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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發願)과 서원(誓願)

by 이初心 2023. 10. 25.


    ○발원(發願)과 서원(誓願)

    부처님께 다짐한 맹세를 실현하기 위해 나아가는 것을 발원이라고 한다.
    안으로는 끝없이 진리를 추구하고, 밖으로는 모든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한 부처님 앞에서의 맹세를 서원(誓願)이라 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의지를 발원이라 한다.

    이는 곧 발심(發心)한 자의 수행목표이기도 하다.
    발원은 어리석고 나쁜 마음을 모두 버리고 부처님처럼 크고 넓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다짐하고 실천하려는 바람이라고도 하다.

    불교에서 ‘원(願)’은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하나의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기어코 달성하겠다고 하는 서약적인 결의이자 다짐을 말한다.

    그리고 ‘발원(發願)’이란 스스로 세운 원(願)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원(願)’이란 기필코 모든 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것과 같이 대승 보살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뜻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원은 단순히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복을 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원(願)’은 곧 희망(希望)이며 이상이다.

    사람이란 참된 희망과 영원한 이상을 지님으로써 전진이 있고 향상이 있게 된다. ‘발원(發願, Pali. patthana)’이란 발기서원(發起誓願)의 줄임말로서 중생의 본래 모습인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본 고장에 돌아가려는 근원적인 마음의 바람과 모든 존재의 본래 모습인 청정무구(淸淨無垢)의 부처님 세계를 건설하려는 근원적인 마음의 맹세를 뜻한다.

    그리하여 이 사회가 아름다운 세상이 되도록 어떤 일을 하겠다든지, 굶주리는 사람들을 위해 한량없는 보시를 베풀겠다든지 하는 참다운 원을 세우는 것이 바로 발원이다. 그래서 발원은 마음속에 원을 일으킨다고 해서 발원심(發願心), 뜻 있는 원을 세운다고 해서 발지원(發志願), 가장 높은 원을 세운다고 해서 발무상원(發無上願), 가장 큰 원을 일으킨다고 해서 발대원(發大願) 이라고도 한다.

    대승불교에서 보살의 삶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자리적(自利的) 삶이 아니라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이타적(利他的)인 삶이다.

    욕심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고, 발원은 나와 남을 함께 위한 것이다. 욕심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발원은 능동적인 것이다. 욕심은 본능이니까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내지만, 발원은 일부러 마음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예컨대, 모든 생명을 사랑하겠다는 마음이나, 머무는 바 없이 베풀겠다는 서원은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중생들을 위해서 이러 이러한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원을 세우는 것이 바로 발원이다. 다시 말해 발원이란 자신이 어떤 보살행을 행할 것인지를 마음속에 정하고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발원에는 총원(總願)과 별원(別願)이 있다.
    총원(總願)은 불⋅보살님이 누구든 모두 세우는 원을 가리킨다.
    즉, 총원이란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을 말한다.
    더 나아가서 이 총원은 불자라면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 원이다.
    <천수경>에 나오는 사홍서원(四弘誓願)이 대표적인 총원이다.

    그래서 모든 법회(法會)를 비롯한 모든 불교의식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보살행(菩薩行)의 목표이자 불교의 궁극적인 이념이기 때문이다. 지역과 종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현재 법회에서 행하는 사홍서원 형식은 다음과 같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 중생이 가이 없지만 기어코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 번뇌가 끝이 없지만 기어코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 법문이 한이 없지만 기어코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 불도가 가이 없지만 기어코 다 이루오리다.

    이 사홍서원을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사성제(四聖諦)에 각각 대응시켜 해석하기도 하고, 첫 번째 서원을 이타행(利他行), 나머지 3가지를 자리행(自利行)으로 보기도 한다.

    ​이에 비해 별원(別願)이란 한 부처님이나 어떤 한 보살님이 세운 개개의 원을 말한다.
    아미타불의 48원이나 약사여래의 12원 같은 것이 대표적인 별원이다.

    특히 아미타불의 본원(本願)을 가리켜서 서원(誓願)이라고 한다.
    그것은 널리 모든 것을 구원하고자 하는 원이고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맹세이기 때문에 서원(誓願)이다.

    또 다른 말로 그 원이 한없이 넓고 크기 때문에 홍원(弘願), 홍서(弘誓)라고도 하며, 중생들을 향한 자비심이 깊고 무겁기 때문에 중원(重願)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발원이란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원을 세우는 것이다. 이는 남을 위한 일인 동시에 곧 자신의 깨달음(菩提)을 위한 것이다. 불교는 신앙적인 의지에 의한 구원보다는 자발적인 수행에 의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불자에게서 발원이란 더 없이 중요한 것이다. <화엄경>에 “대원(大願)을 일으키지 않으면 삿된 마군에 포섭되고 만다. 번뇌를 끊어 적멸(寂滅)한 선정에만 안주하려는 것도 마군에게 포섭된 바이며,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고 혼자 생사를 해탈하려 함도 마군에 포섭된 바이다."라고 했다.

    중국 영명(永明延壽, 904∼975) 선사는 “대원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보살행의 씨앗을 심는 것으로서 자비심을 길러 부처님 종자(佛種)를 끊기지 않게 하며, 도를 이루고 중생을 교화하는 모든 힘이 깊고 넓은 원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원만 있고 실행이 없으면 그 서원이 반드시 헛되어지고 실행만 하고 서원이 없으면 그 실행이 반드시 고루해진다.

    서원과 실행이 함께 할 때 비로소 불도를 성취하게 된다.”고 했다.
    시방(十方) 세계의 불⋅보살님과 역사 속에 살아가신 불⋅보살님들이 나타났던 원인을 찾아보면 모두 다 인행(因行) 당시에 큰 서원을 세움으로 인해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기쁜 마음으로 불⋅보살님의 서원에 수순(隨順)하고 동참해야 한다. <화엄경>에서, “사람이 임종 시에 일체 모든 근(根)은 다 흩어져서 무너져 버리고, 일체 친속은 모두 다 헤어지게 되며, 일체 위엄과 세력은 모두 다 퇴실(退失)되고, 게다가 보좌하는 재상과 대신(大臣), 궁성의 안팎과 코끼리와 말과 수레와 보배 창고 등 이와 같은 모든 것은 다시는 서로 따르지 않는다.

    오직 이 원왕(願王)만이 헤어지지 아니하며 언제나 그 앞을 인도해서 잠깐 사이에 바로 극락세계에 왕생할 것이니라.” 했다. 발원은 비록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지만, 실다운 믿음은 발원으로 인해 참다워진다. 믿음과 발원이 이미 진실하고 간절해졌다면 실천 또한 일어나길 기대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설령 번뇌의 경계가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나는 오직 한마디 아미타불만을 염송할 뿐이요, 설사 즐거운 경계가 눈앞에 나타날지라도 나는 오로지 한마디 아미타불만을 염송할 따름이다. 참된 보리 열반의 불과(佛果)를 성취하려는 불자로서 어찌 넓고 큰 희망과 이상을 지니지 않겠는가.

    그 이상과 희망이 크면 클수록 그 활동과 노력도 큰 것이요, 그 노력이 클수록 그 결과도 클 것이니 불자로서 넓고 큰 서원을 세워 굳게 그 원을 닦아 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거룩한 행이라고 하겠다.

    또한 개인에 따라 기도를 하기 전에 발원문을 작성하는데, 발원문은 나의 바라는 바를 글로 적은 것이며, 불교의 역사 가운데 많이 알려진 발원문은 사홍서원 외에 여래 십대 발원문, 보현보살 10대원, 관음보살 10대원, 약사여래 12대원, 아미타불 48대원 등이 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Drpig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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