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보장경(雜寶藏經) 제1권
(원위(元魏) 서역삼장(西域三藏) 길가야(吉迦夜)·담요(曇曜) 공역)
1. 십사왕(十奢王)의 인연
옛날 사람의 수명이 1만 세였을 때 한 왕이 있었는데, 이름을 십사(十奢)라 하였으며, 그는 염부제(閻浮提)의 왕이었다. 왕의 큰 부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라마(羅摩)라 하였고, 둘째 부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라만(羅漫)이라 하였다. 라마 태자는 큰 용맹과 힘이 있어 나라연(那羅延)과 같고, 또 선라(扇羅)가 있어서 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고는 곧 해치기 때문에 아무도 당할이가 없었다. 왕의 셋째 부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바라타(波羅陀)라 하였고, 또 넷째 부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멸원악(滅怨惡)이라 하였다.
왕은 그 셋째 부인을 유달리 사랑하여 그녀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재보를 너에게 다 주어도 아까워하지 않겠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내게 말하라.”
부인이 대답하였다.
“나는 지금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 뒷날 원할 것이 있으면 다시 아뢰겠습니다.”
그 때 왕은 병을 만나 목숨이 매우 위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태자 라마를 세워 자기를 대신해 왕을 삼고, 비단으로 머리털을 묶고 머리에 하늘관[天冠]을 씌워 위의와 법도를 왕의 법과 같게 하였다.
셋째 부인은 왕의 병을 보살피다가 왕의 병이 조금 나은 것을 보자 그것을 자기 힘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라마가 왕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을 보고 마음에 질투가 생겨, 곧 왕에게 아뢰어 전날의 소원을 말하였다.
“원컨대 라마를 폐하고 내 아들을 왕으로 삼아 주소서.”
왕은 이 말을 듣자, 마치 목구멍에 무엇이 걸려 그것을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것처럼, 큰 아들을 폐하자니 이미 왕으로 세운 터요, 폐하지 않자니 전날 그 소원을 이미 허락한 터이었다. 그러나 십사왕은 젊을 때부터 일찍 약속을 어긴 일이 없었으며, 또 왕의 법에는 두 말이 있을 수 없고 앞의 말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곧 라마를 폐하고 그 의복과 하늘관을 빼앗았다.
그 때 그 아우 라만은 그 형에게 말하였다.
“형님은 그런 용맹과 힘이 있고 또 선라까지 겸하였는데, 어찌 그것을 쓰지 않고 이런 치욕을 당합니까?”
형은 대답하였다.
“아버지 소원을 어기면 효자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저 어머니가 우리를 낳지 않았지마는, 우리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것은 우리 어머니를 대하는 것과 같다. 아우 바라타는 아주 온화하고 유순하여 조금도 다른 생각이 없는데 지금 내가 큰 힘과 선라를 가졌다 하여 어찌 그 부모와 아우에게 해를 끼쳐 못할 짓을 하겠는가?”
아우는 그 말을 듣고 이내 잠자코 있었다.
그 때 십사왕은 두 아들을 멀리 깊은 산으로 보내면서, 12년이 지나서야 본국으로 돌아올 것을 허락한다고 말하였다. 라마 형제는 부모의 명령을 받들고 조금도 원한이 없이 부모에게 절하여 하직하고 멀리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그 때 바라타는 그 전에 다른 나라에 가 있었는데, 이내 불러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다.
그러나 바라타는 본래부터 두 형과 화목하고 공순하며 매우 공경하고 겸양하는 터이었는데 본국에 돌아와 보니 부왕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함부로 그 형인 왕을 폐하고 자기를 왕으로 세운 뒤에 두 형을 멀리 떠나보낸 것을 비로소 알고는 그 생모(生母)의 소행이 도리가 아님을 미워하여 꿇어앉거나 절하지 않고 말하였다.
“어머님은 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여 우리 집안을 망치려 하십니까?”
그리고 큰 어머니를 향해 절하고는 공경하고 효순하기가 보통 때보다 갑절이나 더하였다.
바라타는 곧 군사를 이끌고 그 산으로 달려가 군사들을 뒤에 머물러 두고 자기 혼자 나아갔다.
아우가 오는 것을 보고 라만은 그 형에게 말하였다.
“형님은 전에 늘 '저 아우 바라타는 의리가 있고 겸양하며 공순하다'고 칭찬하셨는데, 지금 군사를 끌고 온 것을 보면 우리 형제를 죽이려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형은 바라타에게 말하였다.
“아우는 지금 왜 군사를 거느리고 왔는가?”
아우는 형에게 말하였다.
“길에서 도적을 만날까 두렵기 때문에 몸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를 데리고 왔을 뿐이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 형님은 본국으로 돌아가 나라 정사를 맡아 다스리기 바랍니다.”
형은 대답하였다.
“우리는 일찍 아버지 명령을 받들어 여기 왔는데 지금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겠는가. 만일 우리 마음대로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자식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의리가 아닐 것이다.”
아우는 간절하고 절실하게 청하였지만 형의 뜻은 확고하여 먹은 마음은 더욱 굳었다.
아우는 마침내 그 형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곧 형이 신은 가죽신을 얻어 가지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본국으로 돌아와 나라 일을 다스렸다.
나라를 다스리되 언제나 그 가죽신을 어좌(御座)에 올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예배하고 문안드리는 의리는 형을 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항상 그 산으로 사람을 보내어 자주자주 그 형을 청하였다. 그러나 그 두 형은 12년이 지난 뒤에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연한이 차지 않았다 하여, 지극한 효도와 충성으로 감히 그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그 뒤에 차츰 연한이 차게 되고, 또 그 아우가 자주 사람을 보내어 간절히 부르며, 신을 공경하기를 자기를 대한 것과 같이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아우의 지극한 정에 감동되어 드디어 본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오자 아우는 왕위를 사양해 형에게 돌렸다.
그러나 형은 또 사양하면서 말하였다.
“아버지가 먼저 아우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아우도 사양하면서
“형님은 맏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업을 이어 받는 것은 바로 형님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자꾸 서로 사양하다가 할 수 없이 형이 도로 왕이 되었다.
그들은 형제끼리 서로 우의가 돈독하고 화목하였으므로 그 교화가 크게 떨치고 도덕이 널리 퍼져 백성들은 모두 그 감화를 입었고 서로 권하여 받들어 섬기며 효도하고 공경하였다.
바라타 어머니는 비록 큰 허물을 지었지만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원한이 없었으므로, 그 충성과 효도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바람과 비는 때를 맞추어 다섯 가지 곡식은 풍성하였고 사람은 병이 없었으며, 염부제 안의 모든 인민들은 보통 때보다 열 곱절이나 번성하고 풍만하였다.
2. 왕자가 제 살로 부모를 구원한 인연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舍衛國)에 계셨다.
그 때 아난은 가사를 입고 바리를 들고 성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장님 부모를 모신 어린애가 걸식하면서 좋은 음식은 부모에게 공양하고 자기는 나쁜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난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어린애는 참으로 드물게 보는 아이입니다. 음식을 빌되 좋은 것을 얻으면 부모께 공양하고, 나쁜 것은 가려서 제가 먹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는 지나간 세상에 부모님을 공양할 때에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하였느니라.”
아난이 다시 아뢰었다.
“세존께서 지나간 세상에 부모를 공양하신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과거에 어떤 큰 나라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는데, 왕에게는 아들 여섯이 있어 제각기 한 나라씩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라후구(羅求)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그는 은밀히 군사를 일으켜 그 나라의 왕과 다섯 아들을 죽였다.
여섯째아들에게만은 어떤 귀신이 미리 와서 일러 주었다.
'네 부왕과 다섯 형은 모두 대신 라후구에게 죽었고, 다음은 네 차례가 될 것이다.'
왕자는 그 말을 듣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왕자의 근심하는 얼굴빛이 보통 때와 다른 것을 보고 물었다.
'당신 얼굴이 왜 그렇습니까?‘
왕자는 대답하였다.
'남자의 일을 그대에게 말할 수 없소.'
'나는 당신과 생사를 같이하는데, 무슨 말 못할 일이 있습니까?'
'마침 어떤 귀신이 내게 와서 말하기를, 네 아버지 왕과 다섯 형들은 모두 남에게 죽었는데, 다음 차례는 너에게 온다고 하였소. 그 때문에 근심과 두려움으로 어쩔 줄을 모르겠소.'
두 부부는 곧 아이를 데리고 다른 나라로 떠났다. 거기까지 갈 수 있는 이레분 양식을 준비하였으나 황급하고 두려운 탓에 딴 길로 잘못 들어 열흘이 지나도록 걸어도 도착하지 못하고, 양식은 떨어져 피로하고 굶주림으로 거의 죽게 되었다.
왕자는 생각하였다.
'세 사람이 함께 살려 하니 고통이 더욱 심하다. 차라리 한 사람을 죽여 두 사람이 사는 것이 낫겠다.'
그가 곧 칼을 빼어 아내를 죽이려 하자 아이가 아버지를 돌아보면서 합장하고 말하였다.
'아버지, 우리 어머니를 죽이지 마십시오. 차라리 저를 죽여 어머님 목숨을 대신하십시오.'
아버지는 아이 말대로 그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그러나 제 목숨을 끊지는 마십시오. 만일 제 목숨을 끊으면 살이 곧 썩어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저를 업고 나아가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제 목숨을 끊지 말고 날마다 조금씩 제 살을 베어 먹으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이 인가에 이르기 전, 아이 몸에는 오직 세 점 살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들은 다시 그 부모에게 아뢰었다.
'이 살 두 점은 부모님이 자시고 남은 한 점은 저에게 주십시오.'
그들은 아이를 땅에 던져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때 석제환인의 궁전이 진동하였다. 석제환인은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하고 두루 관찰해 보다가, 그 아이가 희유한 일을 한 것을 보았다. 그리하여 곧 굶주린 이리로 화하여 아이에게 가서 살을 청하였다. 아이는 생각하였다.
'내가 이 살을 먹더라도 끝내 죽을 것이요, 먹지 않더라도 또한 죽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지닌 살을 버려 굶주린 이리에게 주었다.
석제환인은 다시 사람으로 화하여 아이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살을 베어 주고도 후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가?'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너는 지금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데 네가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러자 아이는 맹세하였다.
'만일 내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몸의 살이 도로 생겨 예전과 같이 되고, 후회한다면 여기서 곧 죽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몸은 회복되어 본래와 다름이 없었다.
석제환인이 그 아이와 부모를 데리고 어느 곳에 이르러 그 나라의 국왕을 만날 수 있게 하였다. 그 왕은 크게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크게 기뻐하였으니, 아들의 지극한 효도를 어여삐 여겨 일찍 없었던 일이라고 찬탄한 뒤에 군사들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그러자 석제환인은 그를 잘 옹호하여 염부제의 왕이 되게 하였다.
아난이여, 그 때의 그 어린애는 바로 지금의 나요, 그 부모는 바로 지금의 내 부모이니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만 자비와 효도를 찬탄할 뿐 아니라, 과거 한량없는 겁 동안에도 항상 찬탄하였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지나간 세상에 부모를 공양하신 그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옛날 가시국왕(迦尸國王)의 나라에 큰 산이 있었고, 그 산에는 담마가(?摩迦)라는 선인(仙人)이 있었다. 그 부모는 늙었을 뿐 아니라 또 장님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맛있는 과실과 아름다운 꽃과 시원한 물을 가져다 부모께 공양하고 또 고요하고 두려움이 없는 곳에 부모를 모셔 두고, 무슨 일이 있어서 출입할 때에는 먼저 부모에게 아뢰고, 물을 길러 갔다.
그 때 범마달왕(梵摩達王)은 사냥 하러 나갔다가 물을 먹고 있는 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았다.
그러나 독약이 묻은 화살은 잘못하여 담마가를 맞추었다. 화살에 맞은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한 개 화살이 세 사람을 죽이니, 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왕은 그 소리를 듣자 활을 땅에 던지고 그에게 달려갔다.
'이제 누가 그런 말을 하였는가? 내가 들으니 이 산중에는 담마가라는 선인이 있는데, 그는 자비와 효도로 장님 부모를 모시기 때문에 온 세상이 칭찬한다고 한다. 그대가 그 담마가가 아닌가?'
그는 '바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이어 아뢰었다.
'지금 내가 당하는 이 고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늙고 앞 못 보는 부모님이 지금부터 굶주리더라도 아무도 공양할 이가 없을 것이 걱정입니다.' 왕이 물었다.
'네 장님 부모는 지금 어디 있는가?'
담마가는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초막 속에 계십니다.'
왕은 곧 장님 부모가 있는 곳을 향해 갔다.
그 때 담마가 아버지는 아내에게 말하였다.
'내 눈이 이상하게 떨리오. 장차 우리 효자 담마가에게 어떤 불행이 있을 징조가 아닌지 모르겠소.'
그 부인도 남편에게 말하였다.
'내 젖통도 이상하게 떨리는데, 우리 아들에게 어떤 불상사라도 없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장님 부부는 바삭바삭하는 왕의 걸음 소리를 듣고, 마음에 두려움이 생겨 '우리 아들 걸음이 아닌데, 그 누구인가' 하였다.
왕이 그들 앞에 이르러 큰소리로 인사하자 장님 부부가 말하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인사하는 이는 누구십니까?'
'나는 가시국의 왕이오.'
그 때 장님 부부는 왕을 향해 말하였다.
'자리에 앉으십시오. 우리 아들이 있었더라면 대왕께 좋은 꽃과 과실을 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아침에 물 길러 나가서는 날이 저물도록 오래 기다려도 오지 않습니다.'
왕은 이내 슬피 울면서 게송으로 말하였다.
나는 이 나라의 왕으로서 이 산에 나와 사냥할 때에
다만 짐승을 쏘려 하였더니 사람을 맞춰 해칠 줄은 몰랐네.
나는 이제 왕의 자리 버리고 여기에 와서 장님 부모 섬기되
당신 아들과 다름없이 하리니 부디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마시오.
장님 부모도 게송으로 왕에게 대답하였다.
우리 아들은 인자하고 효순하여 천상이나 인간에 그런 애 없네.
왕이 비록 우리를 가엾이 여기지만 어떻게 우리 아들 효도만 하리.
원컨대 우리들을 가엾이 여겨 우리 아들 있는 곳 가르쳐 주오.
아들이 우리 곁에 있기만 하면 목숨과 우리 마음 만족하리다.
이에 왕은 장님 부모를 데리고 담마가 곁으로 갔다.
그들은 아들 곁에 이르자 가슴을 치고 괴로워하며 울부짖으면서 '우리 아들은 인자하고 효순하기 비할 데 없었는데' 하고, 이내 천신·지신·산신·목신·수신 등 여러 신들에게 게송으로 말하였다.
제석천과 범천과 세상 왕들은 어찌하여 인자하고 효성이 있는 우리 아들을 돕지 않고서 이러한 고통을 받게 하는가? 우리 아들의 효성에 감동하여 빨리 구제하여 그 목숨을 살려라.
그 때 석제환인의 궁전이 진동하였다.
그는 하늘귀[天耳]로 이 장님 부모님의 슬퍼하는 소리를 듣고, 곧 하늘에서 내려와 담마가에게 가서 말하였다.
'너는 왕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는가?'
'조금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너에게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담마가는 대답하였다.
'만일 내게 왕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화살의 독기가 온몸에 퍼져 곧 목숨을 마칠 것이오, 내게 왕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 독 묻은 화살이 빠지고 상처가 곧 나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 말과 같이 독 묻은 화살이 저절로 빠지고 상처는 회복되었다.
왕은 한량없이 기뻐하여 온 나라에 '항상 자비를 닦고 부모를 효도로 섬기라'고 영을 내렸다.
비구들이여, 담마가는 옛날부터 인자함과 효순으로 부모를 공양하였다.
비구들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의 그 장님 아버지는 바로 지금의 정반왕이요, 그 때의 장님 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마야 부인이며, 담마가는 바로 지금의 나요, 그 가시국의 왕은 바로 지금의 저 사리불이며, 석제환인은 바로 지금의 저 마하가섭(摩訶迦葉)이니라.”
3. 앵무새가 장님 부모를 공양한 인연
부처님께서 왕사성(王舍城)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삿된 행이 있다. 그것은 마치 차는 제기처럼, 빨리 사람을 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두 가지 행이란 이른바, 첫째는 부모를 공양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부모에 대해서 온갖 좋지 못한 일을 행하는 것이니라.
두 가지 바른 행이 있다. 그것은 마치 차는 제기처럼, 빨리 사람을 천상에 나게 한다.
두 가지 행이란 첫째는 부모를 공양하는 일이요, 둘째는 부모에게 온갖 선행을 하는 일이다.”
비구들이 아뢰었다.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못내 부모를 찬탄하십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뿐이 아니니라. 지난 세상에 설산(雪山)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부모는 모두 장님이었다. 그는 언제나 좋은 꽃과 과실을 따다가 먼저 부모를 공양하였다.
그 때 어떤 농부는 처음에 곡식을 심을 때 이렇게 원을 세웠다.
'내가 심은 이 곡식은 여러 중생들과 함께 먹으리라.'
앵무새는 그 농부가 보시할 마음을 가진 것을 알고 항상 그 밭의 곡식을 가져다 부모를 공양하였다.
그 농부는 밭의 곡식을 돌아보다가 여러 벌레와 새들이 곡식 이삭을 뽑는 것을 보고 괴로워하고 화를 내어 그물을 쳐서 앵무새를 잡았다.
앵무새는 말하였다.
'농부님은 처음에 좋은 마음이 있어서 물건을 보시하되 아까워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와서 곡식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 그물로 나를 잡습니까? 또 밭이란 어머니와 같고 종자란 아버지와 같으며 진실한 말은 아들과 같고 농부는 왕과 같습니다. 그리고 보호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농부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여 앵무새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를 위해 이 곡식을 가지고 가는가?'
앵무새는 대답하였다.
'장님 부모님이 계신데 이것으로 봉양하려 합니다.'
농부는 말하였다.
'지금부터는 여기 와서 가져가되 조금도 어려워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앵무새는 과실이나 종자가 많은 것을 좋아하고 밭도 또한 그러하다.
그 때의 앵무새는 바로 지금의 나요, 농부는 지금의 사리불이며, 장님 아버지는 지금의 정반왕이요, 그 때의 장님 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마야 부인이었느니라.”
4. 기로국(棄老國)의 인연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인을 공경하면 큰 이익이 있느니라. 일찍 듣지 못한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이름이 멀리 퍼지며, 지혜로운 사람의 공경을 받는다.”
비구들은 아뢰었다.
“세존께서는 항상 부모와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는 것을 찬탄하십니다.”
“오늘만이 아니다. 나는 과거 한량없는 겁 동안 항상 부모와 어른과 노인을 공경하였다.”
“과거에 공경한 그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에 기로국(棄老國)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집에 노인이 있으면 멀리 쫓아 버리는 법이 있었다. 그 때 어떤 대신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늙었으므로 국법에 따라 멀리 쫓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여, 땅을 깊이 파고 비밀한 방을 만들어 아버지를 그 안에 모시고 때를 따라 효도로 섬겼다.
그 때 어떤 천신(天神)은 뱀 두 마리를 가지고 와서 왕의 궁전 위에 두고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이들의 암·수를 분별하면 너의 나라가 편안하겠지만,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네 몸과 너의 나라는 이레 뒤에 모두 멸망할 것이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이 되어 여러 신하들과 함께 이 일을 의논하였지만, 모두 '분별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곧 온 나라에 '만일 누구나 이것을 분별하면 벼슬과 상을 후하게 주리라'고 영을 내렸다.
대신이 집에 돌아가 그 아버지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그것은 분별하기 쉽다. 부드러운 물건 위에 그것들을 놓아두면, 거기서 부스대는 놈은 수컷이요, 꼼짝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것은 암컷이니라.'
그 말대로 하였더니, 과연 그 암·수를 알 수 있었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자는 이 중에서 깬 이는 누구며, 깬 이 중에서 자는 이는 누구인가?'
왕은 또 신하들과 의논하였으나 분별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다시 온 나라에 두루 알렸으나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대신은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학인(學人)을 말한 것이다. 학인은 범부에 대해서는 깬 이요, 저 아라한에 대해서는 잠자는 사람이니라.'
그는 곧 그 말대로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이 큰 코끼리는 몇 근이나 되는가?'
왕은 신하들과 의논하였으나 아는 이가 없었고, 또 온 나라에 두루 알렸으나 아무도 몰랐다.
대신은 그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말하였다.
'코끼리를 배에 싣고 큰 못에 띄워, 배가 물에 잠기는 쯤에 표시를 하고는, 다시 그 배에 돌을 헤아려 싣고 물에 띄워, 물에 잠기는 것이 앞의 표시와 같을 때에 그것이 코끼리의 무게니라.'
그는 그 지혜로써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물었다.
'한 움큼 물이 큰 바닷물보다 많은데, 누가 그것을 알겠는가?'
신하들은 의논하였으나 알 수 없었고, 또 두루 알리고 물었으나 아무도 몰랐다. 대신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버지는 말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청정한 신심으로 한 움큼의 물을 부처님이나 스님이나 부모나 고생하는 병자에게 보시하면, 그 공덕으로 말미암아 수천만 겁 동안 끝이 없는 복을 받을 것이니, 바닷물은 아무리 많아도 한 겁을 지나지 못한다. 이로 미루어 말하면 한 움큼의 물이 큰 바다보다 백천 곱이나 많을 것이다.'
그는 곧 그 말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굶주린 사람으로 변하여 해골만 이끌고 와서 물었다.
'세상에 과연 굶주리고 궁한 고통이 나보다 심한 이가 있는가?'
신하들은 생각하여 보았으나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이 다시 아버지에게 가서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세상에 어떤 사람은 간탐하고 질투하여 삼보를 믿지 않고, 부모와 스승을 공양하지 않다가, 장래 세상에는 아귀에 떨어져 백천만 년 동안 물이나 곡식은 이름도 듣지 못하며 몸은 태산과 같고 배는 큰 골짝 같지만 목구멍은 가는 바늘 같으며 송곳이나 칼과 같은 털은 몸을 감아 다리에까지 이르고, 움직일 때에는 사지와 뼈마디에 불이 붙는다. 그런 사람은 저 굶주리는 고통보다 백천만 갑절이나 심하니라.'
그는 곧 이 말로써 천신에게 가서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어떤 사람으로 변하여 손과 다리에는 쇠고랑을 차고 목에는 사슬을 걸고, 몸에서 불이 나와 온몸이 타면서 물었다.
'세상에는 나보다 심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신하들은 갑자기 답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대신이 다시 그 아버지에게 가서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세상의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사람을 해치며 남편을 배반하고 삼보를 비방하다가, 장래 세상에는 지옥에 떨어져 칼산·칼나무·불 수레·화로숯·잿강·끓는 똥·칼길·불길 등의 고통을 받는다. 이런 고통은 한량없고 끝없고 헤아릴 수 없다. 이것으로 비유하면 너의 고통보다 백천만 배나 심하니라.'
그는 곧 그 말대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다시 한 여자로 화하여 세상 사람보다 뛰어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었다.
'세상에 나처럼 단정한 사람이 있는가?'
왕과 신하들 모두 잠자코 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이 다시 그 아버지에게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였다.
'세상에 어떤 사람은 삼보를 믿고 공경하며, 부모에게 효순하고, 보시와 인욕과 정진을 좋아하며 계율을 가지다가 천상에 나게 되면, 단정하고 뛰어나기가 너보다 백천만 곱이나 더할 것이다. 거기에 비유하면 너는 눈 먼 원숭이와 같으니라.'
그는 또 이 말로써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 네모반듯한 진단목(眞檀木)을 가지고 물었다.
'어느 쪽이 머리인가?'
신하들의 지혜로는 아무도 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그것은 알기 쉽다. 물에 던져 보면 뿌리 쪽은 잠길 것이요, 꼬리 쪽은 뜰 것이다.'
그는 곧 그 말로 천신에게 대답하였다.
천신은 또 형색이 꼭 같은 두 마리 흰 초마(馬)를 가지고 물었다.
'어느 것이 어미요, 어느 것이 새끼인가?'
왕과 신하로서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은 또 아버지에게 가서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였다.
'풀을 주어 먹여 보아라. 만일 그것이 어미라면 반드시 풀을 밀어 새끼에게 줄 것이다.'
이와 같이 묻는 것을 모두 다 대답하였다. 천신은 매우 기뻐하여 그 왕에게 진기한 재보들을 많이 주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의 나라를 옹호하여 외적이 침해하지 못하게 하리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못내 기뻐하면서 그 대신에게 물었다.
'그것을 그대 스스로 알았는가, 아니면 누가 가르쳐 주었는가? 그대의 지혜를 힘입어 우리나라가 편안하게 되었고 많은 보물을 얻었으며, 또 천신이 보호한다 하였다. 이것은 모두 그대 힘이다.'
대신은 대답하였다.
'신(臣)의 지혜가 아닙니다. 원컨대 두려움이 없게 하여 주시면 감히 그 내력을 아뢰겠습니다.'
왕은 말하였다.
'설령 지금 네게 만 번 죽을죄가 있다 해도 묻지 않겠거늘, 하물며 조그만 허물이겠는가.'
대신은 아뢰었다.
'나라에서 제정한 법률에는 노인을 모시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하온대 신에게는 늙은 아비가 있는데,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왕법을 무릅쓰고 땅 속에 은신해 두었던 것입니다. 신이 와서 대답한 것은 모두 아버지 지혜요, 신의 힘이 아닙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온 나라에 명령하여 노인을 버리지 말게 하옵소서.'
왕은 탄복하여 크게 칭찬하고 마음으로 기뻐하여, 그 대신의 아버지를 봉양하고 받들어 스승으로 삼았다.
'내 나라와 모든 백성을 구제하였지마는, 그런 이익은 내가 아는 바 아니다.'
하고, 곧 영을 내려 천하에 두루 알려, 노인 버리는 일을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모를 우러러 효도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거나 스승에게 공경하지 않으면 큰 죄를 내리리라'고 하였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아버지는 바로 이 나요, 그 대신은 저 사리불이며, 그 왕은 저 아사세왕(阿?世王)이요, 그 때의 천신은 바로 저 아난이었느니라.”
5. 부처님이 도리천상에서 어머니 마야를 위하여 설법하신 인연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 도리천에 올라가 여름 안거를 지내면서 어머님을 위해 설법하고자 한다. 너희 비구들 중에 가고 싶은 사람은 나를 따라 가자.”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도리천에 올라가 한 나무 밑에 앉아 여름 안거를 지내면서, 어머니 마야와 한량없는 하늘들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모두 진리를 보게 되자 다시 염부제로 돌아오셨다.
비구들이 아뢰었다.
“놀랍습니다. 세존께서는 어머님을 위하여 90일 동안 도리천에 머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만이 아니다. 나는 지나간 세상에서도 어머니를 위하여 그 괴로운 일을 제거해 드렸느니라.”
그 때 비구들이 여쭈었다.
“과거의 그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설산 기슭에 원숭이왕[??王]이 있어 5백 마리 원숭이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 때 어떤 사냥꾼이 그물을 쳐서 그들을 둘러싸자 원숭이 왕이 말하였다.
'지금 너희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너희들을 위하여 저 그물을 찢으리니, 너희들은 모두 나를 따라 나오너라.'
그는 곧 그물을 찢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두 그것을 벗어나게 되었다.
그 때 어떤 늙은 원숭이가 새끼를 업고 가다가 발이 미끄러져 깊은 구렁에 떨어졌다. 원숭이 왕은 어머니를 찾았으나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깊은 구렁을 보고 그 곁으로 갔는데, 어머니가 그 속에 있는 것을 보고 여러 원숭이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힘을 내어 나와 같이 어머니를 건져 내자.'
여러 원숭이들은 서로 꼬리를 붙잡고 구렁 밑으로 내려가 어머니를 잡아당겨 내어 고난을 벗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또 오늘 어머니의 고난을 제거해 드렸다. 그 때에는 깊은 구덩이의 어려움에서 건져 내었고, 지금은 삼악도(三惡道)의 어려움에서 어머니를 건져 낸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어 말씀하셨다.
“부모를 구제하면 큰 공덕이 있느니라. 나는 어머니를 구제하였기 때문에 세상마다 어려움이 없었고, 스스로 부처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런 이치가 있기 때문에 너희 비구들은 각각 부모에게 효순하고 공양하여야 하느니라.”
6.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옛날 어머니 가단차라의 인연
부처님께서 어느 때 돌아다니시다가 거하라국(居荷羅國)으로 가시는 도중에 어떤 나무 밑에 앉아 계셨다.
그 때 가단차라(迦旦遮羅)라는 한 노모는 남에게 매어 살면서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기 가서 물을 얻어 오너라.”
아난은 부처님의 분부를 받고 곧 가서 물을 청하였다.
그 때 노모는 부처님께서 물을 청하신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물그릇을 들고 와서 부처님 앞에 이르자, 물그릇을 땅에 놓고 부처님을 안으려 하였다. 아난이 그것을 막으려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막지 말라. 그 노모는 5백 생 동안 내 어머니였다. 그래서 애정이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안으려 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막으면 끓는 피가 얼굴에서 흘러 나와 이내 목숨을 마치고 말 것이다.”
노모는 부처님을 안자 손발을 불고는 한쪽에 서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가서 이 노모의 주인을 불러 오너라.”
그 주인이 와서 땅에 엎드려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섰다.
부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노모를 놓아 주어 집을 떠나게 하라. 만 일 집을 떠나면 반드시 아라한이 될 것이다.”
주인은 곧 놓아 주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노모를 파사파제(波?波提) 비구니에게 붙여 주어 중을 만들게 하라. 오래지 않아 아라한의 도를 얻어, 비구니 중에서 경전을 잘 알기로 가장 으뜸갈 것이다.”
비구들은 이상히 여겨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이는 어떤 인연으로 남에게 매여 살며 또 어떤 인연으로 아라한이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이는 가섭(迦葉)부처님 때 집을 나와 도를 배웠다. 그 인연으로 아라한이 될 것이다. 또 그 때 여러 주인들을 위하여 성현들을 비방하고 비구니보다 종이 낫다 하였기에 그 인연으로 지금 남에게 매어 살고, 또 5백 생 동안 늘 내 어머니가 되었으나 간탐하고 질투하여 내 보시를 방해하였기에 그 인연으로 항시 빈천한 집에 태어났었다.
그런데 나는 오늘만 그를 빈천에서 구제한 것이 아니니라.”
비구들이 아뢰었다.
“알 수 없습니다. 과거 세상에 그를 빈천에서 구제한 일은 어떠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지나간 세상에 바라내국(波羅捺國)에 어떤 가난한 집에서 모자가 살고 있었다. 아들은 늘 품을 팔아 어머니를 공양하는데, 재물을 조금 얻어 겨우 조석을 지탱해 나갔다.
그 때 아들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나도 여러 상인들과 함께 멀리 가서 장사하려 합니다.'
어머니가 허락하자, 그 아들은 길을 떠났는데, 아들이 떠난 뒤에 도적이 와서 그 집을 부수어 재물을 뺏고, 또 그 노모를 끌고 가서 다른 곳에 팔았다.
아들이 돌아와 어머니를 찾다가 있는 곳을 알고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서 어머니를 풀어내고 본국에서 생활할 때 이전보다 몇 배나 살림이 풍족하였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어머니는 바로 지금의 저 가단차라요, 그 아들은 바로 지금의 나다. 나는 그 때에도 어머니의 고통을 제거해드렸느니라.”
7. 자동녀(慈童女)의 인연
옛날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부모에게 조금만 공양하여도 한량없는 복을 얻고, 조금만 불효하여도 한량없는 죄를 받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죄와 복의 갚음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먼 옛날 바라내국에 장자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을 자동녀(慈童女)라 하였다. 그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 재물이 모두 바닥이 나자, 땔나무를 해다 파는데, 하루 2전을 벌어 늙은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점차 생계가 조금씩 나아져 하루 4전을 벌어 어머니를 공양하고, 다시 하루 8전을 벌어 어머니를 공양하였다. 그리하여 차츰 여러 사람들의 신용을 얻었으니, 어디서나 일하면 얻는 이익은 갈수록 많아져 하루 16전으로 어머니를 받들었다.
여러 사람들은 그의 총명과 복덕을 보고 권하였다.
'너의 아버지가 세상에 계실 때에는 항상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었다. 그런데 너는 왜 바다에 들어가지 않는가?'
그는 이 말을 듣고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우리 아버지는 살아 계실 때 늘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어머니는 말하였다.
'너의 아버지는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었다.'
그는 곧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가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캤다면, 제가 지금 어찌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겠습니까.'
어머니는 그 아들의 인자하고 효순한 것을 보고,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생각하였으나, 장난삼아 말하였다.
'너도 가야 할 것이다.'
그는 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아아, 이제 되었다' 하고, 곧 동행들과 의논한 뒤 바다에 들어가려 하였다. 여장을 마치고 어머니에게 하직하고 떠나려 하였다.
어머니는 그에게 말하였다.
'너는 내 외아들로서 내가 죽기를 기다려야 하거늘, 내 어떻게 너를 놓아 보내겠느냐?'
아들은 대답하였다.
'만일 전날에 허락하시지 않으셨더라면 저는 감히 마음을 결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머님은 이미 허락하셨는데 어찌 다시 막으려 하십니까? 저는 이 몸으로써 믿음을 세우고 죽으려 합니다. 남에게 약속하여 이미 결정하였습니다. 도로 여기 머물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그 아들의 뜻이 결정된 것을 보고, 앞으로 나가 다리를 안고 울면서 말하였다.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어떻게 떠날 수 있느냐?'
그러자 아들은 곧 결심하고, 손으로 말리면서 다리를 빼내다가 어머니 머리털을 수십 개 끊었다. 어머니는 그 아들이 죄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곧 놓아주어 떠나게 하였다.
그는 드디어 여러 상인들과 함께 바다로 들어가, 보물섬에 이르러 보물을 많이 캤다. 그리하여 다시 여러 동행들과 함께 돌아오려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었으니, 하나는 물길이요 하나는 육지길 이었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육지 길로 가자고 하여 육지 길을 따라 떠났다.
그 나라 법에는 도적이 와서 탈취할 때에, 만일 그들이 상주(商主)를 잡으면, 여러 상인들의 재물이 모두 도적에게 들어가지마는 상주를 잡지 못하면 비록 재물을 얻었더라도, 상주가 돌아오면 재물을 그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 자동녀가 항상 따로 나와 자면 상인들은 일찍 일어나 맞이하여 그를 보호하였다.
하루는 밤에 큰 바람이 불어 상인들이 갑자기 일어나 그만 상주를 보호하기를 잊었으므로, 상주는 뒤에 떨어져 같이 가지 못하였다.
그는 길을 잘 알지 못하였다. 어떤 산이 있는 것을 바라보고 곧 가서 올라가, 멀리서 감유리 빛 성이 있는 것을 보고는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하여 성을 향해 빨리 달려갔다.
그 때 성 안에서 네 명의 미녀가 네 개의 여의주를 받쳐 들고 풍류를 잡히면서 나와 맞이하였다. 그는 거기서 4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리다가 싫증이 나자, 그들을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여러 미녀들은 말하였다.
'염부제 사람들은 너무 무정합니다. 우리들과 4만 년이나 함께 살아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우리들을 버리고 떠나려 하십니까?'
그러나 자동녀는 그 말을 귀에 담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다가 파리성(頗梨城)을 보았다. 거기에서는 여덟 명의 미녀가 여덟 개의 여의주를 받쳐 들고 풍류를 잡히면서 나와 맞이하였다.
거기에 8만 년 동안 환락을 누리다가 싫증이 나자 또 그들을 버리고 떠나 백은성(白銀城)에 이르렀다.
거기에서는 열여섯 명 미녀가 열여섯 개의 여의주를 받쳐 들고 앞에서와 같이 나와 맞이하였다.
거기서 16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리다가 다시 그들을 버리고 떠나 황금성(黃金城)에 이르렀다. 거기에서는 서른 두 명의 미녀들이 서른 두 개의 여의주를 받쳐 들고 나와 맞이하였다.
거기서 32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리다가 또 그들을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미녀들은 말하였다.
'당신은 지금까지 늘 좋은 곳만 얻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좋은 곳이 없습니다. 여기서 사시는 것만 못합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생각하였다.
'이 미녀들은 나를 연모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앞으로 더 나아가면 반드시 더 좋은 곳이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버리고 떠나 멀리 쇠성[鐵城]을 바라보았다. 그는 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바깥은 쇠지만 안은 매우 좋으리라.'
점점 앞으로 나아가 성에 가까이 갔으나 와서 맞이하는 미녀가 없었다.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저 성 안은 매우 즐거운 것 같다. 그래서 나와서 나를 맞이하지 않는 것이다.'
차츰 앞으로 나아가 드디어 성 안으로 들어가자 성문 빗장이 내려졌다. 그 안에 있던 어떤 사람이 머리에 불 수레바퀴를 쓰고 있다가, 그것을 벗어 자동녀 머리 위에 씌우고는 곧 나가버렸다.
자동녀는 옥졸에게 물었다.
'내가 쓴 이 바퀴는 언제 벗을 수 있는가?'
그가 대답하였다.
'세상 사람으로서 죄와 복을 짓되, 네가 지은 것처럼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캐고, 너처럼 오랫동안 여러 성을 지낸 뒤에 여기 와서 너를 대신해 죄를 받기 전에 그 쇠바퀴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자동녀가 물었다.
'나는 어떤 복을 지었으며, 또 어떤 죄를 지었는가?'
'너는 옛날 염부제에서 날마다 2전으로 어머니를 공양하였기 때문에, 유리성과 네 개의 여의주와 네 명의 미녀를 얻어, 4만 년 동안 그런 쾌락을 누렸다. 또 4전으로 어머니를 공양하였기 때문에, 파리성과 여덟 개의 여의주와 여덟 명의 미녀를 얻어, 8만 년 동안 온갖 쾌락을 누렸다.
또 8전으로 어머니를 공양하였기 때문에, 백은성과 열여섯 개의 여의주와 열여섯 명의 미녀를 얻어, 16만 년 동안 쾌락을 누렸다. 또 16전으로 어머니를 공양하였기 때문에, 황금성과 서른두 개의 여의주와 서른 두 명의 미녀를 얻어, 32만 년 동안 큰 쾌락을 누렸다.
그리고 어머니 머리털을 끊었기 때문에 지금 쇠불바퀴가 씌워지고 땅에 떨어지지 않으니, 너를 대신할 사람이 있은 뒤에라야 그것을 벗게 될 것이다.'
'이 옥중에는 혹 나처럼 죄를 받는 이가 있는가?'
'백천이나 한량없어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자동녀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끝내 면하지 못하겠구나. 원컨대 일체 중생들의 받는 고통이 모두 내 몸에 모여라.'
이렇게 생각하자 쇠바퀴는 곧 땅에 떨어졌다.
자동녀는 옥졸에게 말하였다.
'너는 말하기를 이 바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더니, 어찌하여 지금 떨어졌는가?'
옥졸은 화를 내며 곧 쇠꼬챙이로 자동녀의 머리를 쳤다. 그는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에 났다.
비구들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의 자동녀는 바로 지금의 이 나이니라. 비구들이여, 명심하라. 조금이라도 부모에게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면 큰 고통의 갚음을 받고, 조금이라도 공양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런 줄 알고 부디 힘써 마음을 다하여 부모를 봉양하여야 하느니라.”
8. 연화부인(蓮華夫人)의 인연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시면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부모에게나 또 부처님이나 그 제자들에게 성을 내어 미워하면, 그 사람은 흑승지옥(黑繩地獄)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되 끝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며 또는 부모를 공경하거나 존중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선하지 않은 일을 행하면 그것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이 먼 지난 세상에 설산 기슭에 제바연(提婆延)이라는 선인(仙人)이 있었는데, 그는 바라문 종족이었다. 그런데 바라문 법에는 사내나 계집애를 낳지 않으면 천상에 나지 못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 바라문은 항상 돌 위에다 소변을 보았는데, 그의 정기가 흘러 나와 돌 틈에 떨어졌다.
어떤 암사슴이 와서 그 소변이 떨어진 곳을 핥아 먹고 아이를 배었다. 달이 차자 사슴은 그 선인이 사는 굴 밑에 와서 한 딸아이를 낳았다. 어미 태에서 나오면서부터 꽃이 그 몸을 쌌고, 얼굴은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하였다.
선인은 그것이 자기 딸임을 알고 그를 데려다 길렀는데, 점점 자라나 걸어 다니게 되자 발로 밟은 곳에는 모두 연꽃이 솟아났다. 바라문 법에는 밤에도 늘 불을 묻어 두는데, 우연히 어느 날 밤에는 불이 아주 사라져버렸다.
딸은 남의 집에 달려가 불씨를 빌리려 하였다. 그 집 사람은 그녀의 발자국마다 연꽃이 생기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우리 집을 일곱 번 돌면 나는 너에게 불을 주리라.'
그는 일곱 번 돌고는 불을 얻어 돌아왔다.
마침 오제연왕(烏提延王)이 사냥을 나왔다가, 그 사람 집에 일곱 겹으로 연꽃이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물었다.
'어떻게 너의 집에는 이런 연꽃이 있는가?'
그는 왕에게 대답하였다.
'산 중에 사는 바라문의 딸이 불을 빌리러 제게 왔었는데, 그의 발밑에서 이런 연꽃이 났습니다.'
왕은 발자국을 따라 선인이 사는 곳으로 갔다. 왕은 그 여자의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한 것을 보고, 선인에게 말하였다.
'이 딸을 내게 주시오.'
선인은 곧 주면서 왕에게 말하였다.
'장차 5백 왕자를 낳을 것입니다.'
왕은 드디어 그를 세워 부인을 삼으매 5백 명 미녀 중에서 가장 으뜸이 되었다.
왕의 큰 부인은 이 사슴 딸을 매우 질투하여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대왕이 지금 그를 저처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데, 만일 5백 명의 왕자를 낳으면 갑절이나 사랑할 것이다.'
그 뒤에 오래지 않아 사슴 딸은 5백 개의 알을 낳아 그것을 상자 안에 담아 두었다.
그 때 큰 부인은 5백 개의 밀가루 떡을 만들어 알이 있던 곳에 대신 넣어 두고, 알이 든 그 상자는 뚜껑을 덮어 표를 하여 항하에 던져버렸다.
왕이 그 부인에게 물었다.
'무엇을 낳았는가?'
부인이 대답하였다.
'순전한 밀가루 떡을 낳았습니다.'
왕은 '그 선인이 거짓말을 하였구나' 하고, 곧 부인의 지위를 내리니, 그는 다시는 왕을 보지 못하였다.
그 때 살탐보왕(薩耽菩王)은 항하 하류의 물가에서 여러 미녀들과 놀다가 그 상자를 보고 말하였다.
'이 상자는 내 것이다.'
여러 미녀들은 말하였다.
'대왕은 지금 상자를 가지셨다. 우리는 저 상자 안의 물건을 가지자.'
왕은 사람을 보내어 상자를 가져 와서 5백 부인들에게 각각 알 하나씩을 주었다. 그 알들은 저절로 열렸는데, 그 속에는 얼굴이 단정한 5백 명 아기가 있었다. 그들이 자라나자 모두 큰 역사의 힘이 있었으므로 5백 개 역사의 당기[幢]를 세웠다.
그 때 오제연왕은 항상 살탐보왕에게 공물(貢物) 바치기를 요구하였다. 살탐보왕은 공물 바치기를 요구한다는 말을 듣고 근심에 잠겨 있었다. 여러 아들들은 왕에게 아뢰었다.
'무엇 때문에 근심하고 괴로워하십니까?'
왕은 말하였다.
'나는 지금 세상에 살면서 남의 모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모욕을 받습니까?'
'오제연왕이 항상 내게 공물을 바치라고 독촉하고 있다.'
아들들이 아뢰었다.
'저희들은 능히 염부제의 모든 왕에게 공물 바치기를 요구하여 대왕께 바치게 할 수 있는데, 대왕께서 무엇 때문에 다른 이에게 공물을 바치겠습니까?'
5백 역사들이 드디어 군사를 이끌고 오제연왕을 치려 하자, 오제연왕은 두려워하여 말하였다.
'한 역사도 당하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5백 명 역사이겠는가? 온 나라에 영을 내려 이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자를 뽑자.'
그러다가 다시 생각하였다. 저 선인이면 능히 그 방법을 알 것이다.
그는 온갖 방편을 써서 선인에게 가서 말하였다.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겠소?'
그는 물었다.
'원수의 도적이 일어났는가?'
왕은 말하였다.
'살탐보왕에게는 5백 명 역사가 있는데, 그들이 모두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나를 치려하오. 내게는 지금 그들과 대적할 만한 그런 역사가 없소. 어떤 방법을 써야 그 적을 물리칠 수 있겠소?'
선인이 대답하였다.
'왕은 돌아가서 연화 부인에게 청하시오. 그는 능히 그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오.'
'그가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소?'
선인이 대답하였다.
'그 5백 명 역사는 모두 당신 아들이오. 그들은 연화 부인의 소생이오. 당신의 큰 부인이 질투하여 연화 부인의 낳은 아들을 모두 강물에 던져 버렸는데, 살탐보왕이 그 강 하류에서 놀다가 그들을 얻어 길러 낸 것이오. 지금 그 연화 부인을 큰 코끼리에 태워 군사들 선두에 두면 저들은 스스로 항복할 것이오.'
왕은 그 선인의 말대로 곧 돌아와 연화 부인에게 사과하고는 부인을 장엄하게 하여 좋은 옷을 입히고 크고 흰 코끼리에 태워 군사 선두에 두었다. 5백 명 역사들은 활을 들어 쏘려 하였으나 손이 저절로 꼿꼿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그 때 그 선인은 날아와 허공에서 역사들에게 말하였다.
'삼가 손을 들지 말고 나쁜 마음을 내지 말라. 만일 나쁜 마음을 내면 모두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이 왕과 그 부인은 바로 너희들의 부모니라.'
어머니는 곧 손으로 젖통을 눌렀다. 한 젖통에서 2백 50 갈래의 젖이 나와 여러 아들들의 입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곧 부모를 향해 참회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였기 때문에 모두 벽지불(?支佛)이 되었다. 왕도 또한 스스로 깨달아 벽지불이 되었다.
비구들이여, 그 때의 그 선인은 바로 이 나다. 나는 그 때에도 여러 아들들을 만류하여 부모에게 나쁜 마음을 내지 않음으로써 벽지불이 되게 하였고, 지금도 또한 늙은 부모를 공양하는 덕을 찬탄하는 것이다.”
9. 녹녀부인(鹿女夫人)의 인연
부처님께서는 왕사성의 기사굴산(耆??山)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법이 있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과 천상에 빨리 나서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한다. 또 두 가지 법이 있어 사람으로 하여금 세 가지 나쁜 곳에 빨리 떨어져 큰 고뇌를 받게 하느니라.
어떤 두 가지 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과 천상에 빨리 가서 열반의 즐거움에 이르게 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첫째는 부모를 공양하는 것이요, 둘째는 성현을 공양하는 것이다.
어떤 두 가지 법이 사람으로 하여금 세 가지 나쁜 곳에 빨리 떨어져 큰 고뇌를 받게 하는가?”
첫째는 부모에게 온갖 선하지 않은 행을 행하는 것이요, 둘째는 성현에게 선하지 않은 행을 행하는 것이다.”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선악을 빨리 이루는 그 일은 어떠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량없이 먼 과거 세상에 바라내라는 나라가 있었고, 그 나라에 선산(仙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어떤 범지(梵志)는 그 산에 살면서 언제나 돌 위에 대소변을 보았다. 뒤에 그의 정기(精氣)가 소변 본 곳에 떨어져 암사슴이 와서 그것을 핥아 먹고 곧 아이를 배었다.
달이 차자 그 사슴은 선인이 사는 곳에 와서 한 계집애를 낳았는데, 얼굴이 단정하고 뛰어나게 묘하였으나 다리만이 사슴 다리를 닮았다. 범지는 그것을 가져다 길렀다.
범지 법에는 항상 불을 받들어 섬겨 그 불을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어느 날 그 딸아이는 불을 묻었다가 부주의하여 불이 꺼지게 하였다. 그녀는 범지의 성냄을 두려워하였다.
거기서 1구루사(拘屢奢)[진(秦)나라에서는 5리(里)를 뜻한다]쯤 떨어진 곳에 다른 범지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딸아이는 범지에게 빨리 가서 불을 빌고자 하였는데, 범지가 그 발자국을 보니 발자국마다 연꽃이 있었다.
범지는 그녀에게 말하였다.
'우리 집을 일곱 번 돌면 너에게 불을 주리라. 또 나갈 때에도 일곱 번 돌아라. 그리고 본래 발자국을 밟지 말고 다른 길로 돌아가라.'
딸아이는 그 말대로 하고는 불을 얻어 가지고 돌아갔다.
그 때 범예국왕(梵豫國王)은 사냥을 나왔다가, 그 범지의 집 주위에 일곱 겹으로 두른 연꽃을 보았다. 그리고 두 길에 두 줄 연꽃이 있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이상히 여겨 범지에게 물었다.
'못물이 전연 없는데 어떻게 이런 묘하고 좋은 연꽃이 피는가?'
범지가 대답하였다.
'저 선인이 사는 곳에서 어떤 딸아이가 불을 빌러 내게 왔었는데 그 애 발자국마다 연꽃이 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만일 불을 얻고자 하거든 우리 집을 일곱 번 돌고 갈 때에도 또 일곱 번 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연꽃이 둘러 있습니다.'
왕은 곧 꽃 발자국을 따라 범지의 처소에 이르러 그 여자를 청하였는데, 그녀의 단정한 모습에 반하여 범지에게 그 딸을 달라고 청하였다. 범지가 곧 왕에게 딸을 주니, 왕은 그녀를 세워 둘째 부인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 여자는 어릴 때부터 선인이 길렀기 때문에 그 받은 성질이 단정하고 곧아 부녀들의 애교에 대한 일은 알지 못하였다. 그 뒤에 그녀가 아이를 배자 관상쟁이는 점을 치고는 '장차 아들 천 명을 낳으리라'고 하였다. 큰 부인은 그 말을 듣고 시기하고 질투하여 차츰 계교를 부렸다. 그리하여 은혜를 두터이 하여, 그 녹녀(鹿女) 부인의 좌우 시종을 불러 달래고 재물과 보배를 넉넉히 주었다.
그 때 녹녀는 달이 차서 천 송이 연꽃을 낳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려 할 때에 큰 부인은 어떤 물건으로 그의 눈을 흐리게 하여 보지 못하게 하고, 다 썩은 말 허파를 임부 밑에 바쳐 두고, 천 송이 연꽃은 함 안에 담아 강물에 띄워 버렸다. 그리고는 눈을 풀어 주면서 말하였다.
'네가 낳은 아기를 보아라. 한 덩이 썩은 말 허파뿐이구나.'
왕은 사람을 보내어 물었다.
'무엇을 낳았는가?'
'다 썩은 말 허파를 낳았습니다.'
그 때 큰 부인은 왕에게 말하였다.
'왕은 미혹하시기를 좋아하십니까? 축생이 낳고 선인이 기른 그 여자는 이 상서롭지 못한 썩은 물건을 낳았습니다.'
왕의 큰 부인은 둘째 부인의 지위를 물리치고 다시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때 오기연왕(烏耆延王)은 여러 시종과 부인과 미녀들을 거느리고 강 하류에서 놀다가, 누런 구름 일산이 강 상류에서 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저 구름 일산 밑에는 반드시 신비한 물건이 있으리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사람을 보내어 누런 구름 밑으로 가서 살피다가 함이 하나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건져 와서 열어 보았다.
거기는 천 송이 연꽃이 있는데, 꽃 한 송이마다 아이 하나씩이 있었다. 그것을 데려다 길렀는데, 그들은 차츰 자라나 모두 큰 역사의 힘이 있었다.
오기연왕은 해마다 늘 범예왕에게 공물을 바쳐 왔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공물을 모아 싣고 사자를 보내어 떠나려 할 때, 여러 아들들이 물었다.
'무엇하려 하십니까?'
왕이 대답하였다.
'저 범예왕에게 공물을 바치려고 하는 것이다.'
아들들이 모두 말하였다.
'우리 한 아들로도 천하를 항복 받아, 모두 와서 공물을 바치게 할 수 있거늘, 하물며 우리 천 명 아들이 있으면서 어찌 남에게 공물을 바치겠습니까?' 그들은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나라를 차례로 항복 받으면서 범예왕의 나라로 갔다. 왕은 그 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온 나라에 영을 내렸다.
'누가 저 도적을 물리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물리칠 사람이 없었다.
둘째 부인이 그 부름을 받고 와서 말하였다.
'제가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왕은 물었다.
'어떻게 물리칠 수 있는가?'
부인은 대답하였다.
'다만 나를 위해 백 발[丈] 되는 대(臺)를 만들어 주소서. 내가 그 위에 앉으면 틀림없이 물리칠 수 있습니다.'
대를 다 만들자 둘째 부인은 그 위에 앉았다.
그 때 천 명 아들은 활을 들어 쏘려 하였으나 손이 저절로 들리지 않았다. 부인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삼가 부모를 향해 손을 들지 말라. 나는 너희들의 어머니다.'
그들은 물었다.
'무슨 징험으로 우리 어머니인 줄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대답하였다.
'내가 만일 젖통을 눌러 한 젖통에서 5백 줄기씩 젖이 나와 너희들 입에 각각 들어가면 그것이 어머니인 표요, 만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어머니가 아니다.'
그는 곧 두 손으로 젖통을 눌렀다. 한 젖통에서 5백 줄기 젖이 나와 천 명 아들 입에 들어가고, 다른 군사들은 아무도 얻어먹지 못하였다. 천 명 아들은 항복하고 부모를 향하여 참회하였다.
이에 여러 아들들은 서로 화합하고 두 나라는 원한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권하고 이끌어, 5백 아들은 친 부모에게 주고 5백 아들은 양부모에게 주었다.
그 때 두 나라 왕은 염부제를 나누어 가지고, 각기 5백 아들을 길렀느니라.”
부처님께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알고 싶은가? 그 때의 천 명 아들은 바로 저 현겁(賢劫)의 1천 부처요, 질투하는 부인으로 눈을 흐리게 한 이는 바로 저 교린(交鱗)의 눈 먼 용이며, 그 아버지는 바로 백정왕(白淨王)이요, 어머니는 바로 저 마야부인이었느니라.”
비구들이 아뢰었다.
“그 여자는 어떤 인연으로 사슴 뱃속에서 나와 발밑에 연꽃이 났으며 또 어떤 인연으로 왕의 부인이 되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여자는 지난 세상에 빈천한 집에 태어났는데, 모녀 둘이서 밭에서 김을 매다가 어떤 벽지불이 발우를 들고 걸식하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그 딸에게 말하였다.
'나는 집에 있는 내 밥을 가져다 저 쾌사(快士)에게 나누어 주고 싶다.'
그 딸도 말하였다.
'저도 제 몫을 가져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곧 집으로 돌아가 두 사람 몫을 가지고 와서 그 벽지불에게 주기로 하고 떠났다.
그 동안에 딸은 그를 위해 풀을 베어 풀 자리를 펴고 꽃을 따서 위에 흩어 깔고는 벽지불이 앉기를 청하였다.
딸은 그 어머니가 더디 오는 것을 이상히 여겨 높은 곳에 올라가 멀리서 오는 어머니를 바라보고 말하였다.
'사슴이 달리듯 왜 빨리 오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이르자 그 더딘 것을 미워해 원망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어머니 곁에서 난 것은 사슴 곁에서 난 것보다 못합니다.'
그 어머니는 두 몫으로 나눈 음식을 벽지불에게 주고 나머지는 모녀가 같이 먹었다.
벽지불은 다 먹고 나서 바리를 허공에 던지고 그것을 따라 허공에 올라 열여덟 가지 신변을 나타내었다.
그 때 그 어머니는 매우 기뻐하면서 서원을 세웠다.
'나로 하여금 장래에 거룩한 아들을 낳되 지금 저 성인과 같게 하소서.'
이런 인연으로 그 뒤에 5백 아들을 낳아 모두 벽지불이 되었는데, 한 쪽은 양모가 되고 한 쪽은 생모가 된 것이다.
또 그 어머니를 사슴 달림에 비유하여 말한 인연으로 사슴 뱃속에서 나서 다리는 사슴 다리 같았으며, 꽃을 따서 벽지불에게 흩었기 때문에, 그 발자국에서 천 송이 꽃이 났고, 또 풀을 깔았기 때문에 항상 왕의 부인이 된 것이다.
그 어머니의 후신은 범예왕이 되었고, 딸의 후신은 연화 부인이 되었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그 뒤 현겁의 1천 성인을 낳았고, 그 서원의 힘으로 항상 성현을 낳았느니라.”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여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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