계 상황을 뛰어 넘으신 분이시고. 그같은 길을 열어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몸을 버린 뒤 마음의 세계로 정의된 영가들을 위해 후손된 도리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제사를 올리는 것입니다.

      특히 49제는 7X7의 숫자인데 불가에서는 7이란 숫자를 해탈수, 법수라 하여 중요시합니다.
      7이란 숫자와 인간 생활과는 참으로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칠칠육정문이라 하여 부모 모태에 든 아기가 49일이 되면,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6근이 형성되듯, 영가도 49일이 되면 이 세상을 등진 뒤 ,영가가 저 세상을 맞아들이기 위한 과도기를 보낸 뒤, 저 세상의 차원으로 전위되어 새로운 몸을 받게 되거나,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9제 기간 동안 영가에게 저 세상의 구조와 생활 양태, 영가의 상태 등을 알려주어 제 갈 길을 바로 찾아가도록 하기 위해, 일주일 마다 한 번씩 제를 올리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7일에 한 번씩 일요일을 만나고, 또 휴식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한 뒤 한 주일을 살아가듯, 7일이라 하는 의미는 대우주의 엄밀한 과학적이요 수학적 체계를 의미합니다.

      염주를 지니는 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만약 번뇌의 장애와 업보의 장애를 없애고자 하거든, 목환자 열매 108개를 꾀어 항상 지니면서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흩어짐이 없이,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의 명호를 부르면서 하나씩 돌려 10번이고 20번이고 계속하라.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산란함이 없이 20만 번을 채우면, 목숨을 마친 뒤에 천상이 나서 의식이 저절로 갖추어지고, 언제나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리라.

      그리고 다시 100만 번을 채운다면 108번뇌가 끊어져, 이 때 비로소 생사의 흐름을 벗어날 것이니, 영원히 번뇌가 없는 최상의 과보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염주란 문자 그대로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글을 생활화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마음이 될 수 없는 상태에서 염주를 돌린다면, 염주를 돌리는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법회 중 스님께서 법문을 하실 때 염주를 돌린다던지, 누군가와 얘기하며 염주를 돌린다던지 하는 것은, 오히려 번뇌를 더욱 쌓아가고 정진력을 약화시키며 주위를 산만할 따름입니다. 염주는 조용히 주변의 대상과 교류가 끊어진 상태에서 모셔야 합니다. 또한 지극한 마음으로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라면, 염주를 모시는 방법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다만 염주에는 주불을 모신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머리 쪽으로 모셔야만 합니다.
      부처님은 항시 위에 계셔야 하니까요.
      그리고 염주를 돌릴 때 절대 소리를 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예불을 올릴 때나 법회가 계속되는 중에 염주를 돌려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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