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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제 6 장 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

by 혜명(해인)스님 2018. 7. 3.


-제 6 장 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
    문수보살은 첫 번째로 각수(覺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마음의 본성은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이 세상은 여러 가지 차별이 있습니까.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사람이 있고, 사지가 완전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구자도 있으며, 용모가 단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신의 세계를 반성하여 보면 업(業)은 마음을 알 수 없고 마음은 업을 알지 못합니다. 감각은 그 결과를 알 수 없으며 결과는 감각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은 감각을 알지 못하며 감각은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인(因)은 연(緣)을 알지 못하며, 연은 인을 알지 못합니다." 이에 대하여 각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그대는 이 문제를 잘 물어주었습니다. 나는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설하고자 합니다. 잘 듣도록 하십시오.

    모든 것은 자성(自性)을 갖지 아니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묻는다 하여도 체득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것이라도 서로 알고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냇물은 흐르고 흘러서 끝이 없으나 그 물 한 방울, 한 방울은 서로 알 수 없는 것과 같이 모든 것도 그러합니다.

    또 큰 불은 타올라 잠시도 쉬지 않지만 그 속에 있는 불꽃들은 서로 알지 못합니다. 그와 같이 모든 것은 서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눈과 귀와 혀와 몸과 마음 등은 괴로움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나 실제로는 아무런 괴로움도 받고 있지 않습니다.

    또 사물 그 자체는 항상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나 나타나고 있는 쪽에서 보면 항상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 것에도 아무런 자성은 없습니다. 또 바르게 사유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모든 것에 자성이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의 눈은 청정하고 불가사의 합니다. 그러므로 허망이라고도 말하고, 또 허망이 아니라고도 말하며, 진실이라고도 말하며 진실이 아니라고도 말하는 것 등은 모두가 꾸며진 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문수보살이 두 번째로 재수(財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는 경우, 어떠한 까닭으로 해서 여래는 중생의 시간, 수명, 일체의 행위, 견해 등에 따라서 교화하는 것입니까."

    그때 재수보살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지혜가 밝은 사람은 항상 적멸의 행을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그대에게 설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신체를 안으로부터 관찰하여 보면, 도대체 나의 몸에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인가. 이와 같이 정확하게 관찰하는 사람은 자아(自我)가 있고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체의 상태를 깨닫고 있는 사람은 마음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아니합니다.

    이와 같이 신체가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깨닫고, 모든 것으로부터 공(空)을 깨달은 자는 모든 것이 허망함을 알아 다시는 그 마음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신체와 정신이 서로 관계하고 있고, 관련을 가지면서 활동하고 있는 모양은 흡사 타오르고 있는 불의 바퀴와 같아서 어느 것이 앞이고 어느 것이 뒤인지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또 인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업은 비유컨대 꿈과 같은 것이며 따라서 그 결과 또한 모두가 적멸한 것입니다.

    또 모든 세상의 일은 다만 마음을 중심으로 하여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기호에 의 하여 판단을 내리는 자는 그 견해가 잘못되어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또 생멸(生滅)하고 유전(流轉)하는 일체의 세계는 모두가 인연으로부터 일어나고 순간순간마다 소멸하고 있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며, 빠르게 변해가며 공(空)하여 진실한 자기[自我]는 없다고 관찰하여 집착하는 마음을 떠납니다."

    문수보살은 세 번째로 보수(寶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중생의 몸은 모두가 흙,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 안에 진정한 나[自我]라고 하는 실체는 없습니다.

    또 모든 사물의 본성은 선(善)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까닭으로 중생에게는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고 선과 악이 있으며, 모습이 단정한 자와 추악한 자가 있습니다." 그때 보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저마다 행하는 업에 따라서 과보를 받고 있는 것이며, 그 행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입니다.

    예를 들면 밝은 거울에 비치고 있는 영상이 어려 가지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습니다. 혹은 식물의 종자는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싹을 내는 것과 같이, 업의 본성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많은 새들이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업의 본성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지옥에서 받는 괴로움은 밖에서 별도로 오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업의 본성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문수보살은 네 번째로 덕수(德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는 다만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까닭으로 부처님은 무량한 법(法)을 설하고 무량한 소리를 내며, 무량한 몸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또 초인적인 힘에 의하여 나타나는 여러 가지 이변(異變)을 무량하게 보여서 무량한 중생을 교화하는 것입니까. 더욱이 법성(法性) 안에서 이와 같은 차별을 구한다면 얻을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덕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불자여, 그대의 질문은 실로 의미가 깊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이 이것을 깨닫는다면 항상 부처님의 공덕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대지(大址)의 본성은 하나이면서도 모든 중생을 저마다 안주시키고 있고, 그러면서 도 대지 자신은 아무런 분별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법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또 불[火]의 본성은 하나이면서도 모든 것을 태워 없애지만 불 자신에게는 아무런 분별도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큰 바다에는 무수한 강물이 흘러 들어가고 있지만 그 맛에서는 조금도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바람의 본성은 하나이면서도 일체의 것을 날려 보냅니다. 그러나 바람 그 자체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태양은 시방의 모든 것을 비추지만 그 빛에 차별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 또한 차별이 없습니다.

    또 하늘의 밝은 달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우러러봅니다. 하지만 달은 어느 한 사람에게 마음을 두지 않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법도 그러합니다."

    다섯 번째로 문수보살은 목수(目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여래의 복전(福田)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중생이 받는 과보는 각기 다릅니까.

    중생에게는 모습이 아름다운 자도 있고 추한 자도 있으며, 귀한 자도 있고, 천한 자도 있고,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고, 지혜가 많은 자가 있는가 하면 적은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래는 평등하여 친하고 친하지 않음의 분별이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때 목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예를 들면, 대지는 하나입니다. 친하고 친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식물의 싹을 트게 하는 것과 같이 복전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같은 물이지만 그릇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지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복전도 중생에 의하여 달라집니다.

    또 변재천(辯才天)이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복전도 또한 중생을 즐겁게 합니다.

    또 밝은 거울이 여러 가지 영상을 비추는 것과 같이 모든 부처님의 복전도 시방세계를 남김없이 비춥니다."

    문수보살은 여섯 번째로 진수(進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이면서도 가르침을 들은 중생은 어찌하여 똑같이 번뇌를 끊을 수가 없습니까." 그때 진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불자여, 잘 들으시오. 나는 진실한 가르침을 설하고자 합니다. 중생에게는 신속하게 해탈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만약 미혹을 없애고 해탈에 도달하고자 생각한다면 항상 마음을 굳게 갖고 커다란 정진을 일으켜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젖은 나무에는 불이 잘 피지 못하는 것과 같이 불법 안에서 게으른 자 또한 그와 같습니다.

    한편, 불을 피울 때에도 자주자주 쉬게 되면 불길은 약해지고 이윽고는 꺼져버립니다. 게으른 자도 이와 같습니다.

    결국, 게으른 자가 불법을 구한다고 하는 것은 눈을 감고 빛을 보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수보살은 일곱 번째로 법수(法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중생 가운데는 불법을 듣기만 해서는 번뇌를 끊을 수 없는 자가 있습니다. 불법을 들으면서도 탐욕을 일으키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며,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어떠한 까닭입니까."

    그때 법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불자여, 다만 듣기만 하여서는 불법을 체득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구도의 진실한 모습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다 해도 입으로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과 같이 다만 듣기만 하는 자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온갖 약을 알고 있는 훌륭한 의사일지라도 스스로의 병은 고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다만 듣기만 하는 자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또 가난한 사람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남의 보물을 세어도 스스로는 반 푼조차도 갖지 못하는 것과 같아 다만 듣기만 하는 자도 그와 같습니다.

    또 장님이 그림을 그려서 남에게 보여 준다 해도 스스로는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다만 듣기만 하는 자도 그와 같습니다.

    또 물속에 떠다니면서도 물을 마시지 못하고 드디어는 목말라 죽는 사람이 있는 것과 같이 듣기만 하는 자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문수보살은 여덟 번째로 지수(智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불법 중에서는 지혜를 제일로 삼는데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까닭으로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四無量心]을 찬탄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법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때 지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불자여, 잘 들으십시오.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은 다만 한 법으로는 위없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래는 중생의 성질을 잘 알아서 그때마다 적절한 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탐욕 하는 중생에게는 보시(布施)를 가르치고, 바른 생활을 하지 않는 중생에게는 지계(持戒)를 가르치며, 성 잘 내는 중생에게는 인욕(忍辱)을 가르치고, 게으른 중생에게는 정진 (精進)을 가르치며, 마음이 혼란하기 쉬운 중생에게는 선정(禪定)을 가르치고, 어리석은 중생에게 는 지혜를 가르치며, 사랑이 없는 중생에게는 자애(慈愛)를 가르치고, 사람을 상해(傷害)하는 중생 에게는 자비를 가르치며, 마음이 괴로운 중생에게는 기쁨을 가르치고, 애욕이 강한 중생에게는 버리는 마음[捨]를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실천을 계속해 간다면 이윽고는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홉 번째로 문수보살은 현수(賢首)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모든 부처님은 다만 일승(一乘)에 의하여 생사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모든 불국토(佛國土)를 관찰하여 보면 사정이 각각 다릅니다. 즉 세계, 중생, 설법(說 法), 초월(超越), 수명(壽命), 광명(光明), 신력(神力)등 모든 조건이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불법을 갖추지 않고서는 최고의 깨달음을 완성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현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문수보살이여! 불법은 변하지 않는 가르침입니다. 오직 한 법[一法]일 뿐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한 길[一道]에 의하여 생사를 초월하고 있습니다.

    모든 부처님의 몸은 다만 하나의 법신(法身)이며, 또 그 마음이나 지혜도 일심(一心)이며, 하나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중생이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방법에 따라서 설법과 교화도 달라집니다. 또 모든 부처님의 국토는 평등하게 장엄되어 있지만, 중생들이 쌓아온 업[宿業]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눈에 비치는 것도 같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힘은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중생의 숙업이나 과보에 따라서 진실한 세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열 번째로 모든 보살들은 문수보살을 향하여 물었다.

    "불자여,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을 저마다 설하였습니다. 아무쪼록 다음에는 그대가 그 깊은 지혜에 의하여 부처님의 경계를 설하여 주십시오.

    부처님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또 그 원인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하면 거기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 또 어떻게 하면 그 세계를 알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때 문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여래의 깊은 세계는 흡사 허공과 같이 광대합니다. 설사 중생이 거기에 들어간다 해도 진실로는 들어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계의 원인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고 있으며, 가령 부처님이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설법하신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을 다 설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해탈시키고자 할 때에는 중생의 마음이나 지혜에 따라서 불법을 설하십니다. 그리고 아무리 설하여도 불법은 다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중생의 능력에 따라서 자유자재하게 설하여 무수한 중생의 세계에 들어가시지만 부처님의 지혜는 항상 맑고 고요합니다. 이것은 오직 부처님만의 세계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과거, 현재, 미래에 걸림이 없으며 그 세계는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세계는 업(業)도 아니고 번뇌고 아니며 적멸(寂滅)도 아닙니다. 또 의지할 곳도 없습니다. 그러나 평등하게 중생의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일체 중생의 마음은 과거, 현재, 미래 안에 있고, 부처님은 단 한 생각[一念]만으로 중생의 마음 을 낱낱이 분명하게 압니다."

    문수보살이 이와 같이 설했을 때,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하여 이 사바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의 숙업과 신체, 능력, 지계(持戒) 등의 각기 다른 상태가 나타났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방의 무량무수 한 세계에 있는 중생의 차별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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