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삼매(一相三昧)
일상삼매(一相三昧)는 무엇인가 하면 천지우주(天地宇宙) 모두를 진여불성(眞如佛性) 하나로 보는 것입니다.
천지우주에는 다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불성 일원론(一元論)입니다.
물(物)과 신(神)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부처와 나와 따로 둘이 있는 것도 아닌 것이고, 천지 우주를 하나의 불성(佛性)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것보고 일상삼매라고 하고, 그렇게 분명히 느끼는 것 보고 해오(解悟)라고 하는 것입니다. 풀 해(解)자, 해오입니다. 그래가지고서 그런 자리 일체 존재가 다 진여불성 아님이 없다.
그런 자리를 놓치지 않고서 염념상속(念念相續)으로 공부를 이어 간단 말입니다.
그래야 참다운 참구(參究)가 됩니다.
그러기에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남악회양(南嶽懷讓) 선사, 6조 혜능 대사의 정법을 받은 스님입니다.
남악회양 선사 휘하에서 마조(馬祖)가 공부할 때에 마조가 팔척장신이고 장부다운 사람이라 공부도 열심히 하겠지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앉아만 있단 말입니다.
남악 선사가 보아하니 그릇은 좋은데 법(法)의 한계를 잘 모른단 말입니다.
법을 잘 모르고 닦는다고 생각할 때에는, 다시 말하면 마음이 무엇인가?
마음과 일체 존재의 관계가 무엇인가?
이런 것을 모르고 닦는다고 생각할 때는 힘의 낭비를 많이 합니다.
따라서 저 사람의 마음을 이제 깨우쳐 주어야 되겠구나. 그래가지고 마조가 공부하는 방 앞에 가서 조사 스님이 벽돌을 뜨르륵 뜨르륵 갈았단 말입니다. 벽돌을 가는 소리가 몇 시간 동안 계속된단 말입니다.
마조 역시 공부하는 학인이지만 이상하기도 해서 은사 스님께 물어보았습니다.
대관절 무슨 필요로 그렇게 벽돌을 갈고 계십니까?
남악 선사의 대답이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고 그런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조가 웃으면서 노장님도 참 망령이 드셨습니다.
벽돌을 갈아서 어떻게 거울이 된다고 그렇게 갈고 계십니까.
그 말끝에 남악 선사 답이 가부좌 틀고 앉아가지고서 무슨 놈의 부처가 될 것인가?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지금 소가 끌고 가는 구름마<달구지, 수레>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 구루마가 안 가면 구루마를 때릴 것인가? 소를 때릴 것인가?
마땅히 채찍질을 소한테 해야 달구지가 잘 굴러가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주인공(主人公)인데 몸뚱이만 애쓰고 앉아본들 그걸로 해서는 큰 공덕이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주인공 자리를 분명히 느끼고 앞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공인 마음이 앞선다고 생각할 때는 몸뚱이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할 때는, 마음은 부처 거니 하지만 몸뚱이는 부처라고 생각을 잘 안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 몸뚱이나 일체존재, 일체물질 모두가 부처 아님이 없습니다.
내 몸뚱이까지도 물질이 아닌 바로 부처라고 불성이라고 생각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물질이 아니라서 불성(佛性)이 되겠지만, 내 몸은 물질이 아닌가?
하루에 몇 칼로리를 먹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할 때는 그 몸뚱이 건강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합니다.
잘 먹여야 하고 잘 입혀야 하고, 그러나 이 몸뚱이가 존재가 아닌, 물질로 있지가 않단 말입니다.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그림자를 천만 개를 곱하고 보태고 한다 하더라도 그림자는 그림자 아닙니까.
제로를 역시 천만번 곱하고 보태도 제로는 제로입니다.
똑같이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이 인연(因緣) 따라서 상(相)을 내서 사람 같은 상을 내고, 또는 해 같은 상을 내고, 달 같은 상을 낸다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상에 불과한 것이지 실지로 있지가 않습니다.
요즈음 철학에서 말하는 실존 분명히 이 몸도 그림자와 마찬가지입니다.
있지가 않는 것입니다.
허망한 상이 계속되는 것이니까.
허망상이 계속되는 그것 보고 우리가 잘못 생각해서 나라고 하고 너라고 하고 금(金)이라고 하고 다이아몬드라고 하는 것이지 그런 상이 실존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느껴야 합니다.
이것만 잘 느껴버려도 이 몸뚱이가 항시 가볍단 말입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 자도 그만 안 자도 그만, 이 몸뚱이가 실존적으로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거기서 생기는 피해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누가 한번 때리면 금방 진심(嗔心)을 낸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아함경(阿含境)을 보면 그대가 공부할 때 양날톱으로 그대 목을 슬슬 자른다 하더라도 표정을 굳히면 불자가 아니다.
이런 말씀이 있단 말입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이고, 네 것도 아닌 것인데 몸뚱이 누가 헤친다고 생각할 때 불법적(佛法的)으로 여법(如法)하게 생각할 때는 성낼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대로 본래시불(本來是佛), 본래 바로 부처라고 생각할 때는 내 마음만 본래 부처가 아니라, 내 몸도 일체 존재, 일체 물질이 다 본래 부처란 것입니다.
삼천 대천세계 부처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처 아닌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느껴서 마음을 먼저 열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닦아야 그래야 돈오돈수(頓悟頓修)입니다.
그래야 돈오점수(頓悟漸修)란 말입니다.
돈오돈수라 해서 금방 다 된 것이 아니라, 습기가 있어 놓아서, 금생에 지은 번뇌 금생에 나와서 잘 못 배우고, 잘 못 듣고, 잘 못 생각하고, 이런 번뇌가 우리 잠재의식에 꽉 끼어있고, 또 무수 생(生)동안 윤회(輪廻)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우리 습관성(習慣性), 이런 것은 갑자기 녹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못 녹이면 마음이 좀 열렸다 하더라도 아무런 힘을 못 내는 것입니다.
석가모니와 더불어서, 원효(元曉)와 더불어서, 보조(普照)와 더불어서, 우리가 갖추고 있는 것도 원만구족(圓滿具足)이라 똑같지만 다만 그분들은 습관성을 녹여버렸기 때문에 명행족이라, 참다운 법력(法力)을 갖춘 도인(道人)이 되고,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지, 증명(證明)을 아직 못 한 것입니다.
증명(證明)을 제대로 했다고 한다면 분명히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한테는 그러한 소중한 불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요즈음 잘 못 생각한 사람들은 신통 그것은 외도(外道)나 하는 것이 아닌가?
신통의 본고장이 불가(佛家) 아닙니까.
외도는 기껏해야 5통밖에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불자는 바르게 닦으면 반듯이 6통까지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에 불교가 위대한 것이고 불심(佛心)이 위대한 것입니다.
앞으로는 그렇게 위대한 도인들이 많이 나올 것이지만, 그렇게 나와 버려야 과학을 온전히 제어하고 과학을 굴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불교인들이 항시 그 아는 것으로만 그쳐 버리면 과학을 우리가 굴릴 수가 없습니다.
현대 물리학(物理學)도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물리학도 모두가 에너지뿐이다.
에너지라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의 정기(精氣)란 말입니다.
<물리학적인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일체 존재는 물질이 아닌 우주 에너지의 활동 형상화인 것입니다.
따라서 현대 물리학이 부처님 도리를 차근차근 밝히고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이 물질은 본래가 없는 것이고, 일체가 에너지뿐이다.
현대과학도 이렇게 증명을 하는 것인데 하물며 우리 불자들이 상(相)에 걸리고 물질에 걸린다고 생각할 때는 불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물질은 하나도 없고, 눈곱만큼도 없고, 따라서 절대공간 절대시간이 원래 없는 것입니다. 절대물질[절대공간 절대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우리 중생이 삼독심(三毒心)에 가려서 있다고 잘 못 보는 것뿐입니다.
<삼독심(무명심) 즉 물질은 본래 없고 있는 것은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불자님들은 꼭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바른 말씀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교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절대공간 절대시간[절대물질]은 절대로 없습니다.
있는 것은 불성(佛性)뿐인데, 우주에는 불성뿐인데, 우리 중생이 업에 가려서 잘 못 본다는 그런 차이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공부를 할 때는 내 몸도 공(空)이요,
모두가 공이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라. 제법공(諸法空)자리, 오온개공 자리를 느끼고 공부를 하여야 참선(參禪)이 되는 것입니다.
-🙏淸華 大宗師 『마음의 고향』-
출처: 글쓴이: 🙏참마음
https://cafe.daum.net/pokyodang/7QrQ/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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