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문(自警文)-야운스님
나의 말을 들어라. 수많은 사람들이 공허로운 문( 空門 ) 안에서 도를 얻었지만 너는 어찌하여 이토록 오랫동안 괴로움 속에서 전전하고 있는가? 너는 시작함도 없는 예전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깨달음을 등지고 세상의 티끌에 부합한 채 어리석고 어리석은 지경에 떨어져 항상 여러 악업을 지어 삼도( 三途 )의 괴로운 수레바퀴 아래로 들어갔으며 모든 선업을 수행하지 않았기에 사생( 四生 )의 업 바다로 빠진 것이다. 신체는 여섯 도적(六賊 )을 따른 까닭에 언제나 악취에 떨어지니 곧 지극히 고통스러운 것이며, 마음은 일승( 一乘 )을 등진 까닭에 언제나 사람의 길로 태어나도 곧 부처님의 이전이거나 이후인 것이다. 금생에도 다행히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때는 바야흐로 부처님 이후의 말세이니 오호 애통하도다! 이는 누구의 잘못인가? 비록 그렇지만 너는 능히 반성하여 애욕을 베어내고 출가하여 발우를 받아 지니고 큰 법복을 입고서 세속을 벗어나는 길을 밟으며 빈틈없는 오묘한 불법을 배우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용이 물을 만난 듯하고 범이 산에 의지한 듯 하기에 그 뛰어나고도 오묘한 이치는 말로 다 할 수 없도다. 사람은 예전과 지금이 있으나 법은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사람은 어리석음이나 지혜로움이 있으나 도에는 번성과 쇠락이 없으니, 비록 부처님의 시대에 태어나더라도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이며 설령 말세에 자리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행하면 어찌 손해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세존께서 이르기를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아 좋은 약을 처방할 것이지만 먹고 먹지 않고서는 의사의 허물이 아니며, 또한 나는 선한 길잡이와 같아서 사람들을 착한 길로 인도할 것이지만 듣고도 가지 않는 것은 길잡이의 잘못이 아니다. 스스로를 이롭게 하여 남을 이롭게 하는 길은 법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만약에 내가 오래도록 머무르더라도 또한 무슨 이익이 있을 것인가. 이제부터는 나의 모든 제자들이 차례로 옮아가며 이를 행하면 곧 여래의 법신( 法身 )은 항상 머물러 있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만약 이와 같은 이치를 안다면 단지 스스로 도를 닦지 않음을 한탄할지언정 어찌 말세임을 근심하겠는가? 엎드려 바라건대, 너는 모름지기 굳세고도 힘찬 뜻을 일으키고 특별히 꿰뚫은 가슴을 열어 젖혀서 모든 인연을 남김없이 버리고 뒤바뀐 생각들을 제거하여 진실로 삶과 죽음이라는 큰일을 위하여 조사의 화두( 公案 )로 마땅히 깊이 연구함에 큰 깨달음으로써 법칙을 삼을 것이니, 결단코 스스로를 가벼이 여겨 물러서지 말 것이다. 말세의 운을 생각건대 성인이 가신 지는 요원하니 마군은 강성하고 불법은 미약하여 사람들은 많이 간사하고도 거만하며, 남을 도와 이루려는 자는 적고 남을 해치려는 자는 많으며, 지혜로운 자는 드물고 어리석은 자는 많으며, 스스로 도를 닦지 않음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괴롭히니 무릇 도에 장애가 되는 인연이 있음에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대가 길을 잘못 들까 하여 내가 조그만 견해로써 열 가지 문을 마련하여 너를 경책하고자 한다. 너는 모름지기 믿고 굳게 지니며 하나라도 어기지 말 것이니,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이다. 송( 頌 )하여 이르기를 미련한 마음에 배우지 않으면 교만심만 더해 가고, 어리석은 뜻에 닦음이 없으면 자만심만 자라난다. 빈 뱃속에 마음만 높으면 마치 굶주린 범과 같으며, 아는 것 없이 노닐기만 하면 마치 넘어진 원숭이와 같다. 삿된 말과 마군의 말은 흔쾌히 받아 듣고, 성인의 가르침과 현인의 글귀는 기어코 듣지 않으니, 착한 길로는 인연이 없음에 그 누구 너를 제도할 것인가, 길이 추한 구덩이에 빠져 괴로움이 몸을 감쌀 것이다. 그 첫 번째로 말하노니,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은 결단코 받아쓰지 말라. 밭 갈고 씨 뿌림으로부터 먹고 입기에 이르기까지 비단 소나 사람이 드린 노력 막중함은 물론 벌레들 역시 해를 입는 일이 한량이 없다. 저들의 힘을 수고롭게 하여 나를 이롭게 하는 것도 오히려 마땅치 않는 것인데 하물며 다른 이의 생명을 죽여서 나를 살린다면 이를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농사짓는 사내도 주리고 추운 괴로움이 늘 있으며 배 짜는 아낙도 몸을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오랫동안 손을 노닐면서 주리고 춥다고 어찌 싫어하는 마음을 내겠는가. 부드러운 의복과 맛있는 음식은 응당 그 은혜만 무겁게 할 뿐 도에는 손해되는 것이며, 헤진 옷과 소박한 음식은 반드시 시주의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이기에 남몰래 덕을 쌓는 것이로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이라도 삭이기 어려울 뿐이다. 송( 頌 ) 하여 이르기를 풀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배를 달래고, 소나무 껍질과 풀 옷으로 이 몸을 가리며, 들녘의 학과 푸른 하늘의 구름으로 벗을 삼고, 높은 봉우리와 깊은 골짜기에서 남은 세월을 보낼 것이다. 그 두 번째로 말하노니, 자신의 재물은 아끼지 말고 남의 물건은 탐내지 말라. 삼도( 三途 )의 괴로움 가운데 탐욕의 악업이 그 처음이며 육도( 六度 )로 들어서는 문 가운데 보시를 행함이 으뜸을 차지한다. 아끼고 탐내는 마음은 능히 선한 길을 가로막고 자비로운 보시는 필시 악한 길을 막아설 것이다. 만일 빈곤한 사람이 와서 구걸하면 비록 궁핍하더라도 인색하지 말라. 올 때는 하나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갈 때도 빈 손으로 갈 뿐이다. 자신이 재물에 연연해하는 뜻이 없음에 다른 이의 물건에 어찌 마음을 둘 것인가. 1만 가지가 있더라도 실어 나르지 못하며 오로지 업( 業 )만이 이 몸을 따를 뿐이다. 사흘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물이 될 것이요 백 년 동안 탐내어 모은 물건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될 뿐이다. 송( 頌 ) 하여 가로되 삼악도의 괴로움은 본디 어디에서 생기는가? 단지 많은 생에서 익혀온 탐욕과 애욕의 뜻이로다. 우리 부처님의 한 벌 옷과 하나의 발우는 삶의 이치를 만족시키거늘, 어찌하여 쌓고 모음으로써 길이 무명에 있을 것인가. 셋째, 말은 적게 하고 행동을 가볍게 하지 말라. 몸을 가벼이 움직이지 않으면 산란한 마음이 가라앉아 선정( 禪定 )을 이루고,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을 돌이켜 지혜를 이룰 것이다. 실상은 말을 떠나고 진리는 동치 않는다. 입은 화( 禍 )의 문이니 반드시 엄하게 지켜야 하고 몸은 재앙의 근본이니 가벼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자주 나는 새는 그물에 걸리기 쉽고 가벼이 날뛰는 짐승은 화살에 맞을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6년을 설산에 앉아 움직이지 아니했고 달마 스님은 소림굴에서 9년을 말이 없이 지냈다. 후세에 참선하는 이가 어찌 이 일을 본받지 않겠는가. 송( 頌 )하여 가로되 몸과 마음 선정에 들어 동하지 않고, 뗏 집에 홀로 앉아 왕래를 끊으라. 고요하고 고요하여 아무 할 일이 없으면, 내 마음 부처를 보고 귀의 하리라. 넷째, 좋은 벗을 친하고 나쁜 벗을 멀리 하라. 새가 쉴 때는 숲을 가려 앉듯, 사람도 배우려면 스승을 잘 선택하여야 한다. 좋은 숲을 찾으면 편히 쉴 수 있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학문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좋은 벗은 부모처럼 섬기고 나쁜 벗은 원수처럼 멀리해야 한다. 학은 까마귀를 벗하지 않는다. 붕새( 鵬 )가 어찌 뱁새를 짝하겠는가. 소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칡은 천길 이라도 올라가지만 잔디 가운데 자라는 나무는 석자를 면할 수 없다. 착한 마음이 없는 소인들은 그때마다 멀리하고 뜻이 높은 사람들은 항상 가까이 친하라. 송( 頌 )하여 가로되 가고 오고 어느 때나 좋은 벗을 사귀어, 몸과 마음 결택하여 번뇌의 가시덤불 벗어나라. 번뇌의 가시덤불 벗어나 앞길이 툭 트이면, 한 발짝 옮기지 않고 조사관( 祖師關 )을 뚫으리라. 다섯째, 삼경 외에는 잠자지 말라. 끝없는 오랜 세월을 두고 수도를 방해하는 것은 잠 보다 더한 것이 없다. 하루 종일 맑은 정신으로 의심을 일으켜 흐리지 말고 앉고 눕고 가고 오고 자세히 마음을 살펴보라. 한평생 헛되이 보내면 두고두고 한이 될 것이다. 무상은 찰나라 나날이 놀랍고 두려우며 사람의 목숨은 잠깐(瞬間)이라 잠깐도 보증할 수 없다. 만약 조사의 관을 뚫지 못했다면 어떻게 편안하게 잠잘 수 있겠는가. 송(頌)하여 가로되 잠 뱀이 구름 끼니 마음 달이 흐려져, 도 닦는 가람이 여기 와서 갈 바를 모른다. 이 속에 날쌘 칼 빼어들면, 구름은 흩어져서 마음 달 밝으리라. 여섯째, 나를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인( 仁 )을 닦고 얻는 데는 겸양이 근본이고 벗을 친하고 사귀는 데는 공경과 믿음이 으뜸이 된다. 사상산( 四相山 )이 높아지면 삼도의 바다가 깊어진다. 겉으로 나타난 위의는 존귀한 듯 하지만 안은 텅 비어 썩은 배와 같다. 벼슬이 높을수록 마음을 낮게 가지고 도가 높을수록 뜻을 더욱 낮게 하라. 인아산(人我山)이 무너지는 곳에 무위도(無爲道)가 이루어진다. 마음이 겸손하면 온갖 복이 스스로 돌아온다. 송( 頌 )하여 가로되 교만한 티끌 속에 지혜 묻히고, 인아산 봉우리에 무명 번뇌 자라난다. 잘난 체 안 배우고 늙어진 뒤에, 병들어 신음하며 한탄만 한다. 일곱째, 재물과 여색을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몸을 해치는 것은 여색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도를 잃게 하는 것은 재물에 미칠 것이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율을 제정하여 재물과 색을 엄금하시되 "여인을 보거든 독사와 호랑이처럼 여기고 금(金)옥(玉)이 몸에 닿거든 나무나 돌을 대하는 것 같이 하라" 하신 것이다. 비록 어두운 방에 홀로 있더라도 큰 손님을 대한 듯이 하고 남이 볼 때나 안 볼 때나 한결같이 해서 안과 밖을 달리하지 말라. 마음이 깨끗하면 선신이 수호하고 여색을 생각하면 천신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선신이 보호하면 험한 곳에 있어도 편안하고 천신들이 용서하지 아니하면 비록 편안한 곳에 있어도 불안하게 된다. 송( 頌 )하여 가로되 이욕( 利慾 )은 염라대왕이 지옥으로 인도하고, 청정( 淸淨 )은 아미타불이 연화대로 보셔간다. 고랑 차고 지옥가면 고통이 천 가지나 되고, 배를 타고 연대에 나면 기쁨이 만 가지나 된다. 여덟째, 세속 사람과 사귀어 남에게 미움 받지 말라. 마음속에서 애욕을 끊어 버린 이를 사문이라 하고 세상일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한다. 이미 애정을 끊고 세상을 떠났는데 무엇 하러 세상 사람과 다시 사귀어 놀 것인가. 세속을 그리워하고 못 잊어하면 도철이 된다. 도철은 유래로 도심이 없다. 인정이 짙으면 도에 가는 마음이 멀어지니 냉정히 인정을 버려 길이 인정을 돌아보지 말라. 만약 출가의 뜻을 져버리지 않으려면 명산을 향하여 묘한 이치를 연구하라. 가사와 발우로 인정을 끊고 주리고 배부른데 무심하면 저절로 도가 높아질 것이다. 송( 頌 )하여 가로되 남과 나를 위하는 일 비록 작은 선이나, 그건 모두가 윤회생사의 씨앗. 솔바람 칡넝쿨 달빛 아래서, 타락 없는 조사선( 祖師禪 )을 닦아라. 아홉째,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칭찬하고 헐뜯는 말을 듣더라도 마음에 생각을 통하지 말라. 잘한 일 없이 칭찬을 받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요 허물 있어 시비를 듣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기뻐하면 잘못을 고치게 되고 부끄러워하면 도 닦는데 채찍질이 될 것이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마침내는 그 허물이 내게로 돌아온다. 남을 해치는 말을 들으면 부모를 헐뜯는 말과 같이 생각하라. 오늘 아침에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 같지만 내일은 다시 내 허물을 말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모든 일이 다 허망한 것인데 비방과 칭찬에 어찌 걱정하고 기뻐할 것인가. 송( 頌 )하여 가로되 종일토록 남의 잘못 시비하다가, 밤이 되면 흐리멍텅 잠에 빠지니, 이 같은 출가는 빚만 늘어서, 삼계를 벗어나기 더욱 어렵다. 열째, 대중과 함께 살면서 마음을 평등하게 가지라. 애정을 끊고 부모를 하직한 것은 온 세상을 평등하게 보기 때문이다. 만일 가깝고 먼 것이 있다면 마음이 평등하지 못할 것이니 비록 출가하나 무슨 덕이 있겠는가. 마음에 사랑하고 미워하며, 취하고 버림이 없다면 어찌 이 몸에 괴롭고 즐거운 성쇠가 있으랴. 평등한 성품에는 나와 남이 없고 큰 거울에는 멀고 가까운 것 없다. 삼악도에 드는 것은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육도에 오르내리는 것은 친하고 성긴 업으로 이루어진다. 마음이 평등하고 가지고 버릴 것이 없으니 가지고 버릴 것이 없다면 생사가 어디 있겠는가. 송( 頌 )하여 가로되 위없는 보리도를 얻고자 하면, 언제나 마음을 평등이 가지라. 만일 사랑하고 미워하는 차별이 있으면, 도는 더욱 멀어지고 업만 깊으리라. 주인공아! 그대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눈 먼 거북이 나무토막을 만난 것처럼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한 평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게으름만 피우겠느냐.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어렵지만 불법 만나기는 더욱 어려운 일, 금생에 놓쳐 버리면 만겁을 지내도 다시 만나기 힘든다. 이 열 가지 계법을 지키고 부지런히 닦아 물러나지 말고 속히 정각을 이루어 중생을 제도하라. 내가 바라는 것은 그대 혼자만 생사의 바다에서 뛰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을 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가 끝없는 옛적부터 금생에 이르도록 생사에 오락 가락 할 때 번번이 부모를 의지했을 것이니, 그 끝없는 세월에 부모 되었던 이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이와 같이 생각하면 육도의 중생이 그대의 부모 아닌 것이 없다. 이러한 중생들이 모두 악도에 떨어져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밤낮으로 받고 있으니 그들을 제도하지 않는다면 어느 때 벗어날 것인가. 가슴을 오리는 듯 애닯고 슬픈 일이 아닌가. 천만 번 바라노니 그대는 어서 큰 지혜를 밝히고 신통변화를 갖추어 자유자재한 방편으로 거치른 파도에 지혜의 배가 되어 탐욕의 기슭에서 헤매는 미혹의 중생을 제도하라. 그대는 아는가. 삼세 부처님의 역대 조사들이 우리와 같은 범부였다는 사실을, 그도 장부요 나도 장부이니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옛 사람의 말에 "도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도를 멀리한다" 하였으며, 또 "내가 착하려고 하면 착한 것이 스스로 따라온다." 하였으니 진실로 옳은 말이다. 만일 믿는 마음만 물러서지 않는다면 누가 자신을 깨쳐 부처를 이루지 못하겠는가. 이제 삼보를 모시고 낱낱이 그대에게 경계하였으니 만일 잘못인줄 알면서 일부러 범한다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 송( 頌 )하여 가로되 옥토끼( 달 ) 뜨고 짐은 늙음을 재촉하고, 금까마귀( 해 ) 들락날락 세월을 재촉한다. 명예 이익 구하는 것은 아침 이슬 같고, 혹 괴롭고 혹 즐거운 것 저녁 연기와 같다. 너에게 은근히 도 닦기를 권하노니, 속히 불과( 佛果 )를 이루어 중생을 건지어라. 이 생에 나의 이 말을 쫒지 아니하면 후세에 반드시 한이 만단이나 될 것이다. -야운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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