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한 표현의 반복에 지루하셨겠지만, 실제 80권 화엄경의 본문에는 이와 같은 '설명'이 한없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오직 화엄경에서만 설해져 있는 수행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입니다.
이제 남은 다음 계위는 십지(十地)의 열 가지 지위입니다.
화엄경은 물론 불법 수행의 요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하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와 등각, 묘각, 불(佛)의 수행의 단계는 반드시 보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며, 궁극적으로는 성불이라는 자기완성에 이르기를 발원해야 하는, 바로 우리 중생들이 가야 하는 길에 대한 가장 명확한 이정표입니다.
🍱십지품을 위주로 한 화엄경의 교판 (경전을 수준에 따라 분류함)에 의하면, 몰론 깨닫는다는 돈오가 선 수행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학의 돈교가 바로 이 화엄경인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불립문자를 내세워 경을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은 불립문자를 강조한 선사는 경전에도 능통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초조 달마에서 육조 혜능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퇴옹 성철에 이르기까지 대선사들은 시대의 교학의 대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참선 수행의 최고 지침서인 단경도 혜능의 주석을 우선적으로 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수행의 경계는 우리가 헤아리는 것보다 훨씬 깊어, 말 그대로 '불가사량(不可思量)' 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화두 하나 타파하거나, 속물(俗物)의 때 좀 벗었다고 마치 큰 경지에 이른 듯 큰소리치고, 더욱 실질적인 '힘'을 가진 출가자들은 '받고만' 살아서 세상의 고달픈 중생을 위한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불교가 100년 후에도 지금처럼 불사(佛事)라는 명목만 들이대면 먹고사는 걱정 안 해도 되는 불교로 불사(不死)할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1600여 년의 한국불교의 신행에서 유행되었던 정토 신앙, 지장 신앙, 법화 신앙 등은 모두 사실상 중생구제의 불교 본래의 '임무'에는 실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