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락아정(常樂我淨)
열반사덕(涅槃四德), 법신사덕(法身四德), 사덕(四德)
정의
법신과 열반의 네 가지 덕인 상·낙·아·정을 의미하는 불교 교리. 열반사덕· 법신사덕· 사덕
개설
범어는 nitya-sukha-ātman-śubha, 팔리어는 nicca-sukha-atta-subha이다. 열반사덕(涅槃四德), 법신사덕(法身四德)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사덕(四德)이라고도 한다.
열반과 법신은 네 가지 덕성을 갖추었다.
첫째는 영원하여 변하지 않는 상(常),
둘째는 고통이 없는 안락한 낙(樂),
셋째는 진실한 자아로서 아(我),
넷째는 번뇌의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난 정(淨)이다.
내용
초기 불교에서는 현상적인 세계를 무상(無常, 항상 되지 않음)·고(苦, 괴로움)·무아(無我, 본질이 없음)와 부정(不淨, 깨끗하지 않음)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세계를 상(常, 향상됨), 락(樂, 즐거움), 아(我, 본질을 지님), 정(淨, 깨끗함)이라고 보는 관점을 '네 가지 뒤바뀐 견해'라 하여 ‘사전도(四顚倒)’라 한다.
즉 범부가 자신과 세계를 무상하고 괴롭고 무아이며 부정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즐겁고 항상하는 자아가 있고 깨끗하다고 보는 것을 말한다. 대승 이전의 불교는 이러한 전도된 생각에 집착하여 괴로움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이에 사전도에 대치되는 수행법으로 사념처(四念處) 등이 제시된다. 범부가 유위법(有爲法)을 상락아정으로 보면 탐욕이 제거되지 않고, 유위법을 무상·고·무아·부정으로 보게 될 때 탐욕 등이 소멸한다고 한다.
이에 반해 대승불교의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여래장경(如來藏經)』 그리고 『승만경(勝鬘經)』 등은 이전 불교에서 비판했던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불성과 여래장에 적용시켜 설명한다.
예컨대 『승만경』에서 상락아정은 전도견(顚倒見)이 아닌 정견(正見)이라 한다. 나아가 여래의 법신은 상바라밀(常波羅密), 낙바라밀(樂波羅密), 아바라밀(我波羅密), 정바라밀(淨波羅密)로 설한다.
열반사덕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은 헤아릴 수 없는 경계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성문과 연각이 여래의 법신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상락아정을 무상·고·무아·부정으로 보는 것은 중생들의 전도된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대반열반경』은 붓다의 몸이 법신과 반야, 해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상락아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무아인 것은 윤회하는 중생이고 아는 여래이며, 무상한 것은 성문과 연각이고, 상인 것은 법신이며, 열반은 낙(樂)의 경지라 한다. 마찬가지로 부정한 것은 유위법이며, 정(淨)한 것은 붓다와 보살의 법이라고 상락아정을 설명한다.
동아시아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도 상락아정은 진여(眞如, tathata) 자체의 성질로 범부에서 부처에 이르기까지 본래 성품에 갖춘 공덕으로 제시된다.
신라의 승려 둔륜(遁倫)의 『유가론기(瑜伽論記)』에서 열반락(涅槃樂)을 상락법(常樂法)으로 그리고, 원효 또한 『열반종요(涅槃宗要)』에서 성문과 대승을 비교하며 열반의 낙덕(樂德)을 논의하고 있다.
이같이 대승 이전과 대승의 경전에서 상락아정을 긍정적으로 설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가 있다.
대승은 법신과 열반이 갖춘 덕성으로 적극적으로 상락아정을 설하는 데 반해 대승 이전의 불교는 괴로움을 겪는 오온의 무상·고·무아·부정을 강조적으로 설한다는 입장 차이가 있다.
의의와 평가
대승불교권인 한국에 있어 상락아정은 근현대 고승들의 주요한 설법 주제이다.
수행을 독려하는 경허(鏡虛)의 『참선곡(參禪曲)』에 언급되는 것은 물론 성철(性徹)에 있어 중도정견(中道正見)으로 상락아정이 해탈 경계임을 설법하고, 청화(靑華)는 염불선(念佛禪)의 입장에서 열반사덕의 상락아정을 설법하고 있다.
한편 일반인들도 상락아정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글자 그대로 ‘항상하고 즐겁고 진정한 자아로 깨끗한 삶을 위한 격언’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에서는 자신의 종교 입장에서 상락아정에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Drpig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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