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법과 동행을/💕불교자료실

아함경 이야기 3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2.


-아함경 이야기 3-
    아함경 이야기7

    1. 그사람. 7. 전도(傳道)

    이에 세존은 그들 사캬 족 사람들을 밤중까지 가르치고 인도하고 격려하고 기쁘게 해준 다음, 존자 아난다(阿難)에게 이르셨다.

    "아난다여, 너는 나를 대신하여 카피라바투(Kapila-vatthu)의 사캬 족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도(道)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시 법을 설해 주려무나. 나는 등이 아프다. 잔깐 누워야 겠다." 아난다는 "그렇게 하곘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이리하여 세존은 옷 을 넷으로 접어서 깔고, 발에 발을 포갠 다움, 정념(正念), 정지(正 智)를 지니신 채 오른쪽 겨드랑이를 아래로 하고 누우셨다. ([中部經典] 53 有學經. 漢譯同本, [雜阿含經] 43:13 漏法) (중부경전) (유학경)(한역동본) (잡아함경) (루법) 이제 나는 붓다 고타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 문제를 앞에 놓고 매우 당돌한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저 키 에르케고르(Kierkegaard)가 그의 일기 속에서 한 말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신과 인간의 관계는 전혀 성질을 달리한다.

    인 간과 인간은 오래 함께 살아서 깊이 알게 되면 될수록 그 사이는 더욱 더 가까워진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그와 전혀 반대이다. 인간 이 신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신은 더욱 무한한 것이 되고, 인간은 더 더욱 작은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신과함께 장난하 며 놀수도 있을 듯이 생각했다. 자란 뒤, 내 열정을 바쳐 그를 사랑한 다면 신과의 교섭도 실현되려니 꿈꾸었다. 그러나 다시 나이를 먹어 가 면서, 나는 신이 얼마나 무한한 존재인지, 신과 인간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참으로 인상이 깊었다.

    내가 이 대목을 읽은 것은 벌써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 일절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불교도인 우리가 보기에는 사정은 아무래도 그 반대일 것만 같다. 붓다와 우리의 관계는 인간의 관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붓다에게 다가가서 그 분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붓다는 우리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붓다는 전혀 딴 세계에 살 고 계셔서 이따금 구름이라도 타고 이 세상에 나타나시는 분으로 여겼 다. 그러던 그 분이 어느 사이엔가 점점 나에게 가까운, 그리고 아주 친한 사이처럼 느껴져 왔으니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 이었는지도 모른다.

    왜냐 하면 의심할 나위 없이 붓다 또한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엇던 까닭이다. 이 일과 관련해서 지금도 생각나는 것은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 한 일절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 경은 붓다가 카피라바투의 성 밖, 니그로다(Nygrodha)나무로 에워싸인 정원에 계신 데서 시작된다. 마침 그 때 사캬 족 사람들은 새 회당을 지은 참이라, 그 낙성식에 꼭 붓다가 오셔서 처음으로 입장하는 이가 되어 주십사고 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쁘게 응낙한 붓다께서는 낙성식에 참석하시고, 밤에는 그 회당에서 늦게까지 사캬 족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하셨던 것이다.

    그 다음이 앞에 인용한 대목이거니와, 붓다는 피곤했던 것일까. "나는 등 이 아프다.
    잠깐 누워야 하겠다."고 말씀하고, 설법을 아난다에게 맡기 신 다음 물러가 주무셨다는 것이다. "나는 등이 아프다." 붓다의 이 말씀은 애처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절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어떤 기쁨 같은 것을 느꼈던 일을 지금 도 잊지 못한다. 왜냐 하면 붓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때 처럼 절실하게 느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붓다는 인간의 숙명이라고나 할 생로 병사를 두 어깨에 걸머지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 해 출가도 감행한 것이기는 하였다. 그것 역시 그가 인간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님을 증명해 주는 것이겠다.

    그러나 '생로 병사'라 할 때 그것 은 어느 정도 추상화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에 의해 느 껴지는 붓다의 인간성 역시 추상성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붓다 는 "나는 등이 아프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은 매우 애처 롭지만, 그것에 의해 나는 직접 붓다의 육신에 접하고 있는 듯한 생각 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로서는 참으로 이상한 체험이었다. 그때까지 멀리 떨어져 있던 붓다의 모습이, 이 일절에서의 감명 이래 나에게는 훨씬 친근한 것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붓다의 사상 또한 왜 그런지 아득 한 저쪽에 있는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붓 다의 현신(現身 ; 육체를 지닌 현제의 몸.)에 관한 경의 서술이 이상한 매력으로 나의 관심을 자극해 왔다. 이를 테면 [상응부 경전]22:87에 보이는 바카리(跋迦梨)에 관한 대문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붓다가 라자가하(王舍城)의 교외에 있는 베루바나 정사(竹林精舍)에 머물고 계시던 때의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때 한 비구가 어느 옹기장이 집에서 앓고 있었다. '바카리'가 그 의 이름이었다. 그의 병은 매우 중해서 도저히 회유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간호해 주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나는 이제 죽어야 할 몸이다.
    만일 붓다를 다시 한 번 뵈옵고 인 사 드릴 수 있다면 한이 없겠다. 그러나 이 몸으로는 정사까지 갈 수 없으니, 미안하지만 베루바나에 가서 여기까지 행차해 주실 수는 없 겠느냐고 붓다께 여쭈어 주었으면 고맙겠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붓다는 기꺼이 옹기장이네 집을 찾아갔다. 바카 리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려 들었다. "바카리야, 고요히 누워 있어라. 일어날 필요는 없다." 붓다는 굳이 그를 눕게 하고 그 머리맡에 앉았다. 바카리는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붓다여, 저는 가망이 없나이다. 병이 악화되기만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소원이오니, 얼굴을 우러러 뵈오면서 붓다의 발에 정례(頂 禮 ; 이마를 땅에 대는 경례. 최대의 존경의 표시.)하도록 하여 주시 기 바라나이다." 그때 붓다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씀했다고 경전은 기록하고 있다. "그만두라, 바카리야. 이 썩을 몸을 보아서 무엇하겠다는 것이냐? 바카리야, 법(진리)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 은 법을 보리라." 그것은 참으로 엄한 말씀이라고 아니할수 없다.

    여기에서 붓다는 자 기에게 예배하겠다는 청을 물리치고, 오직 진리를 파악하려 힘쓰고, 진 리만을 의지함이 옳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 불교의 본질이 엄존한다고 하여야 되리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썩을 몸을 보아 무엇하겠다는 것이냐?"고 한 붓다의 말이 나에게는 이상한 매력으 로 다가왔던 것이다. 또 이를테면 장부 경전16이나 [대반열반경]은 노쇠한 붓다에 대해 이 런 서술을 남기고 있다. "아난다여,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팔순이 아니냐? 비유하자 면 아난다여, 낡은 수례는 가죽 끈으로 얽어맴으로써 겨우 움직일 수 있거니와 내 몸도 또한 가죽 끈으로 얽어맨 수레 같으니라." 이 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붓다의 마지막 전도 여행과 그 고요한 죽 음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한역에서는 [유행경(遊行經)]이라고 했고, 팔 리 어의 동본에는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suttanta)]이라는 제목 이 붙어 있다. '크나큰 죽음의 경'이라는 정도의 뜻이다. 그것에 의하 면 라자가하에서 마지막 여행 길을 떠난 붓다는 갠지스 강을 북으로 건 너, 베사리 근방인 베루바나 마을(竹林村)에서 우안거(雨安居 ; 인도에 서는 장마철이 길므로, 이동안은 외출을 금하던것. 4월 16일부터 7월 15일까지 석달동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붓다는 장마와 습기 때문이었는지 무서운 병이 나서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러나 붓다는 그 고통을 잘 견디어 냄으로써 가까스로 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래간만에 집 밖으로 나가 응달 쪽에 앉아서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던참에, 아난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하신 말씀이 이 일절이었다.

    경전 속에는 곧잘 수레바퀴의 비유가 나온다. 설법하는 것을 "법의 수레바퀴를 돌린다.(轉法輪)."고 하고, 훌륭한 정치를 하는 이상적인 제왕을 '전륜 성왕(轉輪聖王)'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낡아빠진 수레를 들어, 붓다는 자기의 몸을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수 레가 오래 되어서 못 쓰게 되면 그것을 가죽 끈으로 얽어매어서 사용했 던 모양이다. 노쇠한 붓다는 그런 수레와 똑같다고 자기의 몸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애처롭게 들리지만, 나에게는 역시 잊을 수 없는 붓다의 말씀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상한 대목만을 열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등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붓다,
    이 썩을 몸을 예배해서 무엇하겠느냐고 말하는 붓다, 자기의 몸을 낡은 수레에 비유하는 붓다. 그러나 그것은 붓다의 인간 성에 직접 접함으로써 친근감을 가지고 그 인격과 사상을 이해해보 려 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육신을 아는 것이 지름 길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왜냐 하면 거기에는 그 분의 인간성이 나 타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함부의 여러 경전은 이런 붓다의 인 간성을 조금의 가식도 없이 전해 주고 있는 점에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 제 1 장 그 사람 끝 == 아함경 이야기 [제2장 그사상. 1. 눈 있는 이는 보라]는 다음회에 계속 됩니다.

    아함경 이야기8 2. 그 사상. 1. 눈 있는 이는 보라 "위대하셔라 대덕(大德 ; 지혜와 덕망이 높은 중. 본래 봇다를 일 컫던 말이나, 후세에서는 일반 승려의 존칭으로 쓰였다.)이시여, 위 대하셔라 대덕이시여. 이를테면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 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치심과 같이, 또는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이처럼 세존께서는 온갖 방편을 세우시어 법을 설하여 밝히셨나이다.

    저는 이제 세존에 대해 귀의 하옵나이다.
    또 그 법(가르침)과 승 가(僧伽 ; 불교의 교단. 의역하면 '중(衆))에 대해 귀의 하옵나이다. 원컨대 오늘날로부터 시작하여 목숨을 마칠 때까지, 세존께 귀의 하 옵는 신자로서 저를 받아들여 주시옵기 바라나이다." ([相鷹部經典] 42:6 西地人. 漢譯同本, [中阿含經] 17 伽彌尼經) 상응부경전 사지인 한역동본 중아함경 가미니경 이런 대문이 아함부 경전의 도처에서 보인다.

    그것은 대개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귀의하게 된 사람들이 이른바 우파사카(優婆塞, upa- saka ; 재가 신자인 남자.)로서 그 신앙을 고백하는 말이다. 그것은 언 제나 거의 같은 형식이므로, 어느 시기부터인가 귀의하는 신앙 고백 형 태가 유형화되었던 것 같다. 그것을 여기에 인용한 것은 그것을 통해 붓다의 사상,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설법의 성격을 잘 이해할 수 있 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최초의 설법만 제외하고는 45년에 걸친 붓다의 설법은 모두가 대기 설법이었다고 한다. 문제와 사람과 장소와 때에따 라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가르쳤던 까닭이다. 어떤 때는 제자들과 함께 갠지스 강의 기슭에 서서 소떼를 이끌고 물 을 건너가는 목동을 가리키면서, 현실의 이쪽 언덕(此岸)으로부터 이상 의 저쪽 언덕(彼岸)에 이르기 위한 방법에 대해 말씀한 적도 있다. '차 안, 피안'의 개념은 이렇게 하여 성립하였던 것이다. 또 하루는 물건을 훔쳐 도망친 여자를 찾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나, "도망친 여인을 찾는 것과 잃어버린 자기를 찾는 일은 어느 쪽이 더 소중하냐?" 고 말을 건 적도 있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들은 그만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아, 붓다의 가르침을 받드는 비구가 되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새로 입문한 제자들을 이끌고 가야시 사(象頭山)에 올라간 붓다는 일망 무제하게 펼쳐진 세상의 풍경을 가리 키면서, "보라, 모든 것은 타고 있다." 고 설했다. 그들은 불을 예배하는 이른바 사화 외도(事火外道)에서 불 교로 개종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모든 것은 타고 있다."고 말씀했던 것 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꺼야 한다."는 말이 그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가 있었다. '불이 꺼진 상태' 즉 열반이 영원한 평화의 경지를 가리 키는 불교 용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하루는 브라만(婆蘿門) 한 명이 나타나서 갖은 욕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그러나 붓다는 침착하게 말했다. "브라만이여, 그대가 내주는 음식을 손님이 안 먹는다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것은 물론 주인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욕설 또한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임기 웅변! 자유 자재! 붓다의 대기 설법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붓다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그것들을 일관하는 뚜 렷한 성격이 있었다. 입신자들의 고백문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처럼 생각된다.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라는 말은 전도(顚倒)한 것을 바로잡 는다는 뜻이다. '전도'란 어떤 판단을 할 때 순서가 엇바뀌고 진상을 오해하는 일이다. 작은 것을 크다고 하는 것도 그것이다.

    추한 것을 아 름답다고 여기는 것도 그것이다.
    변화하는 것을 불변, 영원한 듯이 아 는 태도도 그것이다. 후세의 불교인들은 '사전도'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상(常), 낙(樂), 정(淨), 아(我)의 전도를 말한다. 첫째 상(常)전도는 이 무상한 세상이 나 사람을 영원한 듯이 생각하는 일이며, 둘째 낙(樂)전도는 이 괴로운 인생을 즐겁다고 여기는 일이다. 셋째 정(淨)전도는 이부정한 것을 깨 끗하다고 잘못 아는 일이며, 넷째 아(我)전도는 이 무아인 존재를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이런 착각을 없애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넘어진 것을 일으키심과 같이"라는 말에는 이런뜻 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덮인 것을 나타내심과 같이"는 앞에서도 언급한 불교의 진리관을 표 현한 말이다. 어떤 경에서 붓다는 이런 비유를 설한 적이 있다. "여기 통 안에 물이 있다 하자. 그 물이 불에 데워져 부글부글 끓 고 있다든지, 또는 이끼나 풀로 덮여 있다든지, 바람이 쳐서 물결이 일고 있다든지 한다면, 그 통 안의 물은 사물의 모습을 여실히 비칠 수 있겠는가?" 물론 비칠 수 없다고 대답하여야 한다. 여기서 붓다는 만약 우리의 마음이 탐욕이나 노여움으로 뒤덮여 있을 경우에는 여실히 대상을 지견 (知見)할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을 유도해 갔다. 이렇게 '여실 지견'을 방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복(覆)이라고 한다.

    그런 것이 제거되고 맑은 마음으로 객관을 대할 때, 일체의 존재는 그 진상을 드러낸다. 이것이 불교의 진리관이다. 그렇다면 "덮인 것을 나 타내심과 같이"라는 말은 이런 여실 지견으로 이끌고 가려는 의도임을 알 수 있다.

    "헤매는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심과 같이"라는 말은 현대식으로 표현 한다면 합리주의를 주장한 것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합리주의라는 말 자체가 매우 애매한 점이 있다. 논리에 맞으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인가, 결과가 그렇게 되는 것을 가지고 합리라고 보는 것인가? 붓다 가 취한 태도는 아무래도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최초의 설법에서도 이런 붓다의 태도는 이미 나타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하나는 두 가지 극단, 즉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를 비판한 말 속에 나온 "무익하 다"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그것들을 비판한 다음 중도(中道) 를 주장하면서 "적정, 증지, 등각, 열반에 이바지한다"고 말한것이 그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붓다의 실용주의(Pragmatism)를 발견하는 것이다.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이유에 대해 한 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를테면 물 속에 잠겨 있는 젖은 나무를 보고, 좋은 찬목(鑽 木 ; 마찰하여 불을 일으키는 나무.)을 가지고 와서 '내가 불을 일 으키리라, 빛을 내게 하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中部經典』 36 薩遮迦大經) 중부경전 살차가대경 젖은 나무라면 아무리 마찰시켜도 불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고행을 해 보았자 그것으로는 깨닫지 못한다.
    이것 이 고행을 포기하게 된 붓다의 합리주의적인 생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합리주의적인 정신이야말로 붓다의 생애를 일관했던 것임 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나는 이 장의 첫머리에 소개한 대문을 [상응부 경전] 42:6 '서지인' 이라는 제목의 경에서 인용했던 것이지만, 그 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교화 태도도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붓다가 나란다 마을의 파바리캄바라는 숲 속에 머물렀던 때의 일이다. 이웃 마을의 촌장인 안반다카푸타(刀師子)라는 사람이 찾아왔 다. 아마도 그는 붓다의 명성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어서, 우선 이런 것 을 물었다.

    "대덕이시여, 서쪽에서 온 브라만들은 물병을 높이 처들든지, 화환 을 달든지, 물에 들어가 목욕하든지, 화신(火神)에게 공양을 드리든 지 함으로써, 죽은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 습니다만, 대덕께서도 역시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습니까?" 지금도 종교에서 신비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거니와, 그도 그런의식 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붓다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이렇게 반문 했다.
    "그러면 촌장에게 내가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 생각나는 대로 대 답해 보라. 어떤 사람이 깊은 호수에 바위를 던졌다 하자. 그때 여러 사람들이 몰려와서 '바위야, 떠올라라. 바위야 떠올라라.' 하며 기도 했다고 하면 어찌 되겠는가. 그 바위는 기도의 힘으로 떠오르겠는 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아니라고 할 수밖에는 없으리라. 여기 서 붓다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촌장이여, 이것을 그대는 이찌 생각하는가?
    여기에 남을 죽이고, 도둑질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따위 온갖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있다 치자.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이 사람 이 천상에 태어나게 해 주십소서.' 하며 합장하고 기도했다면 어떻겠 는가. 그는 그 기도에 의해 천상 세계에 태어나게 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촌장은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고 있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지 그를 가리고 있던 낡은 의 식이 벗겨져 나가고, 그의 마음에는 한 가닥의 광명이 비쳐 왔던 모양 이다. 그래서 그는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말을 하면서 재가 신자가 될 것을 맹세했다는 것으로 이 경은 끝나고 있다.

    "어둠 속에 등불을 가지고 와서 눈 있는 이는 보라고 말씀하심과 같 이"라는 말은 이런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말 해 두어야 할 것이 남아 있다.그것을 다음 장에서 서술 해 보고자한다. 아함경이야기 [제 2 장 그 사상. 2.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것.]은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아함경 이야기9 2. 그 사상. 2. 현실적으로 증험(證驗)되는 것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나이다.

    즉 이 법은 현실적으로 증험 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성질의 것 이며,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며, 잘 열반에 인도하는 성질의 것이며, 또 지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相應部經典] 55:1 王. 漢譯同本, [雜阿含經] 30:7 王) 상응부경전 왕 한역동본 잡아함경 왕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제자나 신자들이 그 귀의(歸依 ; 돌아 가 의지함. 붓다, 법, 승가에 자기를 맡기는 것.)를 고백하는 말이다.

    이 또한 여러 아함부 경전에 나오는 점으로 볼 때 이미 유행화 되었던 문구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붓다 재세시부터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 오는 '삼귀의'의 원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삼귀의라고 하면, 이 앞과 뒤에 붓다와 교단(僧)에 대한 신앙 고백이 있어야 한다. 이 삼귀 의, 즉 불(佛), 법(法), 승(僧)에 대한 귀의는 불교에서 볼 때 가장 중 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왜냐 하면 그것 없이는 불교가 성립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기에 인용한 것은 이런 삼귀의 중의 '법'에 대한 부분이거 니와, 여기에는 붓다의 가르침이 지니는 기본적이 성격이 아주 단적으 로 표현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므로 이것을 실마리로 하여 우리는 붓다가 설하신 사상의 성격을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여기서 좀 머뭇거리게 된다. 그것은 여기에 나타나 있는 붓다의 가르침의 성격이 세상의 그 많은 종교의 상식과는 꽤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종교란 내세(來世)에 관한 것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고 여기 는 것이 종교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다. 특히 후세의 불교 중에는 얼 른 보기에 사후의 일이나 내세의 운명 같은 것에만 관심을 쏟는 듯한 종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기서는 붓다가 설한 법이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성질의 것"이며,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성질의것"이 라고 지적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세상 일반의 종교적인 상식 을 떠나 새로이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앞서 명심해 두어야 할 일은 붓다의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붓다의 가 르침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다음에 귀의하게 된 사람들이라는 점 이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그것이 진리임을 확신 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출가하여 사문이 되거나, 신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귀의의 심정은 이를테면 예수가 "나를 따르라."고 하자 곧 예수 를 따라 나섰던 열 두 제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성격이 달랐다고 해야겠 다. 또 후세의 정토종(淨土宗 ; 아미타불의 서방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 하는 종파. 혜원(慧遠)이 창시자.)신자들처럼 그 도리는 이해하지 못하 는 대로 불지(佛智)와 본원(本願 ; 붓다가 보살 적에 중생 구제를 위해 세운 서원.)의 불가사의함을 믿으려 들었던 태도와도 다르다고 아니할 수 없다. 붓다의 제자들이 붓다를 따르게된 동기는 결코 단순히 붓다의 인격적인 권위 앞에 머리를 숙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하물며 보지 않고 믿는다든지, 불합리한 까닭에 믿는 다든지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경 전이 되풀이하여 말하고 있는것에 의하면 그들은 "이미 법을 보고, 법 을 얻고, 법을 알고, 법을 깨닫고, 의혹을 풀어서" 이것 아니고는 내가 갈 길이 없다고 확신함에 이르러 비로소 붓다를 따른 것이다. 즉 그들 의 귀의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 납득, 확신 위에 입각한 귀의였 다. 그러면 그 가르침은 어떤 성격을 띠고 있었던가? 이 장의 첫머리에 인용한 글은 그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을 열거하였다.

    1)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것.
    2)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果報)가 있는 것.
    3)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4) 잘 열반에 인도할 수 있는 것.
    5) 지혜 있는 사람이면 각기 스스로 알 수 있는 것.

    첫번째의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것"이란 말은 흔히 '현견(現見)'이라 고도 번역되듯이,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붓다의 가르침은 철두 철미하게 이 현실에 입각 하고 있다는 뜻이다.

    붓다가 "이는 고이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디 까지나 우리의 현실임에 틀림없다. 보이지 않는 신을 믿어라, 또는 천 국이 가까웠다고 하는 따위의 말과는 다르다.

    또 "이는 고의 멸진이 다."라고 말하고,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할 때, 그것 들은 모두 현실의 문제이니까 눈을 떠서 그 진상을 직시한다면 누구라 도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볼 수 있고, 현실적으로 증험 할 수 있는 것이겠다. 만약 붓다가 어떤 환상 속에서 말했던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현실에서 보고 증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는 그 설하 는 내용이 사후의 문제와 관련이 되고 미래의 일에 미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오직 "보지않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혹은 "불합리 하므 로 믿는다."고 고백하여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붓다를 따르 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보고 증험함으로써 그 가르침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붓다의 가르침이 지니는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또 두 번째의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라는 표현은 흔히 '즉시적(卽時的)' 혹은 '현생적(現生的)'이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그것 은 과보 즉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에 관한 문제이다. 만약 붓다가 설한 것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것이었다면, 그 성과는 그것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또 그것이 내세 왕생(往生 ; 천상세계에 가서 태어남.)에 대한 가르침이었다면, 그 과보는 유명을 달리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때를 격 하지 않고 바로 현재에 과보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더 구 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행히 이에 관해서 언급한 경이 있다.
    [상응부 경전]에 '우파바나'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 우파바나 라는 제자가 그것에 대해 물었던 것이다. "대덕이시여, 현생적인 법, 현생적인 법 합니다만, 대체 어떤 것이 현생적인 법이겠습니까?" 이에 대해 붓다는 인간의 감각 기관과 그 대상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기는 집착을 보기로 들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파바나여, 여기에 한 사람의 비구가 있어서 눈을 들어 무엇을 보았다 하자.
    또 그는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해 염심(染心 ; 악 에의해 더러워진 마음.)을 일으켰다고 치자. 그때 그는 스스로 반성 함으로써 '아, 내 속에 염심이 있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파바나여, 그것이 현생적인 법이니라. 우파바나여, 그런데 여기에 또 한 사람의 비구가 있어서 눈을 들어 무엇을 보았다 하자.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염심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치자. 그때 그는 자기 마음을 돌아보고 '아 나에게는 염심이 없구나.'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파바나 여, 이것이 현생적인 법이니라.
    " 붓다와 그 제자들의 관심사는 결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의 문 제였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을 변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전환 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정신을 차려서 돌아보기만 한다면 자기의 상태를 똑똑히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집착을 안고있 는 내 마음의 움직임과 집착을 떠난 내 마음의 편안함이 그대로 이해되 기 마련이다. 미망으로 뒤덮여 있는 마음의 어둠이 붓다의 가르침을 이 해하는 것에 의해 홀연히 개어 가는 모습도 알 수가 있다.

    이런 모양을 "어둠 속에 불을 가져와"라고 설했던 것이겠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 을 '현생적', '즉시적'이라 하고, "때를 격하지 않고"라고 한 까닭이 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직역하 여 '내견적(來見的)'이라고도 하거니와, 그 뜻하는 바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 더 현대적으로 말한다면 '열려 있는 진리'라는 정도의 뜻이다. '열려 있는 진리'에 대립하는 것은 '닫혀 있는 진리'이다. 세 상에는 이미 그것을 믿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 는 가르침을 주장하는 종교도 많다.

    구약 성서에 나오는 아담의 신화를 믿는 이가 아니면 원죄 사상은 이해되지 않을 것이며, 무량수경에 보 이는 법장 비구(法藏比丘 ; 아미타불이 보살행을 닦을 때의 이름. 그는 이 때 48대원을 세워 수도한 결과, 서방 극락 정토를 건설하여 그 부처 가 되었다고 함.)의 서원을 믿지 않는다면 염불 왕생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열려 있는 진리'이므로 합리적으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붓다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또 누구라도 실천함으로써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내용이었다. 결 코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든지, 신앙의 힘에 매달리지 않으면 얻어질 수 없다든지, 또는 이방인에게는 베풀 수 없다든지 하는 그런 제한은 없었다. 허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귀를 기울인다면 누구 에게나 이해되는 내용이었으며, 편견을 떠나 눈을 들어 본다면 있는 그 대로 인식되는 가르침이었다.

    그러기에 "와서 보라."고 이를 수 있는 것이며, 만인 앞에 '열려 있는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네 번째에는 "잘 열반에 인도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더 원문 대로 번역한다면 다만 '잘 인도하는 것'이 되지만, 어디에 인도하는 것 이냐 할 때 열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열반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수있다.

    왜냐 하면 그 것이야말로 붓다가 설정한 궁국의 목표요, 인간의 이상인 까닭이다.
    인 간은 대체 무엇이고자 원하고 있을까? 또는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 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있을 터이므로 그 생각하는 내용도 각기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현세에서의 번영을 이상 으로 그리며 산다. 어떤 사람은 내세에 위안을 찾으려고 들기도 한다. 상천(上天)이니 왕생이니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붓다가 가 리키는 목표는 '열반'이라고 표현된다. 그것은 닙바나(nibbana, Pali) 또는 니르바나(nirvana, SKt.)의 음사인바, 마음속에서 타고 있는 격정 의 불꽃이 꺼진 상태를 뜻한다. 이말로 붓다는 마음속에 어지러움이 없 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경지를 가리킴으로써, 그것을 인간의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잘 인도하는 것"이라는 구절은 붓다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인도하여 이런 이상을 실현 시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생각건대 만일 붓다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라는 것이, 다른 종교가 들이 흔히 그러하듯 내세의 복지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면, 그것은 도저 히 "현실적으로 증험되는 것"이라거나 "때를 격하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라거나 또는 "와서 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 었을 터이다. 불교의 긴 흐름을 돌이켜 볼 때, 그런 내세설이 주장된일 도 있었다고 해야겠지만, 붓다의 사상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나는 목소리를 높여 확언하고 싶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지적된 것은 "지혜 있는 사람이면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자각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붓다와 우파바나의 문답에서도 나타나듯이 스스 로 내심의 동향을 살펴본다면, 내 마음에 번뇌가 있다, 또는 내 마음에 번뇌가 없다고 자각할 수 있는 문제이다. 또 내재하는 방해물이 나타나 서 마음을 교란 시킨다면, 고요히 반성함으로써 그 상황을 올바르게 파 악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또 붓다가 가르친 방법에 따라 그 방헤 물을 없앤다면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누구나 자각할 수 있을 것이 아닌 가. 적어도 붓다의 제자들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던 사람들이었다.

    "지 혜 있는 이가 저마다 스스로 알 수 있는 것" 이라는 말은 붓다의 가르 침이 이런 것이었음을 나타낸다.

    만약 모든 종교의 내용을 분류하여 자각의 길과 구제의 길로 나눈다면, 말할 것도 없이 붓다의 가르침은 자각의 길에 속하며 그 가장 전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함경 이야기중 [제 2 장 그 사상. 3. 내재하는 방해물.]은 다음회에 계속 이어집니다

         

        '🙏불법과 동행을 > 💕불교자료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함경 이야기 1   (0) 2018.07.02
        아함경 이야기 2   (0) 2018.07.02
        아함경 이야기 4   (0) 2018.07.02
        아함경 이야기 5   (0) 2018.07.02
        아함경 이야기 6   (0) 2018.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