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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경(觀音經)8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


-관음경(觀音經)8-
    時에 觀世音菩薩이 不肯受之어늘 無盡意― 復白觀世音菩薩言하사대 仁者는 愍我等故로 受此瓔珞하소서 爾時에 佛告觀世音菩薩言하사대 當然此無盡意菩薩과 及四衆 天, 龍, 夜叉, 乾達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 羅伽 人非人等故로 受是瓔珞하라. 卽時에 觀世音菩薩이 愍諸四衆과 及於 天 龍 人非人等하여 受其瓔珞하야 分作二分하여 一分은 奉釋迦牟尼佛하고 一分은 奉多寶佛塔하니라. 無盡意여 觀世音菩薩이 有如是自在神力하여 遊於娑婆世界하나니라. 爾時에 無盡意菩薩이 以偈로 問曰하대 世尊妙相具하시니 我今重問彼하옵나니 佛子何因緣으로 名爲觀世音菩薩이옵니까. 具足妙相尊이 偈答無盡意 하사대 汝聽觀音行의 善應諸方所할지어다 弘誓深如海하여 歷劫不思議하며 侍多千億佛하여 發大淸淨願하니 我爲汝略說하노니 問名커나 及見身하여 心念不空過하면 能滅諸有苦하리라. 【국역】 그 때에 관세음보살이 기꺼이 받지 아니하니 무진의 보살이 다시 관세음보살에게 말하되, “ 인자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이 영락을 받으소서. ” 그 때에 부처님께서도 관세음보살에게 “ 마땅히 무진의 보살과 사부대중,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마후라가, 인·비인 등을 불쌍히 여겨 이 영락을 받으라.” 고 말씀하시니, 관세음보살이 모든 사중과 천, 용, 인, 인비인 등을 불쌍히 여기사 그 영락을 받아서 두 갈래로 나누어 일부는 석가모니불 부처님께 올리고, 일부는 다보여래탑에 올렸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이 이와 같이 자재신력이 있어 사파세계에 노닐어 행하나니라.” 그 때에 무진의 보살이 게송으로써 부처님께 물어왔다. “ 묘상이 구족하신 세존이시여, 이제 다시 관세음보살에 대해 묻사옵니다. 불자가 어떤 인연으로 이름을 관세음보살이라고 하시나이까? ” 묘상이 구족하신 부처님께서 무진의 보살에게 게송으로 답하시었다. “ 관세음보살의 거룩한 덕행이 곳곳에 나타남을 네가 들으라. 큰 서원 바다같이 깊고 부사의겁 오래 살아오며 천만 억 부처님을 믿고 섬기어 크고 맑은 원력 세웠도다. 너희가 알기 쉽게 설하리니 관세음보살 명호라도 듣거나 친견하거나 마음에 섬기어 지성을 다하면, 능히 너희의 모든 고통을 멸해 줄 것이로다. ” 【이야기】 천하명당에 잠든 소금장수 노인 전북 익산에 ‘소금장수 명당’이라는 곳이 있다. 무덤 뒤에는 작은 산이 있어 북풍을 막아주고 30미터도 채 안 되는 앞에는 사시사철 물이 흐르는 시냇가 같은 농수로가 있다. 지금은 제법 큰 무덤과 조경 사업을 잘해서 눈에 잘 띄지만, 처음에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임자 없는 흙무더기나 진배없었다. 그러나 어느 스님이 초라한 그 무덤을 두고 자식 대에 자손창성과 재물이 불같이 일어나는 발복의 터인 명당이라고 찬탄하였다. 발 없는 말 천리 간다는 속담처럼 이 소문은 순식간에 인구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오가는 행인들은 초라한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사람이 가족조차 없는 불쌍한 노인이고, 또 10여년이 흘러도 변화 없이 여전히 초라한 무덤을 보고 승려가 거짓말을 했다며 코웃음을 쳤다. 해방 전, 익산의 춘포면 쪽의 마을들에 지게에다 무거운 소금 가마니를 얹어 짊어지고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 소금사시요, 소금! ”하고 외치며 소금을 파는 60대 초반의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천성이 마음이 착했지만 워낙 가난하여 식구들의 호구지책이 어려워 생계수단으로 지게에 소금가마니를 짊어지고 먼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 소금장사의 길에 나서곤 하였다. 노인은 전생에 복을 지은 것이 없어서인가, 가난 속에서 고통스러웠지만 장사를 마치고 움막집인 자신의 집으로 귀가하면 언제나 밝게 웃으며 고대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얼싸 안고 기뻐하였다. 그리고 사위가 적요한 밤이 되면 노인과 아내는 작은 상에 청수물을 떠 놓고 나직한 음성으로 합창하여 ‘ 관세음보살’명호를 반복해서 부르는 정근을 하는 기도시간을 가졌다. 기도의 소원은 자식들 대에서는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음기도는 노인의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기도방법이었다. 노인은 관음경에 적혀 있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소금 장사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그날은 전날 밤부터 눈이 많이 내려서 쌓인 눈은 발목까지 푹푹 빠질 지경이었다. 노인은 만류하는 아내와 자식을 뒤로하고 허기진 배로 무거운 소금지게를 지고 집을 나섰다. 이 마을 저 마을 애타게 소금사려! 를 외쳤지만 사람들은 추위에 내다보지도 않았다. 허기진 배, 혹한의 날씨, 걸음조차 자유롭게 옮길 수 없이 빠져드는 눈 길…. 소금을 팔 수 있는 마을 찾아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노인은 탈진하여 시야가 흐려져 왔고 도저히 더 이상 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눈은 내리는데 시야에 유독 눈이 녹은 잔디밭이 보였다. 노인은 눈 녹은 잔디밭에 지게를 받치고 지게 밑에 쪼그리고 앉아 양 무릎 사이로 두 손을 넣고 얼굴을 파묻다시피 하고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노인은 비몽사몽간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의 크고 따뜻한 방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과 함께 맛있는 요리상을 마주하여 즐겁게 식사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식사를 마치고 노인은 아내와 함께 합창하여 관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이 노인 앞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의식이 흐려져 가는 가운데 하늘에서는 눈이 그치지를 않았다. 사흘 후, 노인은 행인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이미 싸늘하게 몸은 얼어 있었다. 어디서 온 노인인지 알 수 없기에 사람들은 딱한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때마침 근처의 암자에서 사는 스님 한분이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꿈꾸듯 표정으로 얼어있는 소금 장사를 위해 스님은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독경을 하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소금장사의 시신을 죽어있는 그곳에 묻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장차 10년 안밖에 성공한 자식들이 아버지를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며,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눈이 녹아있던 그 잔디밭이 자식 대에 발복할 명당이라고 찬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명당은 아무나 들어가지 못한답니다. 돈과 권력으로도 안 되지요. 불쌍히 세상을 떠난 이 노인은 평소 음덕을 많이 쌓은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 과연 그 스님의 예언대로 10여년 후 아들들은 모두 성공하여 어머니와 함께 실종되어 버린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마을마다 소금지게를 지고 장사하던 그 노인의 모습을 이야기 하며 나타난 것이다. 노인의 아내와 아들들은 아버지의 무덤이야기를 스님에게 전해 듣고 놀라워하면서 아버지를 이장하지 않고 초라한 무덤을 크고 보기 좋게 조성했다. 그 후, 명망 있는 풍수지리학자들은 물론이요, 일반사람 까지 유명한 소금장수 명당을 보기 위해 줄을 이었다. 노인의 기도는 자신의 대에 전생의 지중한 업장인 빈천보(貧賤報)를 소멸하고, 자식 대에 발복하는 행운을 성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