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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과 동행을/💕법문의도량

한세상 연극배우 노릇을 멋지게 하다 가라.​

by 혜명(해인)스님 2021. 12. 1.



한세상 연극배우 노릇을 멋지게 하다 가라.​-혜암스님


      모든 착한 일을 하는 것도 다 헛것이요.
      모든 악업을 짓는 일도 역시 거짓이더라.
      선악이 몽중사라고, 착한 일과 나쁜 일이 다 허망한 꿈 속 일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났다 없어지는 것은 다 헛것이니, 우리가 참 허망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소식이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요 본 고향 살림살이인데, 일어났다 없어지는 마음에 의지해 살려니까 전부 헛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헛것입니다.
      그러니 부부간에 살 때도 그 마음으로 살았고, 부자간, 모녀간의 생활도 그 마음을 의지해서 살았지 다른 마음을 의지해서 산 적은 꿈에도 없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착하다’ 는 말만 있는 것이지, ‘착한 일’ 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일을 가지고 잘하려고 하는 사람은 똥으로 황금을, 진흙으로 백옥을 만들려는 사람입니다. 했다는 생각을 내면 죄가 되기 때문에 세상에 살면서도 사는 것 없이 살고, 먹어야 먹는 것 없이 먹고, 가야 가는 것 없이 가고, 말해야 말하는 것 없이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재주부리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재주를 부리고 똑똑한 척 하고 삽니다. 이런 병을 가지고 있으니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불법은 마음을 우는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한 세상 연극배우 노릇을 멋지게 하다가가라.
      살아도 산 것이 없이 복을 지어도 지은 것이 없이 멋지게 살라는 말입니다.
      복을 지었다는 생각을 내면 괴로움을 만드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자살법과 같습니다.
      상을 내지 마십시오.
      절에 다니는 신도들은, 그냥 돈 많이 내고 선판에 자기 이름을 올려 비석을 써 달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손해나는 줄을 모르고 그럽니다.
      이런 것을 하루 빨리 배우고 믿어야 해요.
      가르쳐 줘도 믿지 않고, 내 축원이 빠졌다느니 그런 말을 합니다.
      이는 내 말이 아니고,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불법이 그리 옹졸한 것이면 벌써 없어졌고 부처님도 스님들도 쫓겨났을 것입니다.
      말 하지 않는 가운데 다 통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마음이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고, 폼으로 하는 일은 눈을 가지고 있는 것들과 다 통합니다. 그렇게 밝은 세상인데 믿지 않고 또한 모르고 죄를 짓습니다. 절에 와서도 죄를 짓고 갑니다.

      몸은 마치 물거품과 같은 것이고 거짓으로 나온 물건은 실다운 것이 없느니라.

      우리의 몸은 인연 따라 죄를 받는 감옥인데, 며칠이나 갈 것입니까.
      깨치기 전에는 원수요 도둑놈입니다.
      그러나 깨친 뒤에는 바로 부처님 몸으로 변하기 때문에 원수이면서도 미워할 물건이 못 됩니다. 몸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몸이 있기 때문에 공부 할 일이 생겨났으므로 너무 미워하고 원수라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몸을 이용하면 부처가 되니까.

      흙 기운, 불 기운, 바람 기운, 불 기운 이 네 가지 원소로서 몸을 삼았다.

      집을 지을 때 나무나 쇠, 물 돌맹이들을 들여 집을 지었지만 각자를 본디 있던 곳으로 보내 버리면 아무 것도 남지 않듯 우리 몸도 이와 같습니다.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요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본디 없는 것입니다. 허공에 구름이 있는 것 같아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없던 것이 있다가 또 없어지지 않아요. 몸이 있지만, 있다고 보는 사람은 벌써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대로가 공空입니다. 색즉시공입니다. 눈으로 사니까 죄를 짓고 고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눈을 의지하고 살면 안 됩니다.

      법문도 말을 따라가면 법이 죽어 버려요.
      마음이 산 법문이므로 말을 따라가면 분별망상으로 말미암아 죽어 버립니다.
      공부를 공부답게 하지 않고 말로 공부를 삼으려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르쳐 줘도 부끄러운 생각도 없이, “이것이 도 아니요’ 하고 나서고 또 글을 써 옵니다.
      도는 절대 네가 있고 내가 있고, 하나가 있고 둘이 있는 것이 아닌데, 도 옆에 가지도 못한 것을 만들어 써 와서 ‘이것 아니오?’그럽니다. ‘아니다’ 하면 그 다음날 또 써 가직고 옵니다.

      어떤 사람이 유리병에 오리 새끼를 넣어 길렀답니다.
      오리가 모이를 주워 먹고 병에 꽉 차버렸습니다.
      오리도 상하지 않고 유리병도 깨지 않고 오리를 꺼내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 대답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유명한 남전스님이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문제를 낸 사람을 불렸습니다.

      “아무개야”
      “네”
      “오리가 나오지 않았느냐?”
      이렇게 법이 돌아가는데 어떻게 하면 이 병을 깨지 않고 오리를 꺼낼까,
      말을 띠라 만년을 생각해도 대답을 못합니다.
      불법의 거량은 말을 따라가면 속고 어긋나 버려요.
      나밖에는 법이 없으므로 나에게서 나와야 합니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어느 처사에게 이 문제를 냈더니,
      한 십오일 만에 ‘알았노라’ 하고 와서 대답을 하는데 엉터리였습니다.
      이리 저리 억만 년을 따져도 말을 따라가면 죽습니다.
      진리는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세상 분별심으로 따져서는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 외에는 부처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나한테 돌아와야 해요.

      나는 큰 절에서 법문을 하면서도, 법문처럼 싱거운 것이 없는데 또 이렇게 하기 싫은 법문을 한다고 그럽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필요하고 귀중한 것 같지만, 참말로 공부하는 사람들은 말이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지옥을 못 면합니다.
      화두를 깨달은 것에서 정답이 나옵니다.
      말로 대답하는 것은 부처님이 대답을 해도 정답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말로 거량하고 기웃거립니다.
      깨달으면 눈을 감고도 천하의 일을 다 알아 버립니다.
      하나만 알고 둘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를 다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 만일 경계가 없어질 것 같으면 마음도 또 없어지는 것이니

      견물생심이라고 보는데 따라 마음이 생기고,
      듣는 데 따라 마음이 생기고,
      냄새나는 데 따라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을 경계라고 합니다.
      여섯 알음알이 눈 귀, 코 혓바닥, 몸뚱이 분별망상의 알음알이는 경계,
      헛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 따라오지 않는 답니다.
      산 공부가 따로 있어요.
      참선이 산 공부입니다.
      우리는 전부 죽는 일만 하고 살고 있습니다.
      몸만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육근의 알음알이도 허망한 경계이기 때문에 띠라오지 못합니다.

      보는 데 따라 마음이 나지 않습니까.
      맛있는 것을 보면 먹고 싶은 생각이 나고, 호랑이를 보면 무서운 생각이 나는 것은 헛것입니다. 파도는 이름도 헛것이고 모양도 헛것 아닙니까. 환경에 의해 이름이 생겨났을 뿐이지 그것이 바닷물입니까?
      바닷물인 동시에 헛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런 헛것에 속아 살고 있습니다.
      아들딸이고 부모고 눈에 보이는 것은 다 헛것입니다.
      그러니 귀중한 사람 몸을 받았을 때 살길을 찾아야합니다.
      내가 그 공부를 해 다생의 많은 부모 형제를 도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부모 형제만 부모 형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나왔다 없어지는 것이 내 생활이 아닙니다.
      끝이 없는 세상에서 나와 앞으로도 끝여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이 세상의 부모 아들딸이 문제가 아닙니다. 좀 크게, 널리 생각해요.

      그 전생의 많은 어머니 아버지, 아들딸을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내가 성불하기 전에는 아들딸이 있을 모양인데, 얼마나 고생을 시키려고 공부를 안 합니까.
      귀중할 때를 만났습니다. 모두 탈선을 하더라도 나는 바른 길을 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 세상일을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지푸라기 값밖에 안되고 물거품 값도 못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
      맹인 한 삼백 명이 해인사에 와서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원망과 불만이 많은 분도 있겠지만, 위로의 말이 아니라, 도의 뜻만 안다면 여러분은 다시없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역대 도인들이 숨어서 공부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아시요, 그런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백만 사람 가운데에서 바보 노릇하는 것이 크게 숨는 것입니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도인들은 도가 간절하기 때문에 일부러 병신노릇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코를 풀어 빨아먹고, 숯검정을 묻히고 다니고 옷을 거꾸로 입었습니다.

      도가 간절한 사람들은 성불하기 전에는 땅에서 나온 곡식을 하나도 먹지 않겠다고 원력을 세우고 공부를 합니다. ‘사람 몸을 받아 도 닦는 길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 세상에 이 몸을 건지지 못하면, 공부를 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을 만나 공부를 하겠는가. 그렇게 뜻을 세우고는 공부를 알뜰히 하려고, 세상의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 이 땅에서 나온 곡식을 먹지 않으려고 합니다.

      눈이 성치 않는 사람들에게 물으면서 법문을 했는데, 내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내 눈이 내 눈을 봅니까, 못 봅니까?’
      “못 봅니다.
      “봉사가 자신의 눈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내가 이렇게 다시 물으니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거울을 보면 볼 수 있습니다.”
      “봉사들이 어떻게 거울을 봅니까.”
      그렇게 물으니 맹인들이 웃어 버렸습니다.
      내가 다시 물었습니다.
      “눈을 감고도 보려면 볼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볼 수 있겠소?”
      맹인들이 대답했습니다.
      “꿈을 깨면 봅니다.
      눈 성한 사람이 그 동안 이런 대답을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맹인들이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이 대답에 너무 감탄을 하여,
      “지금 대답한 것은 눈 뜬 사람이 했소, 봉사가 했소?”
      “눈 감은 사람이 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장원급제 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해 주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어디로부터 태어났는가,
      참 나로부터이니 오직 참 나를 찾기에 노력해야 한다.

      둘째, 참 나가 이 날까지 같이 하여 왔고 이 날까지 같이 돌아다녔는데도 모르니 다시 참 나를 발견하라고 알려주는 것 뿐이다.

      셋째, 우리 육신은 참 나에서 나타난 가지와 낙화 같으니 가지와 잎사귀인 육신을 자기라 알지 마라. 참 나의 뿌리가 있어서 자기라고 여기는 육신의 싹이 나온 것이다.

      넷째, 집이 비면 바깥에서 도둑이 넘보듯, 자기의 주장심이 완벽치 못하면 마가 침범한다.

      다섯째, 내가 없다면 두려움에 있을 리 없다.
      또 내가 없으니 죽음도 있을 리 없다.
      눈으로 분별해 볼 때면 나고 죽는 것이 있는 듯 하지만 번뇌는 나는 것도 죽는 것도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으로 인하여 나고 죽는 법이 되었을 뿐이다.

      여섯째, 내가 있으면 익히는 습관이 있지만 내가 없어지면 익히는 업도 또한 굳질 못한다. 이 진리를 믿지 아니하기에 온갖 번뇌와 고통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일곱째, 모든 것은 마음이 주인이고 주인공이 하는 것이지 육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이 움직이게 되는 것도, 생각나게 하는 것도, 망상이다 보리다 하는 것도, 악이다 선이다 하는 것도 모두 다 주인공인 참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여덟째, 밖으로 부처님을 믿어서는 안 된다.
      부처님이 자안의 근본 그 자체이니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

      아홉째, 모든 이름을 떠나서 근본을 찾아야 한다.

      열째, 위로는 도를 구하고, 밑으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불법이니 자기의 번뇌 망상과 수억의 중생을 제도함을 함이다.

      열한째, 자신이 스스로 건질 수 있어야 한다.

      열두째, 영웅과 위인이 있다 해도 참 나보다는 못하다.

      열셋째,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뿌리를 잘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가지도 잎도 튼튼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무르익게 되어 맛을 보게 된다.

      열넷째, 참 나는 너무나 가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생을 못 보고 있다.
      열다섯째, 사도로 뭉쳐서 이 날까지 수 억겁 년 동안 미생물로부터 모습을 진화하며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당신을 그렇게 끌고 온 주인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열여섯째, 너 자신을 알라. 자신을 알지 못하면 남을 알지 못한다.

      사람 몸을 받은 좋은 때를 만났으니 오늘 하루 살다 죽더라도 열심히 공부하십시오.

      -혜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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