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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경(觀音經)7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1.


-관음경(觀音經)7-
    應以宰官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宰官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婆羅門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婆羅門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比丘比丘尼와 優婆塞 優婆夷身으로 得度者는 卽現比丘比丘尼와 優婆塞 優婆夷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長者 居士 宰官 婆羅門婦女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婦女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童男童女身으로 得度者는 卽現童男童女身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 天 龍 夜叉 乾달婆 阿修羅 迦樓羅 緊那羅 摩侯羅伽― 人非人等身으로 得度者는 卽皆現之하야 而爲說法하며 應以執金剛身으로 得度者는 卽現執金剛身하야 而爲說法하나니라. 無盡意여, 是觀世音菩薩이 成就如施功德하야 以種種形으로 遊諸國土하사 度脫衆生하나니, 是故로 汝等이 應當一心으로 供養觀世音菩薩하면 是觀世音菩薩이 於怖畏急難之中에 能施無畏라 是故로 此娑婆世界― 皆 號之하여 爲施無畏者라 하나니라. 無盡意菩薩이 白佛言하사대 世尊이시여 我今에 當― 供養觀世音菩薩호리다. 卽解頸衆寶珠瓔珞이 價値百千兩金이라 而以與之하고 作是言호대 仁者여 受此法施 珍寶瓔珞 하소서. 【국역】 ‘재관’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 시킬 자이면 곧 재관의 몸으로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바라문’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자이면 곧 바라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장자,·거사·재관·바라문의 부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그 모든 부인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천·용·야차·건달바·아수라·가루라·긴나라·마후라가· 인간·인간 아닌·등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모두 그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며, ‘집금강신’의 몸으로 응하여 제도시킬 자이면 곧 집금강신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여 주나니라. 무진의여, 관세음보살이 이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여서 여러 가지의 형상으로써 모든 국토에 나타나 중생을 제도하고 해탈케 하나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너희는 마땅히 일심으로 관세음보살께 공양하라. 이 관세음보살 마하살은 두렵고 위급한 때에 두려운 마음이 나지 않게 베풀어 주시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이 시바세계에서는 모두 관세음보살을 두고, 중생에게 두려움이 없게 하여주는 성인이라고 하나니라.” 무진의 보살이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깨닫고 감동하여 부처님께 말씀 올렸다. “세존이시여, 관세음보살님께 제가 공양을 올리겠나이다.” 하고 목에 걸고 있던 값진 보배구슬인 영락을 풀어내리니 그 값이 백천량의 비싼 것이었다. 무진의보살은 관음보살님께 예를 갖춰 절하면서 이렇게 말씀을 올렸다. “인자시여, 법으로 보시하오니 저의 영락을 받으시옵소서.” 【이야기】 노파를 통한 관음보살의 자비 서라벌의 어두운 하늘에서는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 눈길을 사십대 초반의 부부가 머리와 어깨에 수북이 눈을 맞으면서 관음사 일주문을 벗어나 집으로 가고 있었다. 부부는 저녁예불에 참석하여 백일을 기한하고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자식을 점지해 주십사 지성으로 기도해왔다. 이 날도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남편은 박신(朴信), 부인의 성은 설씨(薛氏)였다. 백일기도도 끝나 가는데 아직 관음님은 왠지 감응이 없었다. “우리의 믿음이 아직 부족해서 딸자식 하나도 점지해 주시지 않는 것일까? ” 박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눈 내리는 하늘을 우러렀다. 남편의 속사정을 아는 설씨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이 전생에 지은 죄업이 무거워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자책하면서 소리죽여 흐느꼈다. 그들은 서러벌 왕성 밖에서 조그마한 상점인 연꽃 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들은 불교의 독실한 신도로써 다른 장사를 해서 돈을 벌기 보다는 신도들이 사가지고 불전에 바쳐지는 연꽃을 정성껏 만들어 팔아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눈길을 걸어 집이 가까운 마을 입구 쪽에 이르러 부인이 앞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 여보, 저기 눈 속에 묻힌 것이 사람 아녜요? ” “ 오―, 맞아 사람이 눈 속에 빠졌군. 어서 구해드립시다. ” 과연 눈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칠순이 넘어 뵈는 노파가 눈구덩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기력이 다해 의식이 몽롱해지는 속에 몸이 식어가고 있었다. 행색으로 보아 노파는 걸인신세였고, 더구나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다. 박신 부부는 자비심으로 주저하지 않고 노파를 구하여 등에 업고 집으로 뛰었다. 박신 부부의 극진한 간호로 노파는 의식을 회복했다. 노파는 앞을 못 보지만 뜨거운 눈물로 노안을 적시면서 고마워하면서 자신의 신세를 토로했다. “ 나는 올해로 나이가 일흔 다섯인데, 자식도 없고 친척도 없답니다. 사십에 과부가 되고 오십에 두 눈마저 안 보이고…. 이렇게 떠돌이로 이 마을로 저 마을로…." 노파는 섧게 울음을 터뜨리고는 단정히 앉아 슬픈 음색으로 ‘관음경’을 외웠다. 설씨부인은 슬프면서도 놀라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 저희도 자식이 없답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군요. 그런데 어쩜 그리도 관음경을 잘 외우세요? ” “ 늘그막에 외롭고 슬프면 관음경을 외우는 낙으로 산 답니다. 지금은 관음경을 거꾸로도 외울 수 있는 걸요. 큰 절의 고명한 큰스님도 관음경을 거꾸로는 외우시는 분은 드물걸요.” 박신 부부는 의지할 데 없는 노파를 양 어머니로 모시고 살자고 합의하고 노파에게 간청했다. “ 저희 부부가 할머니를 양어머니로 모셨으면 합니다. 돌아가시면 저희들이 장례도 잘치뤄 드릴게요. 저희와 함께 사시면서 저희에게 관음경을 가르쳐 주세요. ” 그 말을 들은 노파는 또 보이지 않는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고마워했다. 그날부터 노파는 하루 세끼의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고 따뜻한 방에서 기거할 수 있었다. 밤이면 셋이서 관음경을 외우며 뜻을 새겼다. 삼년이 흘렀다. 어느 봄 날, 노파는 설씨부인을 조용히 방안으로 부르더니 이런 말을 했다. “ 오랫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이제 나는 이 집을 떠나갈 까 합니다. ” 설씨부인은 깜짝 놀랐다. 정성이 부족해서 떠나시려는 것이냐고 하면서 더욱 정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면서 떠나시지 말라고 극구 만류했다. “ 꼭 가야 한다우.” “혹 어디 가실 데가 있나요? ” “허허허. 있고말고요.” “어딘가요, 저희 집보다 나은 곳이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만….” “주인댁 뱃속에 태어나고 싶어요. 허허….” “네? 어머나, 별 농담을 다 하시네요.” 설씨는 남편에게 양어머니의 말을 전했지만, 이상한 농담으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노파는 자기 방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요위에 단정히 좌선자세로 앉아 숨을 거두어 버렸다. 박신 부부는 생전의 약속대로 후히 장례를 치르고 천도까지 해드렸다. 선녀처럼 아름답고 지혜 총명한 처녀로 오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노파가 죽고 나서 부터 설씨의 몸에 태기가 왔다. 부부는 노파와 연관하여 생각하지 않고 오직 관음님의 감응으로 믿어 감사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열 달 만에 천금과 같은 딸을 얻었고, 이름을 향련(香蓮)이라고 지었다. 향련은 커갈수록 보통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상선녀와 같은 미모와 총기를 보였다. 관음경을 외우는 것은 물론이요, 열 살 때부터는 대장경을 혼자서 읽고 이해했다. 글방의 선생이 놀랐고, 특히 선문답에 있어서는 서라벌에 유명한 대각선사도 쩔쩔 맬 정도였다. 또한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깊어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어느 날, 길에서 향련이 대각선사를 만났다. “ 큰스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저한테 일전어(一轉語)가 있어서….” “말해보아라.” “법화경에 ‘용녀성도(龍女成道)’이야기에 의하면, 용녀는 8세 때, 부처님께 보주(寶珠)를 바치고 득도하였다는데 저는 지금 열 살 나이로서 보주가 없습니다. 그래도 성불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 대각선사는 내심 진땀을 흘리면서 퉁명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것을 물으려면 선방으로 오너라.” “승속(僧俗), 산천이 불법의 도량이 아닌 곳이 없사오니 제 질문에 어서 대답해주세요.” 대답을 못하고 어물어물하는 대각선사를 본 향련은 날카롭게 할(喝)을 하고 대각선사가 수하고 있는 가사를 끌어내리려고 했다. 불등만 알고 심등은 모르는 승려의 머리를 갈기는 처녀 향련이 나이 열여섯 때 사월 초팔일이었다. 절에 올라가니 승려 하나가 오직 등을 팔 욕심으로 오는 신도들에게 시주만 청하고 있었다. 향련은 등을 팔려는 승려에게 다가가 진지하게 질문했다. “ 스님, 이 절에 장식한 무수한 등에서 어떤 등이 제일 밝나요? ” “ 불전에 걸어 논 비싸고 큰 등이 제일 밝지.” “불등(佛燈)은 많은데 심등(心燈)은 어디 있나요? ” “ 글쎄….” 향련은 빙긋 웃으며 그 승려의 머리를 마치 장군죽비로 경책하듯 주먹으로 두 대 내려 갈겼다. “아얏! 이 아가씨가 왜 이래? ” 승려는 뜻밖의 봉변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며 씩씩 거리는데 이를 지켜본 대각선사는 파안대소할 뿐이었다. 향련의 나이 열일곱이 되던 해 양친은 속세의 인연이 다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여 세상을 떠나갔다. 향련은 깊은 슬픔 속에 양친을 위해 불전에 지성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천상선녀처럼 아름다운 향련에게 지체 높은 집에서 혼담이 무수히 들어왔다. 향련은 왠지 결혼에 뜻이 없어 보였다. 어느 화창한 봄 날, 향련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방안에서 관음경을 앞에 놓고 단정히 좌선자세로 숨을 거두어 버렸다. 향련의 치마폭에는 사행(四行)의 사세(辭世)의 시문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본래 속세 떠난 임천(林泉)의 벗이었는데, 인연 따라 홍진(紅塵)을 밟았네. 이제 속세에 더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하여, 십일면 관음보살로 돌아가려네. 향련의 시신은 대각선사가 애도하며 정중히 거두어 화장에 붙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자 한 줄기 서광(瑞光)이 하늘을 찌를 듯 하더니 그 서광은 관음사 쪽으로 사라졌다. 향련의 몸에서는 오색의 사리가 무수히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