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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이야기 2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2.


-아함경 이야기 2-
    아함경 이야기4

    1. 그사람. 4. 첫 설법.

    "비구들아, 출가한 이는 두 극단에 달려가서는 안되나니,
    그 둘이 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또 무익하니라.

    또 스스로 고행을 일삼 음은 오직 괴로울 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무익하니라.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섕기게 하며, 적정(寂靜 ; 마음에 번뇌가 끊 어져 고요하고 편안한 모양.)과 증지(證智 ; 중도와 참다운 지혜를 체득하는 것.)와 등각(等覺 ; 붓다의 깨달음은 평등하다는 뜻. 또 붓 다를 일컫는 이름.)과 열반(涅槃 ; 열반에 대해서는 앞으로 올릴 아함경 이야기의 -

    2. 그 사상. 8.열반 - 에서 자세히 다루어 집니다.) 을 돕느니라. ([相鷹部經典] 56:11. 漢譯同本, [雜阿含經] 15:17 轉法論) (상응부경전) (한역동본) (잡아함경) (전법론) 보리수 밑에서의 명상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중에서 붓다가 다시 생 각한 것은 주로 다음의 두 가지였다고 생각된다. 그 첫째는 저 내증(內證), 즉 보리수 밑에서 깨달은 내용을 표현하는 일, 더 적절히 말한다면 그것을 설법하기 위해 조직하고 체계화하는 일 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는 경전의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깨달음의 사상적 내용인 '연기의 법칙'과 최초의 설법에서 중요 한 주제가 되었던 '네 가지 진리(四諦)'를 비교할 때, 얼른 보아 이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붓다는 겨우 설법할 결심이 서서 처음으로 사람들을 향해 법을 설했을 때, 자기의 깨달음의 내용을 결코 그대로 말한 것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그것은 주도한 배 려에 의해 조직되고 체계화되어, 이른바 '네 가지 진리'로서 제시되었 던 것이다.

    그러면 그런 조직은 언제 이루어졌던가?
    그것 또한 보리수 밑에서의 명상중에, 아마도 설법의 결의가 서고 난 다음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여 겨진다.
    '연기의 법칙'과 '네 가지 진리'의 관계 즉 전자가 어떻게 조 직 됨으로써 후자의 체계를 이룰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이해한다 면, 이것은 바로 불교의 전 체계의 기초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히 언급하고자 한다.
    다음으로 붓다의 가슴에서 오고 간 둘째 생각이란 어떤 것이었던가?
    그것은 먼저 누구를 향해서 이 법(진리)을 설할 것이냐 하는 문제 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설법할 첫 대상자의 선택이다. 앞에서도 이미 나 온 바와 같이 이 법은 심심 미묘하고 또 세상의 상식을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격정이나 무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걱정인 까닭에 붓다도 자주 설법을 주저했었던 것 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빨리 이해하여 줄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누구 에게 먼저 이 법을 설해야 할 것인가? 계속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 리수 밑에서 붓다가 생각한 것은 이 문제였을 것이다.

    첫 설법의 상대, 그 지명은 먼저 아라라 카라마 위에 떨어졌다. 그는 일찍이 붓다가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는 옛 스승이었다. 그 스승이라면 반드시 이해하여 주려니 생각했던 것이리라.

    그러나 알아보 았더니 그 사람은 이미 죽고 난 뒤였다.
    실망한 붓다는 역시 예전의 스 승이던 윳다카 라마푸타를 생각했던 것이나, 그도 또한 죽었음이 판명 되었다. 이리하여 옛 스승과의 재회는 끝내 실현되지 않았거니와, 그것은 당 시의 붓다의 심경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먼저 설법의 상대로 옛 스승을 택했다는 것은 그들에게서 따뜻한 이해를 기대한 것이었는지 도 모른다. 말하자면 자기가 깨달은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 받고 자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 또한 후세의 불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 터무니없는 억측이라고 할는지도 모른다.
    붓다의 확고한 신념은 이미 보리수 밑에서의 정각에서 확립된 것이라고 질타할는지도 모른다.
    그러 나 아함부의 여러 경전이 말하는 붓다의 인상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
    붓다는 결코 경솔하게 확신해 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신령에 충만 하여 포효하는 사람과도 성격이 달랐다.
    검토에 검토를 거듭한 끝에 마 침내 확신을 가지고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붓다의 사람됨이 었다.

    더욱이 당시의 붓다는 아직 서른 다섯 살밖에 안 된 젊은이였음 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크나 큰 해결은 이미 이루어졌을 망정, 그것을 내세우면서 천하에 군림할 자신은 충분하게 서 있지 않았다고 해서 조 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흔들림 없는 확신과 절대적인 자신은 얼마 안 가서 확립되기에 이르니, 처음으로 한 설법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을 적이 그때였다. 그런 뜻에서 보면 최초의 설법이야 말로 붓다 에게는 가장 큰 시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붓다의 태도 또 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 스승 두 사람이 다 죽었다는 것을 안 붓다는 생각 끝에 친구들을 설법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경전은 언제나 그들을 가리켜서 '다섯 비 구'라고 했거니와, 그들은 일찍이 붓다가 고행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여러 가지로 붓다를 도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붓다가 고행을 포기하 는 것을 보고는 경멸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나타내면서 그의 곁을 떠나 버린 사람들이기도 했다.

    붓다는 여기저기 수소문한 결과, 그들이 지금 바라나시(波羅捺)의 교 외 이시파타나 미가다야(鹿野苑)에 있다는 것을 알아 냈다. 붓다는 곧 보리수 밑을 떠나 바라나시로 갔다. 우루베라에서 바라나시까지는 250 킬로미터가 넘는다. 그야말로 천리를 멀다 여기지 않고 오직 법을 설하 기 위해 떠났던 것이니 붓다가 이 첫 설법에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이 해가 간다.

    얼마 가지 않아 붓다는 한 사문을 만났다. 경전은 그의 이름을 사명 외도(邪命外道 ; 고사라가 시작한 종교. 모든 것은 운명이요,인간의 의 지력은 아무 작용도 하지 못한다고 보았다.)인 우파카(Upaka)라 전하거 니와, 그는 붓다의 얼굴을 보자 말을 걸어 왔다.

    "존자여, 당신의 얼굴은 참으로 광명에 넘쳐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 에 의해 출가했고,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붓다가 그 깨달은 바를 이야기할 예기치 않은 기회가 되었다. 경전은 여기에서도 붓다의 대답을 운문으로 기록해 놓았다.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럽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 사리(捨離)하여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이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이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正覺) 이루어 고요롭도다.

    이제 법을 설하려 카시(迦尸)로 가거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甘露)의 북을 울리리라.
    아직 젊은 붓다가 자신 만만하게 말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소 리를 들은 우파카는 아연 실색하고 말아,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라 는 아이러니한 말을 남긴 채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가 버렸다고 한 다. 모처럼의 첫 기회가 헛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붓다는 다시 여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미가다야(鹿野苑)에 도착했다.

    그러나 거기에도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명의 비 구들은 붓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도 환영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한 문헌([율장대품])은 그때 그들이 한 말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보라! 저기에 나타난 이는 고타마이다. 그는 고행을 버리고 사치 에 떨어진 사람이다.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 마중도 하지 말고, 의발(衣鉢)도 받아 주지 말아야 하리라.

    그러나 자리만은 펴 주자. 앉고 싶거든 앉게는 해야지." 그래도 막상 붓다가 다가오자 그들은 일어나서 맞아 주었다. 의발도 받아 주고 발을 씻을 물도 떠다 주었다. 역시 친구로서의 우정이 남아 있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붓다가 그 깨달은 바를 이야기하려 하자 그들 은 완고히 듣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앞서 붓다가 고행을 포기한 것을 보고, 그가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훌륭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지 못했던 것이다.

    옥신각신한 끝 에 붓다가 말했다.
    "그럼, 너희는 예전에 내 안색이 이렇게나 광명에 넘쳐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안에 훌륭한 정신을 지닌 사람은 그 안색도 빛나게 된다. 고대 인도 사람들은 그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문헌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다섯 명의 비구들도 그렇게 듣고 보니 고타마의 안색이 예사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면 어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어나 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하여 경전이 '여래소설(如來所說)'이라고 부르는 최초의 설법이 베풀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붓다가 45년에 걸쳐 행했던 설법의 수효는 몇 천에 이를 것이 다. 그리고 그런 설법은 모두 '대기 설법(對機說法)'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기근(機根 ; 진리를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 '근기'라고도함.) 에 따라, 또 문제에 따라 거기에 어울리는 내용이 설해진 까닭이다. 그 런 중에서 오직 한 번만 예외가 있었다. 그 예외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설법이다. 여기서는 먼저 설하고자 하는 가르침의 내용이 마련된 다음에 "이것 을 빨리 깨닫는 이는 누구냐?"고 해서 설법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그런 뜻에서 볼 때 붓다가 그 깨달은 내용을 가지고 자진해서 설한 것 은 이 첫 설법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팔리 어 경전의 편찬자가 첫 설 법의 내용을 전하는 경전에 '여래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여기 에 있다고 믿어진다.

    또 한역의 [아함경]에서는 이 경을 '전법륜(轉法輪 ; 불법<佛法>의 '수레바퀴,를 굴린다는 것이니, 곧 붓다의 설법)이 라고 불렀거니와, 그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붓다 는 많은 것을 설하셨으나, 이야말로 여래가 설하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이 경밖에는 없다고 본 것이리라. 그 정도로 이 설법이 갖는 뜻은 큰 것임이 확실하다.

    그 설법 - 그것을 후세 사람들은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는 엄숙한 표현으로 부른다 - 은 이제 미다가야에서 다섯 명의 비구를 상대로 하 여 설해지게 되었다. 그 앞 부분의 내용이 이 장(章)의 첫머리에 인용 한 일절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먼저 두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되었다. 그 하나 는 쾌락주의의 입장, 즉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하는 것에 대한 비판 이 다. 또 하나는 금욕주의의 입장, 즉 스스로 고행을 일삼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돌이켜 본다면 그것들은 모두 붓다 자신이 몸소 체험한 생활 방식임 에 틀림없다.
    일찍이 가정에 계셨을 때 온갖 욕망에 묻혀 있던 이가 바 로 그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것을 붓다는 출가 즉 '크나큰 포기'의 감 행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출가한 그는 다시 고행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여기서도 고행에 열중하던 붓다는 차츰 그 불합리성을 간파할 수가 있었다. 결국 두 극단적인 입장에 대한 비판은 바로 그 자신의 과 거에 대한 반성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새로이 택한 입장으로서의 중도(中道)와 그 위에서 전 개된 사상 체계로서의 네 가지 진리(四諦)가 계속해서 설해지게 되었다. 아함경 이야기중 "1.그사람, 5.네 가지 진리"는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아함경 이야기5 1. 그사람. 4. 네 가지 진리 "여러분이여, 모든 동물의 발자취는 다 코끼리의 발자취 속에 들어 온다. 코끼리의 발자취는 그 크기가 동물 중에 으뜸이다.

    그와 마찬 가지로 여러분이여, 모든 착한 진리는 다 네 가지 성제안에 포섭된다 .
    그 네 가지란 고(苦)의 성제, 고의 발생의 성제, 고의 멸진(滅盡), 의 성제,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 ([中部經典] 28 象跡喩大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30 象跡喩經) (중부경전) (상적유대경)(한역동본) (중아함경) (상적유경) 여기에 든 '코끼리 발자취로 비유한 경'이라는 이상스런 이름을 가진 경전이며, 이 경의 주인공은 붓다의 으뜸가는 제자라는 사리푸타(舍利弗,Sariputta)이다.

    그가 자주 스승인 붓다를 대리하여 붓다의 젊은 제 자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을 해설했던 일이 여러 경전에 나타나 있거니와 , 여기서도 그는 스승이 설한 '네 가지 성제'를 설명하기위해 그 첫머 리에 코끼리 발자취의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비유는 아마도 코끼리가 많은 인도 특유의 것이리라. 뭍에서 가장 큰 그 동물의 발자 취는 물론 매우 커서, 다른 동물의 발자취는 모두 그속에 들어가 버린 다. 그래서 그는 가장 포괄적인 것을 코끼리의 발자취에다 비유한 것이 겠다. 그리고 사리푸타는 그것에 의해 붓다가 설한바 온갖 가르침 속에 서 차지하는 '네 가지 성제'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경([中部經典] 63 摩羅阿小經. 漢譯同本, [中阿含經] 221 箭喩經)에 의하면 붓다는 마룬캬(Malunkya)라는 제자를 상대로 다음과 같 이 설한 적도 있다. "그러므로 마룬캬여, 내가 설하지 않은 일은 설하지 않은 채로 수 지(受持 ;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지니는 것. 즉 받드는 것.)함이 좋고, 또 내가 설한 일은 설한 대로 수지함이 좋으니라. 그러면 마룬캬여, 내가 설한 것이란 무엇이던가? '이는 고(苦)이 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이 는 고의 멸진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또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했다.
    마룬캬여, 왜 나는 그것들을 설했던가? 마룬캬여, 그것들은 정말 도움이 되며, 범행(梵行 ; 청정한 행위. 욕망을 끊는 것.)의 기초가 되며, 적정 , 증지 , 등각 , 열반에 이바 지 하느니라. 그러기에 설했음을 알라." 마룬캬라고 불리는 이 제자는 오늘날의 말로 하면 철학 청년이라고나 할까? 이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인간은 죽은 다음에도 존재하는가 못하는가,

    또는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가 동일하지 않은가, 당시에 유행 하던 이런 문제를 논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붓다는 전혀 그 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것을 불만스 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 젊은이가 어느 날 붓다를 찾아와서 그 불만을 털어 놓았을 때, 그에게 '화살의 비유'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 다음, 마지막에 가서 힘을 주어 한 말씀이 이것이었다.

    거기에서 붓다는 "내 가 설하지 않은 것은 설하지 않은 채 수지하라.
    " 또 "내가 설한것은 설 한대로 수지하라."고 하여 매우 힘 있게 끊어서 말하고 있거니와, 그러 면 대체 붓다가 설한 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네 가지 성제'였다고 붓다 자신이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성제'는 붓다의 가르침의 중심 골격을 이루는 것 이었다.

    이 사실은 저 다섯 비구를 상대로 설해진 이후, 그 생애를 통 해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지금은 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중심 문제요, 그 사상을 설명하는 것은 주제가 아 니나, 먼저 얼마라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설법소식 은 완전히 그 안목(眼目)을 잃고 말는지 모른다.

    '네 가지 성제'(cattari ariyasaccani)는 흔히 줄여서 '사성제' 또는 '사제'라고 일컬어진다. '제'는 sacca(Pali) 혹은 satua(Skt.)의 역어 로 '진리'를 뜻하는 말이거니와, 그것은 아울러 '엄숙한 단언'을 뜻하 기도 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오히려 '엄숙하게 진리를 말씀한 단언적 명제'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그 뜻에 더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붓다 는 아마도 그 생애를 통해 이것을 숱하게 되풀이해서 설했으려니와, 이 제 여러 경에 나타난 바를 검토할 때, 가장 간명한 형식은 앞서 인용한 마룬캬에게 설명해 주던 그 양식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고(苦)이다." "이는 고의 발생이다." "이는 고의 멸진(滅盡)이다."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여래소설(如來所說)'이라고 불리는 첫 설법에서는 이것이 더 상세하 게 나온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세우는 것이라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생(生)은 고 이다. 노(老)는 고이다. 병은 고이다. 죽음은 고이다.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이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은 고이다. 욕심 나는 것을 얻지 못함 은 고이다. 뭉뚱그려 말한다면 이 인생의 양상은 고 아닌 것이 없느 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후유( 後有 ; 과보(果報))를 일어나게 하고, 기쁨과 탐심을 수반하며, 모든 것에 집착하는 갈애(渴愛 ; 욕망에 빠지는 것.)가 그것이다. 그것에 는 욕애(欲愛 ; 탐내는 생각을 일으켜 무엇을 욕구하는 것. 주로 성 욕.)와 유애(有愛 ; 개체를 존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와 무유에(無有 愛 ; 명예,권세에 대한 욕망.)가 있느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이 갈 애를 남김 없이 멸하고, 버리고, 떠나고, 벗어나 아무 집착도 없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 그것이니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다. 마땅히 들 어라. 성스러운 팔지(八支)의 도(道)가 그것이니, 정견(正見), 정사( 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 正念), 정정(正定)이니라." 여기에서 "마땅히 들어라." 이하의 설명을 빼어 버리고 그 항목만을 열거하면 이렇게 된다.

    1) 고의 성제
    2) 고의 발생의 성제
    3) 고의 멸진의 성제
    4)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 이전부터 불교인들은 이것을 간략히 하여 '고(苦), 집(集), 멸(滅), 도(道)'의 사제(四蹄)라고 했다., 둘째 것을 '집'이라고 한 것은,한역( 漢譯)에서는 예전에 '발생'을 '집기(集起)'라고 번역했던 까닭이다.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비로소 '네 가지 성제'라고 불리는 설법의 구 조가 이해된다. 붓다는 먼저 네 개의 단언적인 명제를 내세우고 나서 그것들을 순차적으로 설명해 갔을 것이 틀림없다. 맨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이는 고(苦)이다." 또는 "이것은 고의 성제이다."라는 명제였다.

    이것은 과제의 제시이다. 인생의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여기서는 생, 노, 병, 사, 즉 사고(四苦)가 모든 사람을 무겁게 짓누르 고 있다. [법구경]의 게(128)를 가지고 말한다면 이렇게 된다. 하늘 위에 오르고, 바다 밑에 잠기고 산골짜기 깊숙한 동굴 속에 숨는대도 죽음의 검은 손이 미치지 않는 그런 곳은 이 세상에 있음 없어라.

    그것뿐이 아니다. 미워하는 사람과도 만나야 한다(怨憎會苦). 사랑하 는 사람이라도 헤어질 때가 온다(愛別離苦)., 또 채워지지 않는 욕심도 허다하다(求不得苦). 우리의 일상 생활이란 괴로움으로 뒤덮여 있지 않 은가! 붓다는 이런 현실에 갑자기 생각이 미쳤을 때,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저 크나큰 포기(출가)를 감행했던 것이다. 이런 현실위에 "이는 고(苦)이다."라는 제1명제가 세워지기에 이른 것이다.

    두 번째로 제시된 명제는 "이는 고의 발생이다." 또는 "이것은 고의 발생의 성제이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인생의 현실을 통찰한 다 음, 그 발생의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일이다. 그것은 얼른 보기에 저 항할 길 없는 운명인 듯이 생각된다. 그러나 만약 거기에서 멈추고 만 다면 우리는 무력한 운명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대체 그것을 극복할 방 법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붓다가 목숨 을 걸고 추구했던 문제였다. 그리고 그의 크나큰 깨달음이 이 수수께끼 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그리하여 이 물음은 연기의 법칙, 즉 일체의 존재는 어떤 조건(인연)에 의해 이루어졌고, 따라서 자아(自我)니 실체 (實體)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원리에 의해 훌륭히 해결이 났 던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깨달음의 경지에서 볼 때 인생을 괴롭게 만 드는 원인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이 갈애(渴愛,tanha), 즉 목마른 이가 물을 찾는 것에나 비겨야 할 불타는 욕망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셋째로 제시된 것은 "이는 고의 멸진이다. " 또는 "이것은 고의 멸진 의 성제이다."라는 명제이다.

    인생이 욕망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괴로운 것이 되고 말았다면 무엇으로 이런 우리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겠는가? 그것에는 오직 한 가지 방법, 불타는 욕망을 가라 앉히는 길이 있을 뿐 이라는 것이 세 번째의 명제이다. [법구경]에서 모름지기 이 길을 걸어간다면 괴로움이 마침내 스러지리라. 욕망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깨달아 나는 이를 설함이로다.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인생을 고통으로 가득 차게 하는 원인이 갈애에 있는 것이라면, 그것 을 철저히 뿌리 뽑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여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그것에는 기적도 없고 신비도 없다. 그것을 서운하게 여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붓다 란 그런 분이며 불교란 그런 종교인 것이다. 그것을 후세의 불교인들은 "불교에는 불가사의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붓다 이전에 이 당연한 이치에 눈뜬 사람이 있었던가? 평범하다면 평범하지만, 위대한 평범이 라고 아니할 수 없다. 본래 진리란 그런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다고 하는 것이 우리네 범부라면,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 아 들이는 것이 진리요 깨달음인 것이겠다. 네 번째로 제시된 것은 "이는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이다." 또는 "이 것은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의 성제이다."라고 하는 명제다.

    이것은 실 천론이다. 제3의 명제에 의해 수립된 원칙에 입각하여 고(苦)를 없애기 위한 실천 방법을 보인 것이 제4의 성제이다. 그 내용은 이른바 성스러 운 여덟 가지 정도(八正道, ariyo atthangiko maggo), 즉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 념(正念), 정정(正定)이며, 이것들은 모두 전장(前章)에서 말한 바와 같이 두 극단을 떠나 중도(中道)에 입각하는 실천, 곧 관찰(정견)과 행 위(정사, 정어, 정업)와 생활(정명)과 수행(정정진, 정념, 정정)에 관 한 여러 항목을 열거한 것이다. 미가다야(鹿野苑)의 나무 그늘에 앉아서 붓다가 다섯 비구에게 이야 기한 것은 바로 이 '네 가지 성제'에 관한 것이었다. 아마도 붓다는 그 단언적인 명제들을 먼저 제시한 다음에 차례차례 설명을 덧붙였을 것으 로 여겨진다.

    그것들이 결코 그들 다섯 비구에 의해 대번에 이해 되었 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낡은 문헌(이를테면 [중부경전]26성구경) 의 기록도 그런 사실을 명확히 보여 주고 있다. "이리하여 두 명의 비구에게 설명 할 동안은 다른 셋이 나가서 탁 발하여, 세 사람의 비구가 탁발해 온 것을 가지고 여섯 명이 살아갔 다. 또 세명의 비구에게 가르치고 있을 때는 두 사람의 비구가 탁발 하여, 그들이 얻어 온 것으로 여섯이서 생활했다." 이런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다섯 비구의 한 사람인 콘단냐(僑陣如 Kondanna)가 그 사상 체계를 이해하게 되었다.

    경전은 그것을 "콘단냐는 먼저 티 없는 청정한 법안(法眼 ; 바른 이치를 보는 눈) 을 떴다." 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본인에게도 기뻤으려니와, 아마도 그 이상으 로 좋아한 이는 붓다 그 사람이었을 것이다. "콘단냐는 깨달았다, 콘단냐는 깨달았다!" 그때의 붓다의 말씀을 경전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이 말 가운데는 이제껏 혼자서 가슴속에 지니고 있었던 깨달음의 내용을 가까스로 남에 게 이해시킬 수 있었던 붓다의 무량한 감개가 함축되어 있는 듯이 느껴 진다.

    그로부터 콘단냐는 '안냐타 콘단냐(Annata Kondanna)'라고 불리 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깨달은 콘단냐'라는 뜻이어서 "콘단냐는 깨 달았다."고 외친 붓다의 말씀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가를 상상하게 해 준다. 이윽고 나머지 네 명의 비구들도 마침내 붓다의 설법을 이해하게 되 었다. 그때 이 세상에는 여섯 분의 성자가 계셨다. 고 경전은 말하고 있다. 또 그때 십천 세계(十千世界 ; 소천세계 열이 모인것. 매우 광활한 세 계라는 뜻.)가 진동했으며 무한한 광명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 고도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대사(大事)의 성취를 표현하는 고대적인 수법 이거니와, 그 대사가 바로 불교의 성립을 뜻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일이겠다.

    아함경 이야기 (제1장 1.그사람 6.전도)는 계속해서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아함경 이야기6 1. 그사람. 6. 전도(傳道)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 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 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梵 行)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약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 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將 軍村)로 가리라." ([相應部經典] 5:5 係蹄(2). 漢譯同本, [雜阿含經] 39:16 繩索) (상응부경전) (계제) (한역동본) (잡아함경) (승삭) 여기에 든 일절은 이른바 붓다의 '전도 선언' 이라고 불리는 대문이 다. 그것은 붓다가 아직 미가다야(鹿野苑)에 머물고 있었을 무렵의 일 이었다.

    붓다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가르침을 받은 끝에 출가하여 제 자가 된 사람의 수효가 불어나서 60명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붓다는 그들을 전도하러 떠나 보냄으로써 이 새로운 진리를 널리 세상에 펴고 자 결심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을 모아 놓고 타이른 말씀이 이것이 었다. 이 '저도 선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째 부분은 전도 의 정신을 말씀한 대목이다. 거기에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며."라는 말씀이 나온다.

    나는 앞에서 재래 불교도들의 상 식을 뒤엎고, 붓다가 출가한 동기는 중생 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 히려 그 자신의 인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 론 붓다의 출가는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구제한 셈이 되었던 것이 며, 그 혜택은 멀리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음이 사실이겠다. 그러나 이것을 근거로 하여 붓다가 출가한 동기가 중생 구제에 있었다 고 한다는 것은 결과를 가져다가 동기로 삼는 것이어서, 붓다의 출가의 진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아함부의 경전들이 이 점에 대해 얼마나 신중한 표현을 취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야 될 것이다.

    거기에서는 출가에 대해서나 수행에 대해서나, 그리고 정각(正覺)이라 든지 최초의 설법에 대해서까지도 중생 제도와 결부시키는것 같은 표현 은 전혀 쓰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이 전도의 선언에 이르러서야 비로 소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말이 나오고, 또 "세상 을 불쌍히 여기고, 이천(人天)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인천이란 인간계와 천상계의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뜻이니, 많은 사람들이라는 말과 함께 중생(衆生), 즉 모든 생물을 가 리킨다.

    생각건대 붓다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고 말씀 하기까지의 거리는 매우 멀었다. 그러나 일단 확신을 가지고 전도를 떠 나라고 말했을 때, 거기에 나타난 전도의 정신은 일체의 제한을 넘어서 모든 생물에게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붓다는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 라."고는 하지 않았다.

    또 "사마리아 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고 는 하지 않았다.
    오직 모든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人天) 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 가라고 타일렀다. 그것은 참으로 붓다다 운 전도의 선언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 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이 대목의 마지막 말씀 즉 "둘이 한길을 가지 말라."는 구절이다.

    내가 이 구절에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선 언'때문이다.
    그는 앞에서도 인용했듯이 "이방인의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마태복음 10 : 6) 고 말했던 것이다. 또 다른 복음에는 열 두 제자를 불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마가복음 6 : 7) 라고 나와 있다. 나는 이것을 그것에 비교하여 하나를 높다 하고 다른 것을 못하다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이 둘을 비교함으로써 그 하나 만 읽어 가지고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던 뜻이 명확한 형태로 눈앞에 떠 오름을 느끼게 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예수는 그때 다음과 같은 말도 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公會)에 넘겨 주겠고, 저희 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그러기에 전도하러 떠나는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 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도 가르쳐야 했다. 거기에는 도저히 혼자 서는 갈 수 없는 길이 있었다. "둘씩 둘씩 보내시며"라는 표현에는 그 럴 만한 까닭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겠다.

    그리고 이런 것과 비교해 볼 때 "둘이서 한 길을 가지 말라."는 붓다 의 말씀의 뜻도 스스로 명백해진다.

    여기에는 박해의 예상이란 조금도 없었음이 확실하다. 오직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가는 것이 니까. 또 사람들이 그들을 공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도 생각 되어 있지 않다. 오직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은 설 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런 전도의 정신은 붓다의 전 생애를 일관하 여 실현되었을 뿐 아니라, 또 수천 년에 걸친 불교의 역사를 통해 지속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잘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불교는 오랜 세월 에 걸쳐 아시아 대부분의 지역에 전파 되었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 전 도는 평화와 환영 속에 수행 되었고, 불교의 이름 밑에 피를 흘린 역사 는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 모두가 교조 붓다의 정신 을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붓다의 '전도 선언'에서 둘째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설법 의 이상적인 양상이 제시된 대목이다.

    거기에는 먼저 "처음도 좋고 중 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라고 설해져 있다. 이것을 후세의 불교인들은 간략히 '초중종(初中終)의 선(善)'이라고 불렀다. 또 "조리와 표현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라."고 되어 있기에, 이를 '의문 구족(義文具足)'이 라고 했다. 그리고 이 밖에도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수행"을 설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예수가 열 두 제자를 떠나 보내면서 한 말 에 비길 때 흥미 진진한 바가 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이를 고치 며, 죽은 이를 살리며, 문등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 내라."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선교의 임무였다. 또 공회에 넘겨졌을 때는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 무슨 말할 것을 주 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고 했다. 기독교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신령에 충만하여 신령의 말을 매개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붓다는 조리가 정연한 아리따운 변 설을 요구하였다.

    여기에서도 나는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고 할 뜻은 없으나, 두 성인의 설법에 대한 요구가 크게 대조를 이루고 있 는 점에 깊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버쳐(Butcher)의 저서 [그리스 정신의 여러양상 (Some Aspects of the Greek Genius)]이 그리스 인의 웅변에 대해 언급 한 대목을 되새기게 된다.

    그들이 토론을 좋아하고 웅변을 사랑 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또 그 웅변이 그들의 합리적인 정신과 예 술적인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도 자주 이야기되어 왔다. 버처는 그 런 사실들을 자세히 서술함과 아울러, 다시 그 청중과 변사에 대해서도 아주 구체적인 소식을 전해 주고 있다. 그 청중들은 마치 음악에라도 홀린 듯이 그 아름다운 말에 도취하 였으나, 한편으로는 그 매력 때문에 속는 일이 없기 위해 신중히 경 계함을 잊지 않았다.

    허점을 찔러 오는 논법에서 자기를 지키고, 궤 변을 간파하려고 했다.
    이같이 엄격한 청중에 대하여 변사는 십분 경 의를 표하지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은 특히 연설의 끝에 가서 으레 있기 마련인 저 흥분 없는 고요한 어조에 의해 표시되었다. 그것은 근대인이라면 냉철함이라고 받아 들일지도 모르는, 겉으로 보기에 점 차 나직해 가는 어조였거니와, 그 흥분 없는 고요함이야말로 웅변이 청중의 이성에 대해서 표시하는 일종의 경의임에 틀림없었다. 감정이 아니라 이성을 향해, 그는 마지막 호소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의 본고장인 그리스 인으로서 참 으로 어울리는 웅변의 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붓다가 생각한 이상적인 설법의 양상도 역시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의 입장을 취하는 그것이었다. 그것은 노호하고 절규하는 예언 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또 신령에 충만하여 권위있는 듯이 말하는 종교가의 그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격렬한 말을 내뱉아 청중 의 감정을 뒤흔들어 놓는 연설 태도와도 전혀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그리스 인의 웅변이 흥분 없는 고요한 어조로 끝나는 것을 특징으로 한 다면, 여기에서도 또한 처음과 중간과 결말을 일관하여 잘 설해질 것이 요구되었고, 또 이론과 내용의 구비와 이성을 가지고 고요히 이성을 향 해 호소할 것이 요청되었다.

    거기에는 붓다의 사람됨과 그 사람의 성격 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는 듯이 생각된다.
    그것은 그렇다 하고, '전도 선언'의 셋째 부분은 어떤 것인가? 그것 은 붓다가 금후의 예정을 말씀한 대목이다.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그곳은 붓다가 진리를 깨달은 보리수 근처의 마을이다.

    우루베라로 부터 바라나시까지 왔던 붓다는 이번에는 다시 우루베라를 향해 돌아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그 곳은 붓다로서는 가장 추억이 많은 고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거기에는 이 새로운 가르침의 씨가 아직 한 알도 뿌려지지 않았다.

    먼저 그 마을로 돌아가자. 이렇게 생각 했을 붓다의 심정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다.


    아함경이야기중 [1.그사람. 7.인간성(1장의 마지막)]은 다음 회에 계속 연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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