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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경(觀音經)3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2.


-관음경(觀音經)3-
    若三千大千國土에 滿中怨賊커든 有一商主 將諸商人하야 齎持重寶하고 經過 할세 其中一人이 作是唱言호대 諸善男子야 勿得恐怖하고 汝等은 應當一心으로 稱 觀世音菩薩名號하면 是菩薩이 能以無畏로 施於衆生하리니 汝等이 若 稱名者면 於此怨賊에 應當解脫하리라 하니, 衆商人이 聞하고 俱發聲言호대 南無觀世音菩薩하여 稱其名故로 卽得解脫하나니라. 無盡意여, 觀世音菩薩摩訶薩의 威神之力이 巍巍如是니라. 【국역】 만약 삼천대천국토에 도적떼가 가득 차 있는데 한 장사 주인이 여러 상인을 거느리고 값진 보배를 가지고 험한 길을 지나 갈 때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 모든 착한 남자들이여, 두렵고 무서운 마음을 겁을 내지 말고, 여러분들은 마땅히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능히 두려움이 없게 하며 도적들에게 피해를 당하지 않고 해탈케 할 것이오.”라고 하니, 모든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함께 소리를 내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니 그 명호를 부르는 공덕으로 모두 도적들로부터 해탈을 얻었느니라. 무진의여, ‘관세음보살 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높고 높은 것이니라. 【이야기】 부처님은, 어머니의 죽음이 구도의 길에 나서는 인연이 되었다. 부처님이 더욱 존경스러운 것은 부귀영화가 보장된 가비라국의 왕자로 써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또 사랑하는 ‘야수다라’태자비와 사랑하는 어린 아들조차 이별하면서 생로병사를 초월하기 위한 구도의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윤회전생을 확신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부처님은 다생겁래부터 수행 정진하여 오시다가 마침내 가비라국의 왕실에 태어나시어 출가하여 고행 끝에 해탈하여 부처를 이루시는 모범적 모습을 우리에게 보이셨지만, 윤회전생이 아닌 현세만을 놓고 볼 때 부처님은 너무 일찍이 인간의 생사의 고통에 대해 뼈저리게 느낀 애처로운 분이다. 부처님의 아기시절 어머니 마야부인은 부처님을 낳고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왕자의 가슴에는 어머니의 죽음은 크나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인간은 왜 생사가 있는 것일까. 어머니는 왜 죽어야 했을까? 어머니는 어디로 가셨을까? 모든 생명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불변의 법칙은 어린 왕자의 가슴에 자신도 장차 언제가 될는지는 몰라도 속절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영원한 생명은 없는 것일까? 왕자는 마침내 생사에 대해 아무도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왕궁을 아무도 모르게 떠나 구도의 길에 나섰다. 그러나 구도의 노상에서 이름께나 알려진 수행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지만, 왕자의 가슴속은 만족할 만한 해답은 없고, 마치 짙은 흑운일 뿐, 푸른 하늘의 대광명을 보지 못할 뿐이었다. 마침내 왕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6년 고행 끝에 피골이 상접한 건강 상태 속에서 니련선하의 강가 보리수 밑에 정좌하여서 새벽에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고 대각, 즉 부처를 이루었다. 부처님은, 신에게 무릎 꿇고, 울며 간구한 사람이 아니다 . 부처님은 대각을 이룬 후, 다른 종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유일신의 외아들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았다. 부처를 이루고 최초로 하신 말씀은 일체중생이 다 부처가 될 성품이 있다고 선언했다. 열심히 수행정진하면 일체중생은 모두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부처를 이룰 수 있다 (一切衆生 悉有佛性), 는 것은 천지개벽이래. 가장 크고 고귀한 대선언이며,, 대 희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종교의 유일신의 외아들은 땅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고 하늘을 우러러 눈물을 흘리는 기도의 간구하는 모습이나, 부처님의 모습은 온 우주 어디에도 무릎을 꿇고 우러러 두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의 간구하는 모습은 없다! 오직, 스스로 당당히 정좌하여 스스로 대각, 즉 부처를 이루신 모습이다. 이 당당한 모습은 천상천하에 인간으로써 가장 위대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이 대각을 이루신 후, 중생을 위해 중생의 근기에 따라 수기설법(隨機說法)으로 설법하신 것이 집대성되어 팔만대장경을 이루고 있지만, 부처님이 가장 핵심적으로 말씀하신 진리 가운데 하나가 ‘업사상(業思想’이다. 온 우주, 삼라만상 두두 물물이 모두 업으로 인해 생멸하고 흥망성쇠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꿔 말해 우주의 대법칙은 ‘인과응보’의 업이라고 갈파하신 것이다. ‘업사상’을 알면 불교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다 업보는 두 가지가 있다. 선업과 악업이다. 부처님은 다생겁래로 수행 정진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시겠다는 대서원의 인(因) 즉 선업(善業)이 있고, 윤회전생 속에 지옥고를 받는 악업이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업은 누가 짓는가? 우리 자신의 마음이 짓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 즉 심전(心田)을 요즘표현으로 잠재의식이라고 하자. 우리가 전생에서부터 마음이 지은 모든 업이 자신의 잠재의식에 입력되어 조만간 현실화 되는 것이다. 잠재의식의 기억용량은 요즘의 컴퓨터의 어느 기억 용량체보다 비견할 수 없고 상상할 수조차 할 수 없으리만큼 대용량으로써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행위의 업, 상상의 업이 그대로 입력되어 작용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의 부귀영화와 수명의 요수장단(夭壽長短)과 길흉화복(吉凶禍福) 유병무병(有病無病) 등 일체가 중생 개개인의 마음의 조화로 써 자작자수(自作自受업)의 업을 지어 일희일비(一喜一悲)속에 수고(受苦)한다는 것을 깨달으신 것이다. 죄송한 예 이지만, 기독교의 예수님이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형을 당해 주검을 당하는 것도 예수님의 아버지요,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전지전능의 힘으로 써 천지창조를 했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神)인 ‘ 여호와’가 시킨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전생의 업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전생은 무엇인가? 일분 전, 일초전도 전생사이다. 예수님은 처형되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밤 새워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맞잡고 울며 울며 ‘여호와’께 시시각각 닥쳐오는 ‘주검의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지만, 여호와는 간구를 들어 주었는가? 예수님은 가시면류관으로 선혈이 흐르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날카로운 창이 옆구리에 박혀 죽어가서야 비로서 여호와를 향한 눈물의 간구를 중단하고, 아버지 여호와를 원망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검이 여호아의 뜻이라면 달게 받겠다고 마침내 고개를 숙이어 죽어 갔지 않은가. 우리 불교인이라면 울며 울며 간구하지 않고, 자신의 업을 성찰하여 닥치는 주검의 잔에 대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간 ‘사랑’정신은 고귀하고 훌륭하다고 할 것이다. 불교인들이 기독교의 전도 공세에도 불구하고 쉬 동화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가 업사상을 믿기 때문이다. 수년전에 어떤 여신도가 나를 찾아와 부처님을 원망했다. 부처님 전에 적잖게 공양물을 올리고 기도를 드렸는데 별무효과라며 부처님을 원망하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여신도의 남편이 도박을 좋아하는데 남편이 도박장에서 횡재수, 요즘말로 ‘대박’을 터뜨려달라고 부처님께 기도를 정성껏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의 기호가 없어서인가, 별무효과로써 오히려 거액의 돈만 날렸다고 원망하는 것이었다. 못된 업을 지으면서 부처님께 대박운을 달라고 하니 이 무슨 해괴한 불심인가? 중생의 이해타산은 무섭다. 말세에 이르니 전국에 걸쳐 작은 공양물을 불전에 시주하고 몇 천만배의 이익을 얻고자 기도하는 기복 불교가 성행하고 있다. 기복 불교는 승려들이 먼저 현세의 불전이익을 챙기고자 비유컨대 계획적으로 북·정고를 쳐대며 기복 불교를 권장하고, 이해 타산적 기복 불교 신앙으로 일부 신도들은 북·장고 소리에 맞춰 정신없이 춤을 추고 있다. 성인의 가르침으로 영혼이 맑아지는 속에 스스로 업장소멸의 기도는 등한히 하고 있는 것이다. 기복 불교, 부처님을 이용하여 사복을 채우려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단순히 기복 불교에만 전념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는 글렀다. 또 하나의 악업을 짓고 있을 뿐이다. 선업을 지으면 저절로 순풍에 돛단 듯이 인생의 배는 순항할 텐데…. 업장소멸의 기도는 무엇인가? 자신이 전생에 지어온 죄업에 대한 참회기도이다. 그대, 전생에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을 불전에 참회기도를 할 때에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통회의 기도를 하시라. 고해 대중이여, 업장소멸의 기도를 합시다. 세상에 태어나 불운에 수고하는 고해대중이여, 이제부터라도 이해타산이 앞서는 무조건의 기복 불교 보다는 부처님께 무엇보다 우선하여 먼저 자신의 업장소멸의 기도를 올리시라. 전생에 지은 업장이 그대의 출셋길을 막고, 병고에 신음하게 하며, 가난의 고통에서 신음하게 하며 요절(夭折)의 슬픔을 만나게 되며, 아름다운 인연의 배필을 만나지 못하는 등 고통에 신음하게 하는 원인자라는 것을 깨달으시라. 그리고 업장소멸의 기도와 함께 선업을 닦으시라. 산사에 가서 고승에게 법어를 구할라치면 언제나 결론은 ‘마음공부’를 잘하라고 권장하고 경책한다. 그 공부의 첫걸음은 업장소멸의 기도이다. 그대, 흑운의 업장만 소멸 된다면, 그대는 소원성취의 대광명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어 나는 보증하는 바이다. 내가 관음경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진실한 속내는 무엇인지 아시는가? 부처님의 성품을 가지신 고해대중 여러분을 부처님이 말씀하신 업사상으로 인도하려는 ‘노파심’이라는 것을, 섬광과 같이 깨달으시라. 개인의 업이 청정하면 개인이 복을 받고, 단체의 업이 청정하면 단체가 복을 받으며, 국민의 업이 청정하면 국가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만세의 진리이다. 우리 국가와 민족이 조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이 분단 된지 반세기가 흘러도 조국통일의 대업이 요원한 것은 강대국의 장난질에 앞서 남과 북의 기득권층의 못된 공업(共業)이 삿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청정한 공업으로 하루속히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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