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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백만장자, 문전걸식 웬 말인가?

by 혜명(해인)스님 2021. 11. 27.



지난날 백만장자, 문전걸식 웬 말인가?

      기력도 눈도 내 것이 아니다.
      옛 사람들이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한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나이가 구십이나 백 살이 된 분들에 비하면 내 나이가 아무 것도 아니겠지만, 나이가 드니 정말 세월이 화살 같고 번갯불 같습니다.

      시간은 눈동자보다도 귀중하다고 하는데, 젊어서는 몇 만 년이나 살 것처럼 시간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젊어서 시간의 중요함을 안다면 공부를 많이 하고 옳은 일만 할 텐데 그렇지를 못하니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이 오고, 저녁을 먹고 나면 다음날 아침 시간이 돌아오듯이 늙고 죽는 일 또한 그렇듯 빨리 돌아옵니다. ​

      참으로 허망한 세상인 것입니다.
      그런 허망함을 느꼈기에, 허망한 말을 하나 적어 보았습니다. ​

      무정방초는 해마다 푸르건만
      어찌하다 내 청춘은 한번 가고 못 오는가.
      몸에는 생로병사, 마음에는 생주이별(生住異滅) 뜨거운 불에 타니
      병들어 누운 몸이 한숨 끝에 눈물짓네. ​

      인생의 무상을 말한 것입니다.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력도 내 것이 아니고, 눈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눈도 보이지 않고, 음식도 맛이 없으며, 귀도 잘 들리지 않으며, 저녁이면 잠도 쉽게 오지 않습니다. 겪어 보지 않고서는 이런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세상을 많이 산사람들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겨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정신 차려 할 일을 해야 합니다. ​

      왕성 옛터에 봄빛은 여전하건만
      왕손은 간 곳 없고
      새들만 지저귀며 궁전은 무너지고 주춧돌만 남았는데
      궁녀(宮女)의 혼이런가.
      꽃들만 웃는구나.

      이것은 제왕가의 무상함을 노래한 것으로, 내가 조금 보태어 만들어 보았습니다.​

      덧없는 무정 세월은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 되니 원수를 도와주자 인과응보 분명하네.
      어제의 백만장자 문전걸식이 웬 말이며
      어제의 만승천자 철장신세 웬 말이냐 ​

      부자도 벼슬도 믿지 밀라,
      부귀빈천의 무상을 말한 것입니다.
      멀리 돌아볼 것도 없습니다.
      가까이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들을 한번 돌아봅시다.
      지금 어떻게 되어있습니까.
      또한 우리 주변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들에게 닥친 변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보름달이 수그러들어 그믐달이 되고, 그믐달이 차서 또 보름달이 되는 것이니, 부자도 벼슬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올라가면 떨어지고, 부자가 되면 다시 가난해지는 세상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무슨 일이 늘 내 마음대로 될 줄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자기운이 좋을 때가 있으니 잘 될 때는 잘 되는데, 또 어느 시기에 이르면 잘 안 될 때도 오는 것입니다. ​

      부처님께서는 ‘개천에 물이 마르면 벌써 큰물이 질 줄 알고, 가물면 큰비가 올 줄 알고, 달이 기울면 커질 것임을 알고, 물건 값이 떨어지면 다시 오를 줄 알라’ 고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남들이 고추 농사를 지어 쾌 이익을 보았다고 해서 이미 시기가 지났는데도, 미련하게 고추 농사지으면 망하고 마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아무쪼록 잎의 징조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합니다. ​

      세우細雨는 쾌청하여 벌 나비 춤추고 버들가지 푸른 곳에 꾀꼬리 노래하는 풍광을 즐기는 청춘 남녀들의 봄놀이가 한창인가 하면, 어느 사이에 벌써 사월 난풍에 밀보리가 누렇게 물들고 산과 들에는 녹음이 우거졌는데 벼 자라는 논두렁에 뜸북새 우는 여름날이 되었으며 , 이슬 젖은 풀밭에 반딧불 날고 쓸쓸한 들 가에 오동잎 지며 명을 재촉하는 가을벌레 춤추고 노래하는 칠, 팔월인가 하면, 벌써 어느 사이에 천산만야에 단풍 들자 낙엽지고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철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눈 날리는 강 위에서 얼음 타는 동절이 되었으니, 이것이 춘하추동 사시절의 무상이다. ​

      원력이 곧 핸들이다 안에 있다 밖에 나가서 보리가 나오고 꽃이 만발한 것을 보니 세월이 빠름을 알겠습니다. 봄이 오면 곧 여름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젊을 때는 봄이 지루한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 잠깐입니다. 죽는 날을 항상 생각하고 조심하고 노력해서 살아야 합니다.
      안으로 부지런히 공부하고, 밖으로 남을 도와주는 일, 즉 복혜쌍수福慧雙修,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힘이 있을 때에 이 두 가지를 닦아야 합니다.
      안으로 주인을 찾는 이, 또 밖으로는 남을 도와주는 일이 내가 살 길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삽니다. 게으른 일은 수월하지만, 복을 짓는 일이나 공부하는 일은 어렵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고 이래저래 생각만 하다가 세월이 다 가버립니다. 지혜를 닦고 복을 짓는 일,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다들 빚만 지고 살고들 있습니다.

      남이 해 주는 밥도 빚이고, 입고 다니는 것도 모두가 빚입니다.
      우주만물의 힘을 입고 사는데 자신은 만물을 도와주지도 않고 사람의 신세만 지고 살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아무리 가기 싫어도 틀림없이 지옥에 갔다 오게 되고, 그러고 나서 산에 가면 호랑이 밥, 들에 가면 독사 밥, 물에 가면 물고기 밥이 되는 신세가 될 따름입니다.

      이러한 불변의 법칙을 아는 사림들은, ‘어쩌다 내가 사람의 몸을 받았던가, 도 닦는 법을 만났던가. 감사하고 만족할 뿐더러, 나아가서는 실천해야겠다는 큰 원을 세우고 살아야합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일이 성공하려면 원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자동차의 핸들이 고장이 나면 그 밖의 다른 것은 모두 새 것이라 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사람의 원력은 곧 자동차의 핸들입니다.
      원력이 지중하면 괴로운 줄을 모릅니다.
      ‘이렇게 살아야겠다. 는 주체가 서면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달마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역대 부처님과 도인들이 저절로 성불한 것이 아니다.
      무량겁을 두고서 고행, 난행을 해 성불하셨는데, 중생들은 애를 쓰지도 않으면서 공부가 안 된다고들 한다.” 출세간법에서나 세간법에서나 노력을 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스님 상좌 가운데 혜적이라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인물에 어찌나 잘생겼던지 모든 스님들이 모이면 그 가운데에서도 뛰어나게 도드라져 보였습니다. 누구든지 그 스님의 얼굴을 보면 저 사람은 하늘의 사람이지 여기 사람이 아니다.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잘생길 수가 있느냐‘, 그렇게 말할 만큼 인물이 뛰어났습니다. 인물뿐만 아니라 재주도 퍽 뛰어났습니다.

      책을 한 권 주면 그 자리에서 그냥 외워 버릴 정도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자운스님이 통도사에 계실 때의 일입니다. 혜적스님이 자운스님을 찾아와서, ‘증도가를 외우려고 하는데 증도가가 들어 있는 어록 한 권만 빌려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빌려 주었더니 그 이튿날 바로 돌려주더랍니다.

      “어제 빌려갔는데 다 보고 나서 주지, 왜 벌써 가져왔느냐.
      “어제 하루에 다 외웠습니다.”
      “어디 한번 외워 봐라.”

      그러자 그 자리에서 외운 것을 소리 내어 줄줄 암송하더랍니다.
      내가 그 말을 자운스님에게서 듣고 ‘노력가는 있어도 천재는 따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어느 날 우연히 다른 사람이 혜적스님에게 묻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스님은 어찌 그리 재주가 많습니까.” “재주 많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에 잠을 자지 않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지 결코 재주가 뛰어나거나 천재가 아닙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에는 잠도 자지 않고 먹을 것도 먹지 않고 노력합니다.” 역시 노력가는 있어도 천재는 없는 것입니다. ​

      세월은 말없이 흘러가는데
      시름만 서리서리 끝이 없구나.
      머리 위의 센 터럭만 늘어 가는데
      여윈 얼굴 가련 코 불쌍하구나. ​

      여러분은 차례차례 세상 떠나고 나만 홀로 쓸데없이 살아남았네. 가시는 임 그리워 통곡을 하니, 오호라 슬프다 백 년도 허망하다 다만 영생불멸한 도를 닦을 뿐이네, 우리에게는 허공보다도 더 크고 변하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조그마한 재산, 재주, 권리에 속으면 안 됩니다. 시방세계가 다 내 것인데, 내 것을 이용하지 못한 채 뺏기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시방세계가 다 내 것이고 내 몸뚱이인데, 왜 이런 말을 믿지 않습니까.
      그런 물건이 하나 있으니, 다른 세상일에 속지 말고 부지런히 도를 닦아야합니다.

      -혜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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